2012년 2월 1일 수요일

포럼(Forum=Foro)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7년 3월 15일

TV 방송국 Canal 13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4시에 "Forum"이라는 '미니재판소'를 방영한다.
라틴말인 포럼은 서반아어로 Foro라는 말을 파생 시켰는데, 고대 로마에 있던 공공사건, 재판, 상거래를 하던 중앙광장과 법정을 뜻한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일부러 틈을 내어 포럼을 시청할 때가 많다.
이 '미니재판소'에서는 굵직굵직한 사건보다는 이웃 간의 사소한 마찰이나, 지나치리만큼 결벽을 챙기는 치밀하면서도 순수성 넘치는 송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음이  흥미롭다.

어려운 말이 돌출된다 싶으면 사전을 들추면서라도 내가 열성으로 그 프로를 시청하는 정확한 이유는, 아르헨티노(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적나라한 인간관계와 생활철학이 작은 부피로 축소되거나 혹은  부각되는 면이 나의 시선을 오롯이 끌어 당겨서다.

*뒷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떠들며 사는데 지독한 안면방해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부디 선처해 달라.

*옆집 사람이 낙숫물을 우리 집 쪽으로만  흐르게 만들었는데 일종의 주권침해라고 본다. 확실한 판결을 내려 주기 바란다. 너무 계획적이면서 지나치게 무분별한  행동 아닌가?

*같은 동네의 Vecino(이웃)인 Muchacho(젊은이)가 아침마다 요란한 화장에다 여장을 한 채 동네 한 가운데를 질러 다닌다. 그건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풍기문란을 유발하는 데다  교육상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속히 대책을 강구해줬으면 한다.

*30년 지기의 친구가 전기프라이팬을 빌려 갔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을 돌려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시침 뚝 떼면서 수리해 줄 생각은 커녕,  원래 고장 난 걸 빌려 줬더라고  되레  화까지 내며 우긴다.  Inmoral(비도덕적이다)!

보고 듣기에는 아기자기하고 하찮은 것 같아도 당사자들에겐 커다란 사건이고 돌발사고이고, 충격적일 수도 있는 그러저러한 송사(訟事)에 대응하는 재판관.
그의 명쾌하면서도 신속한  유추해석과 판결은 미니재판소에 참석한 방청객은 물론이고, 시청하는 이들, 하물며 나로 하여금 시원한 카다르시스를 안겨 주기에 넘치도록 충분하다.
포럼을 일종의 애정을 쏟으며 열심으로  시청하면서 아르헨티노들의 철저하도록   완벽한 개인주의적 주관에 깊이 공감하고 감격할 때가 많았다.

고국이건 한인사회건 소속감과 사명감에 젖어 일할 만한 간성지재가 한껏 몸을 사리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걸 희생하면서까지 앞장서 일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이들 또한 없지는 않은 듯 싶다.
난세에 나서서 구태여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열심히 생업에 올인 하고 골프 같은 운동에나 잡념을 쏟는 이들이 더 많은 추세이기도 하고.
잔생이 보배(못난 체 함이 이롭다)라는 옛말이 전혀 그르지 않다는 판단에서 일부러 그러는 모양이다.

포럼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작은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게 그나마 순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솔직하고 당당하면서도  담담하기까지 한 자세들이던지…….
 아르헨티노들.
작은 부분에서조차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휴머니즘적인 불요불급의 인격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닐까를 새삼 유념하듯 깨닫게 된다.







-초여름-
  



나는 간혹 글쟁이 노릇이 힘들지 않은지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내 대답은 짧거나 길다.
오늘은 약간 길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타고난 일이잖아.
운명과 같은 일이고 .
자유롭게 안주할 수 있고 축복도 함께하는 일이라고 가벼이, 또는심각하게 생각해 왔었지 않을까.
매우 단순한 각도에서도  특이한 이면을 찾아야 하긴 해.
글쟁이만큼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혹독한 처신도 드물거야,  아마.)

첨예로운 세상을 만끽하는 이들은 늘 따로 정해져 있다.
세상은 항상 그들만의 것처럼 부상되기 마련이다.

거의 1년 정도 잊고 지냈던 드라마 시청을,  돌파구라도 찾듯 새삼  시도한다.
나는 아무에게서도 현실을 똑바로 이해하는 방식을 익히지 못했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수처럼 간직한 ,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도  제대로  터득하지는  못했다.

내 비록 글에게는 리얼리즘을 선호했어도 ,  나 스스로에겐 이상주의만을  추구해 왔던 게 아니었나 어제, 그리고 오늘 가까스로 자인한다.
회심하는 마음 역시 포옹처럼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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