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일 목요일

축복처럼 질타처럼 내리던 폭우

    맹하린

저녁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퇴근하는 나는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휘휘  밀려오던 어제 저녁,  자꾸만 가게 입구의 문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그랬다.
그냥 비가 아니라 큰 비가 내릴 것 같은 무겁고 암울한 빛의 먹구름 잔뜩 낀 하늘.
그쯤 되면 당장 퇴근하는게 좋겠다고 몇 번이고 재촉하게 되지만, 아들은 비 때문에 퇴근시간을 앞당기는 건 어느 나라 법이냐고 도무지 끄떡도 안 할 뿐아니라,  요지부동 제 할 일까지도 끝을 안 내려고 한다.
딱히 아들의 할 일이라고 해봐야 그 시간대엔 그저 책이나 읽고 인터넷이나 하는 정도지만.
(아들! 나는 너와 문학이 아니었다면 벌써부터 죽고 싶었고, 이미 죽었을 지도 몰라. 그런데 너와 문학 때문에 앞으로 90까지는 살아내고 싶어. 나중에 두 가지만 확실하게 후회해 줄래? 미리 퇴근하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하게 한 것, 일이 많은 날, 식당에서 뭐 좀 시켜 먹자고 하면 입맛 버린다, 돈 아깝다 그러며 ,  결국은 바쁜 상황이라서  간단히 라면에 찬밥이나  말아 먹게 하던 일.)

결국  셔터를 내릴 무렵엔 하늘이 수많은 호스를 대고 뿌려대는 것처럼 폭우가 엄청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스도 그냥 호스는 아닌, 대형 호스들  같았다.
순식간에 거리는 온통 물바다였다.
쏟아지는 양보다 길바닥에 흐르는 물줄기마다에   쓰나미처럼 막강한 속력이 실려 있었다.
가능한한 순발력 있게  힘을 모아 , 꽤 심각하다는 가뭄을 단박에 몰아낼  실력행사를  본때 있게 보여주자는  듯 급류는 낮은 쪽으로 연신 휘몰리고 휩쓸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지대가 좀 높은 편에 속한다.)

언젠가도 썼었지만 아들은 퇴근시간마다 한 블록, 그러니까 J교회 앞 켠의 산책로는 기꺼이 함께 걸어가 준다.
나란히는 아니고 항상 5미터나 3미터쯤 간격을 둔 걸음이다.
누가 보면 꼭 싸우고 난 모자간처럼 보일 것이다.
그게 나에 대한 질서이자 배려라고 생각하는 아들.
그렇지만 내가 굳이 내색하지  않더라도 나의 기분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걸 파악했을 경우엔 아무 말이나 시키면서 살갑게 굴기도 한다.
나란히 같은 보조로 걸어 주면서까지 말이다.
그 다음 D식당 건너편의 산책길은 나 혼자 걷게 하고 아들은 D식당 바로 앞길로 접어든다.
나와 아들은  D식당의 문앞에서 몇 년 전,  열 서너살 쯤의  현지인 두 명에게 강도를 당했었다.
내 입장으론 그 걸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 길을 피하는 것이고,  아들은 그 정도 가지고  겁 먹기는 싫다면서 부득불 그 길을 선택하는 셈이다.
결국, 나는 영원히 그 일을 기억에서 못 지우는 편이고, 아들은 전혀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려는지.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건, 나는 보도블록보다는 산책길을 좋아한다는 점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다음 반 블록을 남기고 다시 합류하면 드디어 집으로의 당도가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가 그 정도 억수로 쏟아지게 되면, 자가용이 없을 경우, 레미스(대절용 자가용)나 택시를 기본적인 방편으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를 좋아해 마냥 빗속을  걷는 걸 즐기는 편이고, 아들은 단지 한 푼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라 그렇게 걷는 걸 고집하는 셈이다.

말이 걷는 것일 뿐,  우산을 받고도 신발은 물론이려니와 옷도 몸도 흠뻑 젖고 젖기 마련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비옷을 생각안 한건 아니었으나, 더위 때문에 금세  포기했었다.
D식당이 가까워진 육거리에서는 정강이까지 빠지는 급류를 최대한으로 찰박이며 즐기듯 헤쳐 나갔다.
하지만   지나가는 자동차로 인한 급류의 활개짓에 휘말려 나는 휘청 넘어질 뻔 했던 찰나까지  겪어야 했다.
D식당 쪽으로 건너가던 아들도 그 장면 고스란히 보았나 보았다.
때로 나는 아들에게서,  언제 어디서나 평화로이 무사고로 지낼 수 있도록 시나브로 내 주위에 둘러 서 있는 방패라거나 돌담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여러 마디로 아들을 잘 두었지만, 아들은 한 마디로  어미를 못 두었다.
(그래도 내 친구의 아들보다는 좀 나으려나?)
친구의 아들은 나만 만나면, 본인은  자기  엄마의 리모콘이라며, 눈물만 안 보일뿐  내게 일러 바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럴 경우,  친구의 아들이 일단, 약간, 살몃  가엾다.
퇴근하면  소파에 눕기부터 하고, 한국드라마에  이미 중독된 상태인   친구는,  리모콘을 잘 사용하지 못해 그거 틀어라 저거 틀어라 다 큰  아들을 종 부리듯 부려 먹는다는 얘기다. 나는 일단 집에만  가면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고 사는 데다,  컴퓨터도 웬만큼은 도사에 가까우니, 그점에 대해선 큰 소리 탕탕이고 떳떳하기 이를데 없는 편이라고나 할까.
이런 면으로는 나 아들에게 꽤 잘 둔 어미도 되지 싶다.

나의  몸과 옷도 젖을대로 젖었지만, 내 정신까지도  나머지  산책로까지  매우  천천히 걸으며 비에게 흠뻑  적셔지고 말았던 듯 하다.
그래, 이 기회에 나 좀 두들겨 맞자, 그런 심정도 있었을 것이고  나여,  잘 참았다, 되도록  은혜로  받아들이거라, 그런  다짐도 고스란히 느껴 낼 수 있던 폭우였을 것이다.
느닷없어 보이지는 않았고,  이미 예비된 비였다.
비를 피하지 않고
비를 오롯이 맞고
몸도 마음도 고즈넉이 젖고
참으로 특별나고 고맙던 폭주(暴注)였다.
은총처럼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던 강우였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굳이 피하려고 하지 않고
함초롬히 비를 받아들이게 되던 순간이었다.

새삼 깨달았던 것도 같다.
비라는 비 모두  내 아릿한 기분들을 얼마쯤  정화시킨다는 사실을.
절절하던  감성을 표연히 고뇌하게 됐었고
결정적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던 폭우였다고도 보여진다.
물로 만든 폭탄처럼 쏟아지고  퍼 부어 내리는 빗줄기 속을 느릿느릿 걸어 낼 수 있었던 건 어쨌거나  인내심 깃든 행위였다.
그건 견결함, 그 자체였다.
내가 즐거움만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는 게 불현듯  감사로웠다.

나는 신의 어떤 섭리에 의해 살고 있다는 신념의 날들도 때로  있었으므로
나 스스로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살아내지는 못하고 있을 경우가 참으로 흔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일종의 자구책으로 결곡을 익혔던 건지도 모르겠다.
비를 즐기는 감성은 나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나를 기다려 줬을 것만  같다.
어린 시절.
혼자서 바깥마당에 앉아 빗물의 작은 굽이에 손을 적시며 상념에 빠지던 아이였다.
나는.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하다.
나는 열까지 세기도 전에 잠들어 버린다.
선각자들의 얘기와 같이 졸릴 때의 눈커풀이 그 무엇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터득해낸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새벽까지 졸지도 않고 마치 밝은 날만을 선호하는 사람처럼 멀뚱대기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또는 비를 즐기는 내 감각은 진정 불가사의한 구조와 다름 아니다.
결코 끝을 모르는 내 탐미주의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도 진정 전설적이다.
나는 비가 그칠까 두려운 사람처럼 빗소리를 음악처럼 즐기며, 그러나 금세 잠들고 말았다.

이제 나는 다시금 미소를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긍정으로 살아내려고 한다.
(왜 이렇지? 오늘은 마치 슬픔이나 외로움을 어디 먼  곳으로 재이주 시킨  것만  같구나.)
여기서, 이쯤에서 내가 긴장을 풀었다고 단정한다면 사람들은 나에 대한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착오에 잠기고야 말 것이다.
내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언제나 긴장과  공존해왔고, 긴장이 아닌 것처럼 긴장해왔던 것을.
세상은  여전히 장승처럼 의젓하고 고요로운데 나는 왜 그리 폭우에 젖고 찰박이고 휩쓸리고 고통스러워 하고 그랬던 건지 새삼 숙고하게도 된다.

신이 인간에게 애틋함이라거나 감사라거나 열정의 능력을 부여하고 베푸는 자리가 가령 있었다면,  나 분명  손 약간  들고 저요, 저요! 그랬던게 아니었을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당에서 소통을 주고 받고  했던 중이었다면 절대로 그 마당 고유의 법과 테두리를  선망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미리 파악해 뒀어야 했다는 점이다.
어젯밤 폭우는 그렇게도 나를 두들겨 팼고, 내게  질타와  인식의 총알되어 쏘아지고 퍼부어졌다.

오늘, 비 온 후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더 푸르고 더 해맑고 더욱 쨍쨍하다.
뜻밖에도,  톨스토이가 부활에서 설파한 말이 내 맘에 찰랑찰랑 언어의 비로 내리고 있다.

'인간이란 강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어느 강에서나 똑 같아서
어디를 가건 변함이 없지만
강 그 자체에 이르러서는
좁은 것도 있거니와 빠른 것도 있고
넓은 것도 있거니와 고요한 것도 있고
맑은 것도 있거니와 흐린 것도 있고
찬 것도 있거니와 따스한 것도 있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 인간으로서의
온갖 성질의 싹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때는 하나의 성질이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다른 성질이 나타나곤 해서
똑 같은 사람이면서 전혀 다른 성질이
나타날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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