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9일 목요일
우리가 우리를 챙겨야 할 때
맹하린
비가 오셔서 그럴까요?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은 그러한 날입니다.
한국의 여름은 습기가 많아서 더 더웠던 것 같아요.
어딘지 모르게 끈적이고 묵직하던 더위.
그런데 이 나라의 더위는 어떤지요.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서늘해지죠.
겨울은 또 어떻던가요.
아르헨티나는, 이 나라의 추위는 습기가 많아서 으스스하고 기분까지 을씨년스럽게 돼요.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기온 속에서도 뼛속 깊이 스미는 추위를 느끼게 되는 거죠.
남극에서 불어오는 냉기가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움추리게 만들지 않던가요.
계절도 반대지만 습기까지 반대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국인 한국과
우리 제2의 나라인 아르헨티나는.
여름휴가철.
그것도 그냥 휴가철은 아니죠.
현지인들이 1년을 기다리고 1년을 적금 붓고, 1년을 준비하는 여름휴가철 아니던가요?
하루도 일주일도 아니고 보름씩 다녀오는 , 말 그대로 가족 대 이동, 민족 대 이동의 휴가 말입니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외국 역시 계획안에 안들 수 없고.
우리 교민들은 견본이 될 옷을 구하기 위해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까지 겸사겸사 다녀오는 추세가 아니던가요.
인도를 아십니까?
세상을
인생을
사람을
그 여러 이미지를 자꾸만 되새김질 하게 만드는 나라.
동틀 무렵.
순례자 되어 손과 손이 병을 들고
질서가 안 보이는 질서정연함으로 떼 지어 강으로 몰려가는 그들.
수저도 없이 오른 손으로 직접 밥을 먹고, 왼손은 해우소인 강에서만 사용하는 그들.
해오름의 그 장관이던 강 주변과 거룩함조차 솟아나게 하던 그들의 전설과 같은 행렬.
작은 강이 큰 강과 만남을 위해 가고 가던 그들.
강은 그렇지 않던가요?
크거나 작고, 느리거나 빠르고 거칠거나 고요하죠.
강은…….
우리 살아가는 강가는 인도의 강과 크게 다름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굳이 무얼 얻으러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사실은 무언가를 버리려고 사는 의미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의 소통의 장이라고 여긴다면 아쉽게나마 산뜻한 답이 되려는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짜증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욕설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겪고 당해 온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잘 참아내서 제가 저를 칭찬한 적도 많았을 테죠.
어떤 일을 만나도 '내 탓이오' 그러면 가장 잘 이겨내는 지름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부딪치기 마련인 것입니다.
아무나 뉘우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은 성숙을 익히는 것입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만이 후회를 하고 후회를 압니다.
우리가 진정 심각하게 반성하고 지켜 보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고 봅니다.
사회 지도층.
그리고 교회의 거목들.
현대는 너무 그들을 부유층으로만 격상 시키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구제하고 구원하고 사목하는 일은 누구의 역할입니까?
도는 누가 닦습니까?
잘 먹고, 명예에 집착하고, 향락에 물든 인사들이 어떻게 복지사회를 구성하고 참다랗게 연꽃을 피우겠습니까?
내가, 우리가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분들의 잘못이 아닌. 바로 우리의 커다란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인 성향에 점차 물들어야 하는데, 그분들이 우리보다 앞장서 보편성을 펼치고 있는 이 어불성설은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아도 어딘지 모르게 든든한 구석이 느껴지는 삶.
당장은 아무 일도 문제다운 문제가 안 되는 생.
이제 그건 그분들이 아니라 우리가 솔선수범 살아내야 할 몫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서 깨우치는 삶이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를 보고 터득해야 하는 세상이 닥쳐 온 건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 누구를 의탁하려고 했을까요?
그분들을 우리에게
아니면 우리를 그분들에게?
우리가 우리를 챙기고 내가 나를 챙겨야 할 시절이 도래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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