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5월 3일 수요일
몇 년 전부터 나는 한 천사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내가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나는 그녀와 어느 날부터 배짱이 맞아서 같이 산책도 다니고 조깅도 더불어 했으며 ' 그린농장'으로 냉이도 캐러가고 라플라타 박물관에 다녀오다가 들판에 앉아 씀바귀를 뜯기도 했다.
루한 성당, 에스꼬바르 등을 정말 틈만 나면이 아니라 일부러 틈을 내어 잘도 쏘다녔다.
방사선 치료에 의해 그녀가 머리카락을 모두 상실했을 때, 나는 그녀를 위해 함께 모자를 쓰고 다닌 일밖에 이렇다하게 도움을 주지도 못했었다.
어쩌다 김치나 식혜를 준비해 갖다 주는 정도는 했었지만.
그녀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지만 언제나 언니 노릇은 그녀가 다 해냈었다.
함께 다니면서 매번 느낀 바로는, 그녀는 틀림없이 신의 임명을 받고 잠시 지구에 머물며 자신이맡은 본분에 충절을 다하고 있는 천사일 게 분명하리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나 뿐 아니라 주위의 누구에게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어렵다는 사실까지도 일일이 깨우쳐 주려고 애썼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신혼 초부터 남편이 안겨주는 월급을 다섯 개의 작고 길쭉한 갈색 봉투에 나눠 넣으면서 양로원에 얼마, 고아원에 얼마, 시할머니 용돈으로 얼마, 그러고 난 뒤의 나머지가 비로소 생활비로 남겨지는 청빈생활을 즐겼다.
그녀의 시고모들이 그러는 그녀를 기특하게 여겨 택시비나 용돈을 건네줄 양이면 그녀는 하나 있는 아이를 달랑 등에 업고 부득불 버스를 타고는 했다.
그녀와 가장 친했던 막내시고모가 오래 전 내게 그녀의 될 성싶은 떡잎을 칭찬하면서 알게 된 일이었다.
그녀와 내가 더욱 친밀을 껴안고 토닥여 댈 무렵, 한 달 안으로 급히 귀환을 서두르라는 칙명을 그녀는 신에게서 받았었나 보았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주위 사람에게 숨긴 채, 그녀는 어떻게든 더 큰 깨우침을 남겨주고 떠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꾸만 부득불 가야할 길을 뒤로 미루기까지 하는 불충함까지도 당돌한 태도로 일관해 내고는 했었다.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의무이행을 선선히 지키지 못하게 된 후유증으로 그녀는 드디어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독일병원에 입원하는 사태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러는 그녀를 위로하러 가서 도리어 위로만 받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고작 서너 Kg의 햇과일을 사들고 가서 상큼한 웃음보따리를 한 아름이나
안고 오게 되었던 날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그 천사한테 배운 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위로는 위로하면서 그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는 사실까지도.
어떤 책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곧 지구에 휴가를 온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휴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시한적인 휴가다. 때가 오면 휴가를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엊그제 그 천사가 내 곁을, 아니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코스모스처럼 버들잎처럼 가냘픈 몸을 숙명처럼 생애의 모든 자락에 맡겼다가도 바이올렛처럼 수선화처럼 청정하게만 살아냈던 그녀.
나 이제 그 천사와 함께 지냈던 날들을 시작으로 남은 날들 새롭게 살고 싶어진다.
지금껏 행운처럼 간직하고 품어왔던 긍지를 가차 없이 내던지고
보다 더 나은 날들을 위해 선한 자세를 첫 번째의 도리로 알며
허심탄회한 모습되어 오직 주어진 섭리로만 맞이하겠다.
하루에 잘 웃지 않는 날은 잘못 살아낸 날이라는 진리와 같이
나 이제 자주 웃는 날들을 꾸려 나갈 것이다.
이제 나도 그녀처럼 고통 속에 처한 이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안 보이는 손으로 닦아주고 싶다.
마음이 고달픈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등을 알게 모르게 다독여 주고도 싶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과도 그녀처럼 아픔을 함께 하리라
많은 날들 사이에 뿌려 왔던 관성을 모조리 뽑아내려고 한다
내가 기필코 친숙해져야 할 언어는 자애로움이다.
그 천사는 분명 나. 또한 우리에게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과제를 안기고
돌아갔을 것이다.
친절했고 언제나 웃어대는 일을 즐겼던 그녀를 보내고
나는 속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사는 일 생각수록 팍팍해져 온다.
고통과 슬픔이 동시에 버거우면서도
마음 한 모퉁이 따사로이 훈훈해져 오는
이 평화로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 모두의 천사였던 박영희 레지나여!
안녕…….
차우차우!!!
-초여름- |
오늘부터는 되도록 아름다운 시와 좋은 글 펌하는 일에 절제를 지키고, 그동안 썼던 부족한 제 글들 깎아내고 다듬는 일에 더욱 충실하려고 합니다. 위에 올린 글은 2000년 4월에 돌아간 친구 박영희 레지나를 위해 썼던 글입니다. 그래도 그때가 참으로 좋았노라고 그립게 추억하게도 됩니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