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9일 수요일
보약의 효과
맹하린
나는 키가 165Cm이고, 거기서 110을 뺀 숫자의 Kg을 지녔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45Kg에서 46Kg을 오갔는데, 결혼하고 체중이 늘어난 건 아니다.
이민 와서 약간 늘었다.
그래봤자 49Kg이어서, 이웃에 살던 한국 꼬멩이들이 나를 보고 젓가락공주라고 놀렸었다.
군정시절, 시우다델라 아파트에 인구조사가 일주일 간격으로 나오자, 우리는 서둘러 운동사범 Y씨의 뒷채에 1만 달러를 내고 전세를 들었다.
시우다델라 아파트는 유럽에서 활약 중인 축구선수 떼베스가 살던 우범지대 아파트다.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샘솟는 일은, 지금은 Y씨의 후계자가 된 주니어 Y 때문이었다.
그때 주니어 Y는 열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 오다가 이민동창에게 들르느라 집에늦게 도착하면 주니어 Y는 내게 마구 야단을 쳤었다.
주니어 Y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는데도 한국말을 제법 했다.
" 얜일이(원일이) 엄마, 집 안보고 왜 천천히 다녀요? 자자꾸(자꾸를 자기 아빠한테 그렇게 배웠음) 그렇게 하려면 집 나가 버려요!"
그럴 때 나는 내가 너희 집 문지기냐? 그러지 않고 하하하 웃어 넘기는 성격이었다.
사실 우스웠으니까 웃었던 거다.
세상은 그렇다. 상대방은 화를 내는데 이쪽에선 웃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코미디의 유머철학 비율은 6+2+2인데, 6이 재미이고 감동이나 교훈이 각각 2라고 한다.
사람이 한 번 웃을 때마다 1백 82개의 근육이 움직이며 몸에 유익한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고 한다.
그때 1년 정도 그 집에서 살고 우리는 집을 사서 나왔다.
그집에 살 때, 주니어 Y가 심각하게 내게 물었던 말이 있었다.
"왜 얜일이 엄마는 젓가락 공주가 한 번도 안 아파요? , 내 엄마는 고르다(뚱뚱이)인데 날마다 아파요."
"왜냐면 나는 보약을 좀 먹었거든."
"보약? 그거 어디서 파는데요? 내 엄마도 사다 줘야 돼요."
"한국에서나 살 수 있어. 이 나라엔 아직 아무도 한의사가 못 와 있잖아."
어느 날.
아베쟈네다 상가에 위치해 있었고, 주름치마를 전문으로 판매하던 유미네 가게에서 그 무렵 재아교민사회에 최초로 결성된 여성골프모임 J클럽 임원들의 임시회의가 있었다.
갈비와 감자를 굵직하게 썰어 넣은 갈비찜에 겉절이 김치를 곁들여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났는데 현지인이 페인트를 배달하러 왔다.
50Kg용량의 두 통이었다.
꼬르따도르(재단사)와 엔시마도르(재단보조)는 주름공장에 일감을 가져다 주러 갔었다.
그런데 고객들이 연신 주름치마를 사러 오니까 두 통의 페인트 통이 문가에 있어 사뭇 걸리적거리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유미엄마가 그걸 옮기려고 시도를 해봐도 꼼짝도 안 했다.
나는 그럴 때 처음부터 나서는 성격은 아니다.
나약한 친구들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두어 명이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교대로 다가갔지만, 페인트 통은 전혀 꿈쩍도 안 했고,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걸어 가 페인트 통의 손잡이를 번쩍 들어 한쪽으로 옮겨 놓게 되었다.
기가 막혀서 단체로 뒤집어지던 친구들.
그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하겠던지, 두어 명은 다시 쫒아가 온갖 힘을 다 쏟으며 애를 썼지만, 약간도 흔들리지 않던 50Kg의 페인트 통.
나는 체중 면으로는 내 인생을 제대로 컨트롤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50Kg을 들어낼 수 있는 55Kg이니까.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600배를 나를 수 있다는데 나는 나보다 적은 양을 들어냈을 뿐인 것이다.
운동을 따로 한 일도 없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는 지하수 물통 30Kg도 거뜬하게 정수기 위에 올리는 편이다.
아마도 어려서 먹어낸 보약 덕택이 아닌가 한다.
우리 집에서는 장손인 오빠에게 1년에 두 세 번 보약을 해줬다.
여름엔 땀으로 약효가 나간다고 해서 여름만 빼고, 계절마다 그랬다.
그런데 오빠는 쓰다고 탓하며 보약마다 병적으로 기피했다.
결국 보약은 내 차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 오빠는 손질 잘된 손톱을 바라보며 뜻모를 미소를 짓고는 했다.
(오빠, 고마워요. 나를 보약 먹여 키워줘서.)
안 될 건 없었다.
오빠에게는 싫은 것이 내게는 괜찮은 것이었으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쓰디쓴 그 보약이 참 맛있었고 매력적이라고 여겼었다.
감칠맛까지 느껴졌었다.
실제로 나는 요즘도 고들빼기김치나 씀바귀 같은 나물을 자주 장만한다.
"살면서 맘고생 좀 있을 테니 미리 쓴 맛 좀 들이거라!"
아마 신(神)은 내게 그런 메시지를 보내셨었나 보다.
결혼해서도 추석이나 설 즈음에 나는 시어머니로부터 칭찬을 퍽도 많이 들었다.
동서들이 다 듣는 데서였다.
" 말랐어도 강단이 있는 맏 며느리, 살은 적어도 뼈가 튼튼한 며늘아이."
인생에 공짜는 없다더니 나는 보약을 먹은 대가로 지금 열심히 힘내어 일을 해내고 있다.
가끔은 휴식을 취하며.
휴식!
얼마나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인가.
그제는 밤새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밤은 언제나 신비롭다.
어떤 밤은 빗소리가 자장가인데, 어떤 밤은 빗소리가
자꾸만 함께 퍼붓자고, 같이 쏟아지자고, 더불어 내리자고 그런다.
빗소리에 여러 번 잠에서 깨었던 밤.
오늘 아침, 내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말끔히 씻겨진 것처럼 몹시도 상쾌하다.
나는 비가 내리고 난 이틀 간의 새벽을 참 사랑한다.
머리 속에서 갈등 같은 게 일단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비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리피트 버튼을 누르고 나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신다.
디아나 워싱톤의 'Time After Time'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싶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하면 불가능하게도 여겨진다.
일단 헤매지만, 나의 내부에서 조급함이 물결치기도 한다.
길을 찾아낸 나를 발견할 때도 간혹 있다.
이미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춥지만 난 추위 속을 걷는 일도 기쁨으로 여긴다.
그러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처럼 긴장되는 느낌이라서다.
오늘도 산뜻하게 하루를 잘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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