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크리스마스에


        
          맹하린


격전장 같았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12월 마지막 밤이면 폭죽과 굉음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잠드는 밤.
그런데 그 전쟁터 같은 밤조차 별천지처럼 단잠을 자고 나서 가족한테 묻고는 하던 밤.
"어젯밤 폭죽소리 굉장했어? 별로던데."
그럴 때마다 가족은 E. T영화의 주인공 바라보듯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날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 폭죽소리를 제대로 들어내고 잠든다는 사실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폭죽의 위력도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여 그 요란함이 점점 대단한 경지에까지 치닫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새벽 5시인데 아직도 여진처럼 간간이 폭죽소리가 멀거나 가까이 들려오고 있어요. 마귀를 쫒는 중국 사람들의 관습을 익혔다고도 하는데, 이제는 퇴치가 힘들 정도로 의식화 되고 말았나 봅니다.

뉴스에 의하면 올해, 폭죽으로 다친부상자가 2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싼타 페 지방에 살던 27세의 청년 파브루시오 안뚜네스의 사고사는  폭죽놀이의 심각함을  극렬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청년은  실린더 모양의 3단으로 발사되는 폭죽을 거꾸로 입에 문 사실도 잊은 채 불을 붙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치아 전체를 상실하게 되었고  사망에 이르르는 불상사로 이어졌지만,  그 사건이 유일한 사고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성이 돌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조명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알레한드로 꼬시아 주 보건장관은 "최고의 놀이는 폭죽을 안 터뜨리고 노는것"이라고 말했을까요..

우리 가게는 입구의 문에 쇠로 된 빗장을 채워 겨울이나 여름이나 상관없이 문을 약간만 열어 둘 수 있게 설치해 놨습니다.
바쁠 때를 염두에 둔다면 종업원이 둘쯤은 있어야 하는데,  이 요란한 나라의 노동법은 날이 갈수록 보기 민망할 정도로 디룩디룩,  밉살맞은 쪽으로만 살을 찌우고 있습니다.
나는 힘든 걸 떠나서 오로지 글 쓰거나 책을 읽을 때의 한가로움을 방해 받지 않으려고 종업원도 없이, 단지 가족의 도움이나 받으며 내 손이 가장 수고를 자청하는 편이죠.

한 땐 겨울이건 여름이건 문을 훤히 열어두고 장사를 했었는데, 어느 날 매장의 문을 훤히 열어두고 작업실의 소파에 누워 잠시 낮잠을 즐길 때 좀도둑이 들어왔었답니다.
그 도둑은 이미 세 번째나 침입을 시도했었어요.
두 번은 작업실로 들어오려는 걸 매장과 작업실 사이에 있는 커튼을 통해 감지하고 내쫒았고, 마지막엔 작업실의 소파에 누워 살몃 잠들었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미가 느껴져 눈을 떠보니 그 현지인 도둑이 2미터쯤 떨어진 옆쪽에 서 있는 상황이 전개되어 있었던 거죠.
괄목할 만한 사실은 그럴 경우,  나라는 인간은 전혀 무서워하지를 않고 우선 잔머리부터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굴려내는 데다 침착함까지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어! 어떻게 이 안까지 들어오셨죠? 작업실은 고객들에겐 출입금지인데……. 우선 나가서 얘기합시다. 매장으로. 주문은 매장에서 받도록 할게요."
나는 태연자약 매장으로 먼저 나갔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는 나를 순순히 따랐어요.
그렇지만 매장에 나가던 나의 발길은 밖으로도 전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그럴 땐 특별히 조용조용, 그리고 설득력까지  얹으며  말하게 됩니다.
길엔 다행히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가게는 버스정거장 앞이거든요.
"다시 오면 안돼요. 내가 소리치면 50m 저쪽에 서 있는 사설경비원이 달려 옵니다. 알겠습니까?"
그날이었어요. 쇠로 된 문빗장과 초인종을 달게 된 날은.
그 문빗장을 하고 나서 한국 어르신들한테 야단도 참 여러 번 맞았네요.
중요한 문제는 그분들은 꽃을 사러 오셨던 길은 아니고, 단지 지나가다가 빼꼼하게만 열린 문이 어딘지 모르게 맘에 걸려 일부러 초인종을 누른 거였어요.
왜 문을 닫고 장사하느냐, 가게란 원래 문을 훤히 열어 놓고 해야 잘되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답이 따로 필요하진 않아요.
" 죄송합니다. 제가 글쟁이라서,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때로 나는 산책 중에 많은 개의 배설물을 보게 되어요.
그런데 그 일도 더럽다고 느끼진 않아요.
무척 예의 바른 것처럼 행동하는 현지인들도 저런 부분에선 숨겨진 국민성이 제대로들 드러나는구나, 그러고 맙니다.
나의 이러저러한 성격을 아들이 고스란히 답습했다고 봅니다.
(언제나 짚고 가는 얘기지만, 이건 자랑도 못되고 자랑도 아닙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너무 신경을 쏟으며 우리의 소중한 생을 낭비하며 살지는 말자는 뜻에서 적는 거랍니다.)

내 가게의 건물주는 50대의 현지인 여인 크리스티나입니다.
하필 이 나라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데 성격도 비슷하게 닮은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두 크리스티나는 우선 용감무쌍합니다.
심심하면 경제를 뒤흔드는가 하면, 월세를 올리려 들거든요.
처음에 400페소로 시작했던 월세가 지금은 1800페소까지 오른 상태이고, 내년부턴 300페소를 더 내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그녀의 큰소리는 꽤나 협박적이고, 너무도 탕탕합니다.
월세를 한 번도 미룬 적이 없고 이웃가게처럼 두어 번 나눠서 지불하지도 않았었으므로 그녀는 내게 한 달에 한번은 엄청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연한 배와 같습니다.
하지만 월세를 올리려 들 때는 우선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럴 때, 크리스티나의 말투는 지극히 빠른 편이라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 말하고 저는 그녀의 그 사나운 부리에 쪼일까봐 순간적인 두려움을 몇 번인가 본의 아니게 느끼고야 맙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들과 절충방안의 대화를 서로 주고받도록 일을 그렇게 주선합니다.
그 정도의 의사소통이야 나로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들을 어느 정도 단련시킨다는 의미에서도 나는 일부러 그러는 편이죠.
아들이 얼마나 간결하게,  얼마나 친절하게 크리스티나를 압도하는지를 나는 나중에 새치름 접수만 하면 된답니다.
결과는 이웃 가게들한테는 비밀이다, 너희는 석 달 뒤부터나  올리겠다고 그러면서 재계약은 피할 수 없으나, 두 달 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맡기는 건 눈 감아 준다고 하는 데다,  그리고 특히 보증인이 없어도 된다고까지 말하는 사태가 벌어지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무슨 말을 한 건가를 물으면 아들은 그래요.
어머니는 몰라도 되고 , 그런 걸 다 늦어서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웃가게들과 합심해서 반대하고 나선다면 어느 정도 늦춰질 사안입니다.
하지만  이웃 가게들은 크리스티나를 마귀처럼 무서워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행여 나가랄까봐 걱정이 앞선 나머지  말이 나오자마자 잽싸게 올려들 줍니다.
그런 연유로 일은 언제나 불리한 쪽으로  발전을 거듭하기 마련입니다.
건물주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해서 이래저래 세입자만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거나 아닌가 그런 단정까지도 생겨납니다.

세상은 갈수록 점입가경인 격동의 시대로 치닫는 기미가 잦군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이들처럼 때로 배회하는 심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때 역시  많은 듯 싶습니다.
그러니 겸허하게 살아야겠다
조용히 사는 게 훨씬 보기에 좋다
그렇게 차츰 깨우치게도 됩니다.

최근의 나는 가까스로 고즈넉함을 회복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지금은 한층 안정적인 심정입니다.

친애하는 그대.
즐겁고 행복한 성탄을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