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베쟈네다에 간다.
재료를 구입하거나 간혹 수금을 하러 가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날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틈을 내어 찾아 갈 때도 있다.
한인 타운에서 자영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곳에 발길이 닿을 때마다 매번 강한 느낌을 껴안게 되는 건, 아베쟈네다 지역은 괄목상대의 확장과 발전을 날이면 날마다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땅이 너무 단단한가 하면 팍팍하기까지 하다고 연거푸 툴툴대는 불도저 소리까지 끊임없이 한 몫 해내는 중이고.
상조회의 업소 록을 통해 아베쟈네다 상업단지가 과연 얼마나 광범위한 팽창을 펼쳐왔는지 의도적으로 헤아려 본 적이 있다. 아직 등록되지 않은 가게들은 차치하고라도 무려 800개가 넘는 한인들의 영업장이 식당이나 부동산 등과 먹이사슬처럼 얽힌 채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있었다.
터줏대감이 되는 기존의 유태인과 새로운 싹으로 고개를 내미는 볼리비아노나 페루아노의 가게들까지 포함 한다면 거대한 영역의 성문 없는 성을 조성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셈이다.
아베쟈네다의 앞길이나 뒷길에서 쟁쟁한 성공을 쟁취해온 지인들. 그들의 공통적인 지론에 의하면, 하루에 한 달 월세를 웃도는 판매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적자를 면하기는 지난한 일이라는 게 공식이자 기본이라고 간단없는 정의를 내린다.
요즘 그 지역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하루에 십만 페소(2만 5천 달러 상당)를 판매 할 때가 많다는 P씨 가족 역시 같은 평을 제시한다.
굳이 파헤치고 싶지는 않은 부분이라면서 그들은 목소리까지 줄이며 덧붙인다. 아베쟈네다의 상권을 구태의연 이끌어 나가는 교민의 수는 기껏 해야 절반에도 못 미치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배역으로 떠맡은 배수진에 불과하다는 것.
뒷길의 수많은 가게들도 만만치는 않겠으나, 아베쟈네다 앞길에 포진해 있는 상인들이 3년마다 지불해야 하는 쟈베가 무려 25만 달러를 육박하고,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 또한 대략 7천 달러라고 볼 때, 거대한 경제의 온상을 구축해 냈구나 하는 감탄에 저절로 잠기게 된다.
우리 교민들 참으로 대단하다. 한국의 중소기업과 맞먹는 수준의 경영을 쥐락펴락 하며 1인 8역쯤이야 문제 축에도 못 낀다는 듯 거뜬히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몇 년 전부터 급성장의 박차를 서둘렀던 흐름이나 과정을 간과할 수는 없겠으나, 이렇게 다져 온 세월이 무려 30년이나 걸렸다.
이민 수수료 명목으로 브로커에게 바친 비용이다, 비행기 값이다, 길에다 뿌려대면서 천국이 따로 없다는 아르헨티나 땅에 도착 하니까 고작 5백 달러가 남더라는 교민이 대부분이던 시절이 주춧돌이 되었을 것이다. 백구와 시우다델라와 비제가스의 3대 빈민촌에서 옹기종기 소꿉장난에 버금가는 하루하루를 맞고 보내야 했던 이민역사 45년, 그 애환의 결정체가 바로 아베쟈네다가 아닐는지. 제품이나 편물기계 몇 대를 가까스로 구입하여 유태인 공장의 하청 업을 시도했던 날들의 결과가 오늘의 아베쟈네다를 형성했고, 참으로 대단한 신화를 이룩했다고 뒤늦은 감개무량에 잠긴다면 섣부른 판단으로 비치려나.
고객이나 친구들은 왜 아베쟈네다로 옮기지 않는 가고 의아심이 잔물결을 이루는 표정되어 과감하게 물어 올 때가 있다. 나는 소박함을 즐기고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구태여 나까지 경쟁과 밀집으로 포화상태인 지역에 뛰어들지는 말자는 단정이 꽤나 단호하게 굳혀져 있는 편인 데다, 역설적으로 분석하자면 나처럼 살아가는 방법도 어떤 면으로는 아베쟈네다의 번창에 일익을 담당하는 일이된다고까지 자부하는 중이다. 너도나도 몰려들지는 말자는 얘기다.
포괄적으로 볼 때, 아베쟈네다처럼 민감한 지역도 드물 것이다.
유행과 경쟁에 가장 민감한 데다, 경기침체에 상관하지 않고 심심파적으로 나타나는 국세청의 인스펙토르에게도 예민한 반응이 앞서고, 특별히 호경기의 물결이 밀려 올 때가 언제가 될 것인지에 온 신경을 안테나처럼 뻗어내고 있다. 상대개념으로 비춰보자면 가게마다의 주인이 되는 유태인들에게 까지 민감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렇단 들 5년 뒤와 10년 뒤의 아베쟈네다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지 말 그대로 예측불허의 미래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전형과 같은 유태인들만 먹여 살리고 호강시키는 역할에 충실해 왔다면 머잖아 그런 날들을 불식시킬 계기가 기필코 도래 했으면 하고 희망하게 된다.
중국 이민자들이 식료품을 취급하는 슈퍼마켓에 성공했다면, 일본인들이 화훼농장에 올인 하고 있다면, 우리 교민은 의류업계의 노른자위를 밤낮을 두려워하지 않고 장악해 내었다.
최첨단의 유행을 이끌어 줄 견본을 구하느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럽이나 미국, 또는 한국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자신을, 가정을, 교민사회를 되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을 획득하는 경우 또한 많았으리라.
오랜 불황에 대다수의 교민들 심정은 이미 낡아버린 지폐처럼 나달거릴지라도, 아베쟈네다는 우리 교민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우리가 일단은 해내었다. 아베쟈네다라는 거대한 요새 쌓기를.
그러나 하루에 몇 개씩 무작위로 개업을 시도하던 과도기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가 서로의 갈 길을 보호하고 옹위 해야 할 나침반을 어느덧 놓친 거나 아닌지, 불현듯 우려가 앞서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못된다고 본다. 그게 바로 세상살이니까.
해마다 이맘 때 어김없이 찾아와 지저귀는 소르살꼴로라도의 상큼한 노랫소리가 쾌보를 가져다 줄 것만 같은 아침이다. 드디어 봄, 봄이 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