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9일 목요일

뒤에 있던 그들이 옆과 앞에 있다


           맹하린


어제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찾아오는 볼리비아노 고객인 훌로이란의 집까지 꽃배달을 가게 됐었다.
수술하고 퇴원한 그의 부인 까롤리나가 나를 좀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까롤리나는 내가 만든 꽃을 볼 때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었나 보았다.

나는 차를 이용해야 하는 배달일 경우엔 항상 레미세로(대절용 자가용기사)에게 보낸다.
가게를 비워서도 안 되지만, 일종의 불편이나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더 그런다.
언제였던가.
현지인 고객이 자기 집에 처치해야할 꽃나무가 많은데 거저 주겠다고  초대를 했을 때도 나는 정중히 사양했었다.
부담은 부담스럽지 않을 때 더 지켜야 하니까.
부담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세상에서 거저 얻는 건  없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막상 훌로이란의 집을 방문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침 훌로이란은 가게에 출근했기 때문에 (훌로이란은 Feria에도 가게가 더 있다.)까롤리나와 무까마(가정부)가 나를 반겼다.
까롤리나의 지시로 특별히 만들어진 헤이즐넛을 감탄 섞어 마시며 1시간 정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 부부가 그렇게나 궁궐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게 도대체 용납이 안 되어 나는 온종일  미로(迷路)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
난데없는 위압감과 약간의 거부감까지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나고 피어났다.
마치 우리 교민을 대표하여 그 집에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우리 교민은  25여년 동안  유태인 상가(商街)를 하나하나  번영시켜  나갔지만 볼리비아노, 그들은 우리의 상권(商圈)에  기하급수적으로  참여해 오기 시작한지 벌써 이십여 년이 되었다.
수적(數的)으로는 단연 수세(守勢)에 몰릴 수도 있는 형세(形勢)였다.

때때로 나는 일요일이면 볼리비아노들의 장터가 열리는 까스따냐레스 거리와 보노리노 거리가 교차되는 장소를 찾아 간다.
산책 겸,  구경 삼아 그렇게 다닌 지 어느 새 15년쯤 되었다.
그곳은 뭐든 싼 게 아니라 무조건 싸다.
그들의 주식인 감자는 물론이고, 보라색 감자도 있고, 청양고추도 많다.
15년 전에는 감자가 3Kg에 1달러였는데, 요즘은 3Kg에 2달러 정도 된다.
볼리비아 고추는 상상 외로 지독하고,  뒷맛까지도 한참동안 맵고 맵다.
우리 한국 고추는 매우면서도 달지만,  볼리비아 고추는 매운 감각으로만 맵다.

말 그대로의 도떼기시장이다.
시끌벅적하면서 없는 게 없어 구경이 더 된다.
고급스러운 구경은 못되고 소박한 구경거리다.
천막을 친 간이 이발소, 간이식당, 간이 옷가게, 가방 가게, 신발 가게, 액세서리 가게.
별의별 게 다 있다.
까세로(집에서 만든 상품)로 만든 께소(치즈), 투박하고 커다란 엠빠나다(파이=만두)등등.
그곳에선  볼리비아노들이 수 백명 정도 북적이는 모습을 짧은 시간에 많이 볼 수가 있다.
나는 단지 산책과 구경으로만  다니기 때문에 별로 사지는않는다.
세상 이치라는 게 참 그렇다.
왠지 싸면 싼 맛이 있고 비싸면 비싼 맛이 있다.

남편이 멀쩡했을 때는 남편이 주로 다녔다.
그런데 여느 볼씨들은 남편에게 협박도 불사(不辭)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영역이니 들어오지 마라!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죽어나갈 수도 있다!
그러저러한 으름장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한국인도 와줘서 괜찮다는 대응(對應)이다.
나는 더좀 안쪽으로는 접근을 삼가한다.

전반적으로 물가의 상승폭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는 해도 그곳에 가면  대부분 상상외의  저렴한 가격과 수준에 식료품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우리 한국인과 불가불념(不可不念)의 관계지만,  여러 방면으로 꽤 괜찮은 조건을 겸비했다고도 여겨진다.
식료품도 싼 값에 구입하지.
제품일은 가족끼리 혹은 친척끼리 두루 뭉실 합동으로 해내지.
훌로이란처럼 아베쟈네다 뒷길에 작은 가게 덜렁 얻어서 옷 몇 장 걸어 두고, 우선 가격 면에서 승리를 쟁취했으니, 대량주문을 받은 뒤 납품은 공장에서 직접해내는 방식을 취하는 음험하기 이를 데 없는 세금포탈의 명사(名士)들이지.
유럽이나 미국, 또는 한국과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들여온 최신식 모델과 그에 따른 몰데(옷본)를 단시간에 카피하여 전염병처럼 떠돌게 하지.

나는 이 새벽 내 동족들에게 새삼 존경스럽다 못해 흠숭하는 마음까지 솟고 솟는다.
어떻게 이렇고 저렇고 한 북새통과 경쟁체제  속에서,  그들은 벤츠나 BMW나 아우디나 혼다를 상큼하게 몰고 다니며 의류도매상을 끄떡없이 제대로 이끌어 나갈수가 있을까라는 감격이 썰물처럼 몰려와서다.

대통령 크리스티나정부는 지난 1년 동안 달러구입절제령을 미사일 쏘듯 제시했었고, 그로 인한 외화유출방지책은 이렇다할 착오나 과오없이  잘 실행되어 많은 효과를 얻어냈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몇 달 전부터 수입품 금지령이 또 다른 정책으로  발표되었다.
그 또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태와 실정에 있다.
당장 피륙이나 실은 물론이고 공업용자재 등이 아두아나(세관)에 묶여 있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나 날벼락과 다름 아닌 사태가 되었다.
심심파적으로 전개되는 이런 식의 흐름은 과연 어디에서 근거한 노림수라는 얘긴가.
그런 포석(布石)들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 무엇을 위한 변화와 손익을 가져다주게 될지 나로선 예측불허의 형국(形局)으로만 비춰진다.
의류도매상인도 아니면서 현재의 경기순환에 유달리 민감해짐은 물론이고, 우선 걱정부터 앞섬을 전혀 어쩌지  못하겠다.
물론 나라 안의 산업을 육성화 하려는 경기정책(景氣政策)인지라. 민초인 나 정도야  정부당국의 그럴듯한 계획까지 반대하는 입장은 결코 못된다

올해는 윤달이 껴있다고들 하지만, 엘니뇨현상 때문에도 세계적으로 날씨가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후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며칠 전부터 갑자기 추워졌다.
분명한 것은 추위 때문에 활기가 몰려올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추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추위도 고맙게 여겨야겠다는 결심이 새롭다.
모두들 활기로운 경기 호황을 맞이했으면 하고 희망하게 된다.



한국인들의 하청을 받아 제품을 하던 볼리비아노들을 위시한 인접국 이민자들이 'Feria La Salada'에 사업성 내지  자본을 투입한지는 거의 25년 정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수영장위에 세워졌다고 해서 '라 살라다'라는 명칭이붙여짐.)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Feria라고 널리 알려진 이 시장의 성공사례로 인하여  현재 작은 Feria가 조금씩 근교나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일주일에 9백만달러의 전체판매가 이루어지고, 하루 유동인구는 10만여명이며 그 안에서 일하는 인원만 해도  자그만치  2만 5천에서 3만명이라고 한다.
유명 메이커의 짝퉁이 주종을 이루며 80퍼센트는 도둑물건이라고도 회자되고 있다.
Sebastian Hacher라는 작가가 '상그레 라 살라다(짠 피)'라는 책을 2년에 걸쳐 연구한 뒤 써냈고. 또 다른 작가의 책도 발간되었다고  한다.
'상그레 라 살라다'[의 작가가 나오는 동영상은 주로 볼리비아노들을 두둔하고 있어 당장 여기에 올리지 못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심층적인 얘기를 올릴까 한다.
우리 교민경제의 90퍼센트가 의류도매상가에 집중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소재를 곁들이는 일이 좀 망설여졌다.
알고도 모르는 척 신경 끄고 지내는 일도 산뜻하리라 여겨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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