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맛있는 밥

 -심재휘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나뭇가지들이 계절을 버티는 창 밖을
슬쩍 본 것은 잠시였는데
지나간 사랑이나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간신히 생각한 것도 잠시였는데
식판에 놓인 젓가락의 그림자는 그새에도
철길처럼 길게 늘어나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 앉은 것은 별 때문만이 아니었으나
어느새 해는 따라와 자신의 영토 속으로
내 끼니를 끌고 들어가는데
나는 배고픔도 잊고 젓가락의 그림자를
보이지도 않는 노쇠의 행로를
눈금 그으며 지켜보다가
부질없어 부질없어 밥이나 먹었다
잔상은 때로 질기고도 깊어
젓가락은 내 손에서 열심히 제 삶을 부리건만
그림자는 허공에 여전히 남아
모진 생애의 그늘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하얀 식탁은 한없이 넓은데
나는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밥만 먹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슬픈
맛있는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