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8일 수요일

다행이다

 
         맹하린


어제 정오 무렵, 우리 가게와 가깝고 Esquina(모퉁이)에 위치한 Kiosco(편의점)에 Helado(아이스크림)를 사러 갔다.
39도를 웃돈다는 이례적인 더위이긴 해도,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걸 왜 하필 그 시간에 사러 갔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Kiosco 강여인은 차양모자를 쓴 어느 여인과 의자에 앉아 한담(閑談) 중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서  약간 낯이 익다는 친근감이 전해져 왔다.
(한국의 고전형 미인이구나.)
그런 느낌으로 서로 짧게 인사를 주고받다가, 고전형 미인, 그 부분에서 퍼뜩 누구인지가 떠올랐다.
"아, 우리 고객의 부탁으로 배달을 해드렸던 분!"
그런데도 여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Kiosco 강여인이 내가 어떤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알려 주려고 짧게 노래를 불렀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강여인의 친구들은 나만 보면 그 노래를 잘 부른다.
그 여인은 그제야 나를 알아챘다.
너무 반가우니까 박카스를 사주겠다면서 강여인의 몫까지 세 개를 사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내가 먼저 박카스 값을 지불했다.
여인은 드디어 내 고객의 안부를 물어왔다.
" 우리 종친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언제 오세요?"
"전화로만 주문하시는 분이시라 저는 그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무척 예의 바른 분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나는 여인에게서 내 고객의 신상파악을 약간이라도 듣거나 말하는 사태가 생길까를 염려한 나머지 서둘러 그곳을 나온다.
Kiosco의 입구에는 하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 자동차로 Julio.A.Roca공원과 Sarmiento공원에 가족과 함께 주말마다 자주 갔었다.
나는 운전 연습도 했었고,  가족 모두 자전거를 하나씩 대여해 하루 종일 지냈던 시절이 느닷없이 그립게 떠올랐다.
자전거는 놀러온 여인의 것이었다.
최신형 자전거처럼 가늘면서 높다란 기능성 자전거가 아니라, 약간 낮고 어딘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는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잠깐 타 봐도 되느냐고 묻는 나에게, 물론이라는 대답이   선선히 건네져 왔다.
매사에 정나미가 넘치고 모든 일에 이성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편인 나지만 때로는 뭐에 씌인 사람처럼 충동적일 때도 있다.
확실히 뭐에 씌인 날이었다.
자전거에 오르자마자, 나는 그만 왼쪽으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진정 1미터조차 나가지 못했었다.
잠시 정신을 팔았던 것이다.
어떤 애틋함이 내 시야를 찰나처럼 가린 거였다.
아니다. 나는 어떤 곤경에서 탈피하려고 때 아닌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나동그라지 듯 넘어지고 말았을 터.
그럴 경우, 나는 당장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왼쪽 발목에 약간의 통증과 압박감을 느꼈지만 두 여인에게는 내색을 삼가고 총총 가게로 돌아왔다.

하얀 반바지의 무릎 부위는 이미 약간의 피가 배어 있었다.
성치 않은 곳은 네 군데 같았다.
발목, 무릎, 손목, 팔꿈치.
왼쪽으로 넘어져서 인지 모두 왼쪽이었다.
병원부터 가자고, 바보짓 하고 다닌다고, 아들한테 한 마디도 서러운데 몇 마디나 들었다.
뭐든 털어놓기를 잘하는 나는 아들한테 하마터면 원인을 실토할 뻔했다.
병원은 안 가도 된다고 나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결정이든 번복하는 걸 성가셔 한다는 걸 잘 아는 아들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 자전거라면 왠만큼  타셨잖아요? 그만하기 다행이죠. 하지만 병원엔 가봐야……."
"알잖아? 나는 참을 일은 잘 참고, 못 참겠으면 못 참아낸다는 거. 어쩐지 자전거가 하얗더라니! 눈밭인 줄 알았나봐, 이 바보가."

내 가족이 자전거를 타던 날들의 추억이 넘어진 거였다.
나는 내 가족과 자전거를 타던 날들의 추억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택시나 레미스를 타야 한다는 아들을 대번에 제압하고 나는 절룩이며 퇴근했다.
자동차들이 내 주위를 환영처럼 오갔다. 그리고 멈춰 있기도 했다.
일주일 남은 밸런타인데이 전까지는 멀쩡할 수 있도록 타박상에 좋다는 것 모두 다 챙겨 먹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맘껏 쉬고 그럴 작정이 각성처럼 굳혀졌었다.

친구내외가 까릴로에 Quinta(별장)를  얻었는데 2월말까지 보름동안 머물거라고 연락이 왔다.
나더러 일주일이라도 다녀가라는 걸, 갈까 말까 시소의 중앙쯤에 앉아 혼자 이랬다저랬다를 즐기던 중이었다.
가지 말라는 암시 같다.
다른 데는 점점 안 아픈데 발목은 차츰 붓고 점차 아프고 그리고 쑤셨다.
뼈가 놀란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마음이 아니고 뼈가 놀라서.
진정 다행이었다. 워드는 찍을 수 있게 손가락은 괜찮아서.

아픔인지 통증인지를 잊기 위해 어제 나는 가게의 소파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발목에 얼음찜질  주머니를 두른 채였다.
내가 좋아하는 존 그리샴, 그 작가가 쓴  '의뢰인'이었다.
헌책을 사다놓고 기회가 닿지 않아 한참이나 못 읽어냈었다.
존 그리샴의 웬만한 책은 다 읽었고, 모두 소유한 편인데,  읽어야지 그러며 못 읽어낸 책이 바로 ‘의뢰인’이었다.
존 그리샴은 우선 재미있다.
일단은 스릴 만점이다.
차종이 링컨인 자가용 위의 지붕에서, 총구를 입에 물고 자살한 어느 변호사의 죽음을 보게 된 아홉 살의 리키가 충격으로 엄지를 빠는 장면이 있다.

'지진을 겪은 후 엄지를 빠는 캘리포니아 애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 리키의 형 마크.  온갖 분야의 의사들이 나와서 설명을 했던 프로.
지진이 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그 불쌍한 애들은 아직도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고.
마크도 충격이 컸지만 동생 리키의 충격은 지진을 겪은 어린이들처럼 컸던 것이다.'

그 장면에서 나는 소리 없이 울먹였다.
왠지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자꾸만 눈물이 흘렀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발목은 밤사이 잘 쉬었고 거의 회복되었다는 듯 거뜬했다.
생각이나  걱정보다  의외로 빠른 치유였다.
눈 뜨자마자 전기스탠드의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실기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발목은 내 앞에서 씩씩함을 잘도 보여줬다.
끄덕없이  자신만만한 걸음이었다.

‘의뢰인’을 끝까지 다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 벌써부터 오늘이라는 하루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고 있다.
나는 거듭  안도하게 된다.
워드를 찍을 수 있게 되어 무한 감사다.
내게 있어 발렌타인 데이는 그 다음 문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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