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7일 금요일
이스털린 패러독스
맹하린
내 고객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지만, 현지인도 꽤 있고, 중국인과 인접국 이민자들, 특히 볼리비아노들도 여럿이나 있다.
현지인 고객들은 알음알음으로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사실 인구로 따지자면 한국인보다 현지인과 볼리비아노들이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그점을 유의하고 고객관리만 잘 한다면 꽃가게를 운영하는 일에 크게 지장은 없을 것이다.
현지인 단골들은 내가 그들에게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게 친절하고, 내가 해낸 꽃장식을 맘에 꼭 들어 한다.
현지인 꽃가게와는 차원이 다른 솜씨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법정부케나 머리끈 꽃장식을 찾으러 와서는 나를 헤니아(Genia=천재,영재)라고까지 극찬을 아기지 않는 예쁘고 매력이 넘치는 세뇨리따(아가씨)들도 많다.
얼마 전, 우리 가게와 아주 가까운 J교회의 지하식당에 꽃다발 4개를 배달하러 간 일이 있었다. 일요일이었고, 약간 이른 점심시간이었다.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어, 내겐 좀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보다 먼저 챙겨 주려는 배려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유치부 어린이들 30여명이 점심식사 중이었다.
주방에서 봉사 중이던 자모 한 분이 꽃을 보더니 반기며 내게 다가와 꽃 대금을 지불했다.
나오면서 유심히 보니까 유치부 어린이들은 미역국에 김치가 곁들여진 약간의 한국식 반찬을 앞에 놓고 밥들을 냠냠 먹고 있었다.
어린이들이라 더 예뻤지만, 도란도란 밥을 잘 먹는 모습이 보는 내게 흐뭇함을 안기고 있었다
그점 하나만 보더라도 J교회는 살림을 제대로 꾸려가는 교회라는 인식이 새롭고 신선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속으로 바라게 되던 고객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다시는 안 보고 싶은 사람은 항상 더 자주 보게 되는 이치이므로 내가 참을성 있게 잘 대했기 때문에 일이 그리 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의 대다수가 그렇듯 겉으로는 행복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짓는 고객도 때때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손 붙잡지 못하고 있는 세상이, 때로는 쓸쓸함보다 더한 슬픔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매우 오랜 기간을 방황하는 일에 시간, 그리고 정신을 앗기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나는 굳이 돌이켜 볼 때가 있다.
소통을 주고받는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를 너무도 잘 알면서도 하찮은 이유를 내세워 자꾸만 결별을 예고하고 주고받고 그랬던 날들을.
이제, 기도하면서 나의 신에게 이렇게 찬양하고 싶다.
" 당신께서 항상 나를 헤매게 했던 것 같아도 , 언제나 중심을 잡도록 이끈 존재였던 때가 더 많았습니다. 주님!"
'이스털린 패러독스'라는 약간은 낡았지만 보고 들을 때마다 새롭게 되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기본적이며 물질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 달성된 후에는 부(富)의 증가가 마땅한 행복을 증진시키지는 못한다는 이론을 지칭한 말이다.
욕심이 적은 내게 그런 말이 가당치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일을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열성을 모두 바쳐 해낼 생각이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다 해도 중노동이 아닌 일로 바꿀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런데 언제 궤도에 오르지?
일이 있어서 나는 없던 힘도 생기고 있다.
문학이 없는 생애처럼 일이 없는 생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일은 내게 문학의 바탕이고, 문학은 내게 일의 연속일 따름이다.
벌써 오늘의 일과를 틈틈이 진행 중이다.
휴가철이라서 금요일마다 가는 꽃시장을, 내 대신 다른 사람을 보냈었다.
이제 그 아름다운 꽃님들을 냉장고 안의 물을 채운 통에 살살 넣어야 한다.
어느 날의 나 또한 이스털린 패러독스의 매너리즘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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