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1일 화요일
한국인의 밤
맹하린
한아 수교 50주년 기념 <한국인의 밤> 콘서트가 콜리세오 극장(Teatro Coliseo)에서 오늘 밤과 내일 밤, 이틀에 걸쳐 개최된다.
한인회의 중책을 맡으신 분께서 초대장을 8장이나 가져다 주셨다.
21일 표가 네 장, 그리고 22일 표도 네 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웃의 갈만한 분들에게 일단 의향을 물은 뒤, 나눠 주기에 바빴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남편의 간병은 물론이고, 제품 업까지 운영하느라 한 시도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을 영심엄마에게 제일 먼저 건넸다.
친한 친구와 함께 다녀오라고 두 장을 내줬다.
우리 가게 앞의 오디열매를 모두 따먹어도 된다고 선선이 허락했던 바로 그 영심엄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영심이라는 이름의 개를 산책 시키며, 때때로 내게 레퍼토리가 비슷한 하소연을 스스럼없이 잘 털어 놓는다.
그녀의 남편 얘기는 그녀보다 내 쪽에서 더 기피하는 편이긴 하다.
항상 그녀의 생업에 관한 얘기가 주제가 된다.
현지인 경찰이 매달 정기적이다 싶게 찾아와 트집을 잡는다는 얘기다.
트집만 잡으면 괜찮겠는데, 대놓고 봉투를 요구한다고 한다.
상납금을 매번 그런 식으로 뺏기는 데서 오는 울분은 그녀에게는 대단한 비중의 스트레스로 쌓이기 때문에 문제중의 커다란 문제다.
“ 나쁜 인간!”
어려서부터 욕이라고는 모르고 지내온 나지만, 영심이네를 등치는 그 경찰에게는 욕도 아까워져, 하물며 욕까지도 최대한으로 아껴서 쏟아내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욕이란 본받을 일은 못되므로,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욕으로 바꿔서 하게 된다.
"복 받을 인간."
5년 전부터 하반신 마비를 맞이한 상태라, 허구한 날 하의실종의 날들이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이불만 덮고 사는 영심아빠를 직접 보여줘도 눈 하나 깜짝도 안한다는 경찰이다.
일부러 이불을 젖히며 이러고 사는 인생을 보살피며 살아가노라고 간절히 설명해도 그 경찰의 악랄함은 점차 더 하면 더했지 전혀 수그러 들 줄을 모른다는 거였다.
그 경찰에게 있어, 영심이네 제품공장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다.
뭐라도 트집을 잡자면 트집거리가 되고 꼬투리도 되는 것이다.
간혹 가다 분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대항하게 되면, 제품이 될 일감을 실어오고 완제품을 실어 나를 때를 지키고 있다가, 당장 으르렁 대며 협박부터 쏟아진다고 한다.
몽땅 압수하겠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일감을 내어주는 한인 업주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를 겁내게 되는 영심엄마로서는 결국 다시 봉투로 해결하는 방법을 되찾기에 이른다.
결정적 요인의 작용이 언제나 불리한 쪽으로만 치닫게 됨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영심 엄마가 내 눈에는 투명인간에게 이끌려 가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였다. 때때로가 아니라 자주 허우적대는 모습이라 서다.
영심엄마가 그녀의 주인이라기보다, 투명인간이 그녀의 진짜 주인이고, 그 주인에게 자주 얻어 터지는 일상이 언제라도 엿보이게 되는 삶.
영심엄마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못 보면서, 약간이나마 그녀의 일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안고 지켜본다는 건 얼마나 무겁고 힘겨운 과제처럼 여겨지던지 나는 때로 그점이 참으로 미안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겪을 만큼 겪어 내고 있는 것이다.
1985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방문에 맞춰, 나는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고 온 일이 있다.
물론 남편과 함께였다.
한국은 한 달이었고, 일본엔 열흘을 머물었었다.
그런데 일본의 주요도시에는 한국에서 몰려 온 연예인단이 상상 외로 많이들 체류하며 어떤 면으로는 고생스러운 날들을 운명처럼극복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어떤 밤, 가라오케 극장에서 그 한국 연예인단들이 공연하는 쇼를 구경하게 되었다.
페티 김, 조용필 등등의, 얼굴만 틀리지 노래하는 음성만은 너무도 똑같은, 또는 더 잘하는 한국 연예인들이 기라성처럼 공연을 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우리 한국인들의 타고난 예술적 기질에 대해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었다.
그렇지만 웬지 마음 한 구석이 몹시도 쓰라렸다.
남의 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 가는 모습이 참 을씨년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이번에 내아 하는 연예인들도 갈고 닦은 예술성이 그 어떤 일류 가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뛰어나리라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본다.
나는 해마다 2월이 되면 거의 외출을 삼간다.
여행 철인데도 여행까지 자중하는 편이다.
가족 하나의 기일이 낀 달이라는 이유로, 누군가 굳이 자중하라고 질타를 퍼붓지 않아도, 내 쪽에서 자중에 자중을 다하는 달이다.
많은 교민들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콜리세오 극장에 가게 되리라고 예상된다.
즐겁고 아름다운 물결이 가득 출렁이고, 행복 또한 범람하는 밤이 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우리를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오게 된 연예인들이고, 하물며 우리와 아르헨티나와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것이다.
사정이 있어 관람은 못하지만, 이 행사를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에 뒤늦은 감사를 전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오후 6시 반에 친구들이 찾아 오고 전화오고 그래서
사정을 털어 놓기는 싫고
하는 수 없이 공연을 그녀들과 함께 보고 왔어요.
따로 표를 안 남겼다고 했더니, 여유 있는 표가 있다고 했어요.
부랴부랴 외출복 갈아 입고 얼굴에 페인팅도 좀 하고.
문득 내 맘대로 사는 세상에 살고 싶었어요~
은둔의 거인들이라 분명 그럴 리는 없겠으나
혹 친애하는 그대들이 와 있을까봐 박수도 조신하게 쳤던 밤.
아주 가까운 곳에 문우의 부모가 계셨어요.
그런데 내가 기대하던 비보이 댄스나 태권도무는 다음날에나 있다고 하고
잘 모르는 가요만~
측근이신 분의 변명은 리허설 무대였다고 생각하라고.
왜 리허설을 외국의 무대에서 했나요?
어찌하여 바쁘고 노쇠한 분들 모시고 하나요?
겨우 갔는데...
다음엔 이렇게 티나게 차별이 주어지는 공연이 아니기를 바라게 됐어요..
마땅한 홍보 정도는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마치 자중하기 위해 공연에 다녀 온 것만 같았죠.
장소만 옮겨 낸 저의 자중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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