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우리 살림집의 뒤켠에는 볼리비아 국적의 여인 베티가 일곱 살과 네 살의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남편이 있는 지 없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제품공장의 관리를 맡고 있다는 부분만 적당히 알고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한국인 내외와 볼리비안인 일꾼들이 적게는 10명에서 15명까지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눈치다.
베티가 그러는지 혹은 일꾼들이 그러는지는 아직껏 파악을 못한 상태이지만, 우리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들이 자주 없어지고 있어서 나는 빨래도 잘 못 널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주로 가게에서 빨래를 해결한다.
어차피 나는 세탁기 사용을 기피해서 전부 손빨래를 해낸다.
오, 손으로 세탁을 하고 난 후의 그 상쾌함이라니!
하여간에 베티인지 볼씨일꾼들인지는 틈만 보이면 울타리 사이로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며 주로 내옷을 훔쳐가고 있다. 한국옷을 특히 선호하고 있는 걸로 보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외제를 좋아하는 취향은 똑 같은 모양이다.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맘 놓고 훔치는 듯 싶은데. 몇 번인가 조용조용 항의했으나 어깨만 으쓱할 뿐 개선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베티는 자기 아이들에게 주중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우는 소리를 처음엔 강도라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걸로 착각했었다.
그 아이들은 때릴수록 울음을 그치는 게 아니라, 맞을수록 괴성을 더 질러 대고는 했는데, 기이한 일은 야단치는 역할인,베티가 내는 소리의 수위는 점차 낮게 깔리며 은밀해져 가고는 했다.
어젯밤 퇴근 후에, 아들은 언제나처럼 샤워부터 하는 중이었다.
나는 온돌방에 깔린 돗자리에 엎뎌 잠시 휴식과 생각 사이를 왕래하는 중일 때, 베티의 폭력행사(?)가 이미 커튼을 열어 젖혔는지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날과는 달리 호세라는 이름을 지닌 베티의 큰 애가 마당으로 마구 도망 다니면서 울부짖었고, 베티는 마녀와 같은 음성을 내리 깔며, 은근슬쩍 달구어진 불쏘시개로 찌를 것만 같은 상황을 연출까지 해내는 형국이었다.
이미 위치를 바꾸어 옆으로 누웠던 자세였던 나는 더 이상 참는 일은, 호세가 아니라 나에게만 특별하게될 고문이라고 여겨져 그만 벌떡 일어나 앉고야 말았다.
남의 일에 웬만하면 참견을 삼가는 성격이지만 호세의 절박한 비명이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당장 쫒아가 내 쪽에서 베티를 때려주고 싶었었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그러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결심이 더욱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게 기정사실이라서 나는 내가 맞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만 차츰 조이듯 아팠을 뿐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아들에게 나는 거의 쏘아대며 말했다.
“ 왜 귀한 자식을 때려가며 키우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정말.”
“어머니가 일곱 살짜리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키셨는데, 그 애가 노는데 정신이 빠져 설거지를 안 해 놓았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연히 분통이 터져 아들을 때리실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하하. 설거지도 저 아이한테는 일종의 교육입니다. 이제라도 그런 교육을 이해하시고 싶으시다면 다시 애 하나 낳아서 키우시죠. 그래서 일곱 살 난 자식한테 설거지도 좀 시켜보고 그러시는 겁니다. 나쁜 녀석, 왜 시키는 설거지도 안 해 놓아 저렇게 당하는 거야?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맞아도 싸다. 백번이나 싸다. “
아들은 마치 연극무대에 오른 조연배우처럼 좌르르 대사를 읊고 나더니 의기양양 제 방을 향해 퇴장하고 있었다.
나와 아들의 대화란 게 언제나 그런 식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새치름 그렇게 오고 가는 나와 아들의 대화.
세상의 부모들이여!
자식도 아내도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마시라!
말로라도 때리지 마시라!!!
다른 사람도 덩달아 아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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