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월요일

맹하린의 생활 포커스. 출판기념회




본지는 시인이며 소설가인 맹하린씨의 칼럼을 8월부터
한 달 간격으로 연재한다.
맹 씨는 이민생활의 애환이나 교민들의 화합을 다루되
기성세대와 2세들을 향한 바람등 비교적 가벼운 필치로
접근할 생각이다.
약력: 우리시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문인협회회윈.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재아문협 회원
나는 사는 게 참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어떤 면으로는 사는 일에 넋이 빠져 있다고도 표현할 수가 있겠다. 늘 무언가에 매료된 채 열정을 다해 살아 낼 생각에 항상 바쁘게 살면서 휴식까지 꼭 챙기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면 기상한다. 그때부터 음악 듣고 글을 쓰거나 읽고 산책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느라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내 하루를 연다. 그리고 닫는다. 그런 틈틈이
고객들의 주문에 부응한다.
그렇게 새벽부터, 마치 단련 받는 것처럼 생활 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도 누가 복을 안겨 준다고 약속을 챙겨 줘서도 아니다. 짧다면 짧은 일상이 그런 식으로 흐르기를 소원하면서 나 스스로 그런 식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많아서 그러리라고 본다.
가게 일이 바쁘면 바빠서 고맙지만 한가할 경우엔 한가해서 고맙다.
사실 나는 가게가 한가할 경우에만 음악 듣고 글 쓰고 인터넷과 조우하기 때문이다.
헤아리자면 세상은 감사할 몫이 천지에 널린 것을.
그처럼 빠듯하게 사느라 나는 언제나 지쳐 있을 것 같지만 그다지 지친 마음은 아니다.
뭐든 해결책을 쉽게 찾는 지독한 긍정론자가 바로 나 아닌가.
그리하여 나의 하루는 그 누구보다 길게 주어졌지만 그 누구보다 짧은 편에 속한다.
말하자면 하루라는 시간과 내 마음이 참 잘 맞는 편이라고나 할까.
보름 전에 나는 내 두 번째 시집 ' 부에노스아이레스, 2010'의 출판기념회를 열었었다
책이 나왔던 4월 중순, 아들은 우연스럽게도 운동화 끈을 묶으며 목소리조차 총알이 되어 탕탕 선포했었다. 이번에도 출판기념회를 연다면 집을 나가서 따로 살겠다고.
사실 아들처럼 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정쩡 반대하고 나서면 결국 일은 내 주장대로만 결정되고 약간의 제동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마련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들.
그럴 경우 아들은 완전 아르헨티노의 사고방식을 표출한다.
책을 냈으면 된 거고,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고, 굳이 주위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필요는 없는 사항이고, 그 고마움 살면서 꼭 갚아야 할 짐인 게 뻔하고, 이렇고 저렇고.
참으로 구구절절 모두 맞는 얘기라서 나는 이렇다 하게 할 말도 못하고 있었다.
책은 이미 배편으로 오는 중이었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누구보다 아끼는 아들이 집을 나가는 악재라도 생길까봐 내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졸지에 이방인의 비애를 절감하는 과정을 마음으로만 재현하며 책이 도착하는 3개월 동안 나는 여전히 바쁘게 살아냈다.부득불 더 바쁘게 살아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책이 도착하자, 아들 쪽에서 출판기념회를 해도 된다는 반전 같은 걸 전개시키는 상황을 안겨 주었다.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나는 감사의 광고에 후원하신 단체나 지인들의 명단을 일일이 내었다. 아들도 나도 교민들도 정서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일부러 그랬다.
출판기념회를 열어서 나는 행복했을까, 내 오롯한 뜻은 세월이 가르쳐 줄 것이다.
쓰고 쓰다보니까 어느덧 몇 십 편이 넘는 시를 또다시 써놓게 되었으므로, 나의 신께서 허락만 내리신다면 내년에도 시집을 내게 될 확률이 많다. 지금으로 봐서는 출판기념회에 대해서는 함구하고만 싶고 잊고 싶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치러 낸 세 번의 출판기념회에 아들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이민 1세대인 나와 이민 2세대인 아들의 간격이다.
나는 아들과의 그 간격조차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나는 아들을 나처럼 만들 계획 같은 건 추호도 없다. 오로지 아들답게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
최근의 우리 교민사회는 본국에서 오시는 저명한 성악가의 귀한 공연을 '떼아뜨로 꼴론'에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잖아 조숙현씨의 탱고음악공연이 열린다. 나는 조숙현씨를 잘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분이 50이라는 나이에 성악의 길에 발을 내디뎠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각오를 지침으로 삼으며 온갖 열정을 탱고 음악에 바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분에게서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이민생활을 병행하면서 가고 싶은 길을 가려는 행적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에 대해서만은 그 누구보다 잘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분의 주위에 내 아들 같은 존재는 어찌 없을 것인가. 매사에 여러모로 배려는 해주면서도 결정정일 때가 되면 꼭 딴죽을 걸고 자기주장에 목소리를 높이는 자유방임주의자들 말이다.
꼭 가볼 생각이고 주위 사람들도 참여해서 많은 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권유하겠다.
하물며 현지인과의 교류를 주고받는 귀한 자리다. 우리의 2세들이 현지에 뿌리를 올곧게 내릴 수 있도록 이런 의미의 공연들이 그 맥을 잊지 않고 계속되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 모두 그동안 개인이 우선하는 사회가 아니라, 유목민의 집단적 특성을 스스로도 모르게 깨우치고 익혀 왔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