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7일 토요일

Indian Wells 컵을 보며




      맹하린


나는 퇴근시간을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실행한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고객이나 장례화환을 매우 빠듯한 시간에 주문 받았을 경우엔 퇴근시간이 9시가 될  때도 많다.
어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치러지는 Indian Wells컵 쟁탈전에서 스위스출신의 나달과 아르헨티나출신의 날반디안이 경합하는 생중계를 지켜보느라 8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하게 됐다.
시합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일은 날반디안이 상의(上衣)의 어깨부분을 틈날 때마다 떼어내고는 했는데 아마 웃옷이 땀에 젖어 그러나 보았다.
그런데 나달은 한술 더 뜨며 하의(下衣)를, 그것도 엉덩이부분을 떼어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장면들을 그동안 여러 차례 놓치지 않고 보아 냈으면서도 처음 보는 것처럼 자꾸만 웃어대고 말았다.
나달은 시합에 임할 경우, 보통 때는 덜한데 일단 시합이 안 풀린다 싶거나 컨디션이 엉망으로 얽히고 설킨다 여겨지면 신경질적으로 연신 하의(下衣)를 떼어내는 행동을 경기의 일종이나 되는 것처럼 반복해 왔다.

몇 년 전 본국에 귀국했을 때, 고교동창 중의 몇 명과 약속이 정해져 철판구이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냥 철판구이집이 아니고 요리사가 재주를 보이며 서빙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변호사를 남편으로 두고 있던 K가 초장부터 뉴스에서 본 아르헨티나 얘기를 끄집어 냈다.
공원에 거지가 많더라는 지적이 가장 신랄하면서도 중점적인 소재였다.
-아, 그거?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도 있는데 우리 국민은 대체 무엇이 불만이라는 얘긴가! 대강 그런 의도? 그 나라는 국민이 부자인 나라야. 한국의 정국이 그런 식으로 시선 돌리기를 시도한 거라고 보면 될 테고.
서울대 음대 출신의 K는 더 이상 끈질기게 늘어지지 않았고, 말문까지 막히는지 금세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바꿨다.

본국 정부나 본국 국민이나 본국 친지들은 외국에 나와서 뿌리를 뻗거나 가지를 뻗고 열매까지 맺으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교민들 알기를 옷에 묻은 먼지 정도로나 여기는 경지를  그동안 너무나 많이 보여줘 왔다.
아르헨티나.
본국 국민들이 얕볼 정도로 그렇게 만만한 나라는 아니다.
먹을 게 없어서 빵만 먹고 사는 사람도 없고,  거지들도 마약에 절어 폐인처럼 지낼지언정 죽도록 고생하지는 않는다.
페론주의가 포퓰리즘의 대명사처럼 부각되어 오던 아르헨티나의 왜곡된 역사는 여러 번의 정권이양으로 많이 회석된 느낌이지만 아직껏 잔존해 있고, 그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
연금제도, 상여금, 휴가, 무료병원혜택등의 사회보장제도는 곧  페론의 업적이 지대했었고, 수십 년에 이를수록 점차 개성 강한 튼실함을 구축해왔다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부한다.

국경마다 개방되어 있는 아르헨티나는 이웃나라의 가난한 자들이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 쉼 없이 찾아오는 나라다.
그런 식으로 찾아드는 인접국 이민자의 수가 거의 1천 3백만을 훨씬 능가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약간의 인종차별이 없다고는 단정하지 못하나 크게 두드러지는 치부가  안 보이는, 그야말로  민심이 살아 숨쉬는  나라다.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자본주의 사상을 지녔던 페론은,  소득의 재분배에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였었고,  일부  선택된 국민에게만 한정된 혜택이 아니라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부(富)를 돌리려는 정치에 충실과 기여가  컸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인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부 지식인들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페론의 황금기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르헨티나는 영원히 재기불능이고 침체의 늪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하리라고 가혹한 논평을 서슴없이 펼쳐왔다.
분명한 아이러니는 국민의 만족도와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했다거나 산업과 문화가 왕성했던 시절은 페론이 집권을 장악했던 시기였다고 보는 국민들의 평가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탁월한 진단이라는 데에 있다.
세계 4대 부국이라는 명성과 태평성대를 누린 시절까지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존재했던, 무한한 저력의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다.
무얼 해도 밥은 먹고 사는 나라다.
카드빚에 시달리는 사람도 극히 드문 데다, 아르헨티나는 하던 일에 망한 사람도 밥이나 빵은 먹고 살게 되어 있는 나라라는 얘기다.
또한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에 따라 얼마만큼의 저축을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가능성도 무제한 열려 있는 나라인 것이다.
우루과이의 별장지대 주인들은 아리헨티노들이 대부분이다.

날반디안과 나달의 시합을 지켜보면서 아르헨티노의 국민성을 날반디안에게서 발견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곤경스럽고 코너에 몰리는 한이 있어도 어깨에 달라붙는 티셔츠 가끔 떼어 내는 정도로 느긋한 민족인 것이다.
날반디안은 머리는 비상한데 연습량이 부족한 편이고 승리를 쟁취하려는 도전성이 매우  취약한 선수와 같다는 단정도 생긴다.
나달은 온 몸과 온 정신을 다 바쳐 뛰면서 절대로 포기를 모르는 듯 보여 그점  진지함으로  지켜보게 된다. 엉치 부분의 속옷을 거듭 떼어 내면서 말이다.
페데르는  발레하 듯 사뿐거리며 뛰어 다니고 , 델뽀뜨로는 키가 2미터에 가깝고 순발력이 월등하며 의지력이  강한 선수로 보여진다.

마약이나 범죄, 불법취업 등의 많은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해도 많은 세월 동안, 아르헨티나의 정부당국이나 국민은 우선 이웃나라와 동양계의 이민자들에게 관대함이 엿보이는 느긋하고 개방된 포용정책을 펼쳐왔다.

오늘은 세계랭킹 2위인 나달과 3위인 페데르의 시합이 예고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새롭게 기억하며 여전히 웃음을 잊지않고  관전하리라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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