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의 목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11월 9일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으리라고 한다.
더울 때 더워주지 않고, 추울 때 춥지 않으면 교민경제의 90%를 지배한다는 의류업계는 이래저래 심각한 형편에 후줄그레 젖게 되는 동시에 날씨에게 조차 위협을 받는 불안한 국면을 맞게 된다.
무심코 쏟아지는 빗줄기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S여사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때때로, 기쁨이라는 뜻을 지닌 ‘알레그리아’라고 불리는 꽃 서양봉숭아처럼 활짝 어니 환하게 웃다가 어떤 날은 목련처럼 기품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장미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운 성격의 문우 S여사.
둘째 딸인 인정이가 받는다.
“엄마 계셔?"
“없으세요. 아빠만 있으세요. “
S여사는 이민 온지 25년 정도 됐고, 그 딸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왔기 때문에 당연지사처럼 한국말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런 저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는데 입가에서 웃음이 퐁퐁 솟고 솟는다.
한국말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딸들을 미소 띤 얼굴로 설명하던 어느 날의 S여사가 연쇄반응처럼 재빨리 떠올라서였다.
“우리 마리아는 있잖아. 내가 손님초대를 한 날에 음식을 장만하노라면 으레껏 묻는 거야. 엄마, 오늘 잡지책도 만들어? 그 애는 글쎄. 잡채를 꼭 잡지책이라고 한다니까. "
그처럼 한국말이 서툰 딸들인데도 S여사는
딸들을 감싸는 보디가드 역할로도 부족하여
상관 앞에서 기를 못 펴는 졸병이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딸을 앞에 둔 엄마가 아니라
딸이라는 이름의 엄마 앞에서
엄마라는 이름의 딸이다.
어찌 S여사뿐일까.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자식 대하기를 친구처럼, 직속상관처럼, 극진하게 대우해야 할 영원한 손님처럼 열성스레 섬기고, 보살피고, 그리고 의지까지 한다.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였다니까 당연히 그렇게 일이 전개돼야 하지 않을까.
있으나 없으나 퍼주고 먹이는 것으로는 양이 안차서 매번 꼼짝달싹을 못하게
되는 관계나 다름 없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남편들은 전생에 우리 여인들의 원수였단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다음 생애에 복을 보따리보따리 받는다지, 아마.)
뉴욕타임지가 제시한 '경영전문가'와 '패널'들의 '자식에 대한 조언'을 잠시 펼쳐보기로 한다.
✿부유함의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려면, 인생의 참된 의미가 비싼 옷이나 자동차, 또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일과 교육,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부모가 직접 자녀에게 보여줘야 한다.
✿가정부가 있다고 해도 옷장정리나 설거지 등은 직접 하게 하고, 5 세 때부터는 모든 인간이 부자는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때때로 인식시켜야 한다.
✿자녀의 용돈은, 요구한 것보다 약간 적게 주고 일부는 자선기금을 내도록 유도한다.
✿자동차 사고 등이 났을 때 곧 바로 새 차를 사줌으로써 부모의 지갑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최선의 인간적인 방안은 아니며 이는 단지 자녀를 비뚤어진 길로 몰아넣을 뿐이다.
경기가 계속 지금과 같이 바닥을 헤맨다면 자식에게 따로 물려줄 재산은커녕 빚이나 안 물려주면 다행이겠다 싶어지는 작금이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이런 식의 호된 독감을 앓고 난 뒤엔 언제 그랬었나 싶게 호경기가 꿈결처럼 도래한다는, 참으로 매력을 지닌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대처하여 우리의 자식들을 새삼 기억하고 없는 각오도 새롭게 다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와 자식이라는 질긴 끈으로 연결됐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일상의 노고에 대해서 강한 효력의 북돋음이면서 위로의 원천이기도 하고 영원무궁한 보람인 그들, 우리의 후예들을 필히 염두에 두고 말이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일 때가 좀 많은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 군더더기가 없으며, 너무나 눈부신 그들.
2세들이여! 제발 바라노니 우리 어른들처럼 너무 많은 옷가게 일랑 차리지 말기를.
유태인들의 주머니만 살찌우는 백년하청의 모래성을 쌓아 올리던 우리였음을 뒤늦게
자인(自認)하노니.
-초여름- |
어젠 나를 항상 언니라며 따르는 유선 씨의 차를 타고 어느 모임에 연말결산의 감사 평을 하러 갔습니다. 칭찬만 했으면 좋았겠는데 불의를 보면 못 견디는 제 성격상 두어 가지 지적도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유선 씨는 아베쟈네다에 오래 전에 사 뒀던 건물을 지금 수리하고 있습니다. 20 대의 세 아들은 각각 아베쟈네다의 한인부속상이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했던 청년들입니다. 그 대가로 자동차를 하나 씩 소유했고, 둘째는 본국여행까지 해냈답니다. 그들이 참 대단하고 대견해 보입니다. 하지만 유선 씨의 남편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아직 60도 못됐는데 놀면 뭐하냐면서 최근 10여 년 동안 트래픽을 운전하는 직업을 선택했었거든요. 한인 타운 소재의 어떤 레미세리아(대절용 차량사무소)에서 기사로 일을 해온 겁니다.. 매우 입지전적인 가정의 하나입니다. 물론 트래픽은 유선 씨의 남편이 주인이었지만요. 내년 초에 옷가게를 개업할 계획인 것입니다. 그 가족은……. 포화상태인 아베쟈네다라지만 경험도 축적했겠다, 자기네 가게겠다, 어쩐지 갈채를 보내도 무리는 아니겠다싶어 이 글을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친애하는 벗님들……. 또 하나의 라이벌이 부상하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