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말없이 살라하고 티 없이 살라하네



                 맹하린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3년 10월31일


내가 하고 있는 가게의 건너편 집 옥상에 비둘기들이 깃을 들여 살고 있다.
햇빛 쨍쨍한 날이나 음산한 날씨에도 풋풋한 유록색으로 치장한 봄날의 가로수사이를 비둘기들은 은빛 날개 한껏 펼치며 힘차게 날아다닌다.
나는 가톨릭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내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거의 불교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게 믿고 있다. 내 할머니는 시골근동에 두 군데의 절을 지었고 일 년이면 몇 번인가 시주 쌀을 가마니로 보내실 줄도 아는 철저한 불교신자셨다.
작은 곤충 하나도 못 죽이시던 할머니는, 살생을 철저하게 금하셨다. 그게 다 당신이 흠숭하는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마음 깊숙이 각오 같은 걸 심어두신 믿음의 결정체가 아니었을런지... 때로 나는 그런 상념에 잠기게 될 때가 많다.

전답을 둘러보러 가실 때는  소쿠리에 담아간 곡식알갱이를 만경강에 뿌리시며 물고기들의 양식이 되기를 바라셨다.
낚시꾼들에게서 물고기를 사서 방생하시던 할머니의 자애로운 또 다른 모습.
어린 시절에 각인되어 아직껏 남아있는 그 작은 잔상들은 이 첨단문명의 세상을 물에 흐르듯이 지나쳐가고 있는 내게 겸허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수시로 껴안게  해준다.
할머니의 그 온정들이 그립게 추억되기도 하고, 건너 편 가게의 주인인 유대인 남자가 아주 가끔씩 빵부스러기를 줄 뿐 자주 모이를 주는 일도 없는 듯 보여, 나는 어느날부터  흰 콩을 사서 몇 줌씩 날마다 뿌려 주는 일을 하나의 일과로 삼게 되었다.

새들도 습관에 젖어 사는가.
비둘기들은 아침9시와 오후3시면 정확하게 우리가게의 문 앞에 와 기웃거리면서  모이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 시간이 아닌 다른 때 모이를 주면 마치 삐친 것처럼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데다 방관상태로 앉아 있는 새침데기들이라니!
모이를 던져줄 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르르 내려 앉거나 고층아파트의 옥상에 까지 날아갔던 비둘기들까지 멀리서부터 하늘하늘 내려오던 작위가 퍽으나 아름답다고 여겼었는데 구우구우 소리를 내며 불러도 전혀 기척을 안하는 비둘기들.
그들도 기러기떼 처럼 대장의 지시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떤 규율이란 게 있는가.
어느 날 저녁 불현듯 의문점이 생겨 백과사전을 들춰보기에 이르렀다.
비둘기는 식도에 저장주머니를 갖고 있어서 한꺼번에 음식을 저장하는 체질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일정량을 포식하고 난 뒤에는 아무리 좋고 많은 양식이 주어져도
무반응이었던가 보았다.

이웃가게 데레사씨의 두 살 난 딸 데레지나가 신장염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 졌을 때, 나는 그 아기를 안고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며 제발 이런 작은 선행으로라도 아이의 병이 완쾌 되는 상쇄함을 주시기를 나의 신에게 기도했었다.
다행으로 아이는 수술이 성공하여 말짱하게 병을 이겨냈고 가끔은 내게 들러 가장 말이 짧은 나이라서 뭔가 던지는 시늉을 하며 구우구우하자고 졸라댄다.
나는 데레지나가 전부  알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명하게 된다.
"지금은 시간이 아냐. 지금은 있지, 배가 굉장히 부른가봐,  이만큼."
아이도 따라한다.
"이만큼 ?"

가게 일이 한가해질 즈음,  맞은편 집의 옥상을 무심코 쳐다보면 비둘기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다가 나란히 앉아서 조는 둣 휴식하는 둣 묵묵히 자리틀 지키고 있을 때가 많다.
그날의 양식을 걱정 하지 않고 소화해낼 만큼의 먹이가 채워지면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며 적당한 안락을 누리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장사꾼의 찌꺼기가 켜켜로 쌓여가는 내가 지금 어느 물살에 휘말려 지나쳐가고 있는가,문득  마음을 겉잡아 보게도 된다.

유난을 떤다고 여겨질 정도로 표시를 내며 추웠다가 더웠다가 그리고 폭우까지 동반하는
꽃샘날씨.
쉽게  기운을 못 차리고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는 경제.
장사가 그렇게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손에 남는 게 많지 않은 걸 보면 경쟁이 무섭긴 무섭다고 표현하고 투덜대는 이웃상인들.
고려 말의 고승,  나옹 선사의 시가 절실히 떠오르는 계절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버리고 성냄도 벗어버리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선비와 같은 비둘기들을 바라보면서 섭심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적게 되었다.






-초여름-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 선사는 20세에 승려가 되고 중국 원나라에 가서 지공선사에게 2년 동안 공부했다고 합니다.
지공, 무학대사와 함께 고려 말 3대 화상으로 불리는 나옹 선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넘게 수행에 정진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작 깨달음을 얻은 것은 좌선 정진하던 시절이 아니라, 돌아와 청평산에 한가로이 머물 때였고, 깨달음의 요체는 다름 아닌...
'배 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피곤하면 잔다'는 사실이었다는 것.

대계로 유명한 영덕, 그곳의 장육사라는 절을 창건한 분이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