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9일 금요일

어디서나 펄럭이는 그 깃발



로스안데스문학

통권 13호
2011


단편소설



   
                                                맹 하 린
                                          
워글워글, 돠르르르                                          
많은 양의 물이 끓어대는 소리가 이럴까, 아니면 수도라도 터진 것일까. 어떤 소음 때문에 잠결에 깨어난 숙현은 몇 가지 의문들을 떠올리며 잰걸음으로 거실로 간다. 형광등의 스위치를 올리자 전기가 나가 있었는데, 벽 시계는 희부윰한 속에서 유난히 두근거리는 듯한 큰 소리를 내며 새벽 3시를 가리키는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부엌은 순간 온수기의 온기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따사로웠고 수도꼭지는 이상하게도 이상이 없었다. 빨래방이 겸해있는 발코니의 문을 열자, 빨래방도 발코니도 전혀 아무렇지가 않았다. 하지만 뭐가 잡아끄는 듯 한 소요가 느껴졌으므로 다급히 발길을 옮겨 정원 쪽을 내려다보다가 숙현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워글대며 북적대는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장마에 젖은 등꽃열매처럼 은은한 빛을 띤 가로등의 불빛을 받고는 있었으나 적요로운 가운데, 흙탕물 같은 검은 물굽이가 아파트의 인도를 가득 메운 채 흘러가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하늘엔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박혀 있다. 습관처럼 오른손을 눈가에 가져갔지만 잠들기 전에 안경을 벗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숙현은 물굽이를 더 좀 자세히 보려고 시신경을 미간에 잔뜩 모은다.
( 저런!)
숙현은 재빨리 주저앉으며 숨기듯 몸을 움츠렸다.
그것은 흙탕물의 흐름이 아니라 많은 수의 군인들이 소리 없이 행군하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숙현이 안경을 벗었기 때문에 그 광경이 흙탕물로 보인 게 아니라 그 움직임은 어둠 속에서 연신 굽이쳤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점이다.
( 흙탕물이라고 해도 놀랄 일인데 군대의 물결이라니.)
거실까지 기다시피 되돌아온 숙현은 여전히 기는 자세로 안방으로 뛰어간 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서진을 깨우기 위해서다. 숙현은 서진의 어깨를 살살 흔든다.
“ 태욱아빠, 놀라지 말고 눈 좀 떠볼래요? ”
서진은 눈도 뜨지 않고 놀라지도 않으면서 대답한다.
“ 왜 그래? 아직 새벽인 것 같은데. ”
숙현은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진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있잖아요, 하고 숙현은 조바심이 새어드는 투로 말했다.
“ 대체 무슨 일이죠? 아파트 마당으로 군인들이 빼곡하게 지나가고 있어요. 어서 좀 와봐요. ”
숙현은 서진의 손을 잡아당기듯 일으킨다.
“ 군인? 군인이라니, 군인이 왜? ”
벌떡 일어난 서진은 입술을 약간 떨면서 얼떨떨한 음성으로 왼손을 잡아준 숙현의 손을 오른손으로 포개어 잡았다.
“ 그러니까 놀라지 말라고 내가 미리 귀뜸을 했는데....”
여전히 소곤대며 발콘으로 들어선 숙현은 그때껏 붙잡고 있던 서진의 손을 좀 세게 끌어당기며 강제적으로 앉히는 시늉을 한다. 발코니의 벽에 숨듯이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은 얼굴만 내놓고가 아니라 거의 눈만 내놓은 상태로 한참동안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군인들의 행군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펼쳐져있는 흐릿한 어둠보다 군인들의 여일한 행군은 형광빛 가로등 때문에 매우 흐릿하면서도 창백한 빛을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의 두근대는 심장 속에서 울려 퍼지듯 군인들의 발소리는 계속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숙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기어들었다.
“ 왜 저럴까요? ”
서진은 목에 뭐가 걸린 듯한 소리를 내며 더듬듯 대답했다.
“ 글세, 범인들을 색출하러 나온 것 같지는 않고....... ”
 서진의 말이 차츰 기운을 되찾았다.
“ 지금은 군정시대야. 문제는 우리가 멋모르고 흘러 들어온 이 시우다델라 아파트는 아파트라기 보다는 아파치라는 거고. ”
그의 탄식 사이를 헤집고 나온  한숨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윽고 군인들의 행군이 끝나는 기미가 보이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재빠르게 부엌과 거실을 지나 테라스로 달려간다. 테라스에서는 군인들을 다시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누도 1동과 띠라 1동이 서있는 아파트 초입 쪽으로 차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깜박 잊었다는 듯 느닷없이  몸을 돌려 작은 방으로 들어선 숙현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이불을 다독여주고 다시 테라스로 가 서진의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 당신, 괜찮아요? ”
숙현은 서진의 옆모습을 살피며 걱정스레 물었다. 서진이 숙현의 어깨에 오른 팔을 얹으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눈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 지금 막 괜찮으려는 중이야. ”
그는 이미 말을 많이 했다는 듯 금세 입을 다물었다. 숙현은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서진의 손을 여러 번 다독였다. 마치 인생 자체가 얹혀진 그런 느낌이었으므로...... . 숙현은 조심스레 묻는다.
“ 우리 이 기회에 돌아갈까요? 한국으로. ”
“ 서진은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 아니, 이왕 나선 길인데....... 중간에 포기하기는 싫어. 애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 테고. 우린 애들에게 우주 그 자체야. 그런 우리가 흔들리면 되겠어? ”


초등학교 1학년인 태욱과 유치원생인 태경을 미끄로(스쿨버스)에 태워 등교시킨 뒤 두 사람은 싸르미엔또 호텔 동창인 경주 네로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두른다. 군인들은 6시쯤 이미 철수를 했었다. 서진이 사는 누도 9동과 경주네가 사는 띠라 8동은 3분도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아센소르(승강기)에서 내려 현관문을 나서다가 그들은 황망스레 걸어오는 찬혁과 영선을 마주치게 된다. 서진은 금이 가서 찢기는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 그러잖아도 지금 송형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
경악하기 일보직전이 아니라 경악으로 아침을 맞은 표정의 찬혁은 그만두고라도, 영선은 겉으로 종종걸음만 치지 않았을 뿐 아침 내내 종종걸음을 치고 난 얼굴이 완연했다.
“ 이 놈의 아파트는 다 좋은데 가끔 전화가 불통이어서 말이야.”
찬혁은 그렇게 투덜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화가 정상일 때도 그들은 툭하면 서로 오갔다. 전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뭔가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기는 물론이고 전화조차 군인들이 일부러 차단시켜 놓았을 확률이 많았다.
서진의 아파트로 올라온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평소처럼 소파에 앉지 않고 다탁 주위에 방석을 깐 채 바짝 둘러앉는다. 긴실함이 넘쳐 음성조차 은밀한 가운데 언제나 처럼 찬혁이 서두를 꺼낸다.
찬혁은 늘 오른손으로 입 주위를 쓸어내리며 얘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 새벽에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났어. 전기가 나갔더라고. 무심코 창문의 커튼을 밀치다가 기절할 것처럼 놀랐지 뭔가. 우주인들이 하강한 줄 알았다니까. 잽싸게 커튼을 내리면서야 깨달았어. 군대구나. 영주권! ”
말하는 찬혁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진 반면, 서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 불법 체류 자들을 색출하러 나온 게 틀림없었어. 훈련을 제대로 받은 특수부대가 확실했고. 낙엽 밟는 소리만 빼면 정말 완벽한 진군이었다니까. ‘


인류의 죄악을 심판하는 역병처럼 군인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그것도 새벽에 점차적으로 훑듯이 인구조사를 하는 건 그다지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주권이 없는 가장을 연행해서 초청장이 파라과이 케이스면 파라과이로, 볼리비아 케이스는 볼리비아로 추방한다는 데에 문제는 있었다. 시우다델라 아파트에 거주하는 180여 가구의 600여 한국교민들은 서둘러 자치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군정 하에서는 이렇다 할 해결책이 따로 없었다. 초청장이 아르헨티나 케이스인 한국인은 10%도 되지 않았다.
자고새면 띠라 몇 동의 누가 추방되었다는 소식이 자치회를 통해 발 빠르게 전달되었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띠라 3동의 206호에 사는 H씨는, 가장만을 추방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엉뚱한 일을 꾀했다.  새벽에 군인들이 1층부터 조사해 올라오는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할 때 난데없이 부인을 시켜 냉장고의 음식물을 모두 찬장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서둘러 그 안에 숨었다. 아르헨티나의 냉장고는 성인 남자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다. 기묘한 발상의 대가인 소름끼치는 추위를 동반한 숨박질이었다.
H씨의 집에 들이닥친 군인들은, 가장인 H씨가 지방으로(비록 냉장고 안이긴 했지만) 여행을 떠났다는 설명을 듣더니 19세인 H씨의 장남을 대신 연행해가기에 이르렀다. 여자는 15세, 남자는 18세에 성인식을 치르는, 그것도 거창하게 치르는 아르헨티나의 풍습은 거저 있는 게 아니었다. 순간적인 기지가 더 큰 화를 부른 잔꾀였다는 걸 알고 가슴을 친 H씨는 곧장 군당으로 찾아갔다. 아들 대신 추방당하는 일을 자처한 것이다. 그 비보는 공기처럼 순환되어 곳곳에 전달되었다. 그렇게 추방당한 이들은 일주일도 안 되어 모두 되돌아 왔다. 일단은 아르헨티나와 인접해 있는 파라과이 강에서 배를 타고 월경(越境)을 한다. 그리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뒤 밤낮을 달려 결국은 시우다델라 아파트로 돌아오는 것이다. 명색이 아파트인 아파치로.


페론 대통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어 무상으로 나눠준 시우다델라 아파트에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도 현지인에게도 거액인 돈이 오고간 뒤에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고급 아파트와 다름없었고 가난한 이들과 이웃하며 산다는 것만 빼놓고는 불편한 게 별로 없었다.
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현지인 들은 그 아파트를 FUERTE APACHE(강력 위험지구)라고 부른다는 걸.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국인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으므로.
오늘도 두 사람은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다섯 불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마센(식품점)은 현지인 종업원들에게 알아서 장사하라고 팽개쳐 두고 경주네 아파트로 서둘러 출근(?)한다. 그렇게 되면 지난밤 자치회에 참석했을 찬혁에게서 어떤 괜찮은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가면서 서진은 콧노래를 흥얼댔다. 최근 들어 서진은 허밍으로 자주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 숙현이 불쑥 묻는다.
“ 당신에게 그런 면도 있었어요? 기분이 좋은 것처럼 계속 휘파람 아니면 콧노래잖아요?”
“ 몰랐구나. 나는 기분이 엉망일 때면 저절로 휘파람 아니면 콧노래가 나온다는 걸. “
“ 정말? 근데 왜 난 여태 그걸 몰랐을까요? “
“ 당신을 만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기분이 엉망일 때가 없었으니까.”
“ 칭찬인가요?  아니면 비난?”
“ 둘 다! ”
두 사람은 아주 모처럼 웃는 사람들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웃다가 결국 합창처럼 웃었다.


평소에 청소를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쓰레질이라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쓸고 닦아서 먼지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던 찬혁의 집은 엉망으로 어지럽혀 있었다. 그 집은 언제나 어디나 윤이 났다. 영선은 항상 뭔가를 들고 닦았는데 그건 행주 아니면 걸레였다. 하지만 영주권 때문에 집안을 치울 기분이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진의 집도 그런 면에서 보면 마찬가지였다. 날마다 그들의 기분처럼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기 마련이었다. 흡사 영주권이라는 귀중품을 찾느라 마구 들쑤셔 놓은 집안처럼....... .
찬혁은 이렇다 할 좋은 소식을 제시하지는 못하면서, 언제나 처럼 이민살이의 곤경에 처할 때마다 습관처럼 꺼내는 ‘태극기 사건’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일종의 병치레처럼 치르는 특이한 의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찬혁의 이민생활에 대비한 토대였을까. 찬혁이 진정 힘들 때는 이북에서 부모 따라 피난을 떠나오던 얘기가 화제로 떠올랐으므로 군대가 조사 나온 것하며 영주권, 추방, 그런 일들은 그다지 엄청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기는 했다.
두 사람은 찬혁의 태극기 사건을 백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려 열댓 번도 넘게 들어냈을 것이다. 기이한 것은 서진도 숙현도 찬혁의 ‘태극기 사건’을 한 번도 못 들어 본 것 같은 진지한 자세로 듣고 또 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파라과이 케이스인 우리는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낭패감을 맛보았어. 명색이 수도라는 아순시온은 끝에서 끝이 걸어서 한 나절도 안 될 정도로 작더란 말이지. 마치 드넓은 땅을 소유한 나라라서 이민지로 선택했다는 듯 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이 컸어. 그때 내가 가장 괴로웠던 건, 집사람이 전혀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아닌 얼굴로 계속 묻고 감탄하던 말이었지. 여보, 여기가 정말 천국이야? 아, 천국이 이렇게 생겼구나!
세 사람은 모처럼 웃는 사람들처럼 멈칫대며 웃었다. 어쩐지 눈물이 괴어서 숙현은 살며시 눈꼬리에 손을 갖다 댔다. 이슬처럼 눈가에 물기가 있었다.
- 교민의 대부분이 보따리 장사를 하더란 말이지. 그들은 파라과이인 들의 집마다 찾아다니며 문 앞에서 벨도 못 누르고 손뼉을 쳐 주인을 불러낸다네. 그리고는 보따리를 풀어 상품인 옷을 보여주며 장사를 시작하는 거야. 그것도 대부분 할부판매였어. 그러니까 2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1976년 3월  초였지. 계절은 늦봄이라는데 웬 파리모기는 그리도 많고 덥기는 왜 또 그리도 덥던지....... .

결국 찬혁의 가족은 한국인 빠뻴장사( 종이장사=이민 브로커)와 줄이 닿아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인접해 있는 강을 도강하기로 결정했다. 첫째 한국인이 더 많고 여러 여건이 더 갖춰진 진짜 천국이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해서.
배에서 내려 아르헨티나땅 뽀사다 시에 도착한 후, 택시로 터미널까지 찾아가 부에노스아이레스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안도의 숨이 내쉬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국경수비대가 고속버스에 올라타더니 검문부터 실시하는 것이었다.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찬혁의 가족만이 영주권이 없었다. 그들은 찬혁의 가족을 짐과 함께 강한 지시를 곁들이며 하차시켰다. 하차만 시켰더라면 좋았겠지만 찬혁과 영선을 고속버스의 옆구리에 두 손을 짚고 서 있게까지 만들었다. 대장을 제외한 졸병들은 찬혁과 영선을 향해 장총을 들고 대치한 상태였고.
이민을 떠나올 때, 연탄집게 말고는 모두 있는 나라라고 브로커는 수차례강조하고 강조했었다. 그리하여 지니고 있던 살림살이들 모두 헐값에 팔거나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꼭 필요하다싶은 걸로만 새로 장만한 셈이다. 그렇게 최소한도로 줄여서 꾸린 이민 가방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위도 있었고 부엌칼, 도끼, 그리고 호미까지 있었다. 걸고넘어지자면 그런 게 모두 위험도구였다. 이목구비가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오마 샤리프처럼 생긴 대장은 부하들을 시켜 짐부터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평소에도 하찮은 일에까지 놀라기를 잘하는 영선은 졸도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찬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마 그것은 그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나타내는 가장 다급한 태도일 것이다. 이내 정신을 차린 찬혁은 버스에 짚고 있던 두 팔 사이로 짐을 조사하는 과정을 자세히 훔쳐보기 시작했다. 영선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애 쓰는 중인 사람처럼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그때였다. 가방 안에서 보석함이 삐져나온 것은. 정작 졸병이 조심스럽게 연 보석함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보석이 아니라 차곡차곡 접힌 대형 태극기였다.
“ 운 모멘또(잠깐만)! ”
대장은 이미 펼쳐진 태극기를 보자마자 낮게 소리쳤다. 그 낮은 음성이 더욱 두렵게 느껴져 영선은 잠시 몸이 휘청거렸을 지경이었다. 문득 고개를 외면하자니 동녘으로 해가 뜨고 있었고 하늘이 매우 슬프게, 거기다     몹시 곱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 태극기! ”
대장이 발음도 정확하게 그렇게 외쳤다. 버스를 향해 두 손을 짚고 서 있던 찬혁은 영문도 모를 그 외침에 놀라 그때껏 숙였던 고개를 재빨리 똑바로 했다. 대장은 찬혁과 영선에게 원상복귀를 지시하고 일단 버스부터 보내 버렸다. 그리고 찬혁에게 다가온 대장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을 말할 때처럼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음성으로 나왔다.
“ 이 ‘반데라 나시오날(국기)’을...... ,”
그렇게 말하던 대장은 잠시 쉬었다가 곧 재빠르면서도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내게 선물할 수 있는가?”
찬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광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대장의 부하들뿐이었는데, 그들 모두 찬혁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느껴졌다. 손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손을 털어 내던 찬혁은 고개 먼저 설레설레 저었다. 대장의 부탁에 찬성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만 대답한다. 강건함을 숨긴 채.
“ 매우 죄송한 일이군요. 하지만 안 되겠는데요. 아시겠지만 이건 우리나라 국기랍니다. 거기다, 이민지에서 제 자식들에게 내 나라를 수시로 상기 시켜 주기 위해 가져온, 보석보다 더한 귀중품이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무슨  까닭인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서 있다가 불쑥 물었다.
“ 당신들의 행선지는 어디인가?”
찬혁은 마치 모르는 길을 묻는 어른 앞에서 쩔쩔 매는 아이처럼 일순 뒤숭숭한 기분에 얽히었다. 찬혁이 미처 못 알아들은 걸로 알았는지 대장은 다시 짧게 물었다.
“ 들리지 않는가? 당신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고 있다.”
찬 혁은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잽싸게, 그리고 관등성명을 대는 군인과 같은 어조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 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으로 갑니다!”
대답이 그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대장은 흔쾌하게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당신은 한국인 김한상을 아는가?”
문득 망설이던 찬혁은 서둘러, 그리고 놀랍도록 환희에 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 어떻게 아셨죠? 우리가 지금 그분을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중이라는 걸.”
물론 거짓이었다.
(김한상이라는 이름도 김한상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바 아니다. 하지만 이 대장이 곧 그 사람의 신상파악을 해줄 테지. )
흠흠, 하고 감격한 얼굴로 대장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흥분을 배제하며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 내가 사관생도였을 때, 프로페소르 김한상(김한상 교수)은 우리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던 교관이었다. 그는 태권도를 가르칠 때마다 강당의 정면 벽에 태극기와 아르헨티나 국기를 나란히 걸어 놓고 양국의 국가를 부르게 한 뒤에야 비로소 교습을 시작했지.”
대장은 잠시 한국말로 애국가를 흥얼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때 나는 태극기가 몹시도 갖고 싶었다. 소원 중의 첫 번째였을 정도였다. 나는 그분을 엄청나게  존경한 나머지, 그리고 태권도를 너무나 선망해서, 태극기 하나를 갖는 게 가장 첫 번째의 소원이라고 프로페소르 김한상에게 누누이 간청했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엔 태극기 구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던가 보았다.”
찬혁은 그만 정신 나간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고 만다. 영선은 소리도 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그제야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다. 따로 분리되어 제 부모만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이들.

찬혁은 오른 손으로 입 주위를 여러 차례 번갈아 가며 쓸어 내렸다.
그 대목에 이를 때마다 숙현은 매번 눈물이 글썽여졌다. 숙현은 아르헨티나라는 틀에는 일단 부어졌으나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찍혀내지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여러 번 절망하고 실망하기를 거듭했었다. 아침마다 집안에서는 전혀 못 느끼다가도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부터는 이방인이라는 인식에 수없이 놀라던 나날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일터로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내 나라와 이 나라를 비교하려고, 이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 생각을 더 많이 하려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한국에 있을 때를 견주거나 떠올리거나 그랬었다.
찬혁은 자신의 음성이 격앙에 차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 그건 정말 예삿일이 아니었어. 태극기가 내 수호천사였다니,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이 이렇게나 마련돼 있었다니. 알지? 이런 일은 늘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윽고 찬혁은 태극기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 일이 참 수월하게 풀렸다고 겨우 마음을 놓았을 때, 그 대장은 뜬금없이 내가 선물하기로 허락한 태극기에 내 휘르마(서명)를 요구하며 떼를 쓰기 시작했어. 그러면 안 되는 줄 잘 알면서, 나는 가족과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자 그 태극기에 서명을 하고야 말았지. 물론 소형 태극기가 하나 더 준비돼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그 때 난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손이 몹시 떨리고 있음을 알았어. 대장에게 건네는 태극기가 물결치듯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았거든.
영선은 이 부분에 이르면 느닷없이 걸레질을 한바탕 한다.
“ 대장은 다짐처럼 덧붙였어. ‘지금부터 당신이 이 도시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될 때까지 거치게 되는 검문소가 전부 일곱 개입니다. 그 일곱 개의 검문소마다 모두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당신 가족을 특별 대우하여 무사통과 시키도록.’
이제 영선은 걸레를 옆으로 치우고 똑바로 앉는다.
“ 정말이더라니까. 진짜 도착하는 검문소마다 특별대우였고 무사통과였다네. 참 대단하지? 한국에서 태어난 이 소인은 태극기의 소중함을 아는 데에 41년이나 걸렸는데, 대장인 그 대인은 사관학교 때부터 태극기의 위력을 깨우쳤고 그토록 오랫동안 선망까지 했었다니.”
이 대목에 닿으면 찬혁의 막내인 동성이 실실 웃으며 한 마디 짚고 넘어간다.
“ 인생무상!”
괄목할 만한 일은 찬혁내외도 서진 내외도  동성이 얄밉다거나 애어른 같다는 생각이 안 들고 판소리할 때 고수가 장단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며 그럭저럭 웃어넘기고는 했다.

그물은 점점 좁혀져 왔다. 특별히 봉쇄선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군인들이 곧 봉쇄선이었으니까.
어제 아침 띠라 6동과 누도 5동이 조사를 받았고, 많은 한국인 영주권 미소지자들이 연행되었고 많은 가장들이 파라과이나 칠레나 볼리비아로 추방되었다. 찬혁은 날마다 갈망의 노래를 읊조렸다.
“영주권 신청서만 있었으면, 누가 영주권만 빌려준다 해도 이렇게 지옥 같지는 않을 것을…….”
한국정부에서 외국여행이나 이주자들에게 1인당 2500달러만 지니고 나갈 수 있도록 강하게 통제를 했기 때문에 찬혁은 5인 가족 할당량 12.500달러와 약간의 여유 자금, 서진은 4인 가족 할당량 10.000달러와 약간의 꿍쳐둔 금액이 재산의 전부였다. 주위 사람  모두 200달러나 500달러를 수중에 지닌 채 아르헨티나에 도착되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영주권을 암암리에 신청할 경우 일인당 2500달러였다. 찬혁은 그렇게 라도 영주권을 신청해놓고 봐야겠다는 뜻을 어느 정도 굳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관청의 수속창구는 거북이걸음만 돼도 괜찮겠는데,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잡담까지 나누는 개구리 행정이었다. 집중해서 헤엄치다가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찬혁은 자주 투덜거렸다.
“이 놈의 나라는 도무지 바쁜 걸 모르는 나라여서 탈이더라. 바쁘지만 여유 있게 일하자가 마냥 몸에 배었다니까.”
흥미 있는 것은, 찬혁은 얼굴에 영주권 문제만을 떠올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반면 서진은 계속 떠오르는 영주권에 대한 걱정을 자신의 표정에서 연신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인구조사의 여파는 커다랗게 용솟음치며 수시로 밀려왔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서진의 아파트에 모인 그들은 어떻게 해서 백구 촌에 찾아가게 되었는 지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찬혁이 좌중을 이끌었다.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창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숙현은  창가로 다가가 차갑게 떨어지면서 나직나직 속삭이는 빗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다.
-태극기 사건을 겪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 우리는 택시를 탔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백구 촌(109번 버스종점. 한국인들의 밀집지역이 근접해 있었으므로 그렇게 불려졌다.)에 내려 주더군. “
찬혁은 예외 없이 오른 손을 올려 자신의 입 주위를 여러 차례 쓸어 내렸다.
“ 한국 식당이 하나 둘 있고 가 아니라 전혀 없고, 한국 식품점도 전무하고, 단지 소하(메주콩)를 이용하여 콩나물을 키워 파는 알마센(식료품점)이 하나 있을 뿐이더라고. 우리가 맨 처음 들어간 곳이 스웨터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집이었어. 한국 음식 먹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고 하자 콩나물 무침과 양배추로 만든 김치가 반찬의 전부인 식탁을 차려내  주더군. 우리에겐 정말 푸짐한, 그랬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어. 치즈 냄새와 노린내가 물씬 풍기는 기다란 빵과 토마토소스를 듬뿍 넣은  스파게티와 소금구이 고기만을 사먹다가 모처럼 한국 음식을 대했으니 어땠겠어.”
찬 혁은 잠시 말을 끊는다. 이쯤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고야 말던 영선을 위해 이야기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찬혁은 굳이 영선을 바라보지도 않고 얘기를 계속한다. 영선은 기다렸다는 듯 옷소매를 당겨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기분전환이라거나 심기일전 같은 게 필요했을 것이다. 찬혁과 서진의 가족은 ‘ 훌리오 아 로까 공원으로 소풍을 떠난다. 일부러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만 마련해 간 셈이다. 일요일이었다.
점심식사를 그럴 듯하게 끝마친 찬혁과 서진 내외는 꼭 거쳐야 되는 순서처럼 또 다시 마주앉아 얘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공원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길 건너편에는 수초가 아름답게 우거진 강이 있었다. 물위로 오리들이 유유히 떼 지어 다녔다.
“ 그 때, 강형 네도 우리처럼 파라과이에서 아르헨티나로 밀입국을 했다고 그랬지?”
찬혁처럼 뱃장 좋게 가족만 떠나온 밀입국이 아니었다. 파라과이에서 구한 한국인 브로커가 함께였다. 그 브로커는 툭하면 이유를 달았는데, 그것은 급행료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지키는 경찰만 발견해도, 파라과이인 들의 주식인 만디오까(카사어바) 밭이 펼쳐진 황토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군인만 보아도 그 브로커는 일부러가 아닌 것처럼, 뭔가를 항의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당당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경찰이나 군인에게 먼저 말을 걸고는 곧장 서진의 가족에게 돌아와 운을 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공연히 트집을 잡기 때문에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렵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던 브로커는 정작 뽀사다 시에 닿은 뒤, 서진의 가족을 고속버스에 태우자마자 줄행랑 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내 알바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잠깐 동안이나마 비치며…….
과묵한 편인데도 그 무렵의 서진은 자주 한탄을 터트렸다.
“ 내 나라가 아니고 내 정서가 아닌 땅이라 선 지 참 고달프다, 고달파.”
사실 아르헨티나는 그들에게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이민 수속이다, 비행기 값이다, 정착비다해서 있는 재산을 꽤 축내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뭐든 새롭다는 의미에서 이민 생활은 그들을 도취시켰다. 다분히 중독성이 내포된 도취였다. 찬혁은 아무하고나 사귀려고 들었다. 서진은 누구하고나 사귀지 않으려고 했고. 찬혁은 능력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천국이라고 생각했고, 서진은 가족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천국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찬혁은 청년시절에 한국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프로 권투선수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권투나 권투선수 얘기를 자주 꺼낸다.
“ 서양의 어느 권투선수가 말했어. ‘권투선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링 위에 오르지만 정작 싸울 때는 혼자다, 의자까지 빼앗긴 채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싸워야 한다.’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권투선수를 못 벗어나고 있다네. 언제나 혼자였고, 언제나 충분히 외로웠다고 봐야 할 거야.”
“서진이 농담처럼 불쑥 말한다.
“ 송형이 권투를 왜 그만 뒀는지 난 다 알 것 같아요.”
“ 왜 그만 뒀을 것 같아?”
“ 뻔 하지 않습니까? 맞기 싫어서였겠죠. ”
“ 땡! 틀렸습니다. 나, 권투선수 송찬혁은 상대방 선수를 진정 때리기가 싫었습니다! 정말 그랬어. 어느 날 갑자기 권투가 싫어진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때리기가 싫어졌다네. ”
그들은 처음에 연고자가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서로 연고자가 되어 주며 공유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할 나위없이 끈끈한 공유를 할 수 있었다.
“ 강형 네와 우리는 연고자 없는 사람들이 으레 정거장처럼  거치게 되는 싸르미엔또 호텔에 묵게 되면서 알게 되었지. 말이 호텔이었지 여인숙  수준이었어. 우리의 안내로 백구 촌에 가서 소찬이지만 진수성찬으로 알고 사먹던 한국음식 기억나? 감자와 근대를 숭숭 썰어 넣은 된장국에 홍당무로 담근 열무김치였던가?”
찬혁은 저절로 입맛이 도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 처음 만난 날, 우리가 악수를 나누는데 강형이 내게 뭐랬는줄 알아? 송형은 이민을 왜 오셨습니까?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분 같아 뵈는데요.”
“ 그때 송형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잊지 않았겠죠?  그날 송형은 내게 말했어요. 강형은 이민체질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
“ 그래 정말 그랬어,”


까르나발의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지고 있는 거리에는 아구아(물)라고 소리치며 물이 든 풍선을 던지는 젊은이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아구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되어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된 언어다. 물을 채운 색색의 주먹만 한 풍선을 던지며 즐겁게 환호하던 그 부르짖음은 숙현의 기억 속에 환영처럼 아름다운 시의 여운으로 남아있다.
연고자가 없던 찬혁과 서진의 가족들이 맨 처음 묵게 된 사르미엔토 호텔에서의 나날들은 음식 때문에 오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그 호텔은 잠만 잘  수 있었을 뿐, 취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도 규칙도 전혀 안 돼 있었다. 숙현이 이민 가방에 넣어온 새로 개발했다는 전기 프라이팬에 두 집 가족 모여 호텔의 주인이나 보이들  몰래 열심히 계란만 삶아 먹던 삶은 계란처럼 너무나 팍팍하던 일상들. 날마다 매식하던 고기나 식빵이나 버터, 그리고 우유에서는 왜 그리도 노린내가 풀풀 피어나던지…….찬혁과 서진은 가장이라는 넥타이를 목에 두르긴 했으나 가족을 이끌고 낯선 나라로 떠나온 책임감의 부피만큼 연고자 없는 서러움이 가장의 넥타이보다 더 답답하게 그들의 목을 조여 댔을 것이다.
백구 촌에 가도 한국식당이라고는 없었다.
사실 그 무렵의 찬혁과 서진 에게는 앞으로 낯선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거의 뒷전이었다. 우선적으로 한국음식을 찾아내는 일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백구 촌에서 재봉틀수선을 직업으로 갖고 있던 N씨내외였다. 며칠 동안 한국음식을 못 먹었다는 찬 혁의 설명을 딱하게 여겨 생전 처음 보는 알량미 비슷한 커다란 알갱이의 쌀로 천천히 밥을 지어 내놓은 이들은…….
 한국 쌀보다 곱절이나 큰 그 쌀은 일단 10분 정도 담갔다 지어야만 제대로 뜸이 들었다. 감자와 근대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된장국과 홍당무로 담근 열무김치가 반찬의 전부인 식탁이었다. 그때 맛본 한국음식의 해후는 평생 동안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천국이라는 말이 분명 맞는 것 같았다. N씨 내외가 나이 든 천사처럼 보였으니까.
기이한 것은 허겁지겁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면서 매우 심각한 기분으로 대하게 되던 식탁이었다. 음식을 들고 있던 모두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동성이 싱그레 웃으며 결국 한 마디 던졌다.
“ 인생무상!”
“ 그래, 인생무상이다! 경주가 따지듯 쏘아대다가 한탄처럼 말을 이었다.
“ 넌 언제 어른이 될래?”
“ 어른이라니? 난 이제 겨우 열 살이야.”
“ 제발 부탁이야. 무슨 주술처럼 인생무상 좀 그만 지껄여라. 그 말 때문에 앞으로의 내 인생이 정말 무상의 연속이 될까봐 겁이 나.”
동성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퍼붓듯이 대답했다.
“ 무슨 천국이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냐? 많이도 안 바란다,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좋겠어.”


마당에 목백일 홍과 감나무와 앵두는 물론이고 여러 정원수와 아치형 대문에 올린 줄 장미, 그리고 잔디밭까지 갖추었던 그럴 듯한 양옥을 헐값에 처분하고 천국이라는 나라에 닿아 일주 일만에 고작 밥 한 끼 가지고 감격이라니…….
평소에 보채는 게 뭔지도 모르던 서진의 애들이 자꾸만 ‘우리 상도동 집’으로 가자고 칭얼대던 일도 참 쓸쓸한 대목 중의 하나다. 웬만한 일에 쓰다 달다 말이 없는 편인 서진이 아이들에게 해낸 다짐은 이랬다.
“ 그래, 언젠가는 가자. 그런데 이왕 왔으니 한 번 살아보고 가는 거야. 알았지? ‘
아이들조차 이민지에 대해서 몹시 부정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보름달만 봐 왔다는 듯 어느 초저녁 하늘에 떠 있는 갈고리달을 보고 태욱이 빈정대 듯 말했다.
“ 엄마, 이 나라는 왜 달이 깨졌어요?”
숙현이 달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자 태욱이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가 좋은데....... . ”
태경도 덩달아 대답했다.
“ 나도, 엄마. 우린  이 나라가 싫은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좋다는 거지요.”
태욱이 다짐처럼 덧붙였다.
“ 엄마, 우리 이사 갈 때는 한국으로 가요.”


모처럼 맘 잡고 알마센으로 일하러 나갈 때나 저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  올 때, 숙현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빠르게 걷는데 비해 서진은 일부러 뒤쳐지듯 천천히 걸을 때가 있다. 그 간격이 점점  멀어져 숙현이 가던 길을 여러 차례 멈출 정도로. 서진은 그만큼 심각하고 심난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주 투덜댔다.
“ 이민 병은 이민지에 도착하여 음식고생을 할 때 비로소 치유된다더니, 치유가 되긴 된 건가? “
찬혁의 말은 계속된다.
“ 한국정부의 외환관리 방침 때문에 강형이나 나나 제대로 된 이민자본을 가져 온 것도 아닐뿐더러 집도 거저 떠넘기다시피 팔아 치웠잖아. 그리고 천국이 따로 없다는 브로커의 말에 현혹되어, 연탄집게만 빼면 다 있다는 말이, 사실은 연탄집게 말고는 뭐든 다 필요한 현실에 맞닥뜨렸질 않나.”
어느새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온 동성이 진즉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결코 다름없이 불쑥 맞장구를 친다.
“ 인생무상!”
숙현은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왜 동성이   밉지가 않은지를...... .
동성과 서진의 애들은 이번엔 자전거가 아니라, 개울에서 토끼만 한 쥐를 봤노라고 떠들면서 우르르 개울 쪽으로 뛰어간다.


그물은 더 가까워진 게 아니라 어느덧 덮쳐왔다. 찬혁이 사는 아파트 띠라는 길기만 한 2층이지만, 서진의 아파트는 높기만 한 12층이었다. 어쨌거나 우선은 찬혁의 아파트였다. 왜 하필 꼭두새벽일까,
찬혁은 밤이면 밤마다 잠을 설쳤다. 그물이 덮치기 시작한 날부터 내내.
이불이 무슨 커다란 샌드백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도 없이 이불을 손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다시 연습한다는 듯 곧장 끌어당겨 덮기를 밤을 세워가며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밀어낸 이불을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두르는 타월처럼 수도 없이 끌어당겨 덮기를 밤을 세워가며 계속했고.
 참 죽을 맛이었다. 권투를 할 때 역시 그랬다. 시합이 끝날 때마다, 더욱이 승리를 쟁취한 후에는 심각함의 강도가 엄청날 정도로 컸다. 죽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었다. 누군가를 흠씬 죽지 않을 만큼 패고만 자신이 죽고 싶도록 싫었다. 그런 까닭이었다. 권투를 그만 두게 된 연유가, 이민을 떠나오게 된 이유라는 게…….
영주권 수속은 이민청 직원과 내통된 한국인 브로커에게 착수금으로 이미 3천 달러를 건네 준 상태였다. 며칠만 있으면 신청서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브로커가 누누이 다짐에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아무리 군대 아니라 특수부대의 사령관이 들이닥쳐도 신청서만 있으면 무사통과가 되는 게 이 나라의 법이라는 말까지 잊지 않으면서. 하지만 찬혁은 그 며칠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리하여 지난밤에도 다음날 새벽에 연행돼 갈 일에 대비하기까지 했다. 이민 가방에서 겨울 잠바를 꺼내어 침대 옆에 둔 건 물론이고 내의까지 미리 껴입어 둔 것이다. 이제 겨우 가을이라지만 봄여름 가을 겨울이 한국처럼 뚜렷하지 않고 여름에서 겨울,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뛰는 기후도 기후지만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은 도대체가 기분만 으스스할  뿐이다.
언제나의 D데이처럼 낙엽 밟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애간장을 들쑤셔대는 낙엽 밟는 소리는 그만 찬혁의 아파트 근처에서 딱 멈춰지는 게 아닌가. 찬혁은 다급히 형광등의 스위치를 올리다가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전기가 나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쓱해 지는 느낌이어서 찬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여러 번 훑었다. 얼굴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 그렇다면?”
찬혁은 그렇게 혼자 중얼대며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며시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군인들의 일부가 누도 8동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다가가고 있었고 일부는 띠라 8동을 향해 씩씩한 걸음걸이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더 많은 수는 정원에 남아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고.
찬혁은 홍수로 폐허가 된 땅에 망연자실 남겨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절망을 이기고 마치 수렁처럼 계속 빠져드는 땅을 헤쳐 나오듯 두 팔을 훠이훠이 저으며 비칠비칠 걸어가 가족마다 깨운다. 그들은 다투어 세수를 하고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경주가 준비한 빵과 커피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물이 좁혀져 온다고 여겨서인지 영선은 어느 날부터인가 예전처럼 청소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집안은 다시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게 깨끗했다. 동성이 기어이 한 마디 하려는 기미가 엿보이자 경주가 손사래 치며 말린다.
“ 동성아., 너의 그 어쩌구저쩌구를 다 뺀 덧없다는 말은 항상 적절했고 너무나 타당했고 어떤 면으로는 슬프면서 재미있기까지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오늘은 결코 아니라구.”
“ 이게 아니면 그럼 어떤 게 인생무상인데?”
동성은 그야말로 톡 쏘아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찬혁이 그만들 두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쏘듯이 쳐다보면서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을 때 문가에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똑, 어정쩡 일어서던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리빙으로 나와 벽쪽으로 주욱 섰다. 도어 노커를 두들기던 짧은 소란은 곧장 초인종 소리로 이어진다. 영선은 가슴이 철렁하는지 아이구머니나!하고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었다. 눈을 있는 대로 커다랗게 떴던 찬혁이 짐짓 문을 열라는 눈짓을 하자 동훈이 꼭 튕겨나가는것처럼 날렵하게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 끼에네스 (누구세요) ? ”
 의외로 낭낭한 음성이다.
“ 센소( 인구조사). ”
놀라지 말라는 둣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였다. 동훈은 쇠로 된 빗장을 풀고, 열쇠를 침착하게 따고, 문까지도 매우 선선하게 열었다. 거의 활짝 열어제친 것이다. 여러 명의 군인들이 구둣발로 리빙에 들어선다. 맨 나중에, 자기의 걸음걸이를 헤아리듯이 뚜벅뚜벅 들어선 대장은 벽에 등을 대고 죽 늘어선 찬혁의 가족을 휘 둘러보며 더 있으면 더 나와야 한다고 지시한다.
“ 에스따모스 또도스 아끼( 여기에 다 있습니다). ”
동훈이 그렇게 대답한다. 찬혁이 모두 의자에 앉기를 권유했으나 대장과 서류를 든 대위만이 소파에 앉는다. 여섯 명의 군인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않은 채 문간으로 가서 섰다. 찬혁은 몸만 대장 앞에 앉아 있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양손을 짚고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앉은자리가 꽤나 탐탁치가 않았다. 아니지, 마치 권투시합을 시작하기 일보 직전과 같이 몹시도 초조롭고 불안한 상태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외국인에겐 군인이 아니라 신사처럼 행동하기 마련이었는데도.
거침없이, 곧장 조사가 시작된다.
“ 아르헨티나에 언제 도착했습니까?”
찬혁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두려운 눈빛을 띤 채 토막토막 끊기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입은 물론이고 턱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찬혁은 차마 대장을 올려다 볼 수는 없어서 눈을 잔뜩 내려 깔며 대응했다.
“ 1.9.7.6.년. 3.월. 초. 입.니.다.”
“ 아르헨티나 케이스입니까?”
찬혁은 번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우선 침부터 삼킨 뒤 대답했다.
“ 라라과이, 아니 파라과이입니다. 네. 그 나라 케이스입니다. ”
더듬거리는 것도 아니고 혼동하는 것도 아닌 찬혁의 대답에 대장은 짧게 웃었다.
흡사 대장의 웃음이 거미줄처럼 찬혁을 옭아맨 것처럼 그는 이상하게 움츠린 매우 작은 모습이 되었다.  드디어 사로잡힌 밀 입국자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찬혁은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몸을 꼿꼿이 펴고 음성에 활기까지 불어넣었다.
‘ 아르헨티나가 어쩐지 좋았습니다. 그래서 파라과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이 나라로 온 것입니다. “
“ 영주권은?”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대장의 목소리는 거의 질책처럼, 또는 힐난과 같이도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보자 가련한 영선의 얼굴은 송장이나 다름없이 변해 있었으며 그 눈은 몹시도 질려 있었다. 찬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신중을 다해 대답했다.
“ 지금 신청 중입니다.”
“ 신청서는?”
(젠장,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 저렇게 말할 수도 없으니, 이거야 원. )
찬혁은 양미간에 오른 손을 대고 잠시 현기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 며칠 있으면 나올 겁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확인하셔도 됩니다.”
죄책감이 스며 있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혀를 깨물고 난 후처럼 아픔이 배인 대답이었다. 찬혁은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우연이었을까, 대장도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하지만 대장은 역습하 듯 신랄하게 추궁했다.
“ 참 기이한 일도 다 있군요. 파라과이 케이스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는데, 사면령이 발동되기 전에는 말입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이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지 않습니까?. ”
대장은 찬혁에게인지 스스로에게 인지 그렇게 반문했다. 찬혁은 불현듯 깨달았다. 신청서를 손에 쥐기 전에는 영주권을 수속 중이라는 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브로커가 신신당부하던  사실을.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손마디가 다 저릿저릿 해왔다. 찬혁은 그 순간 등산을 하다 낙오자가 되어 산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끝모를 절망감을 맛보았다. 대장은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미 결정했다는 듯 거침없이 다음 질문을 토해냈다.
“ 밀입국은 어느 경로를 택했습니까? ”
찬혁은 그 순간 창자가 이완되는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배를 꽉 움켜쥐었다. 배를 움켜쥐고 있어서일까, 대답은 제대로 나왔다.
“ 포르모사 시로, 파라과이 강을 배로 건너서, 포르모사에 도착하여…….”
“ 포르모사? 지금 분명 포르모사라고 했습니까?”
대장은 그렇게 물었으면서도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분명 어떤 생각의 실마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눈에 티라도 들어간 것처럼 대장의 눈이 여러 차례 깜박였다. 영선은 손을 힘껏 마주 잡았다. 죽을힘을 다해 꽉 붙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계속 떨렸으므로.
눈동자가 동그랗게 고정되는 듯 보이는 찬 혁을 뚫어질 듯 지켜보던 대장은 이내 고개를 돌려 휘휘 거실을 살펴보았다. 대장의 시선이 뒤쪽 벽 가운데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오롯하게 걸려 있는 소형 태극기에 꽂히듯 멈췄다.
“ 태극기!!!”
한국말로 그렇게 부르짖으며 대장은 뛰듯이 일어섰다. 서류를 작성하던 대위도 덩달아 일어섰다.
“ 태극기? ‘
대장의 한국말에 놀란 찬 혁은 태극기? 라고 어정쩡하게 반문한 나머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자칫 쓰러질 염려가 있어 왼 손으로 소파를 가까스로 붙잡으면서.
찬 혁은 거의 전율을 느꼈다. 역광을 받은 대장의 얼굴이 2년 전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줌-읍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였다. 바로 그 대장이었다. 찬혁은 벽에 걸린 소형 태극기가 물결처럼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팔을 쭉 뻗어 오른 손을 창 쪽으로 내밀었다. 바람이 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창문은 닫힌 채였고 커튼조차 그대로였다.
( 내가 왜 이러는 것일까,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
가족들은 흡사 돌이된 듯 움직일 줄 몰랐다. 대장과 찬혁의 얼굴에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빗물이 쏟아지듯 점차적으로 희열이 번지고 있었다.
“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바로 태극기, 당신?”
대장이 두 팔을 벌리며 찬혁을 껴안는다.
“ 올라, 아미고(여어, 친구)! ”
“ 딴또 띠엠뽀, 헤네랄( 오랜만입니다, 대장님)! ”
찬혁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모른다. 영선은 더좀 벽쪽으로 몸을 옮겨 벽에 어깨를 기댄 채 소리도 안내고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동성은 작게 중얼대고야 만다.
“ 그래. 누나 말이 맞아, 오늘은 아냐. 절대로 아냐. “
잠시 서로 떨어진 대장과 찬혁은 다시 한 번 껴안고 나서 소파에 마주 앉는다. 서류를 든 대위도 금세 따라 앉는다.
“ 세상엔 정말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군요. 자녀들이 그동안 몰라보게커버려서 더 못 알아 봤습니다.” 
찬혁은 생뚱맞게 투덜댔다.
“ 또 태극기를 달라고 오신 건 아니겠지요?”
대장은 점차적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쾌소를 터뜨리며 상쾌하게 말했다.
“ 사양하겠어요. 이번엔 휘르마(서명)도 안 해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 국기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만 있어도 만족할 줄을 안답니다. 아시겠어요? ‘
찬혁은 지금의 자신과 그 당시의 자신 사이에 스며있는 연관성을 겨우 찾아낸 듯 감격적으로 말했다.
“ 낯이 익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러나 전 아직껏 서양 사람들이 모두 엇비슷하게 잘 생겼다는 인식사이를 헤매고 있는 형편이라서……. 그리고 그 먼데서 이곳까지 오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 우리 국경수비대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대장은 금세 말을 바꿨다.
“ 난 단지 군부의 명령에 의해서 내 작전지에 조사를 나왔을 따름입니다. 그 일이 결국 이렇게 당신과 해후하게 만들었지만.”
마치 대장의 설명이 그를 두둔하기라도 한 것처럼 찬혁은 뜬금없는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찬혁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 나는 결국 추방되겠지요?”
이목구비가 조각처럼 생긴 대장의 얼굴이 의연하게 빛났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이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졌다.
“ 설마, 당신이 누굽니까? 당신은 태극기인데. 아니, 태극기 그 자체인데…….”
찬혁은 어린애처럼 어리광스럽게 말했다.
“ 대장님은 조사는 많이 다니는데 참 엉뚱하세요. 마치 태극기를 찾아다니는 것 같거든요.”
“ 나는 태극기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 나요, 아니면 태극기요?”
“ 둘 다!”
찬혁의 목구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반사적으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볼을 타고 내렸다.
“ 물을 한 잔 마셔도 됩니까?”
그것은 질문이었지만 질문 같은 구석은 없었다. 한 사람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한 사람은 고개만을 끄덕였기 때문이다. 찬혁은 다탁에 있는 주전자를 기울여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단숨에 마셨다.
“ 더 마셔도 됩니까?”
“ 다 마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같은 톤으로 껄껄 웃었다.
어젯밤 잠을 설치면서까지 끌려갈 걸 대비해 옷을 여러 벌 껴입은 탓도 있었지만 사실 찬혁은 그만큼 긴장했던 것이다. 심한 갈증을 해소하자, 커다란 한숨이 쉬어졌다.
“ 푸우! ”
“ 아미고(친구), 놀랐습니까?”
“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놀랐어요. 지금도 놀라는 중이고. ”
“ 우선은 나를 믿으세요.”
“ 어떻게 당신을 믿고 싶지 않겠습니까?”
“ 인구조사에는 친구를 봐줘도 되지만, 영주권 조사에는 친구 아니라 가족도 봐주면 안 됩니다. 그저 조사하는 사람과 조사를 받는 사람만 있을 따름이죠. 나는 국경수비대 소속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을 조사해 왔습니다. 그들 중에 태극기를, 그것도 크고 작은 걸로 간직한 한국인은 참 드물었습니다. 당신은 조국은 물론이고 이 나라도 소중하게 여길 사람이라서 나는 오늘 당신을 눈감아 주는 겁니다.”
찬혁은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말을 익힌 어린애처럼 더듬거리며 말했다.
“ 대장 님은 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면 꼭 나타나시는 군요. 대장 님은 사람을 곤경에서 구할 줄을 알고 계세요. ”
“ 내가 아닙니다. 당신의 태극기였죠.”
그 말이 찬혁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다. 찬혁의 초췌한 얼굴에 서서히 홍조가 돌면서부터였다.


결국 찬혁은 서진 가족을 설득해서 급히 김한상씨의 뒤채로 전세를 떠나도록 주선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때껏 집을 못 구했던, 아르헨티나 케이스인 제천 집에게 판매한 상태다. 태권도 사범 김한상씨를 찾아간 찬혁이 일을 그렇게 결정지은 것이다. 찬혁은 김한상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무조건 찾아가 ‘태극기 사건’을 얘기했더니 금세 마음을 허물더라는 것이었다.
“ 그럼 송형네가 이사가야지 왜 하필 우리를...... . ”
“ 나는 센소가 무사히 끝났잖아. 머잖아 신청서도 손에 쥘 것이고. 비록 비공식일망정...... . 강형은 이제 일주일도 못 남았으니까 우선 피하고 봐야 해. 강형의 수난은 곧 나의 환난이기도 하거든. ”
찬혁은 예외 없이 어느 권투선수 얘기를 예로 든다.
“ 서양의 어느 권투선수가 말했어. ‘ 경험이란 대머리가 되었을 때 선물 받게 되는 빗과 같은 거’라고. 내 비록 센소는 무사히 치렀지만 그 경험을 빗으로 선물할 수는 없잖겠어.  거실 전체에 대형 태극기로 도배를 할지라도 그 대장이 꼭 나온다는 보장은 없어. 그리고 그런 조사는 안할 수만 있으면 안하는 게 최선이야. 기다리자, 우리. 사면령이 내릴 때까지.”
찬혁의 연민이 서진에게 물결처럼 밀려왔다. 이 순간만큼은 영주권 문제가 햇빛에 녹아버리는 살얼음처럼 스러져버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완전히 평정을 회복한 듯했다. 찬혁은 어울리지 않게 점잔빼며 말했다.
“ 이건 시작에 불과한 지도 몰라. 우린 앞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훨씬 심각한 환경에 처할지도 모르고.”
서진도 퍽 의젓하게 대답했다.
“ 무슨 걱정입니까? 우린 아직 젋은데, 우리에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모국이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 태극기가 있는데.”
두 사람이 터뜨리는 탕탕한 웃음이 거실 안을 가득 메웠다.


이사하기 전날 새벽. 공교롭게도 서진이 사는 누도 9동으로 군인들이 밀어닥쳤다. 태극기를 존중하는 대장은 빠져 있었다. 혹시라도 그러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행여나 하여 큼직한 태극기를 벽에 걸어 뒀는데도.
보무도 당당하게 젊은 대장과 그의 부하들이 들이닥쳤을 때의 막막함이라니. 긴장감으로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시계 소리가 유난히 커다랗게. 마치 시한폭탄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서진은 결국 추방이었다. 서진과 숙현은 이미 묵계라도 한 것처럼 서로 아무 말도 못했다. 오히려 서로 무슨 말이 나올까를 겁냈다.
추방은 비행기 편으로였다. 그건 분명 처량함이나 서글픔이 아니라 비장감만 키를 돋우는 행로였다.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게 되는  이웃나라 파라과이로의 추방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추방당하지 않음을 서진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안도했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일주일 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었다. 인접국으로의 추방이라는 게 참으로 싱거웠다. 어디 가서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경이 삼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서진이 마음에 수없이 도장을 찍었고, 서진의 마음이 끝도 모르게 삼엄했을 따름이었다.
광활한 대지 위의 옥수수와 해바라기와 만디오까(카사어바)들이 모두다 경비병으로 보여서 그게 아주 크나큰 장벽이었다. 회오리바람이 사나운 기세로 옥수수 밭을 뒤흔들 때마다 군대의 진군소리처럼 여겨져 서진은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랬다. 그건 분명 군인들의 소리였다. 그럴 때마다 서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최소한도로 움츠렸다. 급기야 몸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세찬 바람이었다. 서진은 문득 아득함을 느꼈다.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불현듯 너무나도 불안했던 것이다.
“ 이건 떠나왔다기보다 돌아간다고 봐야 해.”
서진은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야 깨달았다. 동족이며 일행인 종인과 지금껏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치 종인과 심하게 다투기라도 한 것처럼 시적시적 걷기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강가에 다다랐을 때, 서진은 기꺼이 몸을 돌려 파라과이 쪽을 뒤돌아보았다. 붉은 황토 길이 하늘과 맞닿을 만큼 없게 펼쳐져 있었고 구불구불한 길의 양편으로 옥수수와 해바라기와 만디오까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며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엔 항적운이 곱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중이었다.
맞은 편 강가에는 광야가 파랗게 가려져 있었다. 서진은 끈임 없이 파고드는 울적함에 대항하려고 연달아 몸이 움츠려드는 걸 느끼고 연신 허리를 폈다. 들판 한 쪽에서 누군가 내치는 것처럼 바람은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군살이 없고 깡마른 편인 서진은 그 바람에 휩쓸려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양쪽 나라로 번갈아 가며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을 어쩌지 못했다.  오로지 굳세어질 대로 굳세어진 마음만이 아르헨티나 쪽을 힘껏 붙들었을 따름이었다. 서진은 강가로 다가갔다. 숙현과 아이들의 얼굴이 강물위로 수없이 어른거렸다. 그는 의식적으로 가족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거의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달랬다.
( 밀림은 내 앞을 가로막은 게 아니야. 내 뒤로 밀리고 있어. 그래서 밀림이야. )
뱃전에서 앞자리에 앉은 종인이 파라과이 쪽을 바라보며 그제야 얘기를 시작했다. 서진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자, 국토 중앙을 빠라나 강이 흐르고 기름진 대 평야가 펼쳐진 방대한 면적의 땅이 서진을 반기는 듯 한 각별한 기분까지  들었다.
차창 밖은 속속들이 환하면서 투명하기까지 했다. 버글거리던 머릿속이 서서히 맑아지고 있었다.


 꼭 필요한 살림살이까지 모두 다 없애고, 우여곡절 끝에 남의 나라에 도착하여 달랑 냉장고, 소파, TV. 그리고 부엌살림이라고는 식구 수대로 사들인 접시와 국그릇과 몇 개의 냄비가 전부인 이삿짐이었다. 그걸 어제 오후에 미리 김한상씨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고작 2개의 작은 가방과 함께 소형 이삿짐 차에 오른 숙현은 한참동안 누도 9동의 자신들이 살던 3층 A를 되돌아보았다. 이민을 오니까 아파트 같은 아파치에도 살아보고 군대라는 그물이 점점 좁혀져 오는 아슬아슬한 인구조사도 당해보고 아르헨티나 식으로 오후에 떠나는 이사까지 해보게 된 것이다.
이민자인 서진가족을 실은 이삿짐 차가 어스름  속에서 한 번 심하게 출렁였다. 이사를 떠나는 서진의 가족도 덩달아 출렁댔다. 이민자라는 현실감이 파도처럼 물결치기 시작했다.
시우다델라 지역이 이내 멀어지면서 전원 풍경이 나타났다. 급행열차가  도시를 향해 적막에 가까운 기적소리를 내며 별로 급하지도 않으면서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나갔다. 들판은 그렇게 광활할 수가 없었다. 하늘은 석양 속에서 물처럼 빛살을 출렁였다. 이삿짐 차는 냇가를 돌아 양켠으로 갈라선 포플러 숲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른 암갈색 톤으로 숲은 해거름 속에서 때늦은 꽃과 열매를 다다귀다다귀 매달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한 차례 불었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마리의 귀뚜라미가 경합하듯 노래를 불러 제쳤다.


숲길이 끝나자 김한상씨의 저택이 나타났다. 주위의 풍경이 너무 조용하고 애틋하여 마치 꿈속처럼 여겨졌다. 이삿짐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무겁지도 않은 카트를 끌며 김한상씨의 집 쪽으로 다가갔다.
울창하면서도 어스름하고, 그리고 불빛이 환하며 따로 대문도 없는 정원 가운데서  어떤 손길이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날이 갈수록 수도 없이 위로 받아야 할, 매우 간절하고 호의적인  존재였다. 오랜 세월 기다렸다는 듯이 의연하게 깃대를 붙잡고 온몸을 흔들어 환호하며 그들을 반기고 있는 그들의 국기, 태극기였다.
그들은 기쁘게 다가갔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물결치는 태극기를 향하여. 그리고 중대한 의무를 이행하듯 오른 손을 들어 가슴에 손을 얹고 우러러보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였을까?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김한상씨 내외가 국기 하양 식을 치르러 나왔다가 서진의 가족을 반기게 된 것은. 
 오디오에서 꽝꽝 울려 퍼지던 애국가도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며 따라 나와 김한상씨 내외와 함께 열렬한 환영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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