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왠지 산뜻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안겨 줍니다.
엄마였습니다. 엄마......
고국의 청주 땅에 살고 계신 엄마.
엄마는 아들들에게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걸 즐겨 허락하지만 딸들에게는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매사에 편하게 대하라는 의미죠.
엄마는 일본의 지진사태마다 뉴스를 통해 지켜보며 외국에 나와 있는 저를 떠올리셨다고 했습니다. 아마 일본에 나가 있는 가족의 행방을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에게서 간접적인 애환이라거나 그리움 같은 걸 느끼셨던가 봅니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의 고위층들이 원자로의 방출수위를 속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언론마다 아비규환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의 질서와 도덕심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그렇게나 철저하게 질서와 도덕심과 애국심을 주입하듯 심어준다지요?
모두들 칭찬일색인데 저로선 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접하는 속보에서의 일본사람들이 참 가식적으로 비칩니다. 너무나 가공할만한 두 얼굴이고, 경악해 마땅히 여겨야할 이중적 잣대의 세계관을 계획해온 그들이라는 점 전혀 배제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울 때 울고, 통곡을 터뜨릴 때 터뜨리고, 참아야 할 땐 기어이 참고, 그리고 웃음이 터질 땐 파안대소를 펼치는 게 진정한 인간의 모습 아니던가요?
인터넷과 트위터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언비어는 “ 일본지진이 발생하기 5일 전 이바라키 현 해안에 고래 50여 마리가 떠내려 왔으며 이것이 대지진의 징조였다고, 앞으로 200년 만에 한번 있을 대지진이 다시 온다는 가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유언비어로 인해 일본현지인들의 불신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네티즌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가 봅니다. 한편에서는 지구상에서 발생한 각종 동물의 떼죽음에 대한 관심 또한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서는 100만 마리의 정어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군요. 또한 지난 3월 6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천 인근에서는 물고기 100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시 관계자는 주변에 구제역 매몰지는 없어 침출수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건 아니라고 표명하면서 정확한 원인을 분석중이라고 조심스레 인터넷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벽 2시 무렵에 있습니다.
정신을 약간이라도 가다듬고 싶을 경우에 꼭 챙겨 듣는 ‘칼 오르프’의 세속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의 장엄한 1번 곡 'O Fortuna'를 들으며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더왕의 신화를 토대로 만든 “엑스칼리버”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이었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광고음악으로도 주가를 확실히 올리고 있는 작품이죠.
천상의 아우성 같은 게 울려 퍼집니다. 장엄한 리듬들이 나의 어깨를 다정스레 토닥이는 듯 한 느낌까지 듭니다.
지구가 중병으로 격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무리수를 두어 이 세상 어딘가에 산목숨을 우격다짐으로 눌러 뒀다는 의미…….
억압에 신음하던 많은 영혼들이 땅이며 바다를 강한 저항으로 밀쳐내고 있다는 얘기…….
중병에 처절히 절규하는 세상을 두고, 격노하는 바다와 땅을 두고, 이 지구 끝에서 나는 작은 한 포기 풀 되어 푸르른 하늘을 이고 삽니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태연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전화하면서 의연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나 이웃조차도…….
나는 어느 덧 전화의 엄마에게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을 떠올립니다.
“엄마, 당신은 진정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십니다.”
친구여!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가 싶더니 점차 세찬 합창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친구가 있어, 인생이 뭔가를 분명 알고 있는, 내게 언제라도 멘토가 되어주는 친구가 존재하므로 나의 하루가 거의 든든하리라 예감합니다.
수많은 목숨, 기하급수적인 재산피해.
오늘, 일본을 위해 기도 또한 잊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글을 드리도록 하지요.
격동하는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 항상 함께 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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