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월요일

맹하린의 생활 포커스. 한인 타운 소묘



까라보보에 위치한 내 가게와 해운대회관 근처에 둥지를 튼 집과의 거리는 세 블록이다. 그러니까 나는 날이면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한인 타운의 산책로를 거닐며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 
자연과 매우 절친한 편에 속하는 나는 산책로를 지날 때면 살금살금 걷는 경우가 많다. 몇 십 마리의 비둘기 떼들이 현지인이 뿌려 놓은 빵부스러기들을 맛있다고, 고맙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쪼아 먹을 때 특히 그렇다.
최근 들어 비둘기들은 나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일부러 자박자박 아주 가까이 지나가도 날아 갈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다.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눕거나 앉아 있는 Y교회 근처에서는 먼저 아는 척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을 보내기도 한다.
동전이나 지폐를 건네면 음식물 이전에 곧장 빠꼬(싸구려 마약)를 구입하기 마련인 그들의 습성을 이미 파악한 터이므로 산뜻한 인사만을 대신해 온 날들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그들은 기분이 좋은 날이면 나를 띠아라고도 부르고 마미따라고까지 커다랗게 부르짖을 때도 많다.
물론 초장에는 동전 정도는 주었었다. 그랬더니 날마다는 물론이고 순서를 정한 것처럼 교대로 다가오던 그들이라니!
한동안 적선하지 못했어도 그들은 내 신상파악을 제대로 해낸 모양이다.
나는 노숙자들에게 값싼 동정 따위 베풀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불결하다고 기피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는 것. 나는 빼앗고 싶어지는 핸드백 같은 것도 안 들고 다니고 낚아채고 싶은 휴대폰도 거리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일부 교민들은 한인 타운 존폐에 대해서 때때로 목소리를 드높인다.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걸로는 부족한지 극단적인 발언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백구는 위험지구다, 백구는 절대 안 간다, 한인 타운을 속히 옮겨라.
대단히 타당성이 강한 얘기다. 하지만 그러저러한 여러 논리들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현재 백구에 거주하거나 영업장을 운영하는 교민들에게 가차 없을 정도의 질타를 퍼붓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아베쟈네다나 온세도 차원이 다를 뿐 도둑이 들끓기는 한 수 더 높은 수위 아닐까.
한인 타운. 진정 정겨운 곳인데. 우리 교민의 45년 역사가 싹터 오른 발상지인데. 우리 2세들에게 한국어의 씨앗을 뿌려주고 모국애를 열매로 열리게 하는 한국학교까지 있는데. 우리의 지친 마음을 크고 작게 전환시켜줄 교회들도 많고, 우리 교민의 내력과 애환이 켜켜로 쌓인 도타운 지역인 것을. 크고 작은 산맥처럼 이어지는 한인들의 역사가 저절로 읽혀지는 동네인 것을.주말이면 거리마다 가게마다 장날처럼 한인들로 붐비는 것을.
그동안 작은 목소리로나마 주장을 펼쳐온 바이지만 일요일이면 두어 블록 정도의 도로를 차단하고 벼룩시장이나 문화행사 등을 벌인다면 한인 타운 활성화 시키는 바람직한 계기를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학교를 이용하는 것도 좋으리라.
대형교회들은 이미 신성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민들레관 타입의 밥 퍼주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시설의, 노숙자를 위한 회관을 운영한다면 금상첨화겠으나 거대한 판자촌, 바로 우리 교민의 온상이었던 비쟈(판자촌)의 잉여인구까지 꿈틀대게 할 우려가 많아 그 점 거창하고 요원한 사안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저절로 이르렀다.
좁은 안목으로 보면 백구라는 한인 타운은 한국학교와 몇몇 큰 교회들이 옮길 경우 자연적으로 도태될 확률이 많다. 그때가 언제가 될까. 5년에서 10년? 언젠가는 그때가 오더라도 우선은 잠잠히 지켜봐 주면 좋은 일 아닐까.
교회의 수장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거나 방법을 모색하여 한인회나 한인 타운 회에 애꿎은 책임을 전가하는 우직함에서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 주말마다 교회의 얼굴 부위만 세수하듯 지킬 게 아니라 사설경비원을 과감하고 광범위한 폭으로 한층 늘려야한다.
우리의 교회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심을 확인하러 찾아가는 신성한 곳 아니던가. 나야말로 교회나 한인회나 한인 타운 회에 이렇다 할 헌금이나 회비조차 지불하지 못했으므로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의도 같은 건 추호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인들은 다른 단체는 몰라도 교회만큼은 정성을 다해 섬겨온 터이므로 이렇게나마 짚고 넘어 가도 무리는 아니지 않은가 여겨지는데 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말마다 교회당 안에서만 평화를 누리고, 교회 밖으로 나서자마자 불안감이 조성되는 분위기에서 이제 그만 탈피해야 할 때다.
기회만 닿으면 표적이 되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을 하루 속히 불식 시킬 어떤 방법론이 여전히 뒷전에서만 왈가왈부되고 있어 그 점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의 교민이자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곳곳에서 위협을 느끼는 건 물론이고 실제상황에 처했던 게 부지기수인 와중에 있다 .
분명한 난관은 그 어떤 교민의 의견도 모두 이치에 맞는 얘기라는 데에 있고, 진정 한인 타운을 걱정하는 관점에서 생기는 논쟁이라는 데에 있다.
일이 여기까지 오도록 방관한 책임은 그 누구에게도 없을 것 같지만 교민 그 누구에게나 있다.
굳이 옮기고 없애는 일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래야 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에 이룩될 일도 아니다. 그 기간을 10년으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교민사회가 보다 더 성숙되기 위해서는 당분간 한인 타운 지역에 진정한 가치관을 부여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병폐가 인접국가에서 꾸역꾸역 밀려든 실업자들에게 전근대적인 정책을 펼치고 파격적이게도 영주권까지 선뜻 내어준 아르헨티나의 졸속행정 때문에 빚어진 실책이라고 트집하려는 마음이 자주 샘솟을지라도, 이방인의 등을 다독이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추웠다를 거듭할지라도 한인 타운은 여전히 한인 타운이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음에랴.
읍내마을 같고 농투사니와 흡사한 고향과 같은 모습으로.
늘 보는 산책로인데도 매순간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퍽으나 고즈넉하다.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며 반짝이듯 존재하는 산책로를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치 산책로 자체가 우리 한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채 나는 여전히 유유자적 거닐게 될 것이다.
REM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가 열창하는 Everybody Hurts(누구나 상처는 있죠)를 나직나직 부르며.
Sometimes everything' is wrong, Now it's time to sing along(가끔은 모든 게 틀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함께 노래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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