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5일 일요일

버찌와 참새


         맹하린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을 지닌 프러시아의 국왕은 버찌를 즐겨 먹었다.
그의 정원에는 탐스런 버찌가 해마다 많이 열렸는데, 알맞게 무르익을 무렵만 되면 참새들이 나타나 절반 이상 먹어 치우는 사태가 발생하고는 했다.
화가 난 프리드리히 국왕은 참새를 잡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상금을 주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리게 되었다. 상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참새를 잡으러 다녔고, 거의 소탕 직전에 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그 다음해엔 버찌의 소출이 예년보다 훨씬 적었다.
버찌가 열매를 맺기도 전에 벌레들이 버찌의 잎과 싹을 거의 갉아 먹었기 때문이었다.
참새들은  버찌는 물론이거니와  벌레까지 상관없이 먹어댔지만, 양심껏 섭취했던 것?
사실은 참새가 적어지자,  결과적으로는 벌레들의 번식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던 것이다.
결국 프리드리히 국왕은 참새를 전멸시키라는 왕명을 신속하게 거둬들이기에 이르렀다.'

나는 일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휴식을 취하다가, 산책 중일 때, 혹은 빗소리에 취해 있다가도 문득문득, 또는 퍼뜩 영감(靈感)이 떠오르는 스타일이다.
어쩌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의무처럼 날마다 글을 써내는 관계로  매순간이 글과의 동고동락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적절한 말은 이렇다.
"영감(靈感)은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사람에게 생기는 게 아니라
무지막지한 황소처럼 온 힘을 다하여 밀어 붙이는 사람에게 생긴다."
영감(靈感)은 게으름뱅이를 절대 사랑하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매우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항상 글이나 쓰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랐었고, 글쟁이 되는 게 소원 중의 첫째였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나름대로 목표를 달성했고, 행복한  편에 든다고 자인한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보고 살아 가고 있기는 하지만 ,  첫 번째의  소원을 이룬다는 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생은 소용돌이처럼 나를 어지럽게 휘둘러 왔다.
어떻게든 헤어나려는 나를 한동안 사로잡고,  도대체 놔줄 생각을 안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글이라도  쓸 수 있어 살아갈 여력을 얻을 수 있었고, 내 나름대로  잘 극복헸다고 본다.

나는 요즘 살고, 살아가고, 살지만,
소탕작전에서 포수가 쏘아 올린 단호한 총알에 하마터면 목숨 줄 놓을 뻔 했던
그러한 처지와 다름 아닌 참새와 같다.
어쩌면 열매가 익기도 전에 참새에게 먹히던 버찌.
혹은 열매가 열리기도 전에 잎과 싹을 갉히던 나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를, 역동적이면서 자유롭게 세상을 비상하는 참새라고 지칭하는 게 차라리  적절한  표현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엔 버찌가 곳곳에  있다.
비록 프리드리히 국왕이 소유한 정원의 버찌만큼  좋은  품종은 아니어도.

이쯤에서 나는 혼란을 겪는다.
나는 버찌였었던지, 아니면 참새였는지에 대해서.
그렇지만 기필코 참새이고 싶다.


우리 인간이 즐겁기 위해서만 살아간다는 건, 성서는 물론이고 많은 양서(良書)의 그 어느 대목에도  나와 있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씩씩하게 말하는 중이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나를 이상하리만큼 주눅 들게 만들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지만
그 어떤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더 많은  나.
최근의 나는,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주위의 사물들을 뚜렷이 지각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하물며  내 앞에 전개된 관념들을 산뜻하게 주시하려고도 한다.
나의 체념이나 단념은 언제나 긍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점 매우 고맙기까지 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름.
무덥고 나른하고 텅빈 도시에서의 나날들.
이와 같은  날씨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은 여름 휴가철을
오랜 옛적부터 2~3개월씩이나  부여했나 보다.
해가 안 보이는 날에도 쨍쨍한 더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일이 상쾌하지 않을 확률도 있지만
 희망적일 경우가 더 많다는 걸로  스스로를 격려하게 된다.




댓글 2개:

Oldman :

지나다 우연히 들어와 좋은 글들 잘 읽고 갑니다. 글도 쓰시고 전문으로 꽃꽃이도 하시고...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시는지요. ^^ 놀랍습니다.

maeng ha lyn :

반갑습니다.
졸작이지만 글은 제게 공기 이상의 힘입니다.
꽃을 다루는 일은 어떤 아픔이기도 하고 중노동이지만 감사히 여기죠.
좋은 날 맞고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