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6일 월요일

벙어리ㅇㅇㅇ



  맹하린의 생활 산책


1999년 남미크리스챤신문

지금 살고 있는 주택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넘도록 페인트를 칠하지 못하고 지내서 올해는 큰맘 먹고 페인트 가게에 연락하여 견적을 뽑아 달라고 부탁했다.
집 안팎 전체를 모두 칠하자면 2천 페소(700달러 상당)정도 예상을 하라기에 서로 양보하고 적당한 선(線)에서 가격절충을 보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일이나 힘든 줄 모르고 해냈기 때문에 굳이 페인트 공에게 의뢰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일에 꾀가 나고 페인트칠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어 그런 타결점을 찾은 셈이다.
남편은 집안일이라면 빗자루는커녕 열었던 서랍이나 제대로 닫아주면 감지덕지할 인물이라서 나로선 항상 남편을 예외적인 사람으로 생각해 왔었다.

현지인 페인트 공들이 일하는 광경을 보면서 내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두 명의 페인트 공들이 하루에 딱, 벽의 한 면(面)만 칠하고, 그 한 면도 쏠아낼 곳 다 쏠아내고 메울 곳 모두 메우느라 며칠을 소모하고 난 뒤의 일인데도 하대명년(何待明年)이었다.
인건비를 시간제로 지불하기로 한 건 아니라서 크게 상관은 없었다고는 해도 한 면씩이라도 약간의 속도를 싣고 칠해 줬으면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가(畵家)가 작품을 앞에 두고 온갖 정성을 다 바치는 자세보다 더한 지극정성으로 칠하는 모습들이라니.
더군다나 도중에 사다리에서 대여섯 번은 내려와서 담배 피우고  봄비쟈(빨대)가 담긴 마테( 남미산 녹차)통을 교대로 주고 받으며  흡입하거나, 라디오까지 틀어놓고 큰소리로 따라 부르며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 현상은 마치 미술경연대회에 참석하여 소풍삼아 그림 그리는 형색이어서 웬만큼 느긋한 성격의 나인데도 며칠 사이에 지치는 심정이었다.
하물며  다른 곳에도 중복으로 일을 맡아뒀는지 가끔은 아예 며칠동안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 가지고 질리는 기분이었는데,  집치장  칠이 자그마치 한 달이나 걸리고 말았다.
아마 그러한 과정을 필수처럼 거치기 때문에 한번 페인팅을 하고 나면 적어도 5년 정도 끄덕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모양이라는 이해와 긍정이 뒤늦게 생겨나고 있었다.
페인트칠 뿐인가.
현지인들은 집 한 채 짓는데 보통 1년에서 3년까지도 걸리는 추세였다.
개인이 짓는 집은 취미삼아 짓기라도 한다는 듯 10년도 걸리는 경우를 보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건축허가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라 대단히 까다로워서였다.

집이 상상 외로 깔끔하고 산뜻해지자, 이민 오기 전 상도동 집을 수리할 때 겪었던 모종(某種)의 사건이 저절로 떠올려졌다.
신림동으로 넘어 가는 언덕 초입(初入)에 위치해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까스락져 보이는 형상이었지만, 잔디밭이낀 운치 있는 정원이 갖춰져 있었기에 단박에 마음에 들어 구입했던 집이었다.
남편의 회사 동료 되는 분의 친척 중에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 있다하여 부탁했더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비싼 견적이 나왔지만, 남편의 동료를 대접해 주려는 의미에서 선뜻 일을 맡기게 되었었다.
거실의 벽에 나무를 붙이기도 하고 부엌을 입식(立式)시설로 바꾸는 공사였다.
그렇게 새집처럼 수리하고 대략 한 달이나 지났을까.
아랫집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축대에서 물이 흘러 그 집 마당으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랫집에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겨진 나는 우리 축대 탓이 아닐 거라고 도리어 떳떳한 응수를 해냈다.
그래도 계속 물이 새어 나온다는 끈질긴  항의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져 나는 사람을  불러 뜯어 볼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일을 맡았던 분은 여러 번 전화 했지만 바쁘다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데다,  어느 날부터는 아예 전화를 피하는 기미까지 느껴졌다.
아랫집에서 소개한 두 명의 일꾼을 시켜 부엌에서 내려가게 되는 하수구 근처를 파보게 했다.
물이 통과해서 지하의 하수도로 연결되는 기다란 하수구의 토관이 네 개까지만 연결돼 있었고. 다섯 번째에  있어야 할 하수관은 땅에 물이 스며들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잠시 아연실색(啞然失色)에 잠겼다.
(이럴 수가! 뜨거운 물에 토관이 녹아버린 것도 아니고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 것일까.)
난감해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나는 일꾼들에게 다시 획인해 볼 수 없겠느냐고 재차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하수관이 잘못 연결되어 물이 새다 보니까 흙 속에 묻혔을 수도 있을 테니 더 좀 아래쪽과 옆쪽까지 집중적으로 파 헤쳐 주세요. 그분은 믿을만한 분이시고 더군다나 아는 분의 친척이거든요.

지금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억된다.
두 일꾼의 말과 행동들이.
 그 두 명의 일꾼들은 실소(失笑)를 감추지 못하겠던지  껄껄껄 웃어댔다.
마치 미리 계획하고 웃어대는, 그러니까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서로 짜고 웃는 것만 같은 매우 시니컬한 웃음이었다.
한 사람은 나를 보면서 웃고,  한 사람은 나를 외면하면서 웃는 매우 기묘한 웃음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 아는 사람이고 뭐고 요즘 세상에 이런 건축업자들 많습니다. 못 들어 보셨겠습니다만, 우리 토목쟁이들 사회에선  이런 하수구를 어떻게 부르는 지 아십니까?  '벙어리하수구'라고 합니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깐 동안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순식간에 할 말이 막혔다.
(벙어리하수구?)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에 막 도달한 사람처럼 한참이나 서먹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더 이상 그 사람에게 굳이 전화하여 따질 필요도 없다는 단정에,  일단 수리부터 서둘러 달라고 지시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아마 남편 역시 그런 친척을 둔 동료를 더 이상 다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선(線)에서 함구무언(緘口無言)을 지켰으니 더 이상의 내막을 알리도 없었던 탓이었다.

나중에 들통이 나건 말건  뒷일은 나 몰라라 하고 우선 증축비와 수고료만 챙겨내는 이런 처사가 과연 있을 수나 있는 일이던가.
참으로 극적(劇的)인 사건이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어찌 세상이 믿기 쉬운 일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새로운 자구책(自救策)을 강구했던 것도 같다.
나는 마지막 선포나 되는 것처럼 의연히 반문했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공사를 하면서 나다닐 수가 있는 거죠?  앞으로도 그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계속할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그런데 또 흥미로운 일은 이번에는 나를 보면서 실소를 터뜨리던 일꾼은 고개를 꼬면서 만면에 터지는 웃음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나를 외면하면서 웃어대던 아저씨는 느닷없는 사고에 대응할만한 적절한 답을 진지하게 전해오는 것이었다.
-대형아파트가 무너지는 사고는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거죠.  앞으로는 아무도 믿지 마세요.  일꾼들이 일할 때 필히 지켜보셔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그들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그때의 그 사건은 내게 또 다른 지침(指針)이 되었다
기분 나쁜 사건은 되도록 빠르게 밀어내는 현명함을 갖추자는 교훈이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느끼고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져주려고 이 세상을 살아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관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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