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노동법


맹하린의 생활단상(生活斷想)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6년 3월 6일

장사를 하는 조건에는 그다지 거치적거림이 없을 정도로 현지 언어에 접근했다고 내 나름대로 착각에 빠져 살지만, 특이한 분야에 부딪치면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낱말이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당황할 때가 있다.
시청이나 세관 정도면 그래도 적당히 의사소통을 해내는 편인데, 유독 변호사를 만날 경우 당혹감은 배가(倍加)되고 만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정도가 아닌, 말 한마디가 결정적인 판단을 좌우(左右)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나는 통역사로 아들을 대동한다.
그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현안이라는 것은, 아들은 하라는 말을 안 할 때가 있고, 하지 말라는 얘기는 꼭 해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정서차이가 아닐는지.

복잡한 노동법에 묶여 있는 현지 사정 때문에 가끔 잊을 만 하면 종업원 문제가 대두된다,
그럴 경우 필수적으로 변호사를 내세우고 해결책을 모색해야하는 애로점은 분명 나 혼자서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 때는 형제 같고 조카 같이 다정다감한 종업원들이지만, 보상금이나 보너스 문제에 부딪치면 치밀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데 지나치리만큼 철두철미해서 저절로 넌덜머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가능하면 종업원들에게 양보하면서 마찰을 피하려는 내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 종업원들과 이렇다 할 불편한 지경까진 가지 않았었는데, 혼전임신한 직원 때문에 덴겁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병원에 간다면서 결근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오랜 안정을 취해야한다는 의사의 진단서만 있으면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라도 휴가를 줘야 했다.
월급은 월급대로 지불하고 임신보너스도 월급의 두 배였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몇 달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월급날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너무도  당당하고 의젓한 그 표정과  태도라니.
그럴 땐 내 기분이 좌지우지해서일까.
그 종업원은 임신한 배가 더 나와 보이도록 일부러 배를 불쑥 내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책상위의 오뚝이'가 아니라 '우리 가게 종업원 우습구나야, 배는 불쑥 내밀고' 의 노래라도 터져 나올 판국이다.

현지 노동법이라는 게 고용하는 사람 쪽을 고려한 보호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복리(福利)가 제대로 안겨지도록 유리한 방책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웬만큼 느긋한 성격이 아니면 사용자 측에서 일찌거니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일 저 일에 신경 쓰고 시일을 끄느니, 차라리 보상금을 내주어 파면시키는 게 그나마 수월한 일이 된다.
문제가 된 일들의 마무리 역시 필수적으로 변호사를 대동해야하고 구비서류에는 기필코 서명을 받아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명이 빠진 서류란 또 다른 문제의 여지를 야기시킬 확률이 다분한 게 아니라 그런 서류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지인은 집으로 퇴근하던 종업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출퇴근시간 전후의 1시간 안에 일어난 사고는 고용인도 보상해야 한다는 법조항에 걸려 가해자 측과 맞먹는 대가를 치렀다고 한다.

습여성성(習與性成).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가닥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지 노동법이  보다 더 완화의 전환점(轉換點)으로 들어서지 않는 한 경제적 성장과 산업혁명은 먼 미래의 일이 되리라는 관점이 당연지사처럼 밀려든다.
새롭고 획기적인 컴퓨터 시설과 인조인간 로봇을 이용하는 방식이 점차적으로 발달되어, 노동법의 완충지대가 아니라 노동자의 수를 줄이는 시대로의 변혁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분야는 한계가 있을을 어쩌랴.
이 꼴 저 꼴 거부감이 생기면 종업원도 두지 않고 혼자 일하면서 살거나 가족끼리만 일하면 가장 편할 것이다.
아무리 그러해도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어느 사회, 어느 일에 있어서도 공생공존(共生共存)의 관계는 결코 무시할 수없는 필연의 과제임을 이래저래 인정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노동법을 강화시키는 복리사업에는 성공을 거뒀을지 몰라도 노동정신을 개선하는데 있어서의 발전에는 다소 미약한 점 없지 않아 있다.
분명한 것은 아르헨티나는 노동법의 천국도 되지만,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종업원들의 배포 큰 요구를 일일이 다 받아 주라는  정부의 선심과 배려라는  게, 빈민을 위한 보호정책으로만 부각되는  방향으로 치닫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양날의 칼이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걸 새삼 깨우치게  된다.

해묵은 빈티지 오디오의 상쾌한 음색이 달콤한 계절이다.
노동법을 잊고 내 주위와 가족에게 더욱 관심과 아낌이나마,  이제라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곰곰  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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