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I여고는 명문사립학교였다.
교사들은 서울대 출신만을 초빙했다.
일주일 동안 교대로 기숙하며 예의범절 등을 익힐 수 있는 생활관은
한국 최초로 설립되었다하여 그 무렵 학원 사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나는
가장 예쁜 한복을 소유해서 였는지 칠첩 반상기를 앞에 두고 사감선생님을 거드는 사진까지
실리기도 했었다. 일주일에 두 번에 걸쳐 요리를 배우던 조리실. 가곡은 물론이고 클레식도 강조돼던 음악시간. 특히 내가 날마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도서관이 자랑스럽던 학교였다.
그랬다. 나는 거의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학교 도서관 덕택에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나중엔 마땅하게 읽을 만한 책이 없어, 학교 후문 쪽에 있는 대여서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 돌려줘야 할 책이 분명 가방 안에 넣어뒀었는데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용돈을 넉넉하게 받던 터였으므
로 그 서점에 새 책을 살 수 있는 요금으로 변상하게 되었다.
그런 며칠 뒤, 나는 국어시간에 이름이 호명되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국어선생님은 우리 담임이셨다.
책방 아저씨는 신간소설 한 권과 꽤 긴 편지를 써서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보내왔고, 나는
반애들 사이에 우뚝 선채 담임이 읽어주는 책방아저씨의 칭찬일색인 편지를 들어야 하는
부끄러운 상황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다.
사실 나는 잊을 만 하면 담임이신 국어선생님에게 때때로 불리워지고는 했다.
표어당선이라거나 문예반 공모입상도 있었지만 어느 날 또 다시 불린 이유는 참으로 엉
뚱하다면 엉뚱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기차역까지 오가는 중간에 중앙시장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나는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묘목을 땅바닥에 눕혀놓고 파는 농부들에게서 꽃나무를 구입하여 집으로 가져가고는
했었다. 집에서는 기특하다면서도 자주 그러지는 말라고만 가볍게 타일렀다.
대장 촌에서 기차를 내리는 나와 달리, 국어선생님은 한 정거장 더 가는 삼례에 살고 계셨으므로 차창을 통해 그다지 적지는 않은 키의 꽃나무를 들고 가는 내 모습이 여러 번이나 눈에 띈 결과였을 것이다.
“꽃샘추위에 꽃망울도 피지 않은 매화나 산당화 묘목을 사서, 너무도 소중히 안고 다니는
이 학생의 특이한 정서를 높이 두둔하고 싶습니다.”
그런저런 영향이 컸을까.
책과 음악과 요리와 꽃나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도록 뼈와 살이 된 한 그루의 나무처
럼 내가 살아오게 된 것은…….
그러던 내가 어찌어찌 흐르다가 뒤늦게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글도 써야지, 클레식이 위주인 음악도 빠짐없이 들어야지, 날마다 산책도 즐겨야지, 인터넷
세상도 서핑해야지, 주문을 하고 오는 분들 이외에 주문도 안 하고 오는 고객들의 성급함에
도 부응해야지.
그러다보니 정리정돈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데도 나의 고객들은 그런 나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눈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 이쯤에 도달되었는지 가끔씩 내 지난 생을 뒤적여 볼 때가 있다.
나를 좀 멀찍이 놔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노라면 나의 자아는 멀리 볼수록 가까워지기도
한다. 삶이란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바벨인 보다 더 무분별한 이 시대의 혼란을 성찰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세상은 많은 인연으로 맺혀 있고 자질구레한 모든 게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서로 존경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실린 기원도 한다.
슬프게도 나는 외로움에 여태 면역이 안 되어 있다. 푸르른 하늘을 자주 우러러보며 언제나
고즈넉함을 마음에 두며 문학을 사랑하고 아꼈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신비롭게도 말을 아끼려고 했고 감성을 싹틔우는 비슷한 자세가 되고는
했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절망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해도 나는 여전히 절망이라는 영역을
대신하는 문학이라는 스승을 그 어떤 다른 장르에서도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관념은 이 장르에서 저 장르로 넘어갈 때 간혹 서먹해지는 결점을 지녔다.
오늘은 매우 유익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유별나다.
새로운 외로움이 다가오는 듯한, 어두워지는 저녁 숲을 닮으며 나도 오늘 저물고 있다.
그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기도로 변모하는지 오늘 숲이 내게 가르쳐 주는 듯 하
다. 이 여름, 무엇엔가 나를 몰두할 수 있는 절망을 새롭게 인식하겠다.
더럭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은 외로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