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천 번의 퇴짜

맹하린의 생활산책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5월 18일

텔레비전에서는 가또 두 마스(Gato dumas)의 요리 강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월요일 정오에 가또 두마스의 요리강습이 있을 거라는 예고가 화면의 아래쪽에 자막으로 장식되어 종종 걸음치둣 지나감을 눈에 익혀 두었었다.
평소의 나는 요리 강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가또 두마스의 희극배우 같은 요리강좌에 여러 번 매료된 적이 있었으므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시간을 기억해 두고 있었다.
가또 두마스가 소유하고 있는 삘라르지역의 낀따(별장)에서 거행되고 있는 그 강습은 아르헨티나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저명인사들이 많이 초대된 쟁쟁한 디너파티였다.
그 곳에서 걷히는 순이익은 극빈자들을 위한 후원기금으로 사용하리라는 주제를 지닌, 괘나 의미 깊은 만찬회였다.
가또 두마스와 그의 오른 팔 격인 수석 조리사는 물론,  텔레비전 방송국의 카메라 기자들까지도 꼬시네로(요리사)제복을 갖추고 머리엔 흰 캡을 얹은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열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각국의 유명인 들이 뽑은 세계 유명요리사 100인 안에 들어있는 가또 두마스는 3대째 요리사라는 직업을 이어온 벽안자염의 노인이다.
그가 튀김 요리로 선택한  * 마땀브리또와  닭과 생선, 그리고 파이가 화면을 통해서 매우 먹음직스럽게 비춰졌지만 그의 위트 있고 익살맞은 요리과정의 설명이 더욱 기발하고 유쾌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기름은 항상 후레스꼬(신선한)를 선택하는 게 튀김 요리를 조리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라고 말할 때 , 비엔 비엔 후레스꼬(매우 매우 신선한)와 비엔 비엔 깔리엔테(매우 매우 뜨거운)로 달군 기름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름이 얼마나 제대로 잘 달궈졌는지를 확인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려보면 그 물방울 튀겨지는 소리가 타악 탁, 탁구공이 튀는 명쾌한 소리를 내게 된다면서 거구의 몸을 매우 가볍고 날렵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실제로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타악 탁 물방울 튀기는 소리까지 곁들이면서 춤추듯 연출해 낼 때의 그 진지한 자세는 참 보기 좋았고 흐뭇하게까지 느껴졌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대단한 자신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음식은 재료의 우열보다 만드는 사람의 애정이 맛의 포인트라고 했던가.
그는 잊지 않고 충고 몇 마디를 설파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쉽게 만들기를 바라지 말라. 조리과정이 쉬우면 맛도 쉽게 된다.
끓이고 있는 소파(국)가 약간 짜다 싶으면 찬물을 넣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오래 끓여도 설익은 국물 맛이 난다. 국물이 뜨거울 땐 뜨거운 물을 붓도록 해라.
마침 그 만찬회에 참석한 유명한 사회자 미르따 레그란 여사가 가또 두마스가 내어 준 음식을 시식하면서 엑셀렌떼(탁월)한 맛이라고 격찬했다. 그리고  직업의식을 잊지 않고 질문까지 해냈다.
" 지금까지 요리를 해 오면서 음식이 잘못되었다고 타박 맞거나 반품되어 본적은 몇 번이나 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또 두마스의 대답은 의외로 당당하였고 또한 진지했다.
그는 말할 때 춤추듯 얘기하는 태도 역시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 타박 맞거나 퇴짜 맞은  적이 몇 번인가를 물었습니까? 몇 번 일 것 같습니까? 두 번? 세 번? 아닙니다. 밀레스 데 베세스(천 번이라고 할 정도로 수도 없이)의 퇴짜였지요.

가또 두마스는 젊은 시절 럭비선수였다고 한다. 이 나라의 폴로와 럭비는 재산가의 자손이 아니면 손 댈 수없는 고급의 경기종목에 속한다.
럭비 선수일 때,  그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눈치가 빠르며 교묘한 술수로 경기를 치루곤 했다고 해서 그의 두마스라는 성씨 앞에 가또(고양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60년대에 영국에 머물며 히피들과 어울려 살았었다는 일화는 그에게 있어 그림자처럼 바짝 따라 다닌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팔뚝에는 휘그라 디부하다(문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그는 한 때 히피였다는 사실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데다 도리어 자랑으로 삼는 사람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기르고, 하루하루를 진정 자유롭게 살아냈었다고 그 시절을 그립게 회상하기를 즐기는  가또 두마스에게는 3대째 내려오는 그의 직업이자 천직도  자랑거리 중의 자랑거리이다.
세따문(통일교의 문선명교주)이 아르헨티나를 방문 할 때마다 만찬요리를 맡는 일도 그의 자랑 중에 빠짐없이 들어간다.
세계요리경연대회에서 따내온 수십 개의 메달과  트로피들도 그를 긍지에 찬 명예의 자리에 올려놓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 얼굴에 어울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가또 두마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품격을 가장 완벽하게 지켜온, 그와 어울리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일 역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가또 두마스가 열정을 다 바쳐 일구어 낸  나날들이 있어, 그는 요리사로서의 장군자리에  추대된 게 아닌가,  그런 감회에 잠긴 마머지,  그 프로가 이미 끝났는데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한참이나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껏 나의 뇌리엔   '천 번의 퇴짜'라는 표현이  연거푸 맴돌고 있는  느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  마땀브리또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