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내가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세상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7월 20일


나는 어떤 일이나 취미에 한번 집착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에는 눈도 주지 않는 지독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몇 년 전 골프에 흠뻑 반해서, 어떻게든 100을 끊어보려고 열성을 부려 본적이 있다.
특별히 코치를 받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을 필드에 나가니까 자연히 100이라는 걸 끊어보게 되었다.
100을 못 칠 때도 많았지만 100이라는 걸 끊고 나니까 90을 끊어야겠다고 작정하게 되는 이 욕심을 어이할까.
지난 화요일 아침, 남편과 집을 나설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Jose Jurado 골프장 근처에 거의 닿았을 무렵,  앞에 가던 자동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느껴질 정도로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안개는 그 희뿌연 날숨과 들숨으로 참 잘  만났다, 그러기라도 하는 듯 골프장 앞 도로와 자동차들을 들이마셨다 품어내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약간 걷혀져 앞의 차가 보인다 싶으면 다시 움직이고 자동차는 그렇게, 주춤주춤  마냥 걷다시피 걸음마를 떼어 놓고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농무였던지, 졸지에  안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자동차가 구름 위에 들어 올려져 있는 듯 한 착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평소,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나보다 지구력이 약한 성격인 남편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약간씩 짜증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견해로는 돌아가는 일이 더 복잡한 일로  예상 되었다.
나는 예외 없이  곧 개이게 될 테니까 계속 견뎌보자고 부탁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 내외는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서로 승리자다.
남편은 고집이라면 막무가내인 박력만점의 박 씨 고집이고, 나는 고집에도 맹점 투성이인 맹 씨 고집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 된다면 안 되는 쪽으로만 발달된 고집불통이고, 나는 된다면 되는 쪽으로 우겨대기에만 도통한 고집통이니 결국 둘 다 이기는 셈인 것이다.
다만 그럴 뿐, 크게 다투는 일은 없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서로의 의사대로 각자 행동하면 그런대로 편하다고 여기는 탓에 아슬아슬한 쟁탈전까지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아리 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나와,  사람이 너무 착해서 같이 사는 사람을 사람 좋은 쪽으로 지치게 만드는 그와 어디가 그렇게 천생연분이겠는가.
비록 같은 편은 못되더라도 서로 참아내는 게 각자를 위하는 제일 현명한 방법이지 싶은 것이다.
항상 자기 식대로의 생활 관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우리 내외였다.
 각자의 개성을  침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하면 그 관계라는 게 이미 성가셔지기 시작한다고 단정해 버리는  결의도 전혀 배제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토록 지극히 평범하지 못한 사고방식을 오랜 세월동안 숙성 시켜왔던 셈이다.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산뜻하게 제시한  각자의 합의점은 금세 결정으로까지  진전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나를 골프장에 내려놓고 끝날 무렵에나 데리러 오겠다고 내세우고 , 나는 여기까지 와서 안개 따위 시시한 이유 때문에 그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고 버틴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개성 넘치게 각각 승리 하고야 마는  우리 내외의 특별한 성격을 매우 존중해 왔다.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길을, 졸지에 40분을 허비하고 골프장에 도착해보니,  나처럼 집념이 강한 사람들이 클럽에 앉아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꼭 이런 일을 짚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으나,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일에까지 구태여 남녀의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일이 퍽으나 속상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밝힐 수밖에 없는 사실은 여자라고는 나 혼자였다는 점이다.
차의 트렁크에서 내 수레와 골프가방을 내려준 남편은 캐디 없이 혼자 칠거니까 넉넉잡고 세 시간 후가 되는 12시에는 데리러 오겠다면서 총총 떠나갔다.
생각하자면, 그렇게 가버리기도 쉽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남아 있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평소의 나는 사르트르나 카뮈나 카프카처럼 실존주의에 가깝다.
모든 관념적인 것을 배제하고 거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래도 나는 역시 한국인의 딸임이  분명하다.
남편이 서둘러   골프장 입구를  떠날 때, 일말의 후회 비슷한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주춤대듯 망설이며, 그러나 용기를 내어 세 번쯤 남편을 불러 봤지만 다시 밀려든 극심한 안개가 남편이  탄 자동차와 내 목소리를 끌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날숨으로 토해냈을 입김을 안개가 다시 들숨으로 깊이 집어 삼켰을 때, 남편은 이미 찻길에 닿아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여도 현지인이 대부분이었지만 한국인들도 몇몇 있는 클럽에 용감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철판까지는 지니지 못했으므로,  나는 우선 전반이 아니라 후반 쪽에서 시작하겠다고 사무원에게 말하고 후반의 구장 쪽으로 미리 나갔다.
수레를 끌고 후반 쪽 구장에 도착했을 때, 다시 밀려든 짙은 안개가 천지를 온통 휘감을 듯 내려 덮이더니 눈앞에 들어 올린 손가락조차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세상 태어나(나는 이 말을 가끔 즐겨 사용한다.) 이와 같은 안개는 듣거나 본 적이 없어라.
그렇게 중얼대며 옴짝달싹 못하고 그냥 서 있었다.
짙은 안개는 부드러운 동아줄로 나를 속박하고 있었는지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15분 정도 눈을 감아 보거나 떠보는 일 밖에 이렇다하게 할 일이라고는 없었다.

내가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그때 비로소 펼쳐졌다.
마침 내가 서 있는 발치 근처에는 넓다란  인공호수가 있었고, 18개의 hole을 만들어 퍼팅연습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퍼팅연습구장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보송보송한 서양 잔디와 울타리 구실을 할 수 있게 둘러쳐진 회양목의 안켠에 베고니아와 팬지, 그리고 아네모네 꽃들이 유난히 정성스레 가꿔져 있었는데, 지극히 작위적이고 지나친 인공미가 넘쳐나는 그 풍광들은 평소의 내게 이렇다하게 큰 감동을 못  주어왔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안개가 걷히면서 보게 된 그 인공미에는 유별난 섬세함이 깃들어 있었다.
안개는 높은 곳에서 낮은 데 까지 점차적인 모습으로 걷히는 중이었다.
맨 처음 높은 나무의 잔가지들, 그 다음엔 나무의 가슴둘레, 그리고 나무등걸, 그 다음에 낮고 암팡진 몸으로 에워싸듯 둘러서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회양목.
그리고 베고니아, 아네모네, 팬지, 잔디 순으로 단층 같은 현상을 이루며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차가운 공기로 인한 수증기가 살포시 하얀 서리로 맺혀져 성에들의 은빛 누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마지막 자태의 안개가 은빛의 뾰쪽뾰쪽한 보석이 내려 앉아 보이던 잔디의 성에로 머물 때의 절경에 대해선 지금 섣불리 표현하고 싶지가 않다.
특히 더 낮은 지역인 인공호수에 내려가 사그라지고 있던 안개의 마지막 모습은 묘하게도 환상을 본 것과 같은,  허무 그 자체였다.
만당추수의 일장춘몽에나 비할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유열을 그때처럼 강도 있게 인식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작은 순례객 되어 비온 뒤의 세상처럼 함초롬히 해맑고 깨끗해져 있는 절경 속을 은혜롭게 거닐었다.
곳곳에 낮은 자세로 앉아 있는 민들레, 바이올렛 등의 숙근초들
작약한 몸매의 잎사귀를 쫑긋 세우고 서있는 붓꽃의 청초함.
작은 무리를 지어 군무를 이루던 낭미초(강아지풀)들.
어디서 날아왔는지 작은 떼새들이 푸르르 잔디위에 내려 앉아 제 몸의 칼깃을 가다듬고 있음도 신선하고 눈부셨다.
섬섬 빛나는 치장을 하고 나타난 아침햇살이 졸린 눈을 부비며 기지개 켜듯 작연한 광채를 펼쳐낼 때의 청휘로움.

12시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내가 만났던 그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꺼내지 않고 다른 얘기만 했다.
의리 없이(?) 떠났다 돌아온 남편이지만 내게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절경을 선물한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은 굳건히 맘속에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칼비니스트들이 인간의 죄를 벌하려고  창조해낸 전염병이 골프라고 했던가. 
웬일인지 그토록 열심을 다했고, 극성을 바쳐 골몰했던 골프를 옷가게를 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과도 같이 여겨졌고, 도대체 한 가지 일에 온통 정신과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 차츰 회의가 느껴져서도 그랬겠으나, 나는 이미 문학이라는 열병에 퐁당 발이 빠져 있어 더 그랬을 것이다.
 어떤 면으로 나는골프를 문학과 바꿔치기 했을 확률이 더 많다.
문학에 대해서  참 별 것도 아니라고  혹평들을 하지만,  내게 있어 문학은  너무나 매혹적이고  벼라별 것이고  소중한 장르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져주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우리 내외는 아직껏 서로 승리자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 도통한 남편.
나는 그에게 감사하는 중이다.
겉으로 드러내어 감사를 하게 되면 그는 분명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서 나의 맹한 고집을 우지끈 소리가 나도록 꺾으려 들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남편에게 들킬까를  염려한 나머지 마음속으로만 고마워한다.
결국 우리 내외 중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단연 남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이여!
나의 고집은 영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