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8일 수요일

백야(白夜), 우수아이아!!!




          맹하린


아르헨티나는 지표의 면적이 넓기도 넓지만 기다란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인지 한 여름일지라도 지방에만 가면 눈 덮인 산과 영하로 내려가는 밤 기온을 만나게 된다.
한 겨울에 지방도시를 여행할 경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춥지만, 어떤 지방도시는 푹푹 찌는 더위 탓으로 반바지와 반소매 차림으로 나다녀야 하는 건 예상사(例常事)가 된다.
그래서 한 계절에 봄가을 닮은 날씨와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계절들을 언제라도 만나볼 수가 있는 편이다.

우수아이아라는 지방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신비롭게도 저녁에 해가 지지 않고, 달처럼 흐린 빛깔로 떠 있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저녁에 지기는 하는데 완전히 떨어지지를 않고 밤중에도 어스레 떠 있어서 신비롭기 이를 데 없다는 느낌에 한참이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현상(現象)은 해가 지평선 저쪽으로 완벽하게 사라질 만큼 지구가 기울지 않는 원리에서 생기고, 해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지구의 기울기에 의해서라고 한다.
남극의 여름은 정반대로 낮이 저녁나절처럼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그점이 신기하게 여겨져 밤늦도록 거리를 쏘다녔다.
그 어둑어둑 어스레하던 도시의,  특색 있는 안온함은 지금껏 시야 가득 잔존해 있다.
밤이, 석양이, 꽃이, 새벽이, 바다가.
밤 11시에 해가 지고
새벽 두시에 벌써 해오름이 시작되는 도시.
아름답고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도시.

아르헨티나의 여러 지방도시를 때때로 찾게 되면, 아르헨티나가 참으로 넓고 크다는 인식(認識)의 한 귀퉁이를 고작 손톱만금만 붙잡아 본 느낌같은 게 서리서리 마음에 깃든다고나 할까.
천혜(天惠)의 땅, 그리고  끝을 모르게 매장되어 있다는 지하자원.
방대한 보고(寶庫)의 해산물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시야에 직접 들어오는 천연경관만 바라보아도 한숨이 저절로 터뜨려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좁은 땅. 고갈된 자원의 내 나라 내 조국을 운명처럼  떠올리게 됨은 뒤늦게 싹튼 애국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방도시나 바다 한 귀퉁이를 뭉텅 떼어내어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일 테고 해서 그저 부러운 마음만 새록새록 식물의 싹처럼 자라고 자란다.

말비나스(포클랜드)전쟁 때, 나라의 한 쪽에서는 전쟁이 났는데도 생필품 사재기하는 민족은 오로지 한국 교민들 밖에 없었을 정도로 태평하게 축구시합에만 열을 올리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지켜보면서 깨닫고 또 깨달았었다.
우선 나라의 면적이 크면서 넓으면서 기다랗고 볼 일이라는 것을.

혹자는 말한다.
신(神)은 때로 맘이 약해서 게으른 아르헨티노들에게 놀면서 지내도 먹고 살만한 넓은 땅을 축복처럼 내렸다고.
그럴까?
그럴 것이다.

'1만 고랑의 밭을 지녔어도 5척의 침상에서 잔다'는 중국의 속담을 음미하자면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도,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될 것 같다는 상념이 최근 부쩍 든다.
세상은 공평하다.
무엇인가 주어진 국가(國家)나 사람은 무엇인가 결여된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인생을 미리 알아낸 사람은 행복하다.
행복한 생(生)은 바로 내 자신이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진 게 적다고 해서 체념이나 유보(留保)를 선택해서도 아니 될 듯하다.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일은 쉽게 생각하면 쉬워지고
어렵게 단정하면 더욱 어려워진다.
행복도 필연도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져야 가능한 행복이고 만남이 되는 것.
왜냐하면 행복이란 소박함에 대한 응답(應答)이기에 더 그러하다.
더군다나 생(生)이란 가꿈이고 다스림이고, 그에 대한 보상(補償)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밤낮이 뚜렷한 대지 위에서 살아가지만 백야(白夜)의 땅에도 산다.
이제라도 삶이 우리의 것, 나의 소유가 되도록 혜안(慧眼)의 눈뜸을 뜨고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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