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로스 안데스 문학에 실린 제 단편 '어디서나 펄럭이는 그 깃발'을
부득이 일삼아 읽어냈습니다.
예전에 시우다델라 지역의 우리 집과 다섯 불록 떨어진 곳엔 , 제품공장을 운영하던 S씨 내외가 삼남매의 자녀와 살고 있었습니다.
중학생이던 그 자녀들은 학교에 다녀오면 곧바로 재봉틀이나 오바롴에 앉아 부모의 일을 거들고는 했습니다. 선하고 순수한 이웃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저는 남편의 철저한 배려에 의해 일도 안 하고 대사부인이라는 별명을 비꼬임이나 시샘처럼 받았지만 구태의연하게 골프나 즐기며, 말 그대로 호강 속에서 지냈다고 봅니다.
그 시절 골프에 너무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지금은 더 이상 골프채를 안 잡습니다.
어떤 일에 몰입하면 끝을 보려는 투쟁과 같은 성격은 많이 회석된 듯싶다가도 여전하다는 걸 자주 깨닫게도 되는군요.
그 무렵에 저는 그 댁에 가끔 들르고는 했는데, 그분들은 제품 일을 계속하고, 저는 한편에 마련해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세상 사는 얘기를 자주 나눴다고 봅니다.
그런 날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분들 스스로 이름 붙이신 '태극기 사건'에 관한 내막을 세 번 정도 짧게나마 듣게 되었던 건.
파라과이 국경을 넘어 포사다 시에서 고속버스를 탔을 때, 그분 가족은 태극기 하나의 위력으로첨예로운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출됐다는 퍽으나 짧은 스토리였습니다.
현재까지도 활약 중이신, 재아교민사회의 태권도계 대부 김한창사범의 애국심이 어느 국경수비대원에게 한 시절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그 동기부여로 일어난 태극기 사건.
아주 짧지만 매우 충격적으로 부각됐던 이야기.
저는 그걸 소중한 선물처럼, 또는 채소의 모종처럼, 아니면 정처럼 얻어와 모니터 위에 주춧돌로 깔듯이 심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우리 가족이 겪었던 군정시대의 인구조사와 이민 초기에 경험했던 한국음식으로 인한 고생 등을 기둥으로 세우게 되었지요. 권투선수라거나 여러 삽화들은 제 나름대로 수집하고 끌어다 모았고 피와 살로 순환 시킨 뒤, 이 작품을 대략 6년 전에 지어 냈을 것입니다.
급진주의라고 볼 수 있는 우리 내외는 인구조사를 당하기 이전, 서둘러 그 아파트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주택을 얻어 이사했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거짓말을 못할 뿐아니라 전혀 안하는데, 그리고 시에게는 그렇지 못하지만, 소설이라는 집을 짓게 될 때만은 제가 아주 대단한 거짓말쟁이랍니다.
말 그대로 주춧돌 하나 얻어다가, 언제 어디서나 태극기 휘날리는 정원이 살아 있는 저택 한 채 건축해낸 것입니다.
편집과정에서 뭐가 잘못 됐나 봅니다.
찬혁이라는 명칭이 찬석으로 나오는 페이지가 뒤늦게도 이제야 서너 장 발견된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는 이러한 경우에도 화가 안 납니다.
아, 실수가 있었구나, 그러고 맙니다.
며칠 교정을 본 후 여기에 올릴 계획입니다
세계 10여 개국에서 날마다 검색해 주시는 분들이 어떤 날은 100에 가까운 검색을 해주십니다. 물론 이곳에 계신 친구들과 지인들의 중복검색으로 그리 된다고도 사료 됩니다.
얼마 전 까지는 아르헨티나의 검색수위가 높았으나 최근엔 본국이 더 윗자리입니다.
그 모든 분들 위하려고 제 졸작 '어디서나 펄럭이는 그 깃발'을 기꺼이 올려 두려고 합니다. 무슨 일을 맘먹으면 미루는 것보다 추진을 더 서두르는 제 성격상 아마 내일이나 모레가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지식인도 두뇌로는 그럴 수 있겠으나 사랑이 끝도 있다는 점만은 절대로 깨우치지 않으려 한다는군요.
환상임을 알면서도 사랑은 환상이라는 틀에 구체성을 부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 같아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 별 게 아님을 인식은 하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하려는 의미라는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인간을 현실보다 더 훌륭한 가치와 더불어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고 더 이상 한 개인도 아닌,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게도 낯선, 어떤 히로인이 되어 감상이 전혀 배제된다고는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 내려오기도 하는 그러한 것인가 봅니다.
제게 문학은 바로 사랑입니다.
나 자신을 하염없이 미지의 어떤 세계로 몰고 가는 그 불가사의한 갈망.
문학은 내게 너무 위대한 사랑이거나 하물며 자주 허전했었고
몹시도 부족한 사랑,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가끔씩 눈물 글썽이게 만들거나
때때로 펑펑 울음 쏟게 하는 사랑
나를 자주 혼자이게 만들거나
내게 영원까지도 심어주려고 애쓰는 애인
너무나 그리움이면서
너무나 두려운 존재
요즘, 자꾸만 깨닫고 깨닫습니다.
문학은 내게 친구라기보다
사랑이었음을.
친구가 나를 이렇게 울먹이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문학이 진정 친구였다면 나를 이처럼
거칠고 센 악력으로 거머쥐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확고하면서도 신뢰감 넘치는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문학은 내게 언제나 무지개 색 영롱한 강물 되어
은은한 빛 섬세하게 반짝이며 마음 가운데로 쉼 없이 흘러 왔고
그리고 흘러 갈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슬프더라도 다시 문학의 강에 침잠하려는 중입니다.
겨우 한 주먹도 안 되는 가녀린 감성
더 이상 할큄 받거나 찔리기 싫어집니다.
나의 사랑하는 문학.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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