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편지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6월 28일


토요일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에 마음이 한껏 고즈넉해지면서도, 비가 내리는 날은 장사를 공치는 날이라던 D가 생각나 쿡쿡 웃게 됩니다.
왜 토요일마다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고 투덜투덜 볼멘소리를 하며 현실감 느껴지게 속상해 하던 D입니다.
토요일마다 해내던 빨래를 햇볕 쨍쨍한 날에게 맡겨 두고 온세를 향해 갑니다.
바람이,  거리 모퉁이에 쓰러져 있는 젖은 낙엽들을 힘을 다해 날리며 악동들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그냥 좀 웃어보려고 여러 개의 오락프로를 봤었다면서, 나도 좀 웃어보라고 건네주던 T에게 웃음보따리를 돌려주려고 나선 길입니다.
서세원 쇼였어요.
웃고나서 손해는 안 본 것 같은 느낌의 웃음을 자꾸만 터뜨렸었습니다.
T. 그는 진정 웃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느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하루 평균 400번을 웃는 반면, 성인은 15번 웃는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글쎄요. 그 15번도 제대로나 웃었을까요.

온세에 가면 내 격의 없는 친구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생존의 물가에서 나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듯, 누나 몰래 돌을 던지듯. 마치 딴 동네 사람처럼 시침 뗀 얼굴로 종달새처럼 지저귑니다.
그러노라면 잔잔한 깨달음이 자디잔 풀씨처럼 싹틉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평화로운 상태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봅니다.
평화는 생존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던가요?
자기 자신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의 가족, 그리고 이웃이나 친구조차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서 우리 인간은 너무 거창하게 큰 일만 모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공허는 너무 쉽게, 너무 급격히 다가오는지도 모르죠.
야망, 명예, 권력 그런 게 다 무엇입니까?
당장에   내가 ,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지금 평화를 잊고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나는 요즘 장학생이 됐다고 합니다.
전통찻집에 가면 장학생이라고 찻값을 받지 않습니다.
미장원을 하는 문우를 방문하면 억지로 의자에 앉혀져 머리를 잘립니다.
그리고 내게 대한 배려로는 맘이 안 차는지 언제나 웃고 웃는 S.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사주는 친구 P.
일요일에 성당에 가면 친구들이 제 점심 값을 묵계처럼 서로 돌아가며 지불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열심히 머리를 빗고, 더욱 신경을 쏟아 옷을 차려입고, 그리고 뭐든지 잘 먹으면서 그들의 예쁜 마음을 좀 더 빛내주려고 애를 쓰고는 합니다.
하지만 나 정말 장학생 맞습니까?
혹시 염천교 출신이 아닌지 자신의 행적을 좀 되돌아보게도 되는군요.
때때로 그런 식의 대접에 마른 웃음이 헛헛하게 터집니다.
그건 결단코 씁쓸한 웃음이 아닌, 마음을 모두 비워버린. 그리고 뭐든지 위탁해버린 웃음과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내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자긍심이 살며시 키재기하듯 차츰 머리를 세우죠. 그러다가 금세 태연자약한 상태로 환원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를 이해하려면 묵묵히 그런 식으로 참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 어느 날부터 공중에 나는 새처럼, 들에 돋아난 풀처럼, 저절로 자연처럼 살아집니다.
마치 자연의 일부분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나 이제 내 친구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뭔가 되고 싶습니다.
냇물이 퍼지듯, 멀리멀리 퍼지듯, 나 그들에게 물결이고 싶습니다.
누나 몰래 손등을 간질이듯 그들의 바쁜 마음을 살랑살랑 달래주는 미풍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 오늘도 웃습니다.
바보처럼 웃습니다.
모자라게 웃습니다.
상쾌하게 웃습니다.

당신의 내게 대한 신뢰감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날에 이글을 적었습니다.
제가 너무 적나라하게 겸손을 부린 거나  아닌지요?
저는 냉수 먹고 속 차리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잘난 척, 있는 척하는 과는 아니니까요.
내내 안녕을.
언제나 나보다 당신이 더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초여름-
  

아베쟈네다 지역의 꽁꼬르디아 700대에 있던 우리 집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지금은 세상이 다 내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부자의 맘되어 사는 나.
격언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버는 것보다 더 쓰고 사는 게 바로 가난이다.’
그렇다면 저는 어느 덧 재벌입니다. 

절약정신,  그게 내  몸과 마음에  가득가득 넘치니 말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교민 4대신문에 써냈던 글들이 50여편이 조금 넘습니다.
스켄해서 올리는 일이 더 복잡하여 워드로 찍으려니 자꾸만 게으름이 피어납니다.  몇개는 너무 맘에 안들어 퇴고하기도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