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24일
A라는 유태인이 시나고그(예배당)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저는 5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불경기에 허덕이다 보니까 회사 직원들의 월급은 왜그리 빨리도 돌아오는지요. 자식들 등록금, 계리사 비용, 각종 공과금도 밀릴 수밖에 없군요. 자금난에 계속 시달리다 보니까 이젠 중소기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끼칩니다. 생업이라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제발 저희 가족에게 50만 달러가 생기도록 신속히 복을 내려 주십시오. 간절한 제 기도를 꼭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그때, A라는 유태인의 옆에는 유태인 B가 나타나 무릎을 꿇다 못해 엎드린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부디 저의 고통을 헤아려 주십시오. 지금의 제 처지가 무진장 고통스럽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입장입니다. 많이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50 달러만 내려 주신다면 어떻게나마 급한대로의 어려움은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A라는 유태인은 다급한 몸짓으로 지갑에서 50 달러를 꺼내어 B라는 유태인에게 던지듯 건네면서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그러나 명령조의 어투로 말했다.
" 이보시오, 여기 50 달러가 있으니 제발 이 시나고그에서 속히 나가 주시오. 주님께서 나의 원대한 뜻을 들어주려다가 당신의 하찮은 애원 때문에 그만 분심이 드실까봐 걱정이 돼 죽겠습니다,"
위의 우화는 유태인들 간에 떠돌고 있는 최신식 치스떼(유머)라고 한다.
크건 작건 자금난에 시달리는 요즘 세태를 적절하게 파악하여 제대로 풍자해냈다고 생각되어 굳이 옮겨 보았다.
꼭 필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물질이라고는 하지만 물질에 지배되고 물질에 좌지우지 하다 보니 정작 지녀야할 사랑도 인정도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세상 속을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서성대고 있지는 않은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삭막하고 고달픈, 이 기분을 풀어낼 데가 어디 없나 하고 시야를
이리저리 옮기게도 되는 요즈음이다.
지난 5년 동안 모임이란 모임은 모두 배척해 온 셈이지만 유일하게 글쟁이들 모임만은 소중하게 아껴왔고 재미와 편안함까지도 솔솔 간직했었다.
너도나도 개성이 강한 이들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각자 대단한 경지를 넘어선 개성파들의 집합소 같은 모임이 바로 문협이라는 단체일 것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실컷 한담을 주고받다가 아까운 시간 이런 식으로 낭비하면 부끄럽지 않겠냐는 그런 느낌이 주어지면 우리는 약속처럼 시낭송을 펼친다.
그럴 때 H시인은 핸드백도 아닌 호주머니에서 지갑(紙匣)을 꺼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본 일은 없지만 H시인의 지갑(紙匣)은 지갑(紙匣)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갑(詩匣)이 아닐까 싶어진다.
일간지에서 오려낸 ‘詩가 있는 아침'이 한 장이 아니라 대여섯 장은 족히 쏟아져 나온다.
그것도 금종이처럼 아주 소중하게 접혀서 말이다.
이에 경쟁하듯 어떤 시인은 윗주머니에서, 어떤 문우는 안방에 가서 찾아다 가장 문학적이고 한층 예술적인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그대를 얻으면 시처럼 살겠고
그대를 잃으면 시를 쓰리라.”
그정도 짧으면서 함축미 가득한 시는 안보고도 훤히 외운다.
돌아가는 세상이 하도 그렇고 그러니까 나도 다음 달 초에 있을
그 모임에 참석하면, 핸드백이 아닌 포켓에서, 지갑(紙匣)이 아닌
시갑(詩匣)을 열고 이런 시들을 읊으리라 맘먹는다.
그래서, 그 언제인가부터 계속 힘들고 어렵다고 외쳐대는 주위 분들의
운명과 같은 고뇌를 잠시나마 잊으리라.
지금은 바야흐로 허심탄회가 필요한 때이므로.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물 끓이기
-정양
한 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놈 되는 세상에
열 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초여름- |
시사성 발언이나 계도하는 문구는 삭제했습니다.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들끓음은 비슷한 온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고 연신 끓거나 타오름을 지속하고 있음을 새삼 절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비로운 사실은 어떻게 지금의 심정이 그때의 외우고 싶었던 시와 한결 같을 수가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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