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맹하린의 생활 단상(斷想)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2007년 11월 16일



정오 무렵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대 강사인 딸이 제자들에게서 레슨비 챙기는 일에도 서툴고 데이트도 시들한 펀인데 유독 연주회를 준비하거나 피아노와 연관된 일을 할 때에야 비로소 사는 맛을 느낀다고 해서 한바탕 꾸짖었다는 하소연이었다.
'넌 왜 하필 지구의 끝인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글 따위나 끄적이며 중노동자로 살아가는 내 언니를 그토록 빼닮은 거냐’고 한탄과 원망까지 잔뜩 퍼부었던 모양이다.
무용을 전공한 분수도 잊은 채,동생은 자주 예술하는 이들을 한통속으로 몰아 세웠다.
꼴통 사이코! 그런 식으로.
나는 그 동안 동생의 그런 비난들을 의연한 태도와 모자란 웃음으로 잘도 받아줘 왔다.
예술보다 물질을 더 선호하는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이 지닌 가치에 문외한인 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비쳐질 리가 없다.
그랬다. 나는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쓸 때 가장 여유작작이며 감사까지 해대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비올레따 빠라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라는 시가 떠오르게 된다,

‘제가 두 눈을 떴을 때
하양과 검정 높은 하늘의 수많은 별,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이를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것을 주신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행과 불행을 구별하게 하고 웃음과 울음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웃음과 울음으로 제 노래는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이의 노래는 같은 노래이며 모든 이의 노래 는 또한 제 노래입니다. '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선구자이자 대모로 추앙받는 칠레 민중가수 ‘비올레따 빠라’ 는 옥따비오 빠스,에르네스또 가르디날과 함께 중남미를 대표하던 시인이며 한 때는 산띠아고 대학의 박물관장이자 민속학자였다.
그녀가 작사 작곡한 불후의 명곡 ‘삶에 감사합니다’ 는 실연의 아픔 때문에 비극적인 자살로 인생을 끝낸 그녀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언에 버금가는 곡으로 남게 되었다.
이 곡의 가사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생의 찬미를 적나라하게 잘 나타낸 듯도 여겨지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갈망했으나  놓치고 말았던 것들을 내면적이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한껏 표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칫 축복된 삶을 찬양하려는 경향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이 노래는 독재치하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던 칠레 민중을 향해 처절한 밑바닥 생활을 굳세게  이겨내면서 민중이 품고 있는 복된 정신을 회복해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요소요소마다 살아있다.
그러한  삶과 혁명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나머지 지금까지 널리 전파되었고 여전히 즐겨 알려지고 있다.

가게가 한산한 시간에, 특히 내 마음이 묵정밭처럼 팍팍해 있을 때면
나는 비올레따 빠라의 곡이 여러 개 수록된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CD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짧다면 짧았던 비올레따 빠라의 아름다운 예술세계가 앞당겨 마감된 일에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애상 같은 걸 품게 된다.
비올레따 빠라와, 그녀의 노래들을 지금껏 열창하고 있는 메르세데스 소사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에서 각각 반독재 운동의 대표적 위치를 지켰던 인물들이었다.
민속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입증하는 작업을 생애의 으뜸가는 과제로 실천하며 상업주의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주관과 함께 민속음악을 계승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공헌해 온 비올레따 빠라.
그녀는 근대화라는 파도에 맞서 대안적 문화 창달의 재창조 및 재조명에 지극히 헌신적이었다. 그녀가 이룩해낸 업적과 삶에 뒤늦게나마 경외심과 더불어 찬사까지 보내게 된다.

비바람은 물론이고 폭풍이 몰아칠 때조차 경작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포기를 모르던,  글 농장의 수확물들  이외에, 나는 이렇다하게 내세울 재산이라고는 없는 상태다.
오로지 그것들을 사회에 헌공해야 할 숙제릍 풀어내느라 생업의 틈틈이 자투리 시간들을 알뜰살뜰 아껴 쓰고 있고.
각양각색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해방된 무소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겨 폄훼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고, 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거의 필수적이랄 수 있는 순수함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흠집을 내고는 했다.

처절하게 고통스러웠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참된 예술도 난해한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무소유와 외로움과 순수는 인간을 정화시키는 구석이 의외로 많음에랴.
비올레따 빠라가 만년에 남긴 ‘열일곱으로 돌아가기(Volver a los 17)'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의  정오나절을  상쾌한 마음으로 펼치게  된다,

‘당신들의 걸음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내 걸음은 뒤로 물러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