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나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산책을 다녀온다.
한 블록이지만 가고 오니까 두 블록을 걷는 셈이다.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사유(思惟)를 돋구려는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약 두 달 전.
산책을 나서려고 더좀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는 중이었다.
나는 슬리퍼도 발가락이 다 드러나는 매우 낮은 슬리퍼를 좋아한다.
왠가하면 가장 땅과 가깝게 접촉할 수가 있어서다.
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가장 마음 아파하는 소음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울음인 것을.
마침 전화가 와 약간 지체한 뒤 다시 산책을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웃 가게 곡물상회 창고 앞의 가로수 밑에서 다섯 살쯤 된 현지인 여자아이가 거의 진저리 지경에 이른 상태로 엉거주춤 선채 흐느끼고 있었다.
옆에는 아이들 엄마로 보이는 30대의 현지인 여인이 한 살쯤 된 여자아기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낭패감에 젖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는 듯 한 표정으로 곧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 하게.
아마 우리 가게 앞에 위치한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나 본데 무슨 변고가 생겨 그 옆가게 앞쪽으로 자리를 이동한 분위기였다.
세상이 하도 험하다보니 가능하면 그런 일에 외면하고, 상관을 잘 안 하는 성격인데, 그날의 그 심각한 분위기는 나의 발길을 옴짝달싹 못하게 세워 놓았으므로 나는 대체 무슨 일인가를 묻게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큰 애가 옷에 실례를 했다는 얘기였다.
큰 거라고 했다.
어려서 친척 집에 갈 때도 내 수저를 기필코 챙기고 다닐 정도로 깔끔을 떨었던 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내 나름대로의 도덕심과 주체성이 손상을 입지 않겠나 싶어져 순간적으로 그 모녀에게 다가가 우리 가게에서 해결하자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게 되었다.
그럴 경우 나는 머리회전이 약간 빠르다.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아나바다까지 뛰어가 커다란 바구니에서 다섯 살에 맞을 바지 하나와 스키니 진을 저렴한 값에 구입해낸 것이다.
헌옷이지만 세탁이 되어 있었고 말짱해서 우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 모녀들을 우리 화장실까지 데려갈 용기는 안 났기 때문에 일단 매장의 바닥에 신문을 여러 장 깐 뒤, 그 위에 아이를 세웠다.
옷가게 하는 친구가 한 보따리 가져다 준 Retaso(자투리 천)를 여러 장이나 물에 흠뻑 적셔 아이를 당장 비누로 닦게 했다.
그리고 아나바다에서 산 옷으로 갈아입힐 수 있도록 도왔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어서 이 말만은 꼭 했다.
" 헌 옷을 사줘서 미안해요. 나중에 버리세요."
한국 애들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현지인은 다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 아이는 정말 대단하고 지독한 연기를 피우는 전대미문의 폭발물과 같았다.
중학교 때 본 영화에서, 교사가 학생이 토한 음식을 손으로 찍어 냄새를 맡는 장면을 매우 감명 깊게 보아 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는 이내 말끔해졌고, 훨씬 기분이 달라졌다는 듯, 말도 제법하고 깔깔대며 웃기까지 했다.
Desodorante(탈취제)와 손크림까지 건네어 온몸 가득 향기롭게 되자 아이들 엄마는 그제야 정신이 좀 차려지는지 살짝 안색이 펴지고 있었다.
몹시 고마워하는 그녀들에게 문제의 옷을 봉투 여럿에 싸고 또 싸서 돌려보내고 나는 매장을 청소한 뒤 다시 산책을 나서게 되었다.
kiosco(편의점)에서 과자를 사 들고 나서는 그 모녀들을 금세 다시 만나게 되었다.
버스 타는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가 보았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우리는 오래 알았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웃음부터 주고받았다.
처음 이웃 가게 앞에서 발견했을 때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그런 관점이 생겨, 이게 바로 데자뷔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이미 일면식이 있었던 사이여서 우리는 잊지 않고 서로 포옹하고 뺨에 뺨을 대는 인사를 교대로 주고받았다.
가게에서 헤어질 때 각자 통성명을 했기 때문에 이미 내 이름을 기억해둔 여자 아이 멜리사는 산책길을 향해 길을 건너는 동안 나를 자꾸만 불렀고 연신 손을 흔들었고, 그리고 힘껏 소리쳐 많은 인사를 했다.
"Margarita, Gracias(마르가리따, 고마워요.)"
"Margarita, Suerte(마르가리따, 행운을)!"
"Chau, Margarita (안녕, 마르가리따)."
멜리사의 엄마 사라는 여전히 찡그린 채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멜리사는 계속 말하고 여전히 손을 커다랗게 흔들어댔다.
아이가 나를 절대군주의 이름처럼 간곡하게 부르는 음성을 뒤에 남기고 나는 다른 날과 하나도 다름없이 느릿느릿 산책을 해냈다.
꽃과 잔디와 나무들과 예외없이 눈길을 주고받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 만만세의 꽃 무궁화도 살몃 어루만져 주고 그렇게.
가게로 돌아오자, 내 기분이 그래서였을까.
어딘지 모르게 여진이 잔존하듯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청소하고 향수를 뿌리고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작업실에 들어서니 아들이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총질을 서너 번 흔듬과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아들 대신 내가 나를 향해 말을 쏘았다.
"하여간에 오지랖? 빵, 빠방 빵!"
나는 잠시 그 모녀를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히고, 두려움이라던가 추위를 잊게 해줄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된 일이었다.
지금은 여름이니까 산들바람을 불러 들였다고 해도 괜찮겠고.
때로 도덕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그런 잣대를 들이댈 때도 더러 있겠으나, 나는 세상을 향한 산책과 일탈 속에서 내 운명과 보조를 맞추며 여일하게 바스락 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격정적인가하면 차분한 사유(思惟)를 실처럼 자아 낼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행복이겠다.
오늘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초여름- |
나는 주로 가게에서 지내야 하는 신세라서 이렇다 할 선행은 못해낸다. 하루에 두 가지 정도 희생을 한다. 희생. 너무 거창한 언어다. 내게 있어 희생은 하기 싫은 일과 피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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