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어록中
˝그 사람 생각이 나서 괴로우면 애써 참지말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시고,
그렇게 한병을 먹으면 술잔에 그사람 얼굴이 이렇게 어릴거에요..
그럼 그걸 마시고, 집에가서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한갑피던 담배 다섯갑씩 피우고 그러면 알라딘의 램프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그사람 얼굴이 삭 피어오를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잊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시란 얘기죠..
괜히 그 사람 집앞에 가서 술마시고 술병 던지고 그러지 말고 자기집에 와서 술마시고 술병 창문에 던지세요..
그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그깨진 창문조각과 술병을 치웁니다.. 이미 그사랑은 여러분이 던진 술병에 깨진 유리창 처럼 다시는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랑의 하트가 반으로 갈라졌을 때는 단순한 도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게 합쳐졌을 때는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크고 온전한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사랑의 힘으로 말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을 계산할 수 있는 과학자는 나왔지만, 결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사랑의 하트 반지름을 계산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사랑하는...그 하트를 만든 사람이 그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알 거니까...
좋아하는 사람 이름은 수첩 맨 앞에 적지만 사랑하는 사람 이름은 가슴속 깊은 곳에 새기는 겁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아는것이 많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알고싶은게 많은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싶은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억겁의 세월을 당신을 향해 밀려들지만
당신의 발끝만 적시고 돌아섭니다.˝
파도라는 시를 인용하고 나서 ....
′파도가 계속 육지로 억겁의 세월 밀려 들지만
결국 육지의 발끝만 적시고 돌아서면 또 오고
돌아서면 또 오고 돌아서는 것이
어쩜 이것이 사랑일줄 모르겠어요.
이것이 해일이나 폭풍이 되어 육지를 집어 삼키면 파괴가 되고
서로 서로 약간 적시며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기자기한 사랑 일줄 모르겠네요...′
당신이 더이상 세잎클로바로 태어난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네잎클로바로 태어났더라면 ,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당신의 허리가 잘려 나갔을 것을....
더이상 당신이 세잎클로바로 태어난 것을 슬퍼 하지 마십시오 ...
제가 당신의 마지막 행운의 한잎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 . . . .
사랑합니다......
별의 아름다움
˝독일의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금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되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여러분은 아직 금의 아름다움보다는
별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젊음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남긴다.˝
˝앉아있는 신사 보다 서있는 농부를 생각하는 하루 되세요.˝
˝이별보다 더 비참한 것은 이별마저 허락받지 못한 사랑이다˝
˝남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되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는건..
사랑하는 여자를 갖은 남자만의 특권이다...˝
˝키가 작았던 나폴레옹은 자기자신의 키를 땅으로부터 재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작은키지만, 하늘에서부터 재면 자신의 키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으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시고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네잎크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죠..
우리는 네잎크로버를 따기 위해 수많은 세잎크로버들을 짓밟고 있어요.
그런데 세잎크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행복˝이랍니다.
우리는 수많은 행복 속에서 행운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제동어록中에서...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내 작품을 찾습니다
단편소설
맹하린
한국소설(한국소설가협회)
2006년 6월호
재아문인협회의 월례회가 식당 궁전에서 있었다.
회원 중에서, 생할봉사상이라는 명목으로 본국 대통령훈장을 받게 된 P여사와 문화부장관상을 받게 된 K씨 . 그리고 본국의 을유문화사가 펴 낸 한국의 명수필 2에 작품이 실리게 된 C씨를 위한 축하연까지 겸하느라, 꽃다발 증정은 물론이고 교민 바이올리니스트 N양까지 초대해 일사천리로 진행된 회의였다.
식당 궁전의 밖으로 나오자, 서례는 적당히 소리까지 높이며 외친다.
“강남 가실 분들은 K선생과 함께 가주세요. 동대문 쪽은 누구셨죠? 아, 미리들 모여 계셨네요."
유쾌하게 웃으며, 그럼 우리는 어디야? 신촌인가? 아니,왕십리가 낫겠다.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회원들과 헤어지고, 가장 집이 가까운 서례는 총총 집에 닿는다.
남편은 그때껏 안 들어와 있었다. DVD를 보던 아들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탁자위의 쪽지를 말없이 건네준다.
(무슨 일이 또 생겼구나.)
아들은 언제나 그런다. 좀 낌새가 이 상하다 싶으면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이다.
서례는 아들에 대해서 언제나 할말이 좀 있는 편이다.
불과 얼마전이었을 것이다.
이미 퇴근 해서 집안 일을 좀 하고 있을 때, 누가 초인종을 눌러 나가보니 근처에 사는 옥자씨였다. 좀도둑이 가게의 셔터를 반쯤 들어올리는 중에, 마침 지나가던 경찰이 발견했고, 곧바로 연행해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위의 아무도 서례의 집 전화번호를 몰랐으니 고장난 셔터가 근처분들의 뜻하지않은 걱정거리로 크게 부상했던 거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서례는 집 전화번호를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성격이고, 그런 연유로 인하여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서례의 핸드폰 번호는 오래 전에 광고에까지 공개를 해둔 상태지만, 그것에 대한 개념이 무개념이라서 맨날 여기저기 두고 다니기 마련인 핸드폰.
집에서 필요해서 찾으면 가게에 두고 나왔고, 가게에서 찾으면 집에 두고 나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서례의 핸드폰.
결국 서례의 가게 가까이 사는 사람이 옥자씨에게 전화를 넣었고,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옥자씨는 숨가삐 달려온 거였다.
서례는 뜀박질도 제법 하지만 뛰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겠기에 약간 경보처럼 빠르게 걷는데, 아들은 저만큼 뒤에 오면서 서례를 두어 번 나무라고 있었다.
" 천천히 가세요. 급할수록 느리게 가야 한다는 걸 전혀 모르시는 분처럼 왜 그러세요?"
서례가 아들 얘기를 자주 꺼낼 수밖에 없는게, 아들은 그날 셔터 전문기술자를 따로 부르지 않고 고집스레 낑낑대며 스스로 고쳐낸 것이다.
물론, 어느 현지인의 도움과 힘이 특히 컸다고 본다.
그 현지인은 버스로 퇴근할 부인을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했다.
앞쪽으로 무지막지하게 휜 셔터를 어떻게든 원상복귀를 시켜보려는 아들의 모습이 꽤나 가상했던가 보았다.
서례는 그 현지인을 지금껏 천사처럼 여기고 있다.
왜냐면 그날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인사를 못했으므로, 행여 다시 인사할 날이 있으려나, 그런 마음으로 퇴근 길에 자주 버스정거장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런데, 그런데도 그 현지인은 그후 한번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에는 한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C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C는 'oo부인'이라는 제목으로 써냈던 약간 야한 소설이 영화화 됐었고., 그 영화를 계기로 많은 무슨무슨부인이라는 영화들이 시리즈로 나오는 일에 일익을 담당했던 작가다.
아들은 쇼크요법에선 가까스로 비키게 해준 셈이라는 듯 그제야 말문을 연다.그런데 거의 통역하듯 말하고 있다.
“모임에 가셨으니까 내일 아침에, 그때나 전화를 드릴 듯함,그런 식으로 설명. 그렇지만 자꾸 설명 해도 소용 없음. 굉장히 막무가내! 꽤 심각한 일 터진 느낌."
아들에게 번호를 남긴 C의 핸드폰은 연신 통화중이라는 안내 음만 나온다.
서례는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살고 있는 미례에게 전화를 넣는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서례는 꽤 들뜨는 심정이었던 게, C가 전화를 해올 일이라고는 7년 전 에 보낸 두 개의 중편소설에 관한 것밖에는 달리 없었음에랴.
미례에게 지시한대로 C에게서 전화가 온건 정확히 15분 뒤였다. 일상적인 안부도 생략한 채 C는 확인하듯 묻는다.
" 어제 오후에 승희하고 통화했는데, 너 곧 책 내러 귀국한다며?"
“ 네, 승희가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주는데 내 생활이 너무 타이트해서요. 나는 새해인사를 전화로 대신했었어요."
보고 싶다고, 언제 나오느냐고 따지듯 묻는 승희에게 서례는 그랬었다.
“ 곧 나갈 거야. 책 하나 낼까싶어 . 나이 드니까 내 맘도 변하나봐."
C는 느닷없이 컹컹 울리는 것 같은 음성으로, 부디 농담이었으면 좋을 얘기를 선전포고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 몇 년 전에 보내준 네 작품을 있잖아? 내가 사실은 어떤 문예지에 갖다 주고 왔었거든. 헌데, 그 문예지 담당자들이 내가 갖고 갔으니까 내 작품이겠거니 그러고, 내 이름으로 너의 작품이 나간 거야"
" 선배,어떻게 그런 일이…… ."
" 참, 그 고료는 내가 어디에 잘 뒀는데.가만,어딘가 있을 거야."
“ 선배 . 도대체 무슨 그런…… .”
" 너 나오면 주려고 내가 잘 간직해 뒀거든. 내가 요새 치매인가 봐. 뭘 잘 두면 꼭 잊어버린다니까.''
“ 선배 , 그 작품이 …… ."
“ 얘는? 좀 기다리고 우선 내 말부터 잘 들으라니까 ."
서례는 세워지려는 날을 애써 무디게 가다듬는다.
“그 사람들이 실수해서 그렇게 됐으니까, 이번엔 내 작품을 네 이름으로 하나 내자."
‘하나 내자‘ 라고 말할 때, C는 매우 의리에 찬 음성이기까지 했다.
“ 대체 그게 웬 말도 안 되는?”
" 서례야, 내가 너한테 빚을 졌으니까 내가 내 작품으로 갚을게 ."
이번에도 가로채일까봐 서례는 속사포를 쏘듯 재빨리 말을 쏘아댄다.
" 싫어요. 난 선배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작품도 욕심나지 않는다구요!"
“ 너 있잖아? 책 내는 문제는 정말 심각하게 결정해야 돼. 지금 한국은 IMF 이후에 책이 전혀 안 팔리고 있어. 인터넷이다, 컴퓨터다 해서 책들을 안 사보니까,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도산하는 추세고 "
“글쎄요. 선배의 얘기는 매우 합리적이긴 한데요. 하지만 작가가 꼭 책을 많이 팔려고 책을 낼까요? 아무튼 어떤 작품인지나 말해 주세요."
"왜 그 있잖아, 첫 문장이 '밤송이처럼 짧은‘으로 시작되고. 비디오 집이 나오고, 화원이 배경이 된 작품…… .”
" 하필 왜 그 작품이죠?"
서례는 잠시 말을 잃는다. C는 혼자서 계속 떠들고 있다.
" 이왕 책을 내려면 한 5년 뒤에나 내도록 해. 그때는 책이 좀 팔리려나?''
“ 하여간에 선배. 그만 끊어요. 난 지금 한가하게 선배의 변명을 들을 게 아니라 뭔가 해결책을 좀 찾아봐야할 것 같거든요."
서례는 난데없이 대형냉장고에 갇힌 듯 한 싸늘한 공포감이 엄습해옴을 깨닫는다. 크게 외쳐도 될 일은 아니라서, 서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문을 힘껏 두드리는 일이었다. 겨우 구조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까스로 남편과 아들이 보였다. 마치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그제야 귀가한 터였다.
대강 간추린 설명을 듣고 난 남편과 아들은 흡사 C가 보낸 칙사처럼 군다.
" 나쁘다! 그래도 여보, 진정해. 그리고 우리 잊자. 그 여자가 당신 작품으로 상을 탄 것도 아니고……. 너무 충격 받지 않을 거지? " 남편
서례는 입을 딱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다. 아들은 한 수가 아니라, 여러 수 더 뜬다.
"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느냐고 수시로 불평하시더니, 어쨌거나 게재는 됐었군요. 그래도 딴 생각 마시고,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 열심히 갈고 닦으세요. 아시죠? 쓰는 것보다 더 많이 다듬고 더 많이 읽어야한다는 거. " 아들
그건 일종의 위로다. 어떤 사람들은 매번 위로를 그런 식으로 한다.
특히 서례의 가족은.
서례는 그들을 가볍게 제치고 수레가 가파른 비탈길을 구르듯 뜰뜰 마당으로 내려간다.
수레에 치일까봐 양쪽으로 갈라서서 멍하니 서례인지 수레인지를 지켜보는 남편과 아들.
커피를 여러 잔 마셨을 때조차 서례는 어려서 엄마가 들려주던 자장가를 부르며 자기가 저를 재워왔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개 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늘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서례형제들이 쉽게 잠들지 못할 경우, 엄마는 특히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의 후렴부분을 나직나직 밤비 내리는 소리로 반복하고 반복했었다. 어깨나 등을 토닥여주며.
그럴 때마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일 년에 두 번, 아르헨티나는 크리스마스와 제야에, 전국에 걸쳐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밤을 세워가며 총과 폭죽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그 전통적인 축제에도 밤새 잘도 자고 일어나서 , 참 대단한 어머니 . 탄복할만한 아내로 불리던 서례는 그만 밤을 꼬박 새우기에 이른다. 엄마의 자장가도 부르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문협 회원인 E가 들어선다. 그는 앉지도 않고 불쑥, 문협을 그만 두겠다고 나온다. 본인을 명단에서 빼달라고까지 강하게 표현하기를 서슴치 않고 있고.
" 명단에서 빠져야 할 만큼 뭐가 크게 잘못된 일이라도 있었나요?"
서례는 떫은 표정 같은 걸 워낙 잘 나타내지 않는 편이라서 오히려 산뜻하게 웃으며 묻는데, 그야말로 떨떨한 웃음이 떨떠름, 피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었다.
E는 문제를 선뜻 제시하지는 않는다. 서례는 그를 달래지도 질책하지도 않는다. E는 가깝게 지내던 회원 P에게서 '당신의 시는 문학적으로 볼 때 수준미달이다' 라는 평을 바로 어젯밤 들었기 때문이라는 하소연을, 결코 안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한다.
(밤을 세운 사람이 내 앞에 또 하나 있구나. 오나가나 문학이 문제인 것일까.)
서례는 그를 이해한다. 오죽 속이 상했으면 새벽같이 회장이라는 사람을 찾아왔을까싶어 , 그의 단순한 성격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고 할 만 한 말조차 꾹꾹 참는다.
승희와 미례에게 국제전화를 넣는다.
“저런! 너 당장 나와라. 그래서 그 선배를 고발해버려. 그럼 그 선배도,유명 탤런트로 이름을 날리는 그 선배의 딸도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거야. 그런 인간은 인터넷에 띄워야 돼. ‘내 작품을 찾습니다’ 그렇게만 올려도 꽤 시끄러울걸.” 승희
'‘언니도 참. 왜 작품을 그 여자에게 보냈어? 직접 보냈어야잖아. 그럼 이런 일도 안 생겼을 테고." 미례
등단이라는 것을 했을 때 , 한국에 나간 서례에게 C가 그랬었다. 한국 문단은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문예지에 게재하는 일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고. 작품을 C에게 보내주면 C가 좋은 문예지에 게재 시켜주겠노라 고 그러면서 C는 모 문예지의 편집위원인 K씨까지 소개시켜줬었다.
그리하여 서례는 K씨에게도 두 편의 작품을 보냈었고.
그 작품이야 워낙 빨리 써 보냈으므로 차라리 게재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기는 형편이니까, 이렇다하게 개의치는 않는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는다지만 언니는 한국도, 한국 사람도 너무 모른다!"
“그래. 난 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게, 모르는 걸 거야."
서례는 사실 본국은 물론이고 본국문단도 너무 멀다는 생각을 꽤 자주하며, 너무나도 바쁘게 허우적대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쁜 틈틈이 글 쓰느라 더 바빴지만.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웃에 사는, 서례보다 약간만 어린 친구가 ' 왜 언니는 이곳의 한인문협에서 모집하는 공모전에는 작품을 안 내죠? ' 라고 물었을 때, 잘난 것처럼, 혼자서 도통했고 뭐든 많이 아는 것처럼 쓸쓸하게 웃었던 자신에 대해서 .
그리고 어떤 나이 어린 여대생이 본국의 어느 공모전에 당선 되었을 때 문학의 문짜도 모르고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여인이 서례에게 하던 뜨악한 질문.
형님은 언제 저렇게 상금을 타 볼 거야?
그랬을 때 혼자 드높은 것처럼 기분이 별로였던 기억에 대해서도. )
“어쨌거나 내가 오빠에게 연락해서 우선 그 여자의 이름으로 나갔다는 언니의 작품을 수소문해 보도록 할게 .”
“실수로 그렇게 됐다고 우기지만 그 선배는 배경이나 내용을 조금씩 바꿨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문예지마다 그 선배의 중편을 조회해 봤으면 해."
서례가 의아스러운 건, 만약 실수로 C의 이름과 함께 그 작품이 나갔다면. 그 다음 호에 충분히 정정문이라도 나갔어야 되기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그 무렵의 서례는, 원고를 보낸 지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서 용기를 내어 C에게 전화를 했었다. 모르는 이에게서, 이사 간 지 1년이 다 돼간다는 대답만 들었다. 7년. 사실 서례는 한국이 멀다는 생각보다는 7년 동안을 절망 비슷한 감상을 자주 껴안고 지냈었다. C의 말대로 게재가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그렇게 자조하면서. 그리하여 주눅이라는 주눅은 다 들어 그 어떤 문예지에도 작품을 보낼 생각을 못해 왔던 셈이고.
아들은 서례를 놀린다.
“어머니가 그 분에게 작품을 보냈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이러리라고 대비했던 건 아니지만. 난 그 작품을 이미 공증해 뒀었어 ."
“그렇다면 그분이 작품을 받았다는 법적 증명이 될 만한 꼬투리는요?''
서례는 흡사 오리처럼 멀뚱멀뚱 아들을 쳐다본다.
하지만 꽤 뒤뚱대며 겨우 꽥꽥거림을 되찾는다.
“내 작품이라면 내 작품이야. 그런데 무슨 법까지 들먹이며 복잡해야 되는 거니?"
처음엔 멈칫거리다가 서례는 차츰 침착해지고 있었다.
“난 그 작품에서처럼 자식 하나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난 현재까지 화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작품에 나오는 툴루즈 로트렉의 ‘세탁부’가 내 가게에 엄연히 걸려 있고…… .”
아들은 잠시 웃어주는 표정이다가 이내 정색을 하더니, 금세 서례의 말을 가로막는다.
“그런 건 전혀 도움이 안돼요. 그 분이 정말 나쁜 사람일 경우. 표절이 라는 이름으로 되레 당한다는 상상을 왜 못하시는 거죠?''
“설마.”
아들은 사뭇 신랄할 정도로 몰아세운다,
‘모르세요? 설마라는 단어, 어머니가 내게 알려주신 말이라는 거. 그리고 지금에 와선 어머니의 그 설마 하는 안이함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는 거."
“난 적어도 남의 작품은 훔치지 않아. 그거니? 안이 하다는 게?”
며칠이 지나도록 미례와 준욱에게서는 전혀 연락이 없다.
서례는 너 무도 기이하게 여겨져 전화를 해본다.
준욱은 뭐가 잘못됐는지 계속 통화중이다.
미례는 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과 말 사이에 시들해지고 마른 마음이 시들시들 박혀 있다.
“언니 . 오빠가 지금 인터넷으로 알아는 보는데 그게 그리 쉽지를 않나 봐, 그리고 난 엊그제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날짜를 받았어. 당뇨 때문에 왼 눈을 수술해야 된대 ,"
“네 그 예쁜 눈을?''
“그리고 민서아빠한테 야단만 맞았다니까. 언니 대신 그 여자를 만나려면 강하게 욕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 내가 무슨 그런 깡다구가 있기나 한가고 말이야. 사실 이건 내 일도 아니고……”
(맞아, 맞는 얘기야. 이건 네 일도 아니지 .)
서례는 C에게 직접 전화를 넣는다. 서두부터 강하게 나오며 , 서례는 왼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소형 녹음기의 스위치를 약간 비치적거리는 심정으로, 비장하게 누르게 된다. 그래서 마치 소형 녹음기에 대고 비판하고 항의하는 느낌까지 들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곰곰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는 내 작품이 선배의 이름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안돼요. 소위 지식인이라는 선배가, 하물며 작가라는 분이 어떻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7년 동안 침묵만 치켜 왔는지도 의아스럽고…… .”
C의 음성은 생기도 생기려니와. 거의 발랄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였다.
“아! 그거? 얘, 네 작품이 도착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같은 아줌마가 일하거든. 며칠 동안 그 아줌마를 시켜 찾아봤는데. 글쎄 네 작품이 그대로 있는 거야. 내가 받았던 고료가 48만원인 게 이상해서 찾아보니까, 네 작품은 고스란히 있었어. 내가 콩트를 하나 보냈었는데, 결국은 그 콩트의 고료였던 거야. 네 작품은 중편이잖아. 중편은 나 정도 중견 작가면 2백만 원은 받거든."
“선배는 중견이라는 말을 퍽 자부심 있게 하시네요."
“이상하게 꼬인 소리는 그만하고, 그건 내가 보낸 콩트의 고료였다니까."
콩트. 서례는 C에게, 두 편의 중편은 물론이고 67편의 수필원고까지 보냈었다는 데에 겨우 생각이 닿은 것이다. 일시에 몰려드는 해일.
그 수필 중의 한 편이 C의 콩트로 둔갑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작품이 C의 이름으로 나갔었다는 실토를 들었을 때는 명치에 응어리가 생긴 것처럼 거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는 뒤집어 엎기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버거워서, 서례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차라리 작품이 잘못되었다는 상황이 낫기라도 한 것처럼 .
" 평소의 나는 문학에 대해서 별로 타산적이지도 본능적이지도 못했어. "
“아니죠. 아마도 타산적 본능에 충실하셨을 겁니다. 본능이란 건 그렀다면서요? 잘라 내도 계속 자란대요. 동물의 자절현상처럼요."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할 거니? 부탁인데, 서례야,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 일만은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
“이미 보따리가 풀리고 말았어요. 선배는 이 일을 실토할 때가 그나마 괜찮았는데……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거든요. 지금은 어떤 줄 아세요?”
서례는 또박또박 끊으며 으르렁대듯 말한다.
“드, 디. 어. 본색을, 드, 러, 내, 다!"
“점점 ? 근데 서례야, 내가 며칠 맘 잡고 알아 봤는데, 넌 책을 내도 아 무 이상이 없을 거래."
“애초에 그렇게 알아보고 그랬더라면 그나마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어쩌죠? 나는 더 이상 선배를 못 믿거든요. 일단은 각 문예지마다 조회를 해 볼게요."
“그게 원이라면 그렇게 해. 내가 알기로는 문예지가 약 백 개도 넘을 텐데…… 먼저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문예지가 백 개가 넘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이제와서 그런 식으로 걱정 하는 건 일종의 월권행위 아닌가요?"
“어떻게든 찾아봐. 그런 뒤에 내게 전화 좀 주고…… .”
“앞으로 절대 선배하고 전화할 일이라고는 없어요. 아시겠어요?”
서례는 가위로 싹둑 자르듯 매몰차게 말하며 전화를 끊고 녹음기도 스톱시킨다. 곧 바로 C의 전화가 다시 온다. 서례는 잊지 않았다는 듯 녹음기의 스위치를 다시 누른다.
“얘, 우리 대학 다닐 때 내가 승희와 널 참 예뻐했는데, 그런데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거니? 참, 슬프다‘
"정말 슬프세요? 악어의 눈물은 안 흘리셨나요?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그리도 간단하게 내 문학인생을 낚아채었냐고요?”
그제야 말문이 막히는지 C는 잠시 아무 말도 못 꺼낸다. 결국 침묵을 깬 건 C다.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왜 이렇게 너한테 당해야 하는지를…… .”
“나도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배의 임기웅변과 오리발에 대해서…… .”
서례는 자신의 음성이 난생 처음으로 격렬해져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지만 단호함만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가 않다. C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묻는다.
“너 정말 내 후배 맞니?”
“선배는 진정 내 선배 맞나요?”
“세상에, 그렇게 착하던 네가…… .”
“참 다행이네요. 나를 멍청이로 본 게 아닌가 싶어, 요즘 매우 섭섭해 있었거든요.”
C는 어딘지 모르게 격앙된 음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네 글을 내 이름으로 실었다면 내가 네 딸이다!"
서례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정말 안 그랬다는 얘기인가? )
“아니지 ,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내 자식들을 두고까지 맹세할게. 됐지?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고소라도 하던지 ."
“그런 걸 왜 하겠어요, 가톨릭을 믿는 내가……”
C는 마치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동포를 만난 듯 한 살가운 음성으로, 환성을 지르듯 말을 날리고 있었다.
“얘 , 나도 성당에 나가! 내가 성모님을 두고도 맹세할게. 그럼 됐지?"
“우이아? 엔깐따다!(어머? 반갑군요!)"
“그게 무슨 말이니?"
"걱정 마세요. 좋은 말이니까."
더 이상의 통화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례는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서례는 두렵고 겁까지 난다. C가 서례에게 해낸 여러 맹세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생겨날까봐.
화엄경에서였던가.
여인은 산달이 되어 친정으로 아기를 낳으러 가고 있었다. 그 여인은 친정에 닿기도 전.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환난을 맞게 된다. 낭군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막 낳은 아기는 뱀에 물려 죽으며. 큰애는 급류에 휩쓸려 죽게 되는 것이다. 혼비백산 찾아간 친정집엔, 부모형제들이 모 두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만이 남아있었다. 절간의 노승은 기진맥진 지쳐있는 여인에게 이렇게 설파한다. ‘당신은 전생에 어느 대감댁 의 후실이었습니다. 그때껏 후손을 못 보던 대감의 전처가 아들을 먼저 낳게 되자. 당신은 그 아기의 몸에 그만 바늘을 넣는 악역무도한 일을 저질렀지요. 시기심의 발로였습니다. 아기는 결국 죽게 되었고. 전처는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당신의 대답은 매우 거리낌이 없었지요. 〈내가 만약 그런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나는 후생에 천벌을 받을 거야. 내 낭군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내 큰애는 물살에 휩쓸려 죽을 것이며, 갓난아기는 뱀에 물려 죽겠고, 친정식구는 불에 타 죽을 거야. 이렇게 맹세할 정도로 나는 아냐. 절대로! 고승은 결론을 맺는다. ‘우리 중생은 말 한 마디조차, 헛되이 발설하거나 맹세해서도 안 됩니다. 말이 곧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C는 또 다시 전화를 해온다. 그리도 가혹하게 내몰았는데도 시근사근이 지나쳐 지근지근이다. 이쪽에서 화를 내는데, 같이 화를 안낸다는 자체가 뭔가를 인정한다는 게 아닐까.
서례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려고 승희에게 전화한다.
승희야말로 며칠 사이, C에게 완전히 세뇌된 나머지 C와 똑같은 말만 한다.
앞에 선배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는 것밖에는 특별하게 다른 게 없다. 선배는 중견이고. 선배는 성모마리아를 두고까지 맹세한다고도 그러고, 선배는 자식을 두고도 맹세하고 있고, 이 모든 일이 거짓일 경우엔 선배는 서례의 딸도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그런데 이 말만은 멈칫대며 실토한다.
" 근데, 있잖아? 그 선배, 내가 알아봤더니 전적이 벌써 여러 번이었어. 네가 세번 째야. 젊은 후배 하나 하고는 재판까지 갔었다더라."
서례는 이윽고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고자 미례에게 전화를 넣는다.
미례는 몹시 반가워는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례가 서례에게 묻고 있다.
“어떻게 됐어?"
서례가 꺼내려던 말을 미례에게서 듣게 되자, 서례는 그만 큭큭 웃음이 터졌다. 미례는 이미 그러기로 작정한 듯 서례를 달래기 시작한다.
“우리는 살면서 돈도 떼이고, 빚보증도 서보고, 사기까지 당해왔잖아.
"넌 어떻게 이 일을 그런 일들에 비유할 수가 있는 거니?"
" 알아, 언니 마음. 그래도 어쩌겠어? 사실 언니도 그렇지만, 나나 오빠가 이런 일에 나서서 야단칠 성격은 못되잖아. 그리고 정작 야단친들 또 어쩌겠어. 그리고 언니, 성욱이가 보도부국장으로 있는 방송국의 기자들에게 이 일을 터뜨릴까도 생각 안 한건 아니야. 성욱인 우리 형제 아냐? 좀 더 일을 지켜보겠지만, 가만 안 있을 거래."
"넌 뭐 하러 성욱이 한테까지 이 얘길 했니? 난 일부러 연락 안 했는데."
"어느 정도 윤곽은 알고 있어. 만약 그 여자가 못되게 나오면 그 앤 액션을 취할걸."
"그러지마, 그건 진정 나를 위하는 게 아니야. 나도 기분 같아선 혼을 내주고 싶기도 했었지만."
서례는 잘 안다. 큰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굳이 보상도 받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그걸 받아 무슨 맛있는 걸 사먹겠나, 어떤 예쁜 옷을 구입하겠나, 또는 집치장 같은 걸 할 수나 있으려는지, 그러면서 단호하게 거두절미 말도 못 꺼내게 하던 자신을.
15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때 보상을 얼마나 받았었는지를 캐듯이 묻는다. 받기 싫어서 안 받았다는 명료한 대답에, 사람들은 지금껏 몹시 아쉬워하는 데다, 아마 영원히 아쉬워들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이런 말들을 아주 자연스레 깔아 두면서.
-그런 건 받을 수만 있으면 꼭 받아내야 해요. 보람 있는 일에 쓰면 참 좋잖아요.
핸드폰의 신호음이 짧게 울린다. 달리 할 말도 없었으므로 미례와의 전화를 서둘러 끊고 만다.
"안녕하십니까? 홍 선생님. 서영사입니다."
“네. 영사님께서도 안녕하셨어요?"
“다음 주 화요일에 본국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님께서 오십니다. 그래서 대사관저에서 동포간담회가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 7시 30분입니다.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어요."
한국대사관저는 울창한 나무숲에 안겨있다. 만찬은 양식과 한식이 어우러진 풀 코스였는 데다 12명의 교민단체장과 반외교부장관과의 질의응답 등이 있었으므로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또한 12명의 단체장들은 이슈가 될 만한 화제를 각양각색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본국사람들이 8시간 수면을 취 할 때, 우리 이민자들은 4시간만 잘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아르헨티나의 포도주와 무공해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놓는 이도 있었다.
서례는 아들의 경우를 예로 든다. 서례는 글 을 쓸 때, 아들에게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제 아들은 어려서 이민을 따라 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애는 생각도 꿈도 서반아어로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다닐 땐 그 애의 생각과 꿈이 반반으로 나뉘어졌죠. 대학에 다니는 현재. 그 애의 꿈과 생각은 다시 서반아어로 돌아간 게 아니라, 모국어를. 본인도 모르게 다시 사용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정체성을 되찾은 것입니다. 비록 외국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임을 어떤 자리에서도 각인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가 터지자, 서례도 같이 박수를 쳐,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해지고 있었다.
현지인 남편과 사별하고, 혼혈아들과 살고 있는 A에게 들른다. A는 노년의 현지인 수리공과 수시로 마떼(호리병 박안에 뜨거운 물로 우려내는 아르헨티나산 녹차)를 마시고 있다.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스테인리스로 된 빨대를 서로 주고받으며 마시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먹던 술잔을 비우고 그 잔에 술을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처럼 아르혠티노(아르헨티나인) 들은 마떼통을 주고받으며 빨대를 같이 사용하는 걸로 서로의 결속을 다짐해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리공은 마떼만 같이 마시는 게 아니다. 가스레인지 앞에 A와 나란히 서서 , 주전자에 더운물을 같이 데우며 , 서례에게 귀찮을 정도로 여러 차례 권유하고 권유하는 것이다.
“노 그라시아스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
물론 서례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드디어 끝났다는 듯 수리도구를 챙겨든 수리공이 3층을 향해 올라간 뒤에야 A는 서례의 맞은편에 앉는다.
“굳이 수리공과 마떼를 그런 식으로 같이 마셔야만 시원하니 ?
”남의 나라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게 아니라,하는 거구나. 넌…… ."
"아냐, 그런 뜻이 ."
"집수리를 제대로 하려면 인간적으로, 친구처럼 대해줄 필요가 있어. 왜? 보기 싫었구나? “
“모르겠다. 현지인과 결혼했었기 때문에 넌 그런 일들이 가능하고 편안한지도.”
“넌 왜 가끔 애처럼 못되게 굴지? 다 그러고 사는 거야. 모자란 듯 넘치게."
‘넘치듯 모자란 게 아니고? “
“그만 두자. 그런데, 이건 분명히 해둘래? 그러는 넌 타인한테 잘 당하고, 이러는 난 절대로 안 당한다는 거 ."
“그래, 맞아. 참으로 맞는 얘기야. 요즘 내 주위에 맞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뒤꼍의 대나무 밭에서 댓잎들이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참, 네 작품은 어떻게 됐어, 찾았어?"
한 달 동안의 갈등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얻은 사람처럼 서례는 새삼 찹찹해진다.
혈혈단신이 어떤 건지, 외로움이라는 게 어떤 건지까지도 서례는 이 한 달 동안에 완벽하게 터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매번 무거운 우수가 농무처럼 내리 덮치려 고해서 서례는 자꾸만 고개를 휘젓고는 했다.
서례로서는, 한국의 출판물 공해에 일익을 담당하는 거나 아닌가 싶어서 , 그동안 계속 발간을 미루어 왔었고. 자비출판을 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꼭 책을 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A는 채근하듯 다시 묻는다.
“내 말 못 들었니? 문제의 그 작품이 어떻게 됐냐니까?"
“책을 낼까해. 그것도 꼭 실어야지 ,"
“그냥 이대로 덮을 거야? 그런 여자는 본때를 보여야 하는 건데 ."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난 더 이상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싶지가 않아. 이 문제에 발이 빠졌었다는 것만으로도 감탕밭 같았거든.”
“그래도 그런 여자는 단죄해야 된다! 너 ."
“그것도 내 소관이 아니고…… 난 그 작품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할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 나로서는 그 선배가 후생에 내 딸만 안 되면 참 고마운 거고…… ."
“무슨 얘 기 야?"
“그럴 일이 있어."
단정하지만 이번 일로 C나 서례 둘 중에, 허둥거린 사람이 분명 있을 터였다,
지난 밤 서 례는 꿈을 꿨었다.
어디서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너무나 듣기에 기분 나쁜 울음 소리였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와 자신과는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서례는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굳이 찾아 나섰다. C가 여러 사람의 몰매를 맞고 있었다. 서례는 C에게 달려들 듯 감싸면서 말리기 시작했다.꿈에서 깨어나자, 서례는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다.
차라리 서례가 전생에 C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고, 변모의 싹을 틔운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의, 자신을 향한 변화였다.
“걱정된다.”
“뭐가?”
“출판이 다 될 무렵. 넌 한국으로 전화할 것 같아. 그 작품은 빼주세요, 라고 말이야."
“그건 나도 장담 못해. 1분 사이에도 변하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A의 집을 나와, 서례는 거리를 걷는다.
거리는 눈부시게 밝다. 비온 뒤와 같이 더 깨끗해 보이고, 더 산뜻하며 더 상쾌하다.
그리고 하늘. 온통 하얗지도 않고 온통 파랗지도 않은 짙은 남색에 흰색 뭉게구름.
서례는 느닷없이 팔을 벌려 하늘에, 구름에 답한다.
해방감!
옛 중국의 현인처럼 심기일전하는 마음이기 까지 하다.
' 숲에서 일하고 돌아온 현인은 얼마 뒤에 도끼를 잃어 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총각이 매우 수상쩍다. 그렇게 의심을 품자. 총각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도끼를 가져갔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보이는 거라고만 연관 짓게 되고, 도끼를 훔쳐간 야비함으로만 결론이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인은 우연히 광에서 도끼를 발견한다. 그제야 숲에서 돌아온 날. 좀 더 잘 간직하느라 깊숙이 감춰뒀던 기억까지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현인의 눈에는 이웃총각의 일거일동이 도끼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떳떳하고 당당해 보이는 거로구나, 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며 매우 타당하고 마땅한 태도로만 비춰지는 것이었다.'
미아가 됐었던 자식을 가까스로 찾아낸 것처럼, 서례는 여러 편의 단편들을 목욕재계를 시키고 새로운 의복 일습도 갈아입힌다.
‘내 작품을 찾습니다.'
서례는 불쑥, 그리고 절절 외치려는 스스로를 굳이 토닥여댄다.
엄마의 자장가까지 읊어대며.
엄마처럼 자애롭게.
빗소리처럼 나직나직.
특히 후렴 부분을…… .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맹하린
한국소설(한국소설가협회)
2006년 6월호
-작가의 말- |
![]() 작가의 말 30년이라는 장기간의 외국출장이라고 생각하면 내 이민생활은 전혀 고달프지가 않다. 그래도 저무는 강에 서면, 어서 돌아가고파 금세 따사로워지는 내 눈시울. 좋은 작품으로 빛을 볼, 그때. 비로소 나 환국을 서두를 것인가. 아르헨티나라는 광활한 글밭을 만나게 되어 그나마 가슴 뛰노는 환희의 나날을 보내노니……. |
재아문인협회의 월례회가 식당 궁전에서 있었다.
회원 중에서, 생할봉사상이라는 명목으로 본국 대통령훈장을 받게 된 P여사와 문화부장관상을 받게 된 K씨 . 그리고 본국의 을유문화사가 펴 낸 한국의 명수필 2에 작품이 실리게 된 C씨를 위한 축하연까지 겸하느라, 꽃다발 증정은 물론이고 교민 바이올리니스트 N양까지 초대해 일사천리로 진행된 회의였다.
식당 궁전의 밖으로 나오자, 서례는 적당히 소리까지 높이며 외친다.
“강남 가실 분들은 K선생과 함께 가주세요. 동대문 쪽은 누구셨죠? 아, 미리들 모여 계셨네요."
유쾌하게 웃으며, 그럼 우리는 어디야? 신촌인가? 아니,왕십리가 낫겠다.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회원들과 헤어지고, 가장 집이 가까운 서례는 총총 집에 닿는다.
남편은 그때껏 안 들어와 있었다. DVD를 보던 아들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탁자위의 쪽지를 말없이 건네준다.
(무슨 일이 또 생겼구나.)
아들은 언제나 그런다. 좀 낌새가 이 상하다 싶으면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이다.
서례는 아들에 대해서 언제나 할말이 좀 있는 편이다.
불과 얼마전이었을 것이다.
이미 퇴근 해서 집안 일을 좀 하고 있을 때, 누가 초인종을 눌러 나가보니 근처에 사는 옥자씨였다. 좀도둑이 가게의 셔터를 반쯤 들어올리는 중에, 마침 지나가던 경찰이 발견했고, 곧바로 연행해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위의 아무도 서례의 집 전화번호를 몰랐으니 고장난 셔터가 근처분들의 뜻하지않은 걱정거리로 크게 부상했던 거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서례는 집 전화번호를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성격이고, 그런 연유로 인하여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서례의 핸드폰 번호는 오래 전에 광고에까지 공개를 해둔 상태지만, 그것에 대한 개념이 무개념이라서 맨날 여기저기 두고 다니기 마련인 핸드폰.
집에서 필요해서 찾으면 가게에 두고 나왔고, 가게에서 찾으면 집에 두고 나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서례의 핸드폰.
결국 서례의 가게 가까이 사는 사람이 옥자씨에게 전화를 넣었고,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옥자씨는 숨가삐 달려온 거였다.
서례는 뜀박질도 제법 하지만 뛰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겠기에 약간 경보처럼 빠르게 걷는데, 아들은 저만큼 뒤에 오면서 서례를 두어 번 나무라고 있었다.
" 천천히 가세요. 급할수록 느리게 가야 한다는 걸 전혀 모르시는 분처럼 왜 그러세요?"
서례가 아들 얘기를 자주 꺼낼 수밖에 없는게, 아들은 그날 셔터 전문기술자를 따로 부르지 않고 고집스레 낑낑대며 스스로 고쳐낸 것이다.
물론, 어느 현지인의 도움과 힘이 특히 컸다고 본다.
그 현지인은 버스로 퇴근할 부인을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했다.
앞쪽으로 무지막지하게 휜 셔터를 어떻게든 원상복귀를 시켜보려는 아들의 모습이 꽤나 가상했던가 보았다.
서례는 그 현지인을 지금껏 천사처럼 여기고 있다.
왜냐면 그날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인사를 못했으므로, 행여 다시 인사할 날이 있으려나, 그런 마음으로 퇴근 길에 자주 버스정거장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런데, 그런데도 그 현지인은 그후 한번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에는 한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C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C는 'oo부인'이라는 제목으로 써냈던 약간 야한 소설이 영화화 됐었고., 그 영화를 계기로 많은 무슨무슨부인이라는 영화들이 시리즈로 나오는 일에 일익을 담당했던 작가다.
아들은 쇼크요법에선 가까스로 비키게 해준 셈이라는 듯 그제야 말문을 연다.그런데 거의 통역하듯 말하고 있다.
“모임에 가셨으니까 내일 아침에, 그때나 전화를 드릴 듯함,그런 식으로 설명. 그렇지만 자꾸 설명 해도 소용 없음. 굉장히 막무가내! 꽤 심각한 일 터진 느낌."
아들에게 번호를 남긴 C의 핸드폰은 연신 통화중이라는 안내 음만 나온다.
서례는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살고 있는 미례에게 전화를 넣는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서례는 꽤 들뜨는 심정이었던 게, C가 전화를 해올 일이라고는 7년 전 에 보낸 두 개의 중편소설에 관한 것밖에는 달리 없었음에랴.
미례에게 지시한대로 C에게서 전화가 온건 정확히 15분 뒤였다. 일상적인 안부도 생략한 채 C는 확인하듯 묻는다.
" 어제 오후에 승희하고 통화했는데, 너 곧 책 내러 귀국한다며?"
“ 네, 승희가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주는데 내 생활이 너무 타이트해서요. 나는 새해인사를 전화로 대신했었어요."
보고 싶다고, 언제 나오느냐고 따지듯 묻는 승희에게 서례는 그랬었다.
“ 곧 나갈 거야. 책 하나 낼까싶어 . 나이 드니까 내 맘도 변하나봐."
C는 느닷없이 컹컹 울리는 것 같은 음성으로, 부디 농담이었으면 좋을 얘기를 선전포고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 몇 년 전에 보내준 네 작품을 있잖아? 내가 사실은 어떤 문예지에 갖다 주고 왔었거든. 헌데, 그 문예지 담당자들이 내가 갖고 갔으니까 내 작품이겠거니 그러고, 내 이름으로 너의 작품이 나간 거야"
" 선배,어떻게 그런 일이…… ."
" 참, 그 고료는 내가 어디에 잘 뒀는데.가만,어딘가 있을 거야."
“ 선배 . 도대체 무슨 그런…… .”
" 너 나오면 주려고 내가 잘 간직해 뒀거든. 내가 요새 치매인가 봐. 뭘 잘 두면 꼭 잊어버린다니까.''
“ 선배 , 그 작품이 …… ."
“ 얘는? 좀 기다리고 우선 내 말부터 잘 들으라니까 ."
서례는 세워지려는 날을 애써 무디게 가다듬는다.
“그 사람들이 실수해서 그렇게 됐으니까, 이번엔 내 작품을 네 이름으로 하나 내자."
‘하나 내자‘ 라고 말할 때, C는 매우 의리에 찬 음성이기까지 했다.
“ 대체 그게 웬 말도 안 되는?”
" 서례야, 내가 너한테 빚을 졌으니까 내가 내 작품으로 갚을게 ."
이번에도 가로채일까봐 서례는 속사포를 쏘듯 재빨리 말을 쏘아댄다.
" 싫어요. 난 선배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작품도 욕심나지 않는다구요!"
“ 너 있잖아? 책 내는 문제는 정말 심각하게 결정해야 돼. 지금 한국은 IMF 이후에 책이 전혀 안 팔리고 있어. 인터넷이다, 컴퓨터다 해서 책들을 안 사보니까,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도산하는 추세고 "
“글쎄요. 선배의 얘기는 매우 합리적이긴 한데요. 하지만 작가가 꼭 책을 많이 팔려고 책을 낼까요? 아무튼 어떤 작품인지나 말해 주세요."
"왜 그 있잖아, 첫 문장이 '밤송이처럼 짧은‘으로 시작되고. 비디오 집이 나오고, 화원이 배경이 된 작품…… .”
" 하필 왜 그 작품이죠?"
서례는 잠시 말을 잃는다. C는 혼자서 계속 떠들고 있다.
" 이왕 책을 내려면 한 5년 뒤에나 내도록 해. 그때는 책이 좀 팔리려나?''
“ 하여간에 선배. 그만 끊어요. 난 지금 한가하게 선배의 변명을 들을 게 아니라 뭔가 해결책을 좀 찾아봐야할 것 같거든요."
서례는 난데없이 대형냉장고에 갇힌 듯 한 싸늘한 공포감이 엄습해옴을 깨닫는다. 크게 외쳐도 될 일은 아니라서, 서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문을 힘껏 두드리는 일이었다. 겨우 구조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까스로 남편과 아들이 보였다. 마치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그제야 귀가한 터였다.
대강 간추린 설명을 듣고 난 남편과 아들은 흡사 C가 보낸 칙사처럼 군다.
" 나쁘다! 그래도 여보, 진정해. 그리고 우리 잊자. 그 여자가 당신 작품으로 상을 탄 것도 아니고……. 너무 충격 받지 않을 거지? " 남편
서례는 입을 딱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다. 아들은 한 수가 아니라, 여러 수 더 뜬다.
"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느냐고 수시로 불평하시더니, 어쨌거나 게재는 됐었군요. 그래도 딴 생각 마시고,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 열심히 갈고 닦으세요. 아시죠? 쓰는 것보다 더 많이 다듬고 더 많이 읽어야한다는 거. " 아들
그건 일종의 위로다. 어떤 사람들은 매번 위로를 그런 식으로 한다.
특히 서례의 가족은.
서례는 그들을 가볍게 제치고 수레가 가파른 비탈길을 구르듯 뜰뜰 마당으로 내려간다.
수레에 치일까봐 양쪽으로 갈라서서 멍하니 서례인지 수레인지를 지켜보는 남편과 아들.
커피를 여러 잔 마셨을 때조차 서례는 어려서 엄마가 들려주던 자장가를 부르며 자기가 저를 재워왔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개 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늘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서례형제들이 쉽게 잠들지 못할 경우, 엄마는 특히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의 후렴부분을 나직나직 밤비 내리는 소리로 반복하고 반복했었다. 어깨나 등을 토닥여주며.
그럴 때마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일 년에 두 번, 아르헨티나는 크리스마스와 제야에, 전국에 걸쳐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밤을 세워가며 총과 폭죽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그 전통적인 축제에도 밤새 잘도 자고 일어나서 , 참 대단한 어머니 . 탄복할만한 아내로 불리던 서례는 그만 밤을 꼬박 새우기에 이른다. 엄마의 자장가도 부르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문협 회원인 E가 들어선다. 그는 앉지도 않고 불쑥, 문협을 그만 두겠다고 나온다. 본인을 명단에서 빼달라고까지 강하게 표현하기를 서슴치 않고 있고.
" 명단에서 빠져야 할 만큼 뭐가 크게 잘못된 일이라도 있었나요?"
서례는 떫은 표정 같은 걸 워낙 잘 나타내지 않는 편이라서 오히려 산뜻하게 웃으며 묻는데, 그야말로 떨떨한 웃음이 떨떠름, 피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었다.
E는 문제를 선뜻 제시하지는 않는다. 서례는 그를 달래지도 질책하지도 않는다. E는 가깝게 지내던 회원 P에게서 '당신의 시는 문학적으로 볼 때 수준미달이다' 라는 평을 바로 어젯밤 들었기 때문이라는 하소연을, 결코 안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한다.
(밤을 세운 사람이 내 앞에 또 하나 있구나. 오나가나 문학이 문제인 것일까.)
서례는 그를 이해한다. 오죽 속이 상했으면 새벽같이 회장이라는 사람을 찾아왔을까싶어 , 그의 단순한 성격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고 할 만 한 말조차 꾹꾹 참는다.
승희와 미례에게 국제전화를 넣는다.
“저런! 너 당장 나와라. 그래서 그 선배를 고발해버려. 그럼 그 선배도,유명 탤런트로 이름을 날리는 그 선배의 딸도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거야. 그런 인간은 인터넷에 띄워야 돼. ‘내 작품을 찾습니다’ 그렇게만 올려도 꽤 시끄러울걸.” 승희
'‘언니도 참. 왜 작품을 그 여자에게 보냈어? 직접 보냈어야잖아. 그럼 이런 일도 안 생겼을 테고." 미례
등단이라는 것을 했을 때 , 한국에 나간 서례에게 C가 그랬었다. 한국 문단은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문예지에 게재하는 일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고. 작품을 C에게 보내주면 C가 좋은 문예지에 게재 시켜주겠노라 고 그러면서 C는 모 문예지의 편집위원인 K씨까지 소개시켜줬었다.
그리하여 서례는 K씨에게도 두 편의 작품을 보냈었고.
그 작품이야 워낙 빨리 써 보냈으므로 차라리 게재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기는 형편이니까, 이렇다하게 개의치는 않는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는다지만 언니는 한국도, 한국 사람도 너무 모른다!"
“그래. 난 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게, 모르는 걸 거야."
서례는 사실 본국은 물론이고 본국문단도 너무 멀다는 생각을 꽤 자주하며, 너무나도 바쁘게 허우적대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쁜 틈틈이 글 쓰느라 더 바빴지만.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웃에 사는, 서례보다 약간만 어린 친구가 ' 왜 언니는 이곳의 한인문협에서 모집하는 공모전에는 작품을 안 내죠? ' 라고 물었을 때, 잘난 것처럼, 혼자서 도통했고 뭐든 많이 아는 것처럼 쓸쓸하게 웃었던 자신에 대해서 .
그리고 어떤 나이 어린 여대생이 본국의 어느 공모전에 당선 되었을 때 문학의 문짜도 모르고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여인이 서례에게 하던 뜨악한 질문.
형님은 언제 저렇게 상금을 타 볼 거야?
그랬을 때 혼자 드높은 것처럼 기분이 별로였던 기억에 대해서도. )
“어쨌거나 내가 오빠에게 연락해서 우선 그 여자의 이름으로 나갔다는 언니의 작품을 수소문해 보도록 할게 .”
“실수로 그렇게 됐다고 우기지만 그 선배는 배경이나 내용을 조금씩 바꿨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문예지마다 그 선배의 중편을 조회해 봤으면 해."
서례가 의아스러운 건, 만약 실수로 C의 이름과 함께 그 작품이 나갔다면. 그 다음 호에 충분히 정정문이라도 나갔어야 되기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그 무렵의 서례는, 원고를 보낸 지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서 용기를 내어 C에게 전화를 했었다. 모르는 이에게서, 이사 간 지 1년이 다 돼간다는 대답만 들었다. 7년. 사실 서례는 한국이 멀다는 생각보다는 7년 동안을 절망 비슷한 감상을 자주 껴안고 지냈었다. C의 말대로 게재가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그렇게 자조하면서. 그리하여 주눅이라는 주눅은 다 들어 그 어떤 문예지에도 작품을 보낼 생각을 못해 왔던 셈이고.
아들은 서례를 놀린다.
“어머니가 그 분에게 작품을 보냈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이러리라고 대비했던 건 아니지만. 난 그 작품을 이미 공증해 뒀었어 ."
“그렇다면 그분이 작품을 받았다는 법적 증명이 될 만한 꼬투리는요?''
서례는 흡사 오리처럼 멀뚱멀뚱 아들을 쳐다본다.
하지만 꽤 뒤뚱대며 겨우 꽥꽥거림을 되찾는다.
“내 작품이라면 내 작품이야. 그런데 무슨 법까지 들먹이며 복잡해야 되는 거니?"
처음엔 멈칫거리다가 서례는 차츰 침착해지고 있었다.
“난 그 작품에서처럼 자식 하나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난 현재까지 화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작품에 나오는 툴루즈 로트렉의 ‘세탁부’가 내 가게에 엄연히 걸려 있고…… .”
아들은 잠시 웃어주는 표정이다가 이내 정색을 하더니, 금세 서례의 말을 가로막는다.
“그런 건 전혀 도움이 안돼요. 그 분이 정말 나쁜 사람일 경우. 표절이 라는 이름으로 되레 당한다는 상상을 왜 못하시는 거죠?''
“설마.”
아들은 사뭇 신랄할 정도로 몰아세운다,
‘모르세요? 설마라는 단어, 어머니가 내게 알려주신 말이라는 거. 그리고 지금에 와선 어머니의 그 설마 하는 안이함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는 거."
“난 적어도 남의 작품은 훔치지 않아. 그거니? 안이 하다는 게?”
며칠이 지나도록 미례와 준욱에게서는 전혀 연락이 없다.
서례는 너 무도 기이하게 여겨져 전화를 해본다.
준욱은 뭐가 잘못됐는지 계속 통화중이다.
미례는 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과 말 사이에 시들해지고 마른 마음이 시들시들 박혀 있다.
“언니 . 오빠가 지금 인터넷으로 알아는 보는데 그게 그리 쉽지를 않나 봐, 그리고 난 엊그제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날짜를 받았어. 당뇨 때문에 왼 눈을 수술해야 된대 ,"
“네 그 예쁜 눈을?''
“그리고 민서아빠한테 야단만 맞았다니까. 언니 대신 그 여자를 만나려면 강하게 욕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 내가 무슨 그런 깡다구가 있기나 한가고 말이야. 사실 이건 내 일도 아니고……”
(맞아, 맞는 얘기야. 이건 네 일도 아니지 .)
서례는 C에게 직접 전화를 넣는다. 서두부터 강하게 나오며 , 서례는 왼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소형 녹음기의 스위치를 약간 비치적거리는 심정으로, 비장하게 누르게 된다. 그래서 마치 소형 녹음기에 대고 비판하고 항의하는 느낌까지 들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곰곰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는 내 작품이 선배의 이름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안돼요. 소위 지식인이라는 선배가, 하물며 작가라는 분이 어떻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7년 동안 침묵만 치켜 왔는지도 의아스럽고…… .”
C의 음성은 생기도 생기려니와. 거의 발랄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였다.
“아! 그거? 얘, 네 작품이 도착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같은 아줌마가 일하거든. 며칠 동안 그 아줌마를 시켜 찾아봤는데. 글쎄 네 작품이 그대로 있는 거야. 내가 받았던 고료가 48만원인 게 이상해서 찾아보니까, 네 작품은 고스란히 있었어. 내가 콩트를 하나 보냈었는데, 결국은 그 콩트의 고료였던 거야. 네 작품은 중편이잖아. 중편은 나 정도 중견 작가면 2백만 원은 받거든."
“선배는 중견이라는 말을 퍽 자부심 있게 하시네요."
“이상하게 꼬인 소리는 그만하고, 그건 내가 보낸 콩트의 고료였다니까."
콩트. 서례는 C에게, 두 편의 중편은 물론이고 67편의 수필원고까지 보냈었다는 데에 겨우 생각이 닿은 것이다. 일시에 몰려드는 해일.
그 수필 중의 한 편이 C의 콩트로 둔갑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작품이 C의 이름으로 나갔었다는 실토를 들었을 때는 명치에 응어리가 생긴 것처럼 거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는 뒤집어 엎기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버거워서, 서례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차라리 작품이 잘못되었다는 상황이 낫기라도 한 것처럼 .
" 평소의 나는 문학에 대해서 별로 타산적이지도 본능적이지도 못했어. "
“아니죠. 아마도 타산적 본능에 충실하셨을 겁니다. 본능이란 건 그렀다면서요? 잘라 내도 계속 자란대요. 동물의 자절현상처럼요."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할 거니? 부탁인데, 서례야,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 일만은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
“이미 보따리가 풀리고 말았어요. 선배는 이 일을 실토할 때가 그나마 괜찮았는데……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거든요. 지금은 어떤 줄 아세요?”
서례는 또박또박 끊으며 으르렁대듯 말한다.
“드, 디. 어. 본색을, 드, 러, 내, 다!"
“점점 ? 근데 서례야, 내가 며칠 맘 잡고 알아 봤는데, 넌 책을 내도 아 무 이상이 없을 거래."
“애초에 그렇게 알아보고 그랬더라면 그나마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어쩌죠? 나는 더 이상 선배를 못 믿거든요. 일단은 각 문예지마다 조회를 해 볼게요."
“그게 원이라면 그렇게 해. 내가 알기로는 문예지가 약 백 개도 넘을 텐데…… 먼저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문예지가 백 개가 넘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이제와서 그런 식으로 걱정 하는 건 일종의 월권행위 아닌가요?"
“어떻게든 찾아봐. 그런 뒤에 내게 전화 좀 주고…… .”
“앞으로 절대 선배하고 전화할 일이라고는 없어요. 아시겠어요?”
서례는 가위로 싹둑 자르듯 매몰차게 말하며 전화를 끊고 녹음기도 스톱시킨다. 곧 바로 C의 전화가 다시 온다. 서례는 잊지 않았다는 듯 녹음기의 스위치를 다시 누른다.
“얘, 우리 대학 다닐 때 내가 승희와 널 참 예뻐했는데, 그런데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거니? 참, 슬프다‘
"정말 슬프세요? 악어의 눈물은 안 흘리셨나요?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그리도 간단하게 내 문학인생을 낚아채었냐고요?”
그제야 말문이 막히는지 C는 잠시 아무 말도 못 꺼낸다. 결국 침묵을 깬 건 C다.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왜 이렇게 너한테 당해야 하는지를…… .”
“나도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배의 임기웅변과 오리발에 대해서…… .”
서례는 자신의 음성이 난생 처음으로 격렬해져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지만 단호함만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가 않다. C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묻는다.
“너 정말 내 후배 맞니?”
“선배는 진정 내 선배 맞나요?”
“세상에, 그렇게 착하던 네가…… .”
“참 다행이네요. 나를 멍청이로 본 게 아닌가 싶어, 요즘 매우 섭섭해 있었거든요.”
C는 어딘지 모르게 격앙된 음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네 글을 내 이름으로 실었다면 내가 네 딸이다!"
서례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정말 안 그랬다는 얘기인가? )
“아니지 ,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내 자식들을 두고까지 맹세할게. 됐지?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고소라도 하던지 ."
“그런 걸 왜 하겠어요, 가톨릭을 믿는 내가……”
C는 마치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동포를 만난 듯 한 살가운 음성으로, 환성을 지르듯 말을 날리고 있었다.
“얘 , 나도 성당에 나가! 내가 성모님을 두고도 맹세할게. 그럼 됐지?"
“우이아? 엔깐따다!(어머? 반갑군요!)"
“그게 무슨 말이니?"
"걱정 마세요. 좋은 말이니까."
더 이상의 통화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례는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서례는 두렵고 겁까지 난다. C가 서례에게 해낸 여러 맹세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생겨날까봐.
화엄경에서였던가.
여인은 산달이 되어 친정으로 아기를 낳으러 가고 있었다. 그 여인은 친정에 닿기도 전.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환난을 맞게 된다. 낭군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막 낳은 아기는 뱀에 물려 죽으며. 큰애는 급류에 휩쓸려 죽게 되는 것이다. 혼비백산 찾아간 친정집엔, 부모형제들이 모 두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만이 남아있었다. 절간의 노승은 기진맥진 지쳐있는 여인에게 이렇게 설파한다. ‘당신은 전생에 어느 대감댁 의 후실이었습니다. 그때껏 후손을 못 보던 대감의 전처가 아들을 먼저 낳게 되자. 당신은 그 아기의 몸에 그만 바늘을 넣는 악역무도한 일을 저질렀지요. 시기심의 발로였습니다. 아기는 결국 죽게 되었고. 전처는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당신의 대답은 매우 거리낌이 없었지요. 〈내가 만약 그런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나는 후생에 천벌을 받을 거야. 내 낭군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내 큰애는 물살에 휩쓸려 죽을 것이며, 갓난아기는 뱀에 물려 죽겠고, 친정식구는 불에 타 죽을 거야. 이렇게 맹세할 정도로 나는 아냐. 절대로! 고승은 결론을 맺는다. ‘우리 중생은 말 한 마디조차, 헛되이 발설하거나 맹세해서도 안 됩니다. 말이 곧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C는 또 다시 전화를 해온다. 그리도 가혹하게 내몰았는데도 시근사근이 지나쳐 지근지근이다. 이쪽에서 화를 내는데, 같이 화를 안낸다는 자체가 뭔가를 인정한다는 게 아닐까.
서례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려고 승희에게 전화한다.
승희야말로 며칠 사이, C에게 완전히 세뇌된 나머지 C와 똑같은 말만 한다.
앞에 선배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는 것밖에는 특별하게 다른 게 없다. 선배는 중견이고. 선배는 성모마리아를 두고까지 맹세한다고도 그러고, 선배는 자식을 두고도 맹세하고 있고, 이 모든 일이 거짓일 경우엔 선배는 서례의 딸도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그런데 이 말만은 멈칫대며 실토한다.
" 근데, 있잖아? 그 선배, 내가 알아봤더니 전적이 벌써 여러 번이었어. 네가 세번 째야. 젊은 후배 하나 하고는 재판까지 갔었다더라."
서례는 이윽고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고자 미례에게 전화를 넣는다.
미례는 몹시 반가워는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례가 서례에게 묻고 있다.
“어떻게 됐어?"
서례가 꺼내려던 말을 미례에게서 듣게 되자, 서례는 그만 큭큭 웃음이 터졌다. 미례는 이미 그러기로 작정한 듯 서례를 달래기 시작한다.
“우리는 살면서 돈도 떼이고, 빚보증도 서보고, 사기까지 당해왔잖아.
"넌 어떻게 이 일을 그런 일들에 비유할 수가 있는 거니?"
" 알아, 언니 마음. 그래도 어쩌겠어? 사실 언니도 그렇지만, 나나 오빠가 이런 일에 나서서 야단칠 성격은 못되잖아. 그리고 정작 야단친들 또 어쩌겠어. 그리고 언니, 성욱이가 보도부국장으로 있는 방송국의 기자들에게 이 일을 터뜨릴까도 생각 안 한건 아니야. 성욱인 우리 형제 아냐? 좀 더 일을 지켜보겠지만, 가만 안 있을 거래."
"넌 뭐 하러 성욱이 한테까지 이 얘길 했니? 난 일부러 연락 안 했는데."
"어느 정도 윤곽은 알고 있어. 만약 그 여자가 못되게 나오면 그 앤 액션을 취할걸."
"그러지마, 그건 진정 나를 위하는 게 아니야. 나도 기분 같아선 혼을 내주고 싶기도 했었지만."
서례는 잘 안다. 큰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굳이 보상도 받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그걸 받아 무슨 맛있는 걸 사먹겠나, 어떤 예쁜 옷을 구입하겠나, 또는 집치장 같은 걸 할 수나 있으려는지, 그러면서 단호하게 거두절미 말도 못 꺼내게 하던 자신을.
15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때 보상을 얼마나 받았었는지를 캐듯이 묻는다. 받기 싫어서 안 받았다는 명료한 대답에, 사람들은 지금껏 몹시 아쉬워하는 데다, 아마 영원히 아쉬워들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이런 말들을 아주 자연스레 깔아 두면서.
-그런 건 받을 수만 있으면 꼭 받아내야 해요. 보람 있는 일에 쓰면 참 좋잖아요.
핸드폰의 신호음이 짧게 울린다. 달리 할 말도 없었으므로 미례와의 전화를 서둘러 끊고 만다.
"안녕하십니까? 홍 선생님. 서영사입니다."
“네. 영사님께서도 안녕하셨어요?"
“다음 주 화요일에 본국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님께서 오십니다. 그래서 대사관저에서 동포간담회가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 7시 30분입니다.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어요."
한국대사관저는 울창한 나무숲에 안겨있다. 만찬은 양식과 한식이 어우러진 풀 코스였는 데다 12명의 교민단체장과 반외교부장관과의 질의응답 등이 있었으므로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또한 12명의 단체장들은 이슈가 될 만한 화제를 각양각색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본국사람들이 8시간 수면을 취 할 때, 우리 이민자들은 4시간만 잘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아르헨티나의 포도주와 무공해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놓는 이도 있었다.
서례는 아들의 경우를 예로 든다. 서례는 글 을 쓸 때, 아들에게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제 아들은 어려서 이민을 따라 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애는 생각도 꿈도 서반아어로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다닐 땐 그 애의 생각과 꿈이 반반으로 나뉘어졌죠. 대학에 다니는 현재. 그 애의 꿈과 생각은 다시 서반아어로 돌아간 게 아니라, 모국어를. 본인도 모르게 다시 사용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정체성을 되찾은 것입니다. 비록 외국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임을 어떤 자리에서도 각인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가 터지자, 서례도 같이 박수를 쳐,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해지고 있었다.
현지인 남편과 사별하고, 혼혈아들과 살고 있는 A에게 들른다. A는 노년의 현지인 수리공과 수시로 마떼(호리병 박안에 뜨거운 물로 우려내는 아르헨티나산 녹차)를 마시고 있다.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스테인리스로 된 빨대를 서로 주고받으며 마시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먹던 술잔을 비우고 그 잔에 술을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처럼 아르혠티노(아르헨티나인) 들은 마떼통을 주고받으며 빨대를 같이 사용하는 걸로 서로의 결속을 다짐해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리공은 마떼만 같이 마시는 게 아니다. 가스레인지 앞에 A와 나란히 서서 , 주전자에 더운물을 같이 데우며 , 서례에게 귀찮을 정도로 여러 차례 권유하고 권유하는 것이다.
“노 그라시아스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
물론 서례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드디어 끝났다는 듯 수리도구를 챙겨든 수리공이 3층을 향해 올라간 뒤에야 A는 서례의 맞은편에 앉는다.
“굳이 수리공과 마떼를 그런 식으로 같이 마셔야만 시원하니 ?
”남의 나라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게 아니라,하는 거구나. 넌…… ."
"아냐, 그런 뜻이 ."
"집수리를 제대로 하려면 인간적으로, 친구처럼 대해줄 필요가 있어. 왜? 보기 싫었구나? “
“모르겠다. 현지인과 결혼했었기 때문에 넌 그런 일들이 가능하고 편안한지도.”
“넌 왜 가끔 애처럼 못되게 굴지? 다 그러고 사는 거야. 모자란 듯 넘치게."
‘넘치듯 모자란 게 아니고? “
“그만 두자. 그런데, 이건 분명히 해둘래? 그러는 넌 타인한테 잘 당하고, 이러는 난 절대로 안 당한다는 거 ."
“그래, 맞아. 참으로 맞는 얘기야. 요즘 내 주위에 맞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뒤꼍의 대나무 밭에서 댓잎들이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참, 네 작품은 어떻게 됐어, 찾았어?"
한 달 동안의 갈등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얻은 사람처럼 서례는 새삼 찹찹해진다.
혈혈단신이 어떤 건지, 외로움이라는 게 어떤 건지까지도 서례는 이 한 달 동안에 완벽하게 터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매번 무거운 우수가 농무처럼 내리 덮치려 고해서 서례는 자꾸만 고개를 휘젓고는 했다.
서례로서는, 한국의 출판물 공해에 일익을 담당하는 거나 아닌가 싶어서 , 그동안 계속 발간을 미루어 왔었고. 자비출판을 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꼭 책을 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A는 채근하듯 다시 묻는다.
“내 말 못 들었니? 문제의 그 작품이 어떻게 됐냐니까?"
“책을 낼까해. 그것도 꼭 실어야지 ,"
“그냥 이대로 덮을 거야? 그런 여자는 본때를 보여야 하는 건데 ."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난 더 이상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싶지가 않아. 이 문제에 발이 빠졌었다는 것만으로도 감탕밭 같았거든.”
“그래도 그런 여자는 단죄해야 된다! 너 ."
“그것도 내 소관이 아니고…… 난 그 작품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할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 나로서는 그 선배가 후생에 내 딸만 안 되면 참 고마운 거고…… ."
“무슨 얘 기 야?"
“그럴 일이 있어."
단정하지만 이번 일로 C나 서례 둘 중에, 허둥거린 사람이 분명 있을 터였다,
지난 밤 서 례는 꿈을 꿨었다.
어디서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너무나 듣기에 기분 나쁜 울음 소리였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와 자신과는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서례는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굳이 찾아 나섰다. C가 여러 사람의 몰매를 맞고 있었다. 서례는 C에게 달려들 듯 감싸면서 말리기 시작했다.꿈에서 깨어나자, 서례는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다.
차라리 서례가 전생에 C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고, 변모의 싹을 틔운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의, 자신을 향한 변화였다.
“걱정된다.”
“뭐가?”
“출판이 다 될 무렵. 넌 한국으로 전화할 것 같아. 그 작품은 빼주세요, 라고 말이야."
“그건 나도 장담 못해. 1분 사이에도 변하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A의 집을 나와, 서례는 거리를 걷는다.
거리는 눈부시게 밝다. 비온 뒤와 같이 더 깨끗해 보이고, 더 산뜻하며 더 상쾌하다.
그리고 하늘. 온통 하얗지도 않고 온통 파랗지도 않은 짙은 남색에 흰색 뭉게구름.
서례는 느닷없이 팔을 벌려 하늘에, 구름에 답한다.
해방감!
옛 중국의 현인처럼 심기일전하는 마음이기 까지 하다.
' 숲에서 일하고 돌아온 현인은 얼마 뒤에 도끼를 잃어 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총각이 매우 수상쩍다. 그렇게 의심을 품자. 총각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도끼를 가져갔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보이는 거라고만 연관 짓게 되고, 도끼를 훔쳐간 야비함으로만 결론이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인은 우연히 광에서 도끼를 발견한다. 그제야 숲에서 돌아온 날. 좀 더 잘 간직하느라 깊숙이 감춰뒀던 기억까지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현인의 눈에는 이웃총각의 일거일동이 도끼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떳떳하고 당당해 보이는 거로구나, 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며 매우 타당하고 마땅한 태도로만 비춰지는 것이었다.'
미아가 됐었던 자식을 가까스로 찾아낸 것처럼, 서례는 여러 편의 단편들을 목욕재계를 시키고 새로운 의복 일습도 갈아입힌다.
‘내 작품을 찾습니다.'
서례는 불쑥, 그리고 절절 외치려는 스스로를 굳이 토닥여댄다.
엄마의 자장가까지 읊어대며.
엄마처럼 자애롭게.
빗소리처럼 나직나직.
특히 후렴 부분을…… .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비교하지 마십시오...
- 법정 스님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맹하린의 생활 단상(斷想)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2007년 11월 16일
정오 무렵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대 강사인 딸이 제자들에게서 레슨비 챙기는 일에도 서툴고 데이트도 시들한 펀인데 유독 연주회를 준비하거나 피아노와 연관된 일을 할 때에야 비로소 사는 맛을 느낀다고 해서 한바탕 꾸짖었다는 하소연이었다.
'넌 왜 하필 지구의 끝인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글 따위나 끄적이며 중노동자로 살아가는 내 언니를 그토록 빼닮은 거냐’고 한탄과 원망까지 잔뜩 퍼부었던 모양이다.
무용을 전공한 분수도 잊은 채,동생은 자주 예술하는 이들을 한통속으로 몰아 세웠다.
꼴통 사이코! 그런 식으로.
나는 그 동안 동생의 그런 비난들을 의연한 태도와 모자란 웃음으로 잘도 받아줘 왔다.
예술보다 물질을 더 선호하는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이 지닌 가치에 문외한인 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비쳐질 리가 없다.
그랬다. 나는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쓸 때 가장 여유작작이며 감사까지 해대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비올레따 빠라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라는 시가 떠오르게 된다,
‘제가 두 눈을 떴을 때
하양과 검정 높은 하늘의 수많은 별,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이를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것을 주신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행과 불행을 구별하게 하고 웃음과 울음을 제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웃음과 울음으로 제 노래는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이의 노래는 같은 노래이며 모든 이의 노래 는 또한 제 노래입니다. '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선구자이자 대모로 추앙받는 칠레 민중가수 ‘비올레따 빠라’ 는 옥따비오 빠스,에르네스또 가르디날과 함께 중남미를 대표하던 시인이며 한 때는 산띠아고 대학의 박물관장이자 민속학자였다.
그녀가 작사 작곡한 불후의 명곡 ‘삶에 감사합니다’ 는 실연의 아픔 때문에 비극적인 자살로 인생을 끝낸 그녀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언에 버금가는 곡으로 남게 되었다.
이 곡의 가사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생의 찬미를 적나라하게 잘 나타낸 듯도 여겨지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갈망했으나 놓치고 말았던 것들을 내면적이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한껏 표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칫 축복된 삶을 찬양하려는 경향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이 노래는 독재치하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던 칠레 민중을 향해 처절한 밑바닥 생활을 굳세게 이겨내면서 민중이 품고 있는 복된 정신을 회복해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요소요소마다 살아있다.
그러한 삶과 혁명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나머지 지금까지 널리 전파되었고 여전히 즐겨 알려지고 있다.
가게가 한산한 시간에, 특히 내 마음이 묵정밭처럼 팍팍해 있을 때면
나는 비올레따 빠라의 곡이 여러 개 수록된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CD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짧다면 짧았던 비올레따 빠라의 아름다운 예술세계가 앞당겨 마감된 일에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애상 같은 걸 품게 된다.
비올레따 빠라와, 그녀의 노래들을 지금껏 열창하고 있는 메르세데스 소사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에서 각각 반독재 운동의 대표적 위치를 지켰던 인물들이었다.
민속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입증하는 작업을 생애의 으뜸가는 과제로 실천하며 상업주의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주관과 함께 민속음악을 계승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공헌해 온 비올레따 빠라.
그녀는 근대화라는 파도에 맞서 대안적 문화 창달의 재창조 및 재조명에 지극히 헌신적이었다. 그녀가 이룩해낸 업적과 삶에 뒤늦게나마 경외심과 더불어 찬사까지 보내게 된다.
비바람은 물론이고 폭풍이 몰아칠 때조차 경작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포기를 모르던, 글 농장의 수확물들 이외에, 나는 이렇다하게 내세울 재산이라고는 없는 상태다.
오로지 그것들을 사회에 헌공해야 할 숙제릍 풀어내느라 생업의 틈틈이 자투리 시간들을 알뜰살뜰 아껴 쓰고 있고.
각양각색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해방된 무소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겨 폄훼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고, 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거의 필수적이랄 수 있는 순수함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흠집을 내고는 했다.
처절하게 고통스러웠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참된 예술도 난해한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무소유와 외로움과 순수는 인간을 정화시키는 구석이 의외로 많음에랴.
비올레따 빠라가 만년에 남긴 ‘열일곱으로 돌아가기(Volver a los 17)'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의 정오나절을 상쾌한 마음으로 펼치게 된다,
‘당신들의 걸음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내 걸음은 뒤로 물러났어요.’
2011년 12월 27일 화요일
어른의 어른들
맹하린의 목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11월 9일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으리라고 한다.
더울 때 더워주지 않고, 추울 때 춥지 않으면 교민경제의 90%를 지배한다는 의류업계는 이래저래 심각한 형편에 후줄그레 젖게 되는 동시에 날씨에게 조차 위협을 받는 불안한 국면을 맞게 된다.
무심코 쏟아지는 빗줄기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S여사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때때로, 기쁨이라는 뜻을 지닌 ‘알레그리아’라고 불리는 꽃 서양봉숭아처럼 활짝 어니 환하게 웃다가 어떤 날은 목련처럼 기품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장미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운 성격의 문우 S여사.
둘째 딸인 인정이가 받는다.
“엄마 계셔?"
“없으세요. 아빠만 있으세요. “
S여사는 이민 온지 25년 정도 됐고, 그 딸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왔기 때문에 당연지사처럼 한국말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런 저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는데 입가에서 웃음이 퐁퐁 솟고 솟는다.
한국말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딸들을 미소 띤 얼굴로 설명하던 어느 날의 S여사가 연쇄반응처럼 재빨리 떠올라서였다.
“우리 마리아는 있잖아. 내가 손님초대를 한 날에 음식을 장만하노라면 으레껏 묻는 거야. 엄마, 오늘 잡지책도 만들어? 그 애는 글쎄. 잡채를 꼭 잡지책이라고 한다니까. "
그처럼 한국말이 서툰 딸들인데도 S여사는
딸들을 감싸는 보디가드 역할로도 부족하여
상관 앞에서 기를 못 펴는 졸병이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딸을 앞에 둔 엄마가 아니라
딸이라는 이름의 엄마 앞에서
엄마라는 이름의 딸이다.
어찌 S여사뿐일까.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자식 대하기를 친구처럼, 직속상관처럼, 극진하게 대우해야 할 영원한 손님처럼 열성스레 섬기고, 보살피고, 그리고 의지까지 한다.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였다니까 당연히 그렇게 일이 전개돼야 하지 않을까.
있으나 없으나 퍼주고 먹이는 것으로는 양이 안차서 매번 꼼짝달싹을 못하게
되는 관계나 다름 없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남편들은 전생에 우리 여인들의 원수였단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다음 생애에 복을 보따리보따리 받는다지, 아마.)
뉴욕타임지가 제시한 '경영전문가'와 '패널'들의 '자식에 대한 조언'을 잠시 펼쳐보기로 한다.
✿부유함의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려면, 인생의 참된 의미가 비싼 옷이나 자동차, 또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일과 교육,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부모가 직접 자녀에게 보여줘야 한다.
✿가정부가 있다고 해도 옷장정리나 설거지 등은 직접 하게 하고, 5 세 때부터는 모든 인간이 부자는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때때로 인식시켜야 한다.
✿자녀의 용돈은, 요구한 것보다 약간 적게 주고 일부는 자선기금을 내도록 유도한다.
✿자동차 사고 등이 났을 때 곧 바로 새 차를 사줌으로써 부모의 지갑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최선의 인간적인 방안은 아니며 이는 단지 자녀를 비뚤어진 길로 몰아넣을 뿐이다.
경기가 계속 지금과 같이 바닥을 헤맨다면 자식에게 따로 물려줄 재산은커녕 빚이나 안 물려주면 다행이겠다 싶어지는 작금이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이런 식의 호된 독감을 앓고 난 뒤엔 언제 그랬었나 싶게 호경기가 꿈결처럼 도래한다는, 참으로 매력을 지닌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대처하여 우리의 자식들을 새삼 기억하고 없는 각오도 새롭게 다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와 자식이라는 질긴 끈으로 연결됐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일상의 노고에 대해서 강한 효력의 북돋음이면서 위로의 원천이기도 하고 영원무궁한 보람인 그들, 우리의 후예들을 필히 염두에 두고 말이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일 때가 좀 많은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 군더더기가 없으며, 너무나 눈부신 그들.
2세들이여! 제발 바라노니 우리 어른들처럼 너무 많은 옷가게 일랑 차리지 말기를.
유태인들의 주머니만 살찌우는 백년하청의 모래성을 쌓아 올리던 우리였음을 뒤늦게
자인(自認)하노니.
-초여름- |
어젠 나를 항상 언니라며 따르는 유선 씨의 차를 타고 어느 모임에 연말결산의 감사 평을 하러 갔습니다. 칭찬만 했으면 좋았겠는데 불의를 보면 못 견디는 제 성격상 두어 가지 지적도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유선 씨는 아베쟈네다에 오래 전에 사 뒀던 건물을 지금 수리하고 있습니다. 20 대의 세 아들은 각각 아베쟈네다의 한인부속상이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했던 청년들입니다. 그 대가로 자동차를 하나 씩 소유했고, 둘째는 본국여행까지 해냈답니다. 그들이 참 대단하고 대견해 보입니다. 하지만 유선 씨의 남편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아직 60도 못됐는데 놀면 뭐하냐면서 최근 10여 년 동안 트래픽을 운전하는 직업을 선택했었거든요. 한인 타운 소재의 어떤 레미세리아(대절용 차량사무소)에서 기사로 일을 해온 겁니다.. 매우 입지전적인 가정의 하나입니다. 물론 트래픽은 유선 씨의 남편이 주인이었지만요. 내년 초에 옷가게를 개업할 계획인 것입니다. 그 가족은……. 포화상태인 아베쟈네다라지만 경험도 축적했겠다, 자기네 가게겠다, 어쩐지 갈채를 보내도 무리는 아니겠다싶어 이 글을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친애하는 벗님들……. 또 하나의 라이벌이 부상하는 중입니다!!! |
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크리스마스에
맹하린
격전장 같았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12월 마지막 밤이면 폭죽과 굉음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잠드는 밤.
그런데 그 전쟁터 같은 밤조차 별천지처럼 단잠을 자고 나서 가족한테 묻고는 하던 밤.
"어젯밤 폭죽소리 굉장했어? 별로던데."
그럴 때마다 가족은 E. T영화의 주인공 바라보듯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날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 폭죽소리를 제대로 들어내고 잠든다는 사실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폭죽의 위력도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여 그 요란함이 점점 대단한 경지에까지 치닫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새벽 5시인데 아직도 여진처럼 간간이 폭죽소리가 멀거나 가까이 들려오고 있어요. 마귀를 쫒는 중국 사람들의 관습을 익혔다고도 하는데, 이제는 퇴치가 힘들 정도로 의식화 되고 말았나 봅니다.
뉴스에 의하면 올해, 폭죽으로 다친부상자가 2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싼타 페 지방에 살던 27세의 청년 파브루시오 안뚜네스의 사고사는 폭죽놀이의 심각함을 극렬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청년은 실린더 모양의 3단으로 발사되는 폭죽을 거꾸로 입에 문 사실도 잊은 채 불을 붙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치아 전체를 상실하게 되었고 사망에 이르르는 불상사로 이어졌지만, 그 사건이 유일한 사고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성이 돌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조명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알레한드로 꼬시아 주 보건장관은 "최고의 놀이는 폭죽을 안 터뜨리고 노는것"이라고 말했을까요..
우리 가게는 입구의 문에 쇠로 된 빗장을 채워 겨울이나 여름이나 상관없이 문을 약간만 열어 둘 수 있게 설치해 놨습니다.
바쁠 때를 염두에 둔다면 종업원이 둘쯤은 있어야 하는데, 이 요란한 나라의 노동법은 날이 갈수록 보기 민망할 정도로 디룩디룩, 밉살맞은 쪽으로만 살을 찌우고 있습니다.
나는 힘든 걸 떠나서 오로지 글 쓰거나 책을 읽을 때의 한가로움을 방해 받지 않으려고 종업원도 없이, 단지 가족의 도움이나 받으며 내 손이 가장 수고를 자청하는 편이죠.
한 땐 겨울이건 여름이건 문을 훤히 열어두고 장사를 했었는데, 어느 날 매장의 문을 훤히 열어두고 작업실의 소파에 누워 잠시 낮잠을 즐길 때 좀도둑이 들어왔었답니다.
그 도둑은 이미 세 번째나 침입을 시도했었어요.
두 번은 작업실로 들어오려는 걸 매장과 작업실 사이에 있는 커튼을 통해 감지하고 내쫒았고, 마지막엔 작업실의 소파에 누워 살몃 잠들었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미가 느껴져 눈을 떠보니 그 현지인 도둑이 2미터쯤 떨어진 옆쪽에 서 있는 상황이 전개되어 있었던 거죠.
괄목할 만한 사실은 그럴 경우, 나라는 인간은 전혀 무서워하지를 않고 우선 잔머리부터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굴려내는 데다 침착함까지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어! 어떻게 이 안까지 들어오셨죠? 작업실은 고객들에겐 출입금지인데……. 우선 나가서 얘기합시다. 매장으로. 주문은 매장에서 받도록 할게요."
나는 태연자약 매장으로 먼저 나갔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는 나를 순순히 따랐어요.
그렇지만 매장에 나가던 나의 발길은 밖으로도 전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그럴 땐 특별히 조용조용, 그리고 설득력까지 얹으며 말하게 됩니다.
길엔 다행히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가게는 버스정거장 앞이거든요.
"다시 오면 안돼요. 내가 소리치면 50m 저쪽에 서 있는 사설경비원이 달려 옵니다. 알겠습니까?"
그날이었어요. 쇠로 된 문빗장과 초인종을 달게 된 날은.
그 문빗장을 하고 나서 한국 어르신들한테 야단도 참 여러 번 맞았네요.
중요한 문제는 그분들은 꽃을 사러 오셨던 길은 아니고, 단지 지나가다가 빼꼼하게만 열린 문이 어딘지 모르게 맘에 걸려 일부러 초인종을 누른 거였어요.
왜 문을 닫고 장사하느냐, 가게란 원래 문을 훤히 열어 놓고 해야 잘되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답이 따로 필요하진 않아요.
" 죄송합니다. 제가 글쟁이라서,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때로 나는 산책 중에 많은 개의 배설물을 보게 되어요.
그런데 그 일도 더럽다고 느끼진 않아요.
무척 예의 바른 것처럼 행동하는 현지인들도 저런 부분에선 숨겨진 국민성이 제대로들 드러나는구나, 그러고 맙니다.
나의 이러저러한 성격을 아들이 고스란히 답습했다고 봅니다.
(언제나 짚고 가는 얘기지만, 이건 자랑도 못되고 자랑도 아닙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너무 신경을 쏟으며 우리의 소중한 생을 낭비하며 살지는 말자는 뜻에서 적는 거랍니다.)
내 가게의 건물주는 50대의 현지인 여인 크리스티나입니다.
하필 이 나라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데 성격도 비슷하게 닮은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두 크리스티나는 우선 용감무쌍합니다.
심심하면 경제를 뒤흔드는가 하면, 월세를 올리려 들거든요.
처음에 400페소로 시작했던 월세가 지금은 1800페소까지 오른 상태이고, 내년부턴 300페소를 더 내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그녀의 큰소리는 꽤나 협박적이고, 너무도 탕탕합니다.
월세를 한 번도 미룬 적이 없고 이웃가게처럼 두어 번 나눠서 지불하지도 않았었으므로 그녀는 내게 한 달에 한번은 엄청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연한 배와 같습니다.
하지만 월세를 올리려 들 때는 우선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럴 때, 크리스티나의 말투는 지극히 빠른 편이라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 말하고 저는 그녀의 그 사나운 부리에 쪼일까봐 순간적인 두려움을 몇 번인가 본의 아니게 느끼고야 맙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들과 절충방안의 대화를 서로 주고받도록 일을 그렇게 주선합니다.
그 정도의 의사소통이야 나로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들을 어느 정도 단련시킨다는 의미에서도 나는 일부러 그러는 편이죠.
아들이 얼마나 간결하게, 얼마나 친절하게 크리스티나를 압도하는지를 나는 나중에 새치름 접수만 하면 된답니다.
결과는 이웃 가게들한테는 비밀이다, 너희는 석 달 뒤부터나 올리겠다고 그러면서 재계약은 피할 수 없으나, 두 달 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맡기는 건 눈 감아 준다고 하는 데다, 그리고 특히 보증인이 없어도 된다고까지 말하는 사태가 벌어지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무슨 말을 한 건가를 물으면 아들은 그래요.
어머니는 몰라도 되고 , 그런 걸 다 늦어서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웃가게들과 합심해서 반대하고 나선다면 어느 정도 늦춰질 사안입니다.
하지만 이웃 가게들은 크리스티나를 마귀처럼 무서워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행여 나가랄까봐 걱정이 앞선 나머지 말이 나오자마자 잽싸게 올려들 줍니다.
그런 연유로 일은 언제나 불리한 쪽으로 발전을 거듭하기 마련입니다.
건물주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해서 이래저래 세입자만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거나 아닌가 그런 단정까지도 생겨납니다.
세상은 갈수록 점입가경인 격동의 시대로 치닫는 기미가 잦군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이들처럼 때로 배회하는 심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때 역시 많은 듯 싶습니다.
그러니 겸허하게 살아야겠다
조용히 사는 게 훨씬 보기에 좋다
그렇게 차츰 깨우치게도 됩니다.
최근의 나는 가까스로 고즈넉함을 회복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지금은 한층 안정적인 심정입니다.
친애하는 그대.
즐겁고 행복한 성탄을 보내시기를!!!
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열매를 팔지 않고 씨앗만 팝니다...
- 틱낫한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중에서 -
한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갔다.
그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신(神)이었다.
무엇을 파느냐고 묻자
신은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팝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인은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 못 찾으신 것 같군요.
부인, 이 가게에선 열매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크리스마스에 보내는 미소의 가치
-펌
미소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도 많은것을 이루어 냅니다.
미소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는 만들지 않습니다. 미소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미소에 대한 기억은 때때로 영원히 지속 됩니다.
미소없이 살아갈수 있을만큼 부자인 사람은 없고,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소는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 내며 사업에서는 호의를 베풀게 하고 우정의 표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미소는 지친 사람에게는 안식이며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햇빛이고 슬픈사람에게는 태양이며 또한 모든 문제에 대한 자연의 묘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소는 살수도 없고 구걸할수도 없으며 빌리거나 훔칠수도 없습니다.왜냐하면 미소는 누구에게 주기전에는 아무쓸모가 없기 떄문입니다
미소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도 많은것을 이루어 냅니다.
미소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는 만들지 않습니다. 미소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미소에 대한 기억은 때때로 영원히 지속 됩니다.
미소없이 살아갈수 있을만큼 부자인 사람은 없고,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소는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 내며 사업에서는 호의를 베풀게 하고 우정의 표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미소는 지친 사람에게는 안식이며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햇빛이고 슬픈사람에게는 태양이며 또한 모든 문제에 대한 자연의 묘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소는 살수도 없고 구걸할수도 없으며 빌리거나 훔칠수도 없습니다.왜냐하면 미소는 누구에게 주기전에는 아무쓸모가 없기 떄문입니다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맛있는 밥
-심재휘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나뭇가지들이 계절을 버티는 창 밖을
슬쩍 본 것은 잠시였는데
지나간 사랑이나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간신히 생각한 것도 잠시였는데
식판에 놓인 젓가락의 그림자는 그새에도
철길처럼 길게 늘어나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 앉은 것은 별 때문만이 아니었으나
어느새 해는 따라와 자신의 영토 속으로
내 끼니를 끌고 들어가는데
나는 배고픔도 잊고 젓가락의 그림자를
보이지도 않는 노쇠의 행로를
눈금 그으며 지켜보다가
부질없어 부질없어 밥이나 먹었다
잔상은 때로 질기고도 깊어
젓가락은 내 손에서 열심히 제 삶을 부리건만
그림자는 허공에 여전히 남아
모진 생애의 그늘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하얀 식탁은 한없이 넓은데
나는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밥만 먹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슬픈
맛있는 밥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나뭇가지들이 계절을 버티는 창 밖을
슬쩍 본 것은 잠시였는데
지나간 사랑이나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간신히 생각한 것도 잠시였는데
식판에 놓인 젓가락의 그림자는 그새에도
철길처럼 길게 늘어나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 앉은 것은 별 때문만이 아니었으나
어느새 해는 따라와 자신의 영토 속으로
내 끼니를 끌고 들어가는데
나는 배고픔도 잊고 젓가락의 그림자를
보이지도 않는 노쇠의 행로를
눈금 그으며 지켜보다가
부질없어 부질없어 밥이나 먹었다
잔상은 때로 질기고도 깊어
젓가락은 내 손에서 열심히 제 삶을 부리건만
그림자는 허공에 여전히 남아
모진 생애의 그늘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하얀 식탁은 한없이 넓은데
나는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밥만 먹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슬픈
맛있는 밥
내 안의 목소리
-류시화
시간은 덧없다.
고대 힌두의 속담에 의할 것 같으면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다.
덧없는 시간 속에서 삶은 흘러간다.
짧은 생의 많은 부분을 일상적인 일들이 차지해 버리고,
뚜렷이 비극적인 사건이 있거나
크게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 걷잡을 수 없는
삶의 허무함이 나를 엄습한다.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과연 삶의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가?
그것은 삶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고(苦),
저 고타마 싯달타가 알아차렸던 '두카'인가?
허무함 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됨의 부조리?
시간의 되돌릴 수 없음?
함정은 도처에 있다.
우리를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삶의 길을 떠났던 한 여행자를 나는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내면의 길'이라고 불렀다.
지도조차 없는 여행. 니르바나로의 여행.
나는 강과 산을 건너 그를 따랐다.
한동안 내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
강을 만나면 강가를 걸었고,
숲을 만나면 그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
병들면 아파했고,
기차가 쉬는 낯선 곳에 무작정 내려서
먼 들판을 걷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여행자가 곧 나 자신임을 알았다.
내 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시간은 덧없다.
고대 힌두의 속담에 의할 것 같으면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다.
덧없는 시간 속에서 삶은 흘러간다.
짧은 생의 많은 부분을 일상적인 일들이 차지해 버리고,
뚜렷이 비극적인 사건이 있거나
크게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 걷잡을 수 없는
삶의 허무함이 나를 엄습한다.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과연 삶의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가?
그것은 삶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고(苦),
저 고타마 싯달타가 알아차렸던 '두카'인가?
허무함 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됨의 부조리?
시간의 되돌릴 수 없음?
함정은 도처에 있다.
우리를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삶의 길을 떠났던 한 여행자를 나는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내면의 길'이라고 불렀다.
지도조차 없는 여행. 니르바나로의 여행.
나는 강과 산을 건너 그를 따랐다.
한동안 내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
강을 만나면 강가를 걸었고,
숲을 만나면 그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
병들면 아파했고,
기차가 쉬는 낯선 곳에 무작정 내려서
먼 들판을 걷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여행자가 곧 나 자신임을 알았다.
내 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 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멜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것은 한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도종환
말없이 마음이 통하고,
그래서...
말없이 서로의 일을 챙겨서 도와주고,
그래서 늘 서로 고맙게 생각하고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방풍림처럼 바람을 막아주지만,
바람을 막아주고는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서 있는 나무처럼
그대와 나도 그렇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이 맑아서
산 그림자를 깊게 안고 있고,
산이 높아서
물을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그렇게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과 물이 억지로 섞여 있으려 하지 않고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거기 있지만,
그래서...
서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말없이 마음이 통하고,
그래서...
말없이 서로의 일을 챙겨서 도와주고,
그래서 늘 서로 고맙게 생각하고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방풍림처럼 바람을 막아주지만,
바람을 막아주고는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서 있는 나무처럼
그대와 나도 그렇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이 맑아서
산 그림자를 깊게 안고 있고,
산이 높아서
물을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그렇게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과 물이 억지로 섞여 있으려 하지 않고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거기 있지만,
그래서...
서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재진
갑자기 모든 것 낮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갑자기 모든 것 낮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성탄 편지
이해인·수녀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
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
슬픈 이를 위로하고
미운 이를 용서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
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
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
먼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
죄가 많아 숨고 싶은
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
기도로 봉헌하며
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
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
우리도 성모님처럼
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
그 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해요.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아기예수의 탄생과 함께
갓 태어난 기쁨과 희망이
제가 그대에게 드리는
아름다운 새해 선물인 것을….
대신 매를 맞고
-복효근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당신은 목에 너무 힘을 준다는 것 알아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마음이 한 움큼 뜯겨나가고
뉘우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뉘우치며 하루가 지나고
또 e-메일이 왔다
-어젯밤 술에 취해 방배동에서 모 시인과 다퉜는데
돌아와 그 시인에게 e-메일을 보낸다는 게
잘 못 배달된 것 같네요. 죄송해서 어쩌지요?
평소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나도 답 메일을 이미 보낸 뒤였다
딸아이 피부약을 내 감기약인 줄 알고 먹고서
감기가 나은 적도 있다
대신 매맞고 뉘우친 마음의 자리 푸른 매 자국이 싱싱하다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당신은 목에 너무 힘을 준다는 것 알아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마음이 한 움큼 뜯겨나가고
뉘우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뉘우치며 하루가 지나고
또 e-메일이 왔다
-어젯밤 술에 취해 방배동에서 모 시인과 다퉜는데
돌아와 그 시인에게 e-메일을 보낸다는 게
잘 못 배달된 것 같네요. 죄송해서 어쩌지요?
평소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나도 답 메일을 이미 보낸 뒤였다
딸아이 피부약을 내 감기약인 줄 알고 먹고서
감기가 나은 적도 있다
대신 매맞고 뉘우친 마음의 자리 푸른 매 자국이 싱싱하다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집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9월 28일
모처럼의 여행을 4박 5일 동안 다녀왔다.
고려사의 비구니스님 두 분과 함께였다.
집 걱정은 잊고 훌훌 잘 다녀오라는 가족의 선선한 허락에 나는 배낭과 손가방 하나를 간단히 챙겼고, 두 분의 스님들께선 그야말로 특특한 빛깔의 광목으로된 바랑 하나씩이 전부였다.
San Javier 산으로의 드라이브.
산자락의 중간에는 세 분의 비구 스님들이 계신 Tucuman 한마음선원이 한국의 사찰처럼 좋은 경관과 탑까지 세운 위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문우 윤상순 시인의 남편이신 서원장님의 자동차로 구불구불 돌고 돈 뒤 그 산의 정상에 오르니 Tucuman 시가지가 사탕수수밭들과 함께 넓게 펼쳐져 있었다.
Tucuman에서 Cafallate 까지의 여섯 시간.
Cafallate에서 Cachi와Salta, Salta에서 frontera,
Frontera에서 다시 Tucuman,
Tucuman에서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의 강행군이 곁들인 알찬 여행에서 나는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경치들을 꼼꼼하게, 그리고 마음 켜켜이 담아 두었다.
그 과정에는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지어진 정말 험난한 계곡들이 많았었고, 투어 차량으로 100Km를 달려도 끝이 안 보이던 다양하고 그럴듯한 이름들을 지닌 흙산들도 참 감격적이었다.
아직껏 잔설을 머리에 얹은 채 앉아 있던 산을 바로 옆에 하고 Cachi의 정상에 닿았을 때는 우리 일행이 백두산 높이와 버금가는 2.280고지에 올라 있는 것이라 했다.
어떤 250Km의 코스는 나무숲과 호수로 둘러싼 푸른 산.
어떤 160Km의 코스는 붉거나 하얗거나 회색으로 어우러져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무색해 할 것 같은 흙산.
어떤 160Km는 돌과 선인장과 시냇물로 장관을 이룬 겹겹의 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모든 크고 작은 산들이 로스안데스의 작은 줄기에 불과하다니 감탄이 넘쳐 저절로 말문이 막히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날의 잠은 괜찮은 호텔을 찾아 묵었고, 식사문제는 스님들이 각각 짊어진 바랑의 쌀과 밑반찬과 작은 전기밥솥이 해결해 주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적은 인가와 검은 머리의 인디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집 앞의 마당에 마른 선인장 통들을 내어놓기는 했지만, 따로 정한 값을 부르지 않고 Voluntad(마음대로)을 내어 놓으면 된다고 얘기하던 인디언의 후예.
그 선인장 통들도 절대로 마구 잘라낸 것들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던 선인장들만을 말려낸 자연보호 측면이 눈에 훤히 보이는 상품들이었다.
인디언 부족들이 잔존해 있는 Cachi마을의 도자기 상품들 역시 전통과 토속미를 고수하려는 의지만이 굳건한 모습들이었다.
강물을 길어 올려 풀풀 날리는 먼지를 어린아이 달래 듯 잠재우던 그들.
낡은 판자처럼 굳어 있는 마른 밭을 화락화락 갈아엎는 광경은 마치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파도와도 같았다.
Frontera 온천을 소중한 듯 담쏙 안고 있는 산자락의 아름드리 나무숲에는 내가 수집하는 착생 란들이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러 포기를 뜯어 가방에 챙기는 나를 두고 작은 스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맹보살님(그분들은 나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보살이니 처사니 그런 호칭을 초지일관 고수한다.)은 그 몇 개의 포기만을 소유하는 셈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우리 것이 아니기도 하지요.”
참으로 묘한 여운이 남는 얘기라서 이미 가방에 넣었던 착생 란들을 다시 아름드리나무에 붙일까 말까 그런 갈등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치미 떼는 기분으로 애꿏은 가방만 두어 번 토닥이고 말았다.
이렇게나 훌륭한 산천을 두고 왜 우리는 속속 이 나라를 떠나고 있고,
그리고 떠날 계획들인 것일까.
하물며 아무 것도 남은 게 없고 그야말로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진 심정인 나는 이 나라에게 이리도 강한 애착이 드는 것을.
그 빌렸던 배낭까지도 원래의 주인인 친구에게 돌려주려고 엊그제 아침미사에 들고 갔더니,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집을 나오셨습니까?”
신부님께서 웃으며 물으셨으므로 나도 웃으며 대답한다.
“네. 신부님, 저는 날마다 집을 나옵니다.”
다음 말은 속으로만 해낸다.
(그런데 어둡기도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내 가족과 우리 집을 무진장 사랑하거든요.)
날마다의 방황도 그럴 듯하지만, 내가 머물 곳, 그리고 기댈 곳은 언제나 가정이다 . 그리고 가족이고.
너무나 고맙고 반가운 내 가족, 그리고 언제라도 포근한 내 집, 그리고 우리 집.
-초여름- |
그 여행 중에 스님들에게서 많은 좋은 점을 진정한 배움으로 익혔었다. 한 가지 내 것으로 접수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계속 망설이게 되던 대목이 있었고, 아직도 내것으로 흡수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분들은 수세식 화장실의 물내림도 물일 경우 그냥 놔두고 모아서 한꺼번에 누른다는사실이다. 지구의 물 아끼기 운동의 일환에서다. |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나는 나쁜 시인
-문정희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봐.
민중 시인 K는 유럽을 돌며
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
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고백컨대
나는 유럽을 돌며
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목숨의 아름다움과 허무
시간 속의 모든 사랑의 가변에
목이 메었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지.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성벽을 바라보며
오래 그 속에 빠지고만 싶었지.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봐.
곤돌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
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
몸을 떨었어.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봐.
민중 시인 K는 유럽을 돌며
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
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고백컨대
나는 유럽을 돌며
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목숨의 아름다움과 허무
시간 속의 모든 사랑의 가변에
목이 메었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지.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성벽을 바라보며
오래 그 속에 빠지고만 싶었지.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봐.
곤돌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
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
몸을 떨었어.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
편지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6월 28일
토요일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에 마음이 한껏 고즈넉해지면서도, 비가 내리는 날은 장사를 공치는 날이라던 D가 생각나 쿡쿡 웃게 됩니다.
왜 토요일마다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고 투덜투덜 볼멘소리를 하며 현실감 느껴지게 속상해 하던 D입니다.
토요일마다 해내던 빨래를 햇볕 쨍쨍한 날에게 맡겨 두고 온세를 향해 갑니다.
바람이, 거리 모퉁이에 쓰러져 있는 젖은 낙엽들을 힘을 다해 날리며 악동들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그냥 좀 웃어보려고 여러 개의 오락프로를 봤었다면서, 나도 좀 웃어보라고 건네주던 T에게 웃음보따리를 돌려주려고 나선 길입니다.
서세원 쇼였어요.
웃고나서 손해는 안 본 것 같은 느낌의 웃음을 자꾸만 터뜨렸었습니다.
T. 그는 진정 웃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느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하루 평균 400번을 웃는 반면, 성인은 15번 웃는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글쎄요. 그 15번도 제대로나 웃었을까요.
온세에 가면 내 격의 없는 친구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생존의 물가에서 나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듯, 누나 몰래 돌을 던지듯. 마치 딴 동네 사람처럼 시침 뗀 얼굴로 종달새처럼 지저귑니다.
그러노라면 잔잔한 깨달음이 자디잔 풀씨처럼 싹틉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평화로운 상태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봅니다.
평화는 생존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던가요?
자기 자신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의 가족, 그리고 이웃이나 친구조차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서 우리 인간은 너무 거창하게 큰 일만 모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공허는 너무 쉽게, 너무 급격히 다가오는지도 모르죠.
야망, 명예, 권력 그런 게 다 무엇입니까?
당장에 내가 ,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지금 평화를 잊고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나는 요즘 장학생이 됐다고 합니다.
전통찻집에 가면 장학생이라고 찻값을 받지 않습니다.
미장원을 하는 문우를 방문하면 억지로 의자에 앉혀져 머리를 잘립니다.
그리고 내게 대한 배려로는 맘이 안 차는지 언제나 웃고 웃는 S.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사주는 친구 P.
일요일에 성당에 가면 친구들이 제 점심 값을 묵계처럼 서로 돌아가며 지불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열심히 머리를 빗고, 더욱 신경을 쏟아 옷을 차려입고, 그리고 뭐든지 잘 먹으면서 그들의 예쁜 마음을 좀 더 빛내주려고 애를 쓰고는 합니다.
하지만 나 정말 장학생 맞습니까?
혹시 염천교 출신이 아닌지 자신의 행적을 좀 되돌아보게도 되는군요.
때때로 그런 식의 대접에 마른 웃음이 헛헛하게 터집니다.
그건 결단코 씁쓸한 웃음이 아닌, 마음을 모두 비워버린. 그리고 뭐든지 위탁해버린 웃음과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내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자긍심이 살며시 키재기하듯 차츰 머리를 세우죠. 그러다가 금세 태연자약한 상태로 환원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를 이해하려면 묵묵히 그런 식으로 참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 어느 날부터 공중에 나는 새처럼, 들에 돋아난 풀처럼, 저절로 자연처럼 살아집니다.
마치 자연의 일부분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나 이제 내 친구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뭔가 되고 싶습니다.
냇물이 퍼지듯, 멀리멀리 퍼지듯, 나 그들에게 물결이고 싶습니다.
누나 몰래 손등을 간질이듯 그들의 바쁜 마음을 살랑살랑 달래주는 미풍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 오늘도 웃습니다.
바보처럼 웃습니다.
모자라게 웃습니다.
상쾌하게 웃습니다.
당신의 내게 대한 신뢰감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날에 이글을 적었습니다.
제가 너무 적나라하게 겸손을 부린 거나 아닌지요?
저는 냉수 먹고 속 차리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잘난 척, 있는 척하는 과는 아니니까요.
내내 안녕을.
언제나 나보다 당신이 더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초여름- |
아베쟈네다 지역의 꽁꼬르디아 700대에 있던 우리 집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지금은 세상이 다 내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부자의 맘되어 사는 나. 격언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버는 것보다 더 쓰고 사는 게 바로 가난이다.’ 그렇다면 저는 어느 덧 재벌입니다. 절약정신, 그게 내 몸과 마음에 가득가득 넘치니 말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교민 4대신문에 써냈던 글들이 50여편이 조금 넘습니다. 스켄해서 올리는 일이 더 복잡하여 워드로 찍으려니 자꾸만 게으름이 피어납니다. 몇개는 너무 맘에 안들어 퇴고하기도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내렵니다. |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귀가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어제
맹하린
어제는..
수필동아리에서 비빔밥파티를 연다며 저녁초대를 해왔습니다.
생선전, 잡채, 오이소박이 붉은 김치와 백김치, 그리고 와인까지 곁들여진 진정 푸짐한 식탁이었어요.
열다섯이 둘러 앉아 정갈하면서도 맛까지 있는 식사를 몹시도 기분 좋게 했었네요.
그런데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그릇을 비워낸 저는 살짝 빠져 나온 거 있지요?
왜냐하면 오늘은 새벽에 꽃시장에 가야 했거든요.
어제는..
예외 없이 8시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부엌과 거실의 바닥을 물걸레로 말끔히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다가와 자장가를 불러 줬나 봅니다.
잠이 나를 토닥이며 재워준 밤.
울먹이지도 못하게 금세 재워준 밤.
잠속으로 빠지면서는 그러는 잠이 참 야속하고 미웠지만, 아침에 일어나선 그래줬던 잠이 참 고맙고 소중한 존재로 부상되었던…….
어제는..
누군가 나를 좀 속 썩인 듯도 한데 지금은 그 사실 말짱 잊고 말았군요.
왜 그랬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나의 그 속상함이 지금 나는 속 안 상합니다.
친애하는 그대..
산다는 건 그렇더군요.
닫아 걸어도 마음의 문은 때로 열리기 마련이더군요.
원망과 몰이해는 어떤 면으로는 끌고 당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더군요.
내게 평화와 소통을 선물하는 뜨락이어도 어떤 행간에서는 부호가 증발하는 찰나가 참으로 많은 장르가 아니었나 싶어집니다
그런데 나는 그 뜨락이나 낯익은 얼굴들에게 이렇다하게 도움을 준 일이 없었으므로, 나 또한 이렇다하게 바라는 게 없었던 게 아닐런지요.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처럼
슬픔은 이미 내 감정의 문으로 들어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새삼 엷게 퍼지는 기미가 느껴집니다.
내 눈에 이제야 눈물이 약간 맺히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책상에 앉아 있지만
내 맘은 혼자 서성이는 시간인 줄 착각을 시도하려고 해서
나 지금 내 맘 호되게 다구치고 있답니다.
지금은 기분이 거의 회복된 상태라서 사진에 대해 설명을 좀 하겠습니다.
문협총회에서 제가 상 받았어요. 일 년 동안 문협을 위해 애썼다고 주는 상이랍니다.
알죠.
졸립다고, 성가시다고, 꽃시장 가야한다고
요리조리 핑계 대고 자주 안 나올 게 뻔 하니까 그렇게 올가미 씌운다는 거!!!
화사한 꽃그림이 그려진 부부찻잔이었어요.
이미 내 소유니까 당장에 이름을 바꿨어요.
친구찻잔.
또 다른 사진은 그날 2차 가서 먼저 손부터 씻느라 늑장을 피웠더니 제 자리를 박 회장과 중앙일보 기자하던 종신 씨의 중간에 아주 비좁게 마련해 둔 장난꾸러기들...... .
날씬한 사람이라 그랬다는, 짓궂긴 하지만 언제나 동생 같은 예쁜회원들.
연말이라 거리를 빙빙 돌며 세 번째에야 찻집에 들어 갈 수 있었어요. 찻집마다 만원.
그런데 사진을 찍어 둬야 한다고 노부회장이 찍는 순간 종신 씨가 피신을 해서 박 회장하고만 찰칵!
아쉬어라~
종신 씨가 필히 함께 했어야 하는데.
왠가 하면 종신 씨 부인께서 저한테 맨날 만년소녀라고 놀림인지 칭찬인지 그러거든요.
근데 나 왜 저리 웃죠?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 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 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천 번의 퇴짜
맹하린의 생활산책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5월 18일
텔레비전에서는 가또 두 마스(Gato dumas)의 요리 강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월요일 정오에 가또 두마스의 요리강습이 있을 거라는 예고가 화면의 아래쪽에 자막으로 장식되어 종종 걸음치둣 지나감을 눈에 익혀 두었었다.
평소의 나는 요리 강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가또 두마스의 희극배우 같은 요리강좌에 여러 번 매료된 적이 있었으므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시간을 기억해 두고 있었다.
가또 두마스가 소유하고 있는 삘라르지역의 낀따(별장)에서 거행되고 있는 그 강습은 아르헨티나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저명인사들이 많이 초대된 쟁쟁한 디너파티였다.
그 곳에서 걷히는 순이익은 극빈자들을 위한 후원기금으로 사용하리라는 주제를 지닌, 괘나 의미 깊은 만찬회였다.
가또 두마스와 그의 오른 팔 격인 수석 조리사는 물론, 텔레비전 방송국의 카메라 기자들까지도 꼬시네로(요리사)제복을 갖추고 머리엔 흰 캡을 얹은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열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각국의 유명인 들이 뽑은 세계 유명요리사 100인 안에 들어있는 가또 두마스는 3대째 요리사라는 직업을 이어온 벽안자염의 노인이다.
그가 튀김 요리로 선택한 * 마땀브리또와 닭과 생선, 그리고 파이가 화면을 통해서 매우 먹음직스럽게 비춰졌지만 그의 위트 있고 익살맞은 요리과정의 설명이 더욱 기발하고 유쾌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기름은 항상 후레스꼬(신선한)를 선택하는 게 튀김 요리를 조리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라고 말할 때 , 비엔 비엔 후레스꼬(매우 매우 신선한)와 비엔 비엔 깔리엔테(매우 매우 뜨거운)로 달군 기름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름이 얼마나 제대로 잘 달궈졌는지를 확인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려보면 그 물방울 튀겨지는 소리가 타악 탁, 탁구공이 튀는 명쾌한 소리를 내게 된다면서 거구의 몸을 매우 가볍고 날렵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실제로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타악 탁 물방울 튀기는 소리까지 곁들이면서 춤추듯 연출해 낼 때의 그 진지한 자세는 참 보기 좋았고 흐뭇하게까지 느껴졌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대단한 자신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음식은 재료의 우열보다 만드는 사람의 애정이 맛의 포인트라고 했던가.
그는 잊지 않고 충고 몇 마디를 설파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쉽게 만들기를 바라지 말라. 조리과정이 쉬우면 맛도 쉽게 된다.
끓이고 있는 소파(국)가 약간 짜다 싶으면 찬물을 넣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오래 끓여도 설익은 국물 맛이 난다. 국물이 뜨거울 땐 뜨거운 물을 붓도록 해라.
마침 그 만찬회에 참석한 유명한 사회자 미르따 레그란 여사가 가또 두마스가 내어 준 음식을 시식하면서 엑셀렌떼(탁월)한 맛이라고 격찬했다. 그리고 직업의식을 잊지 않고 질문까지 해냈다.
" 지금까지 요리를 해 오면서 음식이 잘못되었다고 타박 맞거나 반품되어 본적은 몇 번이나 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또 두마스의 대답은 의외로 당당하였고 또한 진지했다.
그는 말할 때 춤추듯 얘기하는 태도 역시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 타박 맞거나 퇴짜 맞은 적이 몇 번인가를 물었습니까? 몇 번 일 것 같습니까? 두 번? 세 번? 아닙니다. 밀레스 데 베세스(천 번이라고 할 정도로 수도 없이)의 퇴짜였지요.
가또 두마스는 젊은 시절 럭비선수였다고 한다. 이 나라의 폴로와 럭비는 재산가의 자손이 아니면 손 댈 수없는 고급의 경기종목에 속한다.
럭비 선수일 때, 그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눈치가 빠르며 교묘한 술수로 경기를 치루곤 했다고 해서 그의 두마스라는 성씨 앞에 가또(고양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60년대에 영국에 머물며 히피들과 어울려 살았었다는 일화는 그에게 있어 그림자처럼 바짝 따라 다닌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팔뚝에는 휘그라 디부하다(문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그는 한 때 히피였다는 사실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데다 도리어 자랑으로 삼는 사람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기르고, 하루하루를 진정 자유롭게 살아냈었다고 그 시절을 그립게 회상하기를 즐기는 가또 두마스에게는 3대째 내려오는 그의 직업이자 천직도 자랑거리 중의 자랑거리이다.
세따문(통일교의 문선명교주)이 아르헨티나를 방문 할 때마다 만찬요리를 맡는 일도 그의 자랑 중에 빠짐없이 들어간다.
세계요리경연대회에서 따내온 수십 개의 메달과 트로피들도 그를 긍지에 찬 명예의 자리에 올려놓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 얼굴에 어울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가또 두마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품격을 가장 완벽하게 지켜온, 그와 어울리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일 역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가또 두마스가 열정을 다 바쳐 일구어 낸 나날들이 있어, 그는 요리사로서의 장군자리에 추대된 게 아닌가, 그런 감회에 잠긴 마머지, 그 프로가 이미 끝났는데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한참이나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껏 나의 뇌리엔 '천 번의 퇴짜'라는 표현이 연거푸 맴돌고 있는 느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 마땀브리또의 사진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5월 18일
텔레비전에서는 가또 두 마스(Gato dumas)의 요리 강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월요일 정오에 가또 두마스의 요리강습이 있을 거라는 예고가 화면의 아래쪽에 자막으로 장식되어 종종 걸음치둣 지나감을 눈에 익혀 두었었다.
평소의 나는 요리 강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가또 두마스의 희극배우 같은 요리강좌에 여러 번 매료된 적이 있었으므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시간을 기억해 두고 있었다.
가또 두마스가 소유하고 있는 삘라르지역의 낀따(별장)에서 거행되고 있는 그 강습은 아르헨티나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저명인사들이 많이 초대된 쟁쟁한 디너파티였다.
그 곳에서 걷히는 순이익은 극빈자들을 위한 후원기금으로 사용하리라는 주제를 지닌, 괘나 의미 깊은 만찬회였다.
가또 두마스와 그의 오른 팔 격인 수석 조리사는 물론, 텔레비전 방송국의 카메라 기자들까지도 꼬시네로(요리사)제복을 갖추고 머리엔 흰 캡을 얹은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열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각국의 유명인 들이 뽑은 세계 유명요리사 100인 안에 들어있는 가또 두마스는 3대째 요리사라는 직업을 이어온 벽안자염의 노인이다.
그가 튀김 요리로 선택한 * 마땀브리또와 닭과 생선, 그리고 파이가 화면을 통해서 매우 먹음직스럽게 비춰졌지만 그의 위트 있고 익살맞은 요리과정의 설명이 더욱 기발하고 유쾌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기름은 항상 후레스꼬(신선한)를 선택하는 게 튀김 요리를 조리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라고 말할 때 , 비엔 비엔 후레스꼬(매우 매우 신선한)와 비엔 비엔 깔리엔테(매우 매우 뜨거운)로 달군 기름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름이 얼마나 제대로 잘 달궈졌는지를 확인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려보면 그 물방울 튀겨지는 소리가 타악 탁, 탁구공이 튀는 명쾌한 소리를 내게 된다면서 거구의 몸을 매우 가볍고 날렵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실제로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타악 탁 물방울 튀기는 소리까지 곁들이면서 춤추듯 연출해 낼 때의 그 진지한 자세는 참 보기 좋았고 흐뭇하게까지 느껴졌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대단한 자신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음식은 재료의 우열보다 만드는 사람의 애정이 맛의 포인트라고 했던가.
그는 잊지 않고 충고 몇 마디를 설파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쉽게 만들기를 바라지 말라. 조리과정이 쉬우면 맛도 쉽게 된다.
끓이고 있는 소파(국)가 약간 짜다 싶으면 찬물을 넣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오래 끓여도 설익은 국물 맛이 난다. 국물이 뜨거울 땐 뜨거운 물을 붓도록 해라.
마침 그 만찬회에 참석한 유명한 사회자 미르따 레그란 여사가 가또 두마스가 내어 준 음식을 시식하면서 엑셀렌떼(탁월)한 맛이라고 격찬했다. 그리고 직업의식을 잊지 않고 질문까지 해냈다.
" 지금까지 요리를 해 오면서 음식이 잘못되었다고 타박 맞거나 반품되어 본적은 몇 번이나 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또 두마스의 대답은 의외로 당당하였고 또한 진지했다.
그는 말할 때 춤추듯 얘기하는 태도 역시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 타박 맞거나 퇴짜 맞은 적이 몇 번인가를 물었습니까? 몇 번 일 것 같습니까? 두 번? 세 번? 아닙니다. 밀레스 데 베세스(천 번이라고 할 정도로 수도 없이)의 퇴짜였지요.
가또 두마스는 젊은 시절 럭비선수였다고 한다. 이 나라의 폴로와 럭비는 재산가의 자손이 아니면 손 댈 수없는 고급의 경기종목에 속한다.
럭비 선수일 때, 그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눈치가 빠르며 교묘한 술수로 경기를 치루곤 했다고 해서 그의 두마스라는 성씨 앞에 가또(고양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60년대에 영국에 머물며 히피들과 어울려 살았었다는 일화는 그에게 있어 그림자처럼 바짝 따라 다닌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팔뚝에는 휘그라 디부하다(문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그는 한 때 히피였다는 사실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데다 도리어 자랑으로 삼는 사람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기르고, 하루하루를 진정 자유롭게 살아냈었다고 그 시절을 그립게 회상하기를 즐기는 가또 두마스에게는 3대째 내려오는 그의 직업이자 천직도 자랑거리 중의 자랑거리이다.
세따문(통일교의 문선명교주)이 아르헨티나를 방문 할 때마다 만찬요리를 맡는 일도 그의 자랑 중에 빠짐없이 들어간다.
세계요리경연대회에서 따내온 수십 개의 메달과 트로피들도 그를 긍지에 찬 명예의 자리에 올려놓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 얼굴에 어울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가또 두마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품격을 가장 완벽하게 지켜온, 그와 어울리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일 역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가또 두마스가 열정을 다 바쳐 일구어 낸 나날들이 있어, 그는 요리사로서의 장군자리에 추대된 게 아닌가, 그런 감회에 잠긴 마머지, 그 프로가 이미 끝났는데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한참이나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껏 나의 뇌리엔 '천 번의 퇴짜'라는 표현이 연거푸 맴돌고 있는 느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 마땀브리또의 사진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조그만 행복
박성철
잠시 쉬는 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사람들과의 대화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화창한 가을날의 신선한 바람.
기대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어느 날 받게 된 편지.
외로울 때 어김없이 걸려 오는 친구의 전화벨 소리.
어느 추운 겨울날 오랜만에 내리는 함박눈.
잠들기 전에 무심코 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귀익은 음악 소리...
때론 이런 것들에 나는 행복감을 느끼며
지쳐 있던 몸을 추스르며 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 하나가
나의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 주는 위로가 되는 이유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은
언제나 이보다 더 사소한 일들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들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에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들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에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물총새의 사냥법
복효근
내가 누군가의 마음 한 조각을 훔치기 위해
갖은 계략을 짜고 있을 동안
새는 그저 잠시
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지
내가 한 사람 마음의 황금빛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
굴절각을 재고 입구와 출구를 찾고 있을 동안
새는 그 때 이미
한 알의 총알이 되어 물 속으로 내리꽂혔던거야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머물러 둥지를 틀 것을 꿈꾸며
손익계산으로 날개가 퇴화되어가고 있을 때
새는 춤추듯 파닥이는
은빛 물고기 입에 물고 물을 박차며 하늘 높이 날아갔지
물총새 다녀간 자리
물 속에도 물낯에도 흠집 하나 남기지 않네
가끔은 새의 사냥이 빗나갈지라도
물총새 무심히
무심히 날아오르는 빈 날개짓이 더 아름답다네
내가 누군가의 마음 한 조각을 훔치기 위해
갖은 계략을 짜고 있을 동안
새는 그저 잠시
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지
내가 한 사람 마음의 황금빛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
굴절각을 재고 입구와 출구를 찾고 있을 동안
새는 그 때 이미
한 알의 총알이 되어 물 속으로 내리꽂혔던거야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머물러 둥지를 틀 것을 꿈꾸며
손익계산으로 날개가 퇴화되어가고 있을 때
새는 춤추듯 파닥이는
은빛 물고기 입에 물고 물을 박차며 하늘 높이 날아갔지
물총새 다녀간 자리
물 속에도 물낯에도 흠집 하나 남기지 않네
가끔은 새의 사냥이 빗나갈지라도
물총새 무심히
무심히 날아오르는 빈 날개짓이 더 아름답다네
말없이 살라하고 티 없이 살라하네
맹하린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3년 10월31일
내가 하고 있는 가게의 건너편 집 옥상에 비둘기들이 깃을 들여 살고 있다.
햇빛 쨍쨍한 날이나 음산한 날씨에도 풋풋한 유록색으로 치장한 봄날의 가로수사이를 비둘기들은 은빛 날개 한껏 펼치며 힘차게 날아다닌다.
나는 가톨릭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내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거의 불교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게 믿고 있다. 내 할머니는 시골근동에 두 군데의 절을 지었고 일 년이면 몇 번인가 시주 쌀을 가마니로 보내실 줄도 아는 철저한 불교신자셨다.
작은 곤충 하나도 못 죽이시던 할머니는, 살생을 철저하게 금하셨다. 그게 다 당신이 흠숭하는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마음 깊숙이 각오 같은 걸 심어두신 믿음의 결정체가 아니었을런지... 때로 나는 그런 상념에 잠기게 될 때가 많다.
전답을 둘러보러 가실 때는 소쿠리에 담아간 곡식알갱이를 만경강에 뿌리시며 물고기들의 양식이 되기를 바라셨다.
낚시꾼들에게서 물고기를 사서 방생하시던 할머니의 자애로운 또 다른 모습.
어린 시절에 각인되어 아직껏 남아있는 그 작은 잔상들은 이 첨단문명의 세상을 물에 흐르듯이 지나쳐가고 있는 내게 겸허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수시로 껴안게 해준다.
할머니의 그 온정들이 그립게 추억되기도 하고, 건너 편 가게의 주인인 유대인 남자가 아주 가끔씩 빵부스러기를 줄 뿐 자주 모이를 주는 일도 없는 듯 보여, 나는 어느날부터 흰 콩을 사서 몇 줌씩 날마다 뿌려 주는 일을 하나의 일과로 삼게 되었다.
새들도 습관에 젖어 사는가.
비둘기들은 아침9시와 오후3시면 정확하게 우리가게의 문 앞에 와 기웃거리면서 모이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 시간이 아닌 다른 때 모이를 주면 마치 삐친 것처럼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데다 방관상태로 앉아 있는 새침데기들이라니!
모이를 던져줄 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르르 내려 앉거나 고층아파트의 옥상에 까지 날아갔던 비둘기들까지 멀리서부터 하늘하늘 내려오던 작위가 퍽으나 아름답다고 여겼었는데 구우구우 소리를 내며 불러도 전혀 기척을 안하는 비둘기들.
그들도 기러기떼 처럼 대장의 지시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떤 규율이란 게 있는가.
어느 날 저녁 불현듯 의문점이 생겨 백과사전을 들춰보기에 이르렀다.
비둘기는 식도에 저장주머니를 갖고 있어서 한꺼번에 음식을 저장하는 체질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일정량을 포식하고 난 뒤에는 아무리 좋고 많은 양식이 주어져도
무반응이었던가 보았다.
이웃가게 데레사씨의 두 살 난 딸 데레지나가 신장염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 졌을 때, 나는 그 아기를 안고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며 제발 이런 작은 선행으로라도 아이의 병이 완쾌 되는 상쇄함을 주시기를 나의 신에게 기도했었다.
다행으로 아이는 수술이 성공하여 말짱하게 병을 이겨냈고 가끔은 내게 들러 가장 말이 짧은 나이라서 뭔가 던지는 시늉을 하며 구우구우하자고 졸라댄다.
나는 데레지나가 전부 알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명하게 된다.
"지금은 시간이 아냐. 지금은 있지, 배가 굉장히 부른가봐, 이만큼."
아이도 따라한다.
"이만큼 ?"
가게 일이 한가해질 즈음, 맞은편 집의 옥상을 무심코 쳐다보면 비둘기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다가 나란히 앉아서 조는 둣 휴식하는 둣 묵묵히 자리틀 지키고 있을 때가 많다.
그날의 양식을 걱정 하지 않고 소화해낼 만큼의 먹이가 채워지면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며 적당한 안락을 누리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장사꾼의 찌꺼기가 켜켜로 쌓여가는 내가 지금 어느 물살에 휘말려 지나쳐가고 있는가,문득 마음을 겉잡아 보게도 된다.
유난을 떤다고 여겨질 정도로 표시를 내며 추웠다가 더웠다가 그리고 폭우까지 동반하는
꽃샘날씨.
쉽게 기운을 못 차리고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는 경제.
장사가 그렇게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손에 남는 게 많지 않은 걸 보면 경쟁이 무섭긴 무섭다고 표현하고 투덜대는 이웃상인들.
고려 말의 고승, 나옹 선사의 시가 절실히 떠오르는 계절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버리고 성냄도 벗어버리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선비와 같은 비둘기들을 바라보면서 섭심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적게 되었다.
-초여름- |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 선사는 20세에 승려가 되고 중국 원나라에 가서 지공선사에게 2년 동안 공부했다고 합니다. 지공, 무학대사와 함께 고려 말 3대 화상으로 불리는 나옹 선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넘게 수행에 정진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작 깨달음을 얻은 것은 좌선 정진하던 시절이 아니라, 돌아와 청평산에 한가로이 머물 때였고, 깨달음의 요체는 다름 아닌... '배 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피곤하면 잔다'는 사실이었다는 것. 대계로 유명한 영덕, 그곳의 장육사라는 절을 창건한 분이시랍니다. |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우리에게 내려진 선물
맹하린의 생활단상(生活斷想)
남미크리스챤신문 칼럼
2001년 12월 22일
프랑스에 사는 어느 하녀가 병석에 누운 여주인을 오랜 세월동안 섬기고 있었다. 많은 재산을 축적해둔 그 여주인은 충직한 하녀에게 틈만 나면 말하였다.
" 내가 죽게 되면, 내 재산은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골고루 물려주도록 이미 변호사에게 의뢰를 해놓았다. 아주 먼 친척에게까지 빠짐없이 혜택이 돌아갈 거야. 유언장은 이미 작성을 끝내둔 상태지."
여주인이 가끔씩 들려주는 이 말에는 자신에게도 반드시 한 몫을 챙겨 주리라는 언질 같은 게 실려 있으리라고 하녀는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일생동안 충성을 다해 일해 온 하녀에게 얼마간의 보상을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으므로.하지만 여주인이 작성해 둔 유언서에는 하녀의 이름이 결코 없었다. 여주인은 어느 날 하녀를 불러 이 사실을 인지(認撤)시키며 그 대신 한 가지 선물을 내주었다.
“ 이것은 너를 주려고 특별하게 마련 해둔 선물이다. 나를 위해 일생을 바쳐 온 네게 대한 감사의 표시이니 보잘 것 없다고 너무 섭섭해 하진 말았으면 좋겠구나."
차근차근 말하면서 여주인이 하녀에게 건네 준 선물이란 것은 석고(石膏)로 빚은 십자가였다. 자기를 위해 여주인이 남겨준 몫이 라는 게 달랑 십자가 하나임을 깨닫게 된 하녀는 여주인의 성의가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배신감과 같은 섭섭함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일생을 헌신해온 결과가 고작 석고로 만든 낡아빠진 이 따위 십자가란 말인가! 나를 주려고 특별히 만든 선물?)
하녀는 여주인의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며 하는 수 없이 문제의 십자가를 침대의 머리맡에 걸어 두기는 했지만, 여주인에게 바쳐 온 자기의 지난날들을 돌이킬 때마다 벽에 걸린 그 십자를 바라보는 일이 매번 괴로움이었고 원망스럽게까지 느껴지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하녀의 마음 한편에서는 분개와 어두운 감정이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하녀는 그 십자가를 우러러 보며 스스로의 심정을 툴툴거리며 털어놓았다,
"저는 오랜 세월을 주인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런 내게 돌아온 것이라고는 겨우 십자 가 하나 뿐이라니요. 주인에게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고, 아무런 뒷바라지조차 해낸 일이 없는 먼 친척들에게는 많은 재산을 분배해 주면서, 오, 주님. 이것이 저에 대한 배려이고 선물이랍니다. 제가 주인을 위해 바친 그 많은 세월들이 기껏 십자가 하나로 보상이 된 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정당한 보수라고요?"
자기감정과 격분에 저절로 도취한 하녀는 벽에 걸린 십자가를 과격하게 떼어내어 마룻바닥을 향해 힘껏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화난 음성으로 눈물을 홀리며 울부짖었다.
"나타시아 부인, 나는 당신의 그 잘난 선물을 원치 않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당신의 십자가가 내 발치에 흩어져 있으니 당장 도로 가져가십시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박살이 난 십자가의 조각들 사이에서 찬란한 물체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알갱이들은 현란한 빛으로 반짝이며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서진 십자가의 조각들은 모두 찬란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깨닫게 된 하녀는 주인을 향한 감사와 깊은 희한에 휩싸여 울며 한탄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오, 주님. 이토록 불손하고 은혜도 모르던 제 잘못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를 생각해 준 주인의 깊은 뜻을 겨우 헤아리게 된 하녀는 용서를 청하려고 서둘러 여주인의 방을 두들겼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 이 없었다. 하녀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을 때 여주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은행저축봉쇄령,해외여행자비용제한, 달러구입불가능,냄비시위, 슈퍼마켓습격강탈, 날로 늘어나는 실업문제 등,긴축정책인지 긴급처방인지 아니면 경제공황인지가 뒤범벅되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섬이 만들어지고 있는,메마를대로 메마른 현실이 어느덧 우리 앞에 전쟁처럼 닥쳐왔다. 참으로 대단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접국 우루과이에는 예금을 맡기려는 아르헨티나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아르헨티나의 은행들 앞에는, 일주일에 250페소나마 꺼내 쓰려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기나긴 행렬로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가진 이나 못 가진 이나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가 돼 버렸다. 이런 차제에 위의 예화를 읽으며 느끼는 바가 없지 않아 있었다.
전지전능 하신 이의 지혜와 선물의 가치를 성급하게만 판단하고 있는 하녀가 바로 나, 또는 우리가 아닐까 싶어진다.
여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여러 형태의 십자가를 선물로 내리셨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그 뜻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서둘러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지나친 판단력으로 보장된 미래까지도 흐릿하게 부정하는 건 아닌지 가끔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여러 가족과 먼 친척에게까지 돌아가게 되는 유산만을 크고 부러운 사실이라고 착각하면서 머잖아, 아니면 이미 받아둔 석고로 만든 나와 우리의 십자가에는 이렇다 할 관심이나 고마움 이란 게 지극히 결여되어 있다. 더불어서 원망 까지 쏟아내는 실정은 아니려는지.
내 이웃이 잘 되면 나만 못 살고 있다는 인식(認識)에서 우리는 하루 속히 벗어나야 될 것 같다. 또한 내 이웃이 곤경에 있는데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서도 우리는 어서 빠져 나와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원하는 일이 바로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아니던가.
전능하신 분께서 이미 내려 주었을 지혜와 선물의 가치를 더 좀 진지한 마음을 지닌 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으로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지 그 점 사료된다.
해마다 오시는 아기 예수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 땅에 찾아오신다.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
-초여름- |
10년 전에 써냈던 부족한 글을 올리려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정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습니다. 하지만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즉 크리스티나 정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푸는 보상금. 표현도 근사한 복지국가건설을 위한 프로젝트에 우리 교민들 또한 덩달아 한 몫 거드는 점 참 아이러니입니다. 집이나 가게를 몇 개씩 소유한 분들이 전문변호사나 브로커에게 의뢰하여 보상금을 타내려고 수속 중이고, 이미 타내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은 좀 많이 수치스러운 일 같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또 어떻습니까? 오직 보상금을 타내기 위한 방편으로 각 직장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도 정식고용을 기피하는 경향에 물들어 있는 형편이 아니던가요? 어떤 볼리비아인들은 가족수당 등을 합치면 한 달에 받는 여러 보상금이 자그마치 1천 달러에서 2천 달러도 넘는다고 합니다. 이러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되어 가는 거죠. 본국 역시 가진 자들이 주로 그런 병폐에 물들어 가는 기미가 없지 않아 있겠지만서도!!! |
2001년 당시, 상품을 삽시간에 강탈 당한 중국인 슈퍼마켓소속종업원의 망연자실에 가까운 충격
그 당시의 냄비시위와 대규모 소요사태...
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 도종환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 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 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 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 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 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 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 오십니다.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초여름- |
위의 시가 어딘지 모르게 애틋한 느낌이 들어 다른시 하나 다시 올립니다. 연말이라서 이미 써 둔 글 올리는 일도 짬이 안 나 다시 시를 펌했습니다. |
비
-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빛나는 기계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6월 6일
우리 집 전화요금은 몇 년 동안 기본요금에서 조금 웃도는 가격으로
책정되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내가 친구들과 수다를 안 떨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한테나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필요를 못 느끼는 데서 생기는 원인과 결과에서 일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뒤늦게 철이 들어 버린 것일까.
그게 아니고 내가 친구들과도 언제나 절제와 간격을 지켜오기를
즐겨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면 전화통에 매달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만한 문제다운 문제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심란하고 답답할 때, 마음을 좀 풀어 놓을 수 있게 해주는 빛나는 기계와 좋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진정 감사할 몫 중의 하나가 아닐까 최근의 나는 부쩍 그런 생각을 하게도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공공요금이 몇 십프로 정도 더 인상되리라는 초안이 상정되는 중이라는 뉴스를 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기본요금이 조금 웃도는 우리 집 전화요금은
삭막하고 인색한 내 감정의 기폭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바로미터 같아서
어떤 면으로는 쓸쓸하고 서글프다.
온세지역에서 의류도매상을 하는 수산나에게 전화해 본다.
내게는 동생 같고 항상 의젓하고 여자다운 수산나는 하필 자리에 없다.
곧 이어 현지인 친구 클라우디아와 통화하기 위해 수화기를 다시 든다.
이렇게 마옴 먹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다면 다음 달 전화요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사태를 몰고 오는 거나 아니려는지.
나는 안다.
의자를 끌어당기지만 않았고, 안내를 부탁한다는 말만 안했을 뿐 나는 아래의
단편소설 속 아이처럼 안내를 받고 싶은 심정인 것을.
수화기를 제 자리에 놓으면서 , 오래 전에 읽었던
단편소설이 새삼 그립게 각인되고 있었다.
아이의 집은 그 마을에서 가장 맨 처음 전화를 놓았다.
계단옆 벽에 붙여 놓은 참나무로 만들어진 전화통.
아이에게는 수화기가 손에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인가 지방에 출장을 떠난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마루에 있는 의자를 끌어 당긴 뒤, 아이를 의자 위에 올린 뒤 수화기를 귀에다가 대 주었었다.
아이는 엄마가 가끔씩 그 빛나는 기계에 대고 안내를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무얼 물어보는 걸 여러 차례 목격 하게 된다.
무엇이든 알고 있는 천사가 저 빛나는 기계 속에 살고 있구나.
아빠의 목소리까지 그 속 에 들어있지 않았던가.
어느 날, 혼자 집에 남아 있던 아이는 혼자서 놀다가 손가락을 다치게 된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날의 엄마처럼 마루 한 켠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그 위로 올라섰다. 그런 뒤 곧장 빛나는 기계를 들고 엄마가 누르던 숫자의 자리를 흉내 내듯 눌러본다.
아주 조그맣게 안내를 부탁한다고 말하게 된다.
"네, 안내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상냥한 음성 ,
"손가락을 다쳤단 말이야. 어떻게 해 . 아앙…"
손가락이 아프다는 걸 어리광 피울 수 있는 사람이 기계 속에 있다고 느껴지자 아이는 ,울음보가 터뜨려진다.
빛나는 기계 속의 천사는 아이를 달래면서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먼저 냉장고를 열고 얼음을 꺼내어 손가락에 대고 있으면 아픔이 가라앉게 돼."
그때부터 모르는 게 생기면 의자를 끌어 당겨 그 위에 올라가 "안내를 부탁합니다."하고 말하게 되고,"안내입니다."하고 말하는 빛나는 기계 속의 천사는 어떠한 어려운 일도
거뜬하게 해결해 준다.
학교의 숙제들, 그리고 다람쥐 먹이에는 무엇이 적당한 것에 대해서도.
얼굴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수시로 해오는 하찮은 질문에, 싫어하는 내색을 한 번도 안하고 귀한 시간을 허락하여 친절과 인내력으로 아량을 베풀어 주던 빛나는 기계 속의 천사.
아이가 애지중지하던 새였던 카나리아가 죽었다. 풀이 죽어 전해 주는 소식을 듣고 빛나는 기계 속의 천사는 말한다.
『포올, 죽은 다음에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요.
아홉 살 소년이 된 아이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에서는 고향에서 와 같은, "안내입니다"가 아니었고 불친절했다.
빛나는 기계 속의 가정교사가 문득 문득 그립게 된다.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마주할 때마다 간절하고 그립게 빛나는 기계 속의 천사를
떠올리게 된다.
소년은 성장하여 대학에 다니게 된다.
방학을 보내고 대학으로 돌아가는 비행장에서, 보딩 시간을 기다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향마을의 전화국 번호를 눌러본다.
안내를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안내입니다" 라고 말하는, 어린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귀에 익고 그리웠던 목소리 .
청년은 언젠가 질문한 일이 있던,"저어,「휙스」라 는 단어를 쓸 때 어떻게 쓰지요?"라고 암호처럼 묻게 된다.
얼마만큼의 침묵이 흐른 뒤에 이윽고, "혹시 지금은 손가락이 나았겠지요?" 라는 천사의 대답이 들려온다.
청년은 웃으며 말한다. 어린 시절에,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의 존재였었던가를. 최근몇 년 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얼마 뒤에 청년이 다시 전화로 안내를 부탁했을 때, 그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청년에게 남겼다는 말을 듣게 된다.
"죽어서도 누래 부를 수 있는 세상이 있노라고 전해줘요."
내소망하나
-유안진
생각날 때 전화할 수 있고
짜증날 때 투정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
잠시 만나서 커피라도 한 잔 할 수 있고
가슴 한 아름 아득한 미소도 받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거울 한 번 덜 봐도
머리 한 번 덜 빗어도
화장하지 않은
맹숭맹숭한 얼굴로 만나도
오히려 그게 더 친숙해져서
예쁘게 함박웃음을 웃을 수 있고
서로 겉모습 보다는
둥그런 마음이 매력이 있다면서
언제 어디서 우연히 길을 가다가
은행 가다가 총총히 바쁜 걸음에
가볍게 어깨를 부딪쳐서
아! 하고 기분 좋게 반갑게
설레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내 열 마디 종알거림에 묵묵히 끄덕여주고
주제넘은 내 간섭을 시간이 흐른 후에 깨우쳐 주는
넉넉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가끔씩은 저녁 값이 모자라
빈 주머니를 내 보이면서 웃을 줄도 알고
속상했던 일을 곤드레 술에 취해
세상에서 큰소리 칠 줄도 알고
술값도 지불케 하는 가끔은 의외한 면이 있는
낭만스러운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수고스러움을 늘 감사하고
형제들의 사랑을 늘 가슴깊이 새기며
자신을 조금은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지금은 허심탄회가 필요할 때
맹하린의 생활단상 (남미크리스챤신문)
2001년 11월 24일
A라는 유태인이 시나고그(예배당)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저는 5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불경기에 허덕이다 보니까 회사 직원들의 월급은 왜그리 빨리도 돌아오는지요. 자식들 등록금, 계리사 비용, 각종 공과금도 밀릴 수밖에 없군요. 자금난에 계속 시달리다 보니까 이젠 중소기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끼칩니다. 생업이라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제발 저희 가족에게 50만 달러가 생기도록 신속히 복을 내려 주십시오. 간절한 제 기도를 꼭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그때, A라는 유태인의 옆에는 유태인 B가 나타나 무릎을 꿇다 못해 엎드린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부디 저의 고통을 헤아려 주십시오. 지금의 제 처지가 무진장 고통스럽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입장입니다. 많이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50 달러만 내려 주신다면 어떻게나마 급한대로의 어려움은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A라는 유태인은 다급한 몸짓으로 지갑에서 50 달러를 꺼내어 B라는 유태인에게 던지듯 건네면서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그러나 명령조의 어투로 말했다.
" 이보시오, 여기 50 달러가 있으니 제발 이 시나고그에서 속히 나가 주시오. 주님께서 나의 원대한 뜻을 들어주려다가 당신의 하찮은 애원 때문에 그만 분심이 드실까봐 걱정이 돼 죽겠습니다,"
위의 우화는 유태인들 간에 떠돌고 있는 최신식 치스떼(유머)라고 한다.
크건 작건 자금난에 시달리는 요즘 세태를 적절하게 파악하여 제대로 풍자해냈다고 생각되어 굳이 옮겨 보았다.
꼭 필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물질이라고는 하지만 물질에 지배되고 물질에 좌지우지 하다 보니 정작 지녀야할 사랑도 인정도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세상 속을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서성대고 있지는 않은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삭막하고 고달픈, 이 기분을 풀어낼 데가 어디 없나 하고 시야를
이리저리 옮기게도 되는 요즈음이다.
지난 5년 동안 모임이란 모임은 모두 배척해 온 셈이지만 유일하게 글쟁이들 모임만은 소중하게 아껴왔고 재미와 편안함까지도 솔솔 간직했었다.
너도나도 개성이 강한 이들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각자 대단한 경지를 넘어선 개성파들의 집합소 같은 모임이 바로 문협이라는 단체일 것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실컷 한담을 주고받다가 아까운 시간 이런 식으로 낭비하면 부끄럽지 않겠냐는 그런 느낌이 주어지면 우리는 약속처럼 시낭송을 펼친다.
그럴 때 H시인은 핸드백도 아닌 호주머니에서 지갑(紙匣)을 꺼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본 일은 없지만 H시인의 지갑(紙匣)은 지갑(紙匣)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갑(詩匣)이 아닐까 싶어진다.
일간지에서 오려낸 ‘詩가 있는 아침'이 한 장이 아니라 대여섯 장은 족히 쏟아져 나온다.
그것도 금종이처럼 아주 소중하게 접혀서 말이다.
이에 경쟁하듯 어떤 시인은 윗주머니에서, 어떤 문우는 안방에 가서 찾아다 가장 문학적이고 한층 예술적인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그대를 얻으면 시처럼 살겠고
그대를 잃으면 시를 쓰리라.”
그정도 짧으면서 함축미 가득한 시는 안보고도 훤히 외운다.
돌아가는 세상이 하도 그렇고 그러니까 나도 다음 달 초에 있을
그 모임에 참석하면, 핸드백이 아닌 포켓에서, 지갑(紙匣)이 아닌
시갑(詩匣)을 열고 이런 시들을 읊으리라 맘먹는다.
그래서, 그 언제인가부터 계속 힘들고 어렵다고 외쳐대는 주위 분들의
운명과 같은 고뇌를 잠시나마 잊으리라.
지금은 바야흐로 허심탄회가 필요한 때이므로.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물 끓이기
-정양
한 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놈 되는 세상에
열 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2001년 11월 24일
A라는 유태인이 시나고그(예배당)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저는 5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불경기에 허덕이다 보니까 회사 직원들의 월급은 왜그리 빨리도 돌아오는지요. 자식들 등록금, 계리사 비용, 각종 공과금도 밀릴 수밖에 없군요. 자금난에 계속 시달리다 보니까 이젠 중소기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끼칩니다. 생업이라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제발 저희 가족에게 50만 달러가 생기도록 신속히 복을 내려 주십시오. 간절한 제 기도를 꼭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그때, A라는 유태인의 옆에는 유태인 B가 나타나 무릎을 꿇다 못해 엎드린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부디 저의 고통을 헤아려 주십시오. 지금의 제 처지가 무진장 고통스럽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입장입니다. 많이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50 달러만 내려 주신다면 어떻게나마 급한대로의 어려움은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A라는 유태인은 다급한 몸짓으로 지갑에서 50 달러를 꺼내어 B라는 유태인에게 던지듯 건네면서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그러나 명령조의 어투로 말했다.
" 이보시오, 여기 50 달러가 있으니 제발 이 시나고그에서 속히 나가 주시오. 주님께서 나의 원대한 뜻을 들어주려다가 당신의 하찮은 애원 때문에 그만 분심이 드실까봐 걱정이 돼 죽겠습니다,"
위의 우화는 유태인들 간에 떠돌고 있는 최신식 치스떼(유머)라고 한다.
크건 작건 자금난에 시달리는 요즘 세태를 적절하게 파악하여 제대로 풍자해냈다고 생각되어 굳이 옮겨 보았다.
꼭 필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물질이라고는 하지만 물질에 지배되고 물질에 좌지우지 하다 보니 정작 지녀야할 사랑도 인정도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세상 속을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서성대고 있지는 않은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삭막하고 고달픈, 이 기분을 풀어낼 데가 어디 없나 하고 시야를
이리저리 옮기게도 되는 요즈음이다.
지난 5년 동안 모임이란 모임은 모두 배척해 온 셈이지만 유일하게 글쟁이들 모임만은 소중하게 아껴왔고 재미와 편안함까지도 솔솔 간직했었다.
너도나도 개성이 강한 이들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각자 대단한 경지를 넘어선 개성파들의 집합소 같은 모임이 바로 문협이라는 단체일 것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실컷 한담을 주고받다가 아까운 시간 이런 식으로 낭비하면 부끄럽지 않겠냐는 그런 느낌이 주어지면 우리는 약속처럼 시낭송을 펼친다.
그럴 때 H시인은 핸드백도 아닌 호주머니에서 지갑(紙匣)을 꺼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본 일은 없지만 H시인의 지갑(紙匣)은 지갑(紙匣)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갑(詩匣)이 아닐까 싶어진다.
일간지에서 오려낸 ‘詩가 있는 아침'이 한 장이 아니라 대여섯 장은 족히 쏟아져 나온다.
그것도 금종이처럼 아주 소중하게 접혀서 말이다.
이에 경쟁하듯 어떤 시인은 윗주머니에서, 어떤 문우는 안방에 가서 찾아다 가장 문학적이고 한층 예술적인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그대를 얻으면 시처럼 살겠고
그대를 잃으면 시를 쓰리라.”
그정도 짧으면서 함축미 가득한 시는 안보고도 훤히 외운다.
돌아가는 세상이 하도 그렇고 그러니까 나도 다음 달 초에 있을
그 모임에 참석하면, 핸드백이 아닌 포켓에서, 지갑(紙匣)이 아닌
시갑(詩匣)을 열고 이런 시들을 읊으리라 맘먹는다.
그래서, 그 언제인가부터 계속 힘들고 어렵다고 외쳐대는 주위 분들의
운명과 같은 고뇌를 잠시나마 잊으리라.
지금은 바야흐로 허심탄회가 필요한 때이므로.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물 끓이기
-정양
한 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놈 되는 세상에
열 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초여름- |
시사성 발언이나 계도하는 문구는 삭제했습니다.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들끓음은 비슷한 온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고 연신 끓거나 타오름을 지속하고 있음을 새삼 절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비로운 사실은 어떻게 지금의 심정이 그때의 외우고 싶었던 시와 한결 같을 수가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
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감사의 말씀
이 조사는 레지나가 평소 알고 지내던 여러분께 남긴 편지로 대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께.
평생 받을 사랑을 차고 넘치도록 짧지만 깊이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한 분께도 감사드리지 않을 분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자랑인 것 같습니다.
일일이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 속에 떠오르는 감사의 정과 아기자기 했던 추억들을 다 적고 싶지만 지면상(히히), 그리고 팔이 아파서 그만 둡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편지에는 얼굴 하나 이름 하나 추억 하나에 감사만이 기득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홀어머니의 막내딸이라는 것 빼고는 (그것조차도 내 어머니가 미처 느끼지 못하게 두 몫의 사랑을 주셨죠.) 한 번도 사람에게 상처 받고 미운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일이네요.
오히려 제가 알게 모르게 상처를 드리고 용서 받을 일을 했을 텐데 그점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사랑도 받기만 하고 사랑할 줄 모르고, 김치 한포기의 은혜도 받기만하고 갚을 줄 몰랐고 그러면서도 잘 난체를 꽤나 했죠?(못된 것!!)
다 용서해 주십시오.
철이 덜 들어서 잘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진심된 마음은 늘 사람이 그립고 좋았으며 순간순간의 나쁜 상황에 처해도 그래, 오해는 이해 이전의 상태라는데 아마 지금이 그런 상태일거야, 어떤 계기나 시기가 찾아오면 오해에서 이해로 감싸지는 상황이 될 거야 하며 마음으로부터 섭섭하거나 미운 적은 없었어요. 진심입니다,
(믿어달라는 놈 치고 믿을 놈 한 놈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가진 시간을 만끽하십시오.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십시오.
해야 할 일도 미루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느껴보십시오. 자주 많이!
밤하늘도 새파랗다는 것 아시는지요.
하늘의 구름이 빛에 따라 변하는 그 현란한 빛의 잔치를 보셨는지요.
얼마나 놀라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2초 3초의 짧은 그림일 때도 있답니다.
버스 정류장의 붓꽃은 또 얼마나 촌스럽게 예쁜지요.
우리가 바빠서 눈길 한 번 준적 없어도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해바라기 하며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우리를 그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줍니다.
사시장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아무런 강요도 없이 그냥 돌아볼 때
돌아올 때만 가만히 기다려 주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서 여러분들이 옆에 계셨기에 참 즐겁고 행복했고
이제 죽으면 아버지 하느님 곁에서 온갖 맛있는 과일과 꽃과
성인성녀들을 바라보며 살 테니 저는 이렇게, 사나 죽으나 행복이 넘치는군요.
과연 제가 그럴만한 인간이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토록 켰던 것을
육신의 허물을 벗게 되는 지금에야 절절이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예수님의 손가락이라도 꼬집어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시고 온 성모님의 치맛자락이라도 흔들어 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제가 조금 먼저 천국을 맛본다고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왜냐면 천국 것은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고, 보고 보아도 닳아지지 않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이 주신 이 육신의 세상에서도 즐겁고 재미있고 기쁘게 살다가 온화한 나라에서 다시 만나 보기를 바랍니다.
정말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박레지나 올림
(박영희 레지나는 향년 46세로 2000년 4월 28일 18시 20분에 선종)
사랑하는 여러분께.
평생 받을 사랑을 차고 넘치도록 짧지만 깊이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한 분께도 감사드리지 않을 분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자랑인 것 같습니다.
일일이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 속에 떠오르는 감사의 정과 아기자기 했던 추억들을 다 적고 싶지만 지면상(히히), 그리고 팔이 아파서 그만 둡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편지에는 얼굴 하나 이름 하나 추억 하나에 감사만이 기득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홀어머니의 막내딸이라는 것 빼고는 (그것조차도 내 어머니가 미처 느끼지 못하게 두 몫의 사랑을 주셨죠.) 한 번도 사람에게 상처 받고 미운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일이네요.
오히려 제가 알게 모르게 상처를 드리고 용서 받을 일을 했을 텐데 그점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사랑도 받기만 하고 사랑할 줄 모르고, 김치 한포기의 은혜도 받기만하고 갚을 줄 몰랐고 그러면서도 잘 난체를 꽤나 했죠?(못된 것!!)
다 용서해 주십시오.
철이 덜 들어서 잘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진심된 마음은 늘 사람이 그립고 좋았으며 순간순간의 나쁜 상황에 처해도 그래, 오해는 이해 이전의 상태라는데 아마 지금이 그런 상태일거야, 어떤 계기나 시기가 찾아오면 오해에서 이해로 감싸지는 상황이 될 거야 하며 마음으로부터 섭섭하거나 미운 적은 없었어요. 진심입니다,
(믿어달라는 놈 치고 믿을 놈 한 놈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가진 시간을 만끽하십시오.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십시오.
해야 할 일도 미루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느껴보십시오. 자주 많이!
밤하늘도 새파랗다는 것 아시는지요.
하늘의 구름이 빛에 따라 변하는 그 현란한 빛의 잔치를 보셨는지요.
얼마나 놀라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2초 3초의 짧은 그림일 때도 있답니다.
버스 정류장의 붓꽃은 또 얼마나 촌스럽게 예쁜지요.
우리가 바빠서 눈길 한 번 준적 없어도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해바라기 하며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우리를 그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줍니다.
사시장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아무런 강요도 없이 그냥 돌아볼 때
돌아올 때만 가만히 기다려 주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서 여러분들이 옆에 계셨기에 참 즐겁고 행복했고
이제 죽으면 아버지 하느님 곁에서 온갖 맛있는 과일과 꽃과
성인성녀들을 바라보며 살 테니 저는 이렇게, 사나 죽으나 행복이 넘치는군요.
과연 제가 그럴만한 인간이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토록 켰던 것을
육신의 허물을 벗게 되는 지금에야 절절이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예수님의 손가락이라도 꼬집어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시고 온 성모님의 치맛자락이라도 흔들어 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제가 조금 먼저 천국을 맛본다고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왜냐면 천국 것은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고, 보고 보아도 닳아지지 않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이 주신 이 육신의 세상에서도 즐겁고 재미있고 기쁘게 살다가 온화한 나라에서 다시 만나 보기를 바랍니다.
정말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박레지나 올림
(박영희 레지나는 향년 46세로 2000년 4월 28일 18시 20분에 선종)
-초여름- |
문우였던 박영희 레지나는 시인이다. 그녀는 시를 완성하면 일단은 내게 보여주는 걸 서슴치 않았다. 석류 알처럼 고르고 예쁜, 자칭 백만 불짜리라고까지 표현하던 치아를 생긋 보이며 금세 웃으면서 잊지 않고 꼭 부탁하는 말. -보기만 하면 안 돼요. 예쁘게 고쳐 주실 거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상냥하기만 한 게 아니라 한결 같은 대응에 익숙했다. -난 내 작품만 고칠 줄 알아.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히 손대다니. 큰 실례야.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떠나기 전 레지나는 미리 이 편지의 작성을 끝냈는데, 발인이 있던 두어 시간 전에 가족을 통하여 내게 신속하게 전달되었다. 레지나는 여전히 부탁을 곁들여 두는 일을 결코 잊지않고 있었다. -보기만 하지 않고 근사하게 고쳐 주실 거라는 거, 그점 가장 확실하게 믿으며 떠나요. 아셨죠? 청개구리과인 나는 그녀가 떠난 바로 그날, 강가에 앉아 비를 주룩주룩 맞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어미의 말을 그토록 거역하면서 세상을 역행하며 살아냈던 청개구리의 불효막심한 마음...... . 마지막이니까 제대로 고쳐야겠다는 작정 비슷한 각오 같은 걸 나는 연신 울면서 굳히고 굳혔을 것이다. 정작 맘먹고 고칠 결심을 다짐하는 순간까지 이렇다하게 결정적인 흠이 안 보였으며 , 고칠 데라고는 전혀 없었던 레지나의 편지. 절대로 고쳐서는 안 될 것만 같았던 레지나의 마지막 메시지. 장례미사 직후 있었던 고별행사의 초반에 나는 레지나의 이 편지를 사회자 단상의 마이크를 붙잡고 낭송하던 나는 평소에 마이크는 물론이고 울음도 뚝, 하고 내가 나에게 명령하면 조절을 가능케 하는 편인 나는 겉으로야 조금 울고 속으로 엄청 울면서 조사를 끝냈던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레지나의 미소와 레지나의 위트와 레지나의 고요로움과 레지나의 우아함을 약간이나마 답습해낼 수 있었으려나. 사랑하는 레지나. 선물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라면서 어느 날 꽃가마에 가서 내게 사준 특이한 옷... 아직 아끼면서 가끔은 잘 입어내고 있어. 나는 레지나가 그 나라에서도 진짜 행복할 거라고 믿어. 왜냐면 레지나는 언제 어디서나 미소가 아름다운, 항암 치료 중에 더 많이 행복함을 깨달았었다고 감사해 마지않던, 바로 그 레지나이므로 해서. |
2011년 12월 10일 토요일
눈물은 짜야 눈물이다
-김옥림
눈물은 짜야 눈물이다
눈물이 그저 맑기만 하다면
그게 어디 눈물인가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눈물은 짜야 한다
눈물이 짜야 몸 속에 쌓인 슬픔과 고통이
미움과 절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정화해서
눈물로 내 보내는 것이다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한껏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마음이 맑아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눈물 많은 사람은 그 만큼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
눈물은 진실할 때만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 순수다
눈물은 짜야 눈물이다
눈물이 그저 맑기만 하다면
그게 어디 눈물인가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눈물은 짜야 한다
눈물이 짜야 몸 속에 쌓인 슬픔과 고통이
미움과 절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정화해서
눈물로 내 보내는 것이다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한껏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마음이 맑아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눈물 많은 사람은 그 만큼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
눈물은 진실할 때만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 순수다
돌아간 천사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5월 3일 수요일
몇 년 전부터 나는 한 천사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내가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나는 그녀와 어느 날부터 배짱이 맞아서 같이 산책도 다니고 조깅도 더불어 했으며 ' 그린농장'으로 냉이도 캐러가고 라플라타 박물관에 다녀오다가 들판에 앉아 씀바귀를 뜯기도 했다.
루한 성당, 에스꼬바르 등을 정말 틈만 나면이 아니라 일부러 틈을 내어 잘도 쏘다녔다.
방사선 치료에 의해 그녀가 머리카락을 모두 상실했을 때, 나는 그녀를 위해 함께 모자를 쓰고 다닌 일밖에 이렇다하게 도움을 주지도 못했었다.
어쩌다 김치나 식혜를 준비해 갖다 주는 정도는 했었지만.
그녀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지만 언제나 언니 노릇은 그녀가 다 해냈었다.
함께 다니면서 매번 느낀 바로는, 그녀는 틀림없이 신의 임명을 받고 잠시 지구에 머물며 자신이맡은 본분에 충절을 다하고 있는 천사일 게 분명하리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나 뿐 아니라 주위의 누구에게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어렵다는 사실까지도 일일이 깨우쳐 주려고 애썼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신혼 초부터 남편이 안겨주는 월급을 다섯 개의 작고 길쭉한 갈색 봉투에 나눠 넣으면서 양로원에 얼마, 고아원에 얼마, 시할머니 용돈으로 얼마, 그러고 난 뒤의 나머지가 비로소 생활비로 남겨지는 청빈생활을 즐겼다.
그녀의 시고모들이 그러는 그녀를 기특하게 여겨 택시비나 용돈을 건네줄 양이면 그녀는 하나 있는 아이를 달랑 등에 업고 부득불 버스를 타고는 했다.
그녀와 가장 친했던 막내시고모가 오래 전 내게 그녀의 될 성싶은 떡잎을 칭찬하면서 알게 된 일이었다.
그녀와 내가 더욱 친밀을 껴안고 토닥여 댈 무렵, 한 달 안으로 급히 귀환을 서두르라는 칙명을 그녀는 신에게서 받았었나 보았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주위 사람에게 숨긴 채, 그녀는 어떻게든 더 큰 깨우침을 남겨주고 떠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꾸만 부득불 가야할 길을 뒤로 미루기까지 하는 불충함까지도 당돌한 태도로 일관해 내고는 했었다.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의무이행을 선선히 지키지 못하게 된 후유증으로 그녀는 드디어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독일병원에 입원하는 사태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러는 그녀를 위로하러 가서 도리어 위로만 받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고작 서너 Kg의 햇과일을 사들고 가서 상큼한 웃음보따리를 한 아름이나
안고 오게 되었던 날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그 천사한테 배운 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위로는 위로하면서 그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는 사실까지도.
어떤 책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곧 지구에 휴가를 온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휴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시한적인 휴가다. 때가 오면 휴가를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엊그제 그 천사가 내 곁을, 아니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코스모스처럼 버들잎처럼 가냘픈 몸을 숙명처럼 생애의 모든 자락에 맡겼다가도 바이올렛처럼 수선화처럼 청정하게만 살아냈던 그녀.
나 이제 그 천사와 함께 지냈던 날들을 시작으로 남은 날들 새롭게 살고 싶어진다.
지금껏 행운처럼 간직하고 품어왔던 긍지를 가차 없이 내던지고
보다 더 나은 날들을 위해 선한 자세를 첫 번째의 도리로 알며
허심탄회한 모습되어 오직 주어진 섭리로만 맞이하겠다.
하루에 잘 웃지 않는 날은 잘못 살아낸 날이라는 진리와 같이
나 이제 자주 웃는 날들을 꾸려 나갈 것이다.
이제 나도 그녀처럼 고통 속에 처한 이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안 보이는 손으로 닦아주고 싶다.
마음이 고달픈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등을 알게 모르게 다독여 주고도 싶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과도 그녀처럼 아픔을 함께 하리라
많은 날들 사이에 뿌려 왔던 관성을 모조리 뽑아내려고 한다
내가 기필코 친숙해져야 할 언어는 자애로움이다.
그 천사는 분명 나. 또한 우리에게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과제를 안기고
돌아갔을 것이다.
친절했고 언제나 웃어대는 일을 즐겼던 그녀를 보내고
나는 속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사는 일 생각수록 팍팍해져 온다.
고통과 슬픔이 동시에 버거우면서도
마음 한 모퉁이 따사로이 훈훈해져 오는
이 평화로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 모두의 천사였던 박영희 레지나여!
안녕…….
차우차우!!!
-초여름- |
오늘부터는 되도록 아름다운 시와 좋은 글 펌하는 일에 절제를 지키고, 그동안 썼던 부족한 제 글들 깎아내고 다듬는 일에 더욱 충실하려고 합니다. 위에 올린 글은 2000년 4월에 돌아간 친구 박영희 레지나를 위해 썼던 글입니다. 그래도 그때가 참으로 좋았노라고 그립게 추억하게도 됩니다. |
2011년 12월 9일 금요일
어디서나 펄럭이는 그 깃발
로스안데스문학
통권 13호
2011
단편소설
맹 하 린
워글워글, 돠르르르
많은 양의 물이 끓어대는 소리가 이럴까, 아니면 수도라도 터진 것일까. 어떤 소음 때문에 잠결에 깨어난 숙현은 몇 가지 의문들을 떠올리며 잰걸음으로 거실로 간다. 형광등의 스위치를 올리자 전기가 나가 있었는데, 벽 시계는 희부윰한 속에서 유난히 두근거리는 듯한 큰 소리를 내며 새벽 3시를 가리키는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부엌은 순간 온수기의 온기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따사로웠고 수도꼭지는 이상하게도 이상이 없었다. 빨래방이 겸해있는 발코니의 문을 열자, 빨래방도 발코니도 전혀 아무렇지가 않았다. 하지만 뭐가 잡아끄는 듯 한 소요가 느껴졌으므로 다급히 발길을 옮겨 정원 쪽을 내려다보다가 숙현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워글대며 북적대는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장마에 젖은 등꽃열매처럼 은은한 빛을 띤 가로등의 불빛을 받고는 있었으나 적요로운 가운데, 흙탕물 같은 검은 물굽이가 아파트의 인도를 가득 메운 채 흘러가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하늘엔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박혀 있다. 습관처럼 오른손을 눈가에 가져갔지만 잠들기 전에 안경을 벗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숙현은 물굽이를 더 좀 자세히 보려고 시신경을 미간에 잔뜩 모은다.
( 저런!)
숙현은 재빨리 주저앉으며 숨기듯 몸을 움츠렸다.
그것은 흙탕물의 흐름이 아니라 많은 수의 군인들이 소리 없이 행군하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숙현이 안경을 벗었기 때문에 그 광경이 흙탕물로 보인 게 아니라 그 움직임은 어둠 속에서 연신 굽이쳤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점이다.
( 흙탕물이라고 해도 놀랄 일인데 군대의 물결이라니.)
거실까지 기다시피 되돌아온 숙현은 여전히 기는 자세로 안방으로 뛰어간 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서진을 깨우기 위해서다. 숙현은 서진의 어깨를 살살 흔든다.
“ 태욱아빠, 놀라지 말고 눈 좀 떠볼래요? ”
서진은 눈도 뜨지 않고 놀라지도 않으면서 대답한다.
“ 왜 그래? 아직 새벽인 것 같은데. ”
숙현은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진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있잖아요, 하고 숙현은 조바심이 새어드는 투로 말했다.
“ 대체 무슨 일이죠? 아파트 마당으로 군인들이 빼곡하게 지나가고 있어요. 어서 좀 와봐요. ”
숙현은 서진의 손을 잡아당기듯 일으킨다.
“ 군인? 군인이라니, 군인이 왜? ”
벌떡 일어난 서진은 입술을 약간 떨면서 얼떨떨한 음성으로 왼손을 잡아준 숙현의 손을 오른손으로 포개어 잡았다.
“ 그러니까 놀라지 말라고 내가 미리 귀뜸을 했는데....”
여전히 소곤대며 발콘으로 들어선 숙현은 그때껏 붙잡고 있던 서진의 손을 좀 세게 끌어당기며 강제적으로 앉히는 시늉을 한다. 발코니의 벽에 숨듯이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은 얼굴만 내놓고가 아니라 거의 눈만 내놓은 상태로 한참동안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군인들의 행군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펼쳐져있는 흐릿한 어둠보다 군인들의 여일한 행군은 형광빛 가로등 때문에 매우 흐릿하면서도 창백한 빛을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의 두근대는 심장 속에서 울려 퍼지듯 군인들의 발소리는 계속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숙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기어들었다.
“ 왜 저럴까요? ”
서진은 목에 뭐가 걸린 듯한 소리를 내며 더듬듯 대답했다.
“ 글세, 범인들을 색출하러 나온 것 같지는 않고....... ”
서진의 말이 차츰 기운을 되찾았다.
“ 지금은 군정시대야. 문제는 우리가 멋모르고 흘러 들어온 이 시우다델라 아파트는 아파트라기 보다는 아파치라는 거고. ”
그의 탄식 사이를 헤집고 나온 한숨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윽고 군인들의 행군이 끝나는 기미가 보이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재빠르게 부엌과 거실을 지나 테라스로 달려간다. 테라스에서는 군인들을 다시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누도 1동과 띠라 1동이 서있는 아파트 초입 쪽으로 차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깜박 잊었다는 듯 느닷없이 몸을 돌려 작은 방으로 들어선 숙현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이불을 다독여주고 다시 테라스로 가 서진의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 당신, 괜찮아요? ”
숙현은 서진의 옆모습을 살피며 걱정스레 물었다. 서진이 숙현의 어깨에 오른 팔을 얹으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눈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 지금 막 괜찮으려는 중이야. ”
그는 이미 말을 많이 했다는 듯 금세 입을 다물었다. 숙현은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서진의 손을 여러 번 다독였다. 마치 인생 자체가 얹혀진 그런 느낌이었으므로...... . 숙현은 조심스레 묻는다.
“ 우리 이 기회에 돌아갈까요? 한국으로. ”
“ 서진은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 아니, 이왕 나선 길인데....... 중간에 포기하기는 싫어. 애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 테고. 우린 애들에게 우주 그 자체야. 그런 우리가 흔들리면 되겠어? ”
초등학교 1학년인 태욱과 유치원생인 태경을 미끄로(스쿨버스)에 태워 등교시킨 뒤 두 사람은 싸르미엔또 호텔 동창인 경주 네로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두른다. 군인들은 6시쯤 이미 철수를 했었다. 서진이 사는 누도 9동과 경주네가 사는 띠라 8동은 3분도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아센소르(승강기)에서 내려 현관문을 나서다가 그들은 황망스레 걸어오는 찬혁과 영선을 마주치게 된다. 서진은 금이 가서 찢기는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 그러잖아도 지금 송형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
경악하기 일보직전이 아니라 경악으로 아침을 맞은 표정의 찬혁은 그만두고라도, 영선은 겉으로 종종걸음만 치지 않았을 뿐 아침 내내 종종걸음을 치고 난 얼굴이 완연했다.
“ 이 놈의 아파트는 다 좋은데 가끔 전화가 불통이어서 말이야.”
찬혁은 그렇게 투덜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화가 정상일 때도 그들은 툭하면 서로 오갔다. 전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뭔가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기는 물론이고 전화조차 군인들이 일부러 차단시켜 놓았을 확률이 많았다.
서진의 아파트로 올라온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평소처럼 소파에 앉지 않고 다탁 주위에 방석을 깐 채 바짝 둘러앉는다. 긴실함이 넘쳐 음성조차 은밀한 가운데 언제나 처럼 찬혁이 서두를 꺼낸다.
찬혁은 늘 오른손으로 입 주위를 쓸어내리며 얘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 새벽에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났어. 전기가 나갔더라고. 무심코 창문의 커튼을 밀치다가 기절할 것처럼 놀랐지 뭔가. 우주인들이 하강한 줄 알았다니까. 잽싸게 커튼을 내리면서야 깨달았어. 군대구나. 영주권! ”
말하는 찬혁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진 반면, 서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 불법 체류 자들을 색출하러 나온 게 틀림없었어. 훈련을 제대로 받은 특수부대가 확실했고. 낙엽 밟는 소리만 빼면 정말 완벽한 진군이었다니까. ‘
인류의 죄악을 심판하는 역병처럼 군인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그것도 새벽에 점차적으로 훑듯이 인구조사를 하는 건 그다지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주권이 없는 가장을 연행해서 초청장이 파라과이 케이스면 파라과이로, 볼리비아 케이스는 볼리비아로 추방한다는 데에 문제는 있었다. 시우다델라 아파트에 거주하는 180여 가구의 600여 한국교민들은 서둘러 자치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군정 하에서는 이렇다 할 해결책이 따로 없었다. 초청장이 아르헨티나 케이스인 한국인은 10%도 되지 않았다.
자고새면 띠라 몇 동의 누가 추방되었다는 소식이 자치회를 통해 발 빠르게 전달되었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띠라 3동의 206호에 사는 H씨는, 가장만을 추방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엉뚱한 일을 꾀했다. 새벽에 군인들이 1층부터 조사해 올라오는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할 때 난데없이 부인을 시켜 냉장고의 음식물을 모두 찬장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서둘러 그 안에 숨었다. 아르헨티나의 냉장고는 성인 남자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다. 기묘한 발상의 대가인 소름끼치는 추위를 동반한 숨박질이었다.
H씨의 집에 들이닥친 군인들은, 가장인 H씨가 지방으로(비록 냉장고 안이긴 했지만) 여행을 떠났다는 설명을 듣더니 19세인 H씨의 장남을 대신 연행해가기에 이르렀다. 여자는 15세, 남자는 18세에 성인식을 치르는, 그것도 거창하게 치르는 아르헨티나의 풍습은 거저 있는 게 아니었다. 순간적인 기지가 더 큰 화를 부른 잔꾀였다는 걸 알고 가슴을 친 H씨는 곧장 군당으로 찾아갔다. 아들 대신 추방당하는 일을 자처한 것이다. 그 비보는 공기처럼 순환되어 곳곳에 전달되었다. 그렇게 추방당한 이들은 일주일도 안 되어 모두 되돌아 왔다. 일단은 아르헨티나와 인접해 있는 파라과이 강에서 배를 타고 월경(越境)을 한다. 그리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뒤 밤낮을 달려 결국은 시우다델라 아파트로 돌아오는 것이다. 명색이 아파트인 아파치로.
페론 대통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어 무상으로 나눠준 시우다델라 아파트에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도 현지인에게도 거액인 돈이 오고간 뒤에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고급 아파트와 다름없었고 가난한 이들과 이웃하며 산다는 것만 빼놓고는 불편한 게 별로 없었다.
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현지인 들은 그 아파트를 FUERTE APACHE(강력 위험지구)라고 부른다는 걸.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국인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으므로.
오늘도 두 사람은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다섯 불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마센(식품점)은 현지인 종업원들에게 알아서 장사하라고 팽개쳐 두고 경주네 아파트로 서둘러 출근(?)한다. 그렇게 되면 지난밤 자치회에 참석했을 찬혁에게서 어떤 괜찮은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가면서 서진은 콧노래를 흥얼댔다. 최근 들어 서진은 허밍으로 자주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 숙현이 불쑥 묻는다.
“ 당신에게 그런 면도 있었어요? 기분이 좋은 것처럼 계속 휘파람 아니면 콧노래잖아요?”
“ 몰랐구나. 나는 기분이 엉망일 때면 저절로 휘파람 아니면 콧노래가 나온다는 걸. “
“ 정말? 근데 왜 난 여태 그걸 몰랐을까요? “
“ 당신을 만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기분이 엉망일 때가 없었으니까.”
“ 칭찬인가요? 아니면 비난?”
“ 둘 다! ”
두 사람은 아주 모처럼 웃는 사람들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웃다가 결국 합창처럼 웃었다.
평소에 청소를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쓰레질이라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쓸고 닦아서 먼지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던 찬혁의 집은 엉망으로 어지럽혀 있었다. 그 집은 언제나 어디나 윤이 났다. 영선은 항상 뭔가를 들고 닦았는데 그건 행주 아니면 걸레였다. 하지만 영주권 때문에 집안을 치울 기분이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진의 집도 그런 면에서 보면 마찬가지였다. 날마다 그들의 기분처럼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기 마련이었다. 흡사 영주권이라는 귀중품을 찾느라 마구 들쑤셔 놓은 집안처럼....... .
찬혁은 이렇다 할 좋은 소식을 제시하지는 못하면서, 언제나 처럼 이민살이의 곤경에 처할 때마다 습관처럼 꺼내는 ‘태극기 사건’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일종의 병치레처럼 치르는 특이한 의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찬혁의 이민생활에 대비한 토대였을까. 찬혁이 진정 힘들 때는 이북에서 부모 따라 피난을 떠나오던 얘기가 화제로 떠올랐으므로 군대가 조사 나온 것하며 영주권, 추방, 그런 일들은 그다지 엄청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기는 했다.
두 사람은 찬혁의 태극기 사건을 백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려 열댓 번도 넘게 들어냈을 것이다. 기이한 것은 서진도 숙현도 찬혁의 ‘태극기 사건’을 한 번도 못 들어 본 것 같은 진지한 자세로 듣고 또 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파라과이 케이스인 우리는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낭패감을 맛보았어. 명색이 수도라는 아순시온은 끝에서 끝이 걸어서 한 나절도 안 될 정도로 작더란 말이지. 마치 드넓은 땅을 소유한 나라라서 이민지로 선택했다는 듯 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이 컸어. 그때 내가 가장 괴로웠던 건, 집사람이 전혀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아닌 얼굴로 계속 묻고 감탄하던 말이었지. 여보, 여기가 정말 천국이야? 아, 천국이 이렇게 생겼구나!
세 사람은 모처럼 웃는 사람들처럼 멈칫대며 웃었다. 어쩐지 눈물이 괴어서 숙현은 살며시 눈꼬리에 손을 갖다 댔다. 이슬처럼 눈가에 물기가 있었다.
- 교민의 대부분이 보따리 장사를 하더란 말이지. 그들은 파라과이인 들의 집마다 찾아다니며 문 앞에서 벨도 못 누르고 손뼉을 쳐 주인을 불러낸다네. 그리고는 보따리를 풀어 상품인 옷을 보여주며 장사를 시작하는 거야. 그것도 대부분 할부판매였어. 그러니까 2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1976년 3월 초였지. 계절은 늦봄이라는데 웬 파리모기는 그리도 많고 덥기는 왜 또 그리도 덥던지....... .
결국 찬혁의 가족은 한국인 빠뻴장사( 종이장사=이민 브로커)와 줄이 닿아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인접해 있는 강을 도강하기로 결정했다. 첫째 한국인이 더 많고 여러 여건이 더 갖춰진 진짜 천국이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해서.
배에서 내려 아르헨티나땅 뽀사다 시에 도착한 후, 택시로 터미널까지 찾아가 부에노스아이레스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안도의 숨이 내쉬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국경수비대가 고속버스에 올라타더니 검문부터 실시하는 것이었다.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찬혁의 가족만이 영주권이 없었다. 그들은 찬혁의 가족을 짐과 함께 강한 지시를 곁들이며 하차시켰다. 하차만 시켰더라면 좋았겠지만 찬혁과 영선을 고속버스의 옆구리에 두 손을 짚고 서 있게까지 만들었다. 대장을 제외한 졸병들은 찬혁과 영선을 향해 장총을 들고 대치한 상태였고.
이민을 떠나올 때, 연탄집게 말고는 모두 있는 나라라고 브로커는 수차례강조하고 강조했었다. 그리하여 지니고 있던 살림살이들 모두 헐값에 팔거나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꼭 필요하다싶은 걸로만 새로 장만한 셈이다. 그렇게 최소한도로 줄여서 꾸린 이민 가방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위도 있었고 부엌칼, 도끼, 그리고 호미까지 있었다. 걸고넘어지자면 그런 게 모두 위험도구였다. 이목구비가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오마 샤리프처럼 생긴 대장은 부하들을 시켜 짐부터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평소에도 하찮은 일에까지 놀라기를 잘하는 영선은 졸도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찬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마 그것은 그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나타내는 가장 다급한 태도일 것이다. 이내 정신을 차린 찬혁은 버스에 짚고 있던 두 팔 사이로 짐을 조사하는 과정을 자세히 훔쳐보기 시작했다. 영선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애 쓰는 중인 사람처럼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그때였다. 가방 안에서 보석함이 삐져나온 것은. 정작 졸병이 조심스럽게 연 보석함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보석이 아니라 차곡차곡 접힌 대형 태극기였다.
“ 운 모멘또(잠깐만)! ”
대장은 이미 펼쳐진 태극기를 보자마자 낮게 소리쳤다. 그 낮은 음성이 더욱 두렵게 느껴져 영선은 잠시 몸이 휘청거렸을 지경이었다. 문득 고개를 외면하자니 동녘으로 해가 뜨고 있었고 하늘이 매우 슬프게, 거기다 몹시 곱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 태극기! ”
대장이 발음도 정확하게 그렇게 외쳤다. 버스를 향해 두 손을 짚고 서 있던 찬혁은 영문도 모를 그 외침에 놀라 그때껏 숙였던 고개를 재빨리 똑바로 했다. 대장은 찬혁과 영선에게 원상복귀를 지시하고 일단 버스부터 보내 버렸다. 그리고 찬혁에게 다가온 대장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을 말할 때처럼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음성으로 나왔다.
“ 이 ‘반데라 나시오날(국기)’을...... ,”
그렇게 말하던 대장은 잠시 쉬었다가 곧 재빠르면서도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내게 선물할 수 있는가?”
찬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광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대장의 부하들뿐이었는데, 그들 모두 찬혁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느껴졌다. 손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손을 털어 내던 찬혁은 고개 먼저 설레설레 저었다. 대장의 부탁에 찬성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만 대답한다. 강건함을 숨긴 채.
“ 매우 죄송한 일이군요. 하지만 안 되겠는데요. 아시겠지만 이건 우리나라 국기랍니다. 거기다, 이민지에서 제 자식들에게 내 나라를 수시로 상기 시켜 주기 위해 가져온, 보석보다 더한 귀중품이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무슨 까닭인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서 있다가 불쑥 물었다.
“ 당신들의 행선지는 어디인가?”
찬혁은 마치 모르는 길을 묻는 어른 앞에서 쩔쩔 매는 아이처럼 일순 뒤숭숭한 기분에 얽히었다. 찬혁이 미처 못 알아들은 걸로 알았는지 대장은 다시 짧게 물었다.
“ 들리지 않는가? 당신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고 있다.”
찬 혁은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잽싸게, 그리고 관등성명을 대는 군인과 같은 어조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 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으로 갑니다!”
대답이 그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대장은 흔쾌하게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당신은 한국인 김한상을 아는가?”
문득 망설이던 찬혁은 서둘러, 그리고 놀랍도록 환희에 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 어떻게 아셨죠? 우리가 지금 그분을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중이라는 걸.”
물론 거짓이었다.
(김한상이라는 이름도 김한상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바 아니다. 하지만 이 대장이 곧 그 사람의 신상파악을 해줄 테지. )
흠흠, 하고 감격한 얼굴로 대장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흥분을 배제하며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 내가 사관생도였을 때, 프로페소르 김한상(김한상 교수)은 우리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던 교관이었다. 그는 태권도를 가르칠 때마다 강당의 정면 벽에 태극기와 아르헨티나 국기를 나란히 걸어 놓고 양국의 국가를 부르게 한 뒤에야 비로소 교습을 시작했지.”
대장은 잠시 한국말로 애국가를 흥얼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때 나는 태극기가 몹시도 갖고 싶었다. 소원 중의 첫 번째였을 정도였다. 나는 그분을 엄청나게 존경한 나머지, 그리고 태권도를 너무나 선망해서, 태극기 하나를 갖는 게 가장 첫 번째의 소원이라고 프로페소르 김한상에게 누누이 간청했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엔 태극기 구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던가 보았다.”
찬혁은 그만 정신 나간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고 만다. 영선은 소리도 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그제야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다. 따로 분리되어 제 부모만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이들.
찬혁은 오른 손으로 입 주위를 여러 차례 번갈아 가며 쓸어 내렸다.
그 대목에 이를 때마다 숙현은 매번 눈물이 글썽여졌다. 숙현은 아르헨티나라는 틀에는 일단 부어졌으나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찍혀내지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여러 번 절망하고 실망하기를 거듭했었다. 아침마다 집안에서는 전혀 못 느끼다가도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부터는 이방인이라는 인식에 수없이 놀라던 나날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일터로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내 나라와 이 나라를 비교하려고, 이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 생각을 더 많이 하려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한국에 있을 때를 견주거나 떠올리거나 그랬었다.
찬혁은 자신의 음성이 격앙에 차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 그건 정말 예삿일이 아니었어. 태극기가 내 수호천사였다니,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이 이렇게나 마련돼 있었다니. 알지? 이런 일은 늘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윽고 찬혁은 태극기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 일이 참 수월하게 풀렸다고 겨우 마음을 놓았을 때, 그 대장은 뜬금없이 내가 선물하기로 허락한 태극기에 내 휘르마(서명)를 요구하며 떼를 쓰기 시작했어. 그러면 안 되는 줄 잘 알면서, 나는 가족과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자 그 태극기에 서명을 하고야 말았지. 물론 소형 태극기가 하나 더 준비돼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그 때 난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손이 몹시 떨리고 있음을 알았어. 대장에게 건네는 태극기가 물결치듯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았거든.
영선은 이 부분에 이르면 느닷없이 걸레질을 한바탕 한다.
“ 대장은 다짐처럼 덧붙였어. ‘지금부터 당신이 이 도시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될 때까지 거치게 되는 검문소가 전부 일곱 개입니다. 그 일곱 개의 검문소마다 모두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당신 가족을 특별 대우하여 무사통과 시키도록.’
이제 영선은 걸레를 옆으로 치우고 똑바로 앉는다.
“ 정말이더라니까. 진짜 도착하는 검문소마다 특별대우였고 무사통과였다네. 참 대단하지? 한국에서 태어난 이 소인은 태극기의 소중함을 아는 데에 41년이나 걸렸는데, 대장인 그 대인은 사관학교 때부터 태극기의 위력을 깨우쳤고 그토록 오랫동안 선망까지 했었다니.”
이 대목에 닿으면 찬혁의 막내인 동성이 실실 웃으며 한 마디 짚고 넘어간다.
“ 인생무상!”
괄목할 만한 일은 찬혁내외도 서진 내외도 동성이 얄밉다거나 애어른 같다는 생각이 안 들고 판소리할 때 고수가 장단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며 그럭저럭 웃어넘기고는 했다.
그물은 점점 좁혀져 왔다. 특별히 봉쇄선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군인들이 곧 봉쇄선이었으니까.
어제 아침 띠라 6동과 누도 5동이 조사를 받았고, 많은 한국인 영주권 미소지자들이 연행되었고 많은 가장들이 파라과이나 칠레나 볼리비아로 추방되었다. 찬혁은 날마다 갈망의 노래를 읊조렸다.
“영주권 신청서만 있었으면, 누가 영주권만 빌려준다 해도 이렇게 지옥 같지는 않을 것을…….”
한국정부에서 외국여행이나 이주자들에게 1인당 2500달러만 지니고 나갈 수 있도록 강하게 통제를 했기 때문에 찬혁은 5인 가족 할당량 12.500달러와 약간의 여유 자금, 서진은 4인 가족 할당량 10.000달러와 약간의 꿍쳐둔 금액이 재산의 전부였다. 주위 사람 모두 200달러나 500달러를 수중에 지닌 채 아르헨티나에 도착되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영주권을 암암리에 신청할 경우 일인당 2500달러였다. 찬혁은 그렇게 라도 영주권을 신청해놓고 봐야겠다는 뜻을 어느 정도 굳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관청의 수속창구는 거북이걸음만 돼도 괜찮겠는데,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잡담까지 나누는 개구리 행정이었다. 집중해서 헤엄치다가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찬혁은 자주 투덜거렸다.
“이 놈의 나라는 도무지 바쁜 걸 모르는 나라여서 탈이더라. 바쁘지만 여유 있게 일하자가 마냥 몸에 배었다니까.”
흥미 있는 것은, 찬혁은 얼굴에 영주권 문제만을 떠올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반면 서진은 계속 떠오르는 영주권에 대한 걱정을 자신의 표정에서 연신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인구조사의 여파는 커다랗게 용솟음치며 수시로 밀려왔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서진의 아파트에 모인 그들은 어떻게 해서 백구 촌에 찾아가게 되었는 지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찬혁이 좌중을 이끌었다.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창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숙현은 창가로 다가가 차갑게 떨어지면서 나직나직 속삭이는 빗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다.
-태극기 사건을 겪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 우리는 택시를 탔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백구 촌(109번 버스종점. 한국인들의 밀집지역이 근접해 있었으므로 그렇게 불려졌다.)에 내려 주더군. “
찬혁은 예외 없이 오른 손을 올려 자신의 입 주위를 여러 차례 쓸어 내렸다.
“ 한국 식당이 하나 둘 있고 가 아니라 전혀 없고, 한국 식품점도 전무하고, 단지 소하(메주콩)를 이용하여 콩나물을 키워 파는 알마센(식료품점)이 하나 있을 뿐이더라고. 우리가 맨 처음 들어간 곳이 스웨터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집이었어. 한국 음식 먹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고 하자 콩나물 무침과 양배추로 만든 김치가 반찬의 전부인 식탁을 차려내 주더군. 우리에겐 정말 푸짐한, 그랬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어. 치즈 냄새와 노린내가 물씬 풍기는 기다란 빵과 토마토소스를 듬뿍 넣은 스파게티와 소금구이 고기만을 사먹다가 모처럼 한국 음식을 대했으니 어땠겠어.”
찬 혁은 잠시 말을 끊는다. 이쯤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고야 말던 영선을 위해 이야기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찬혁은 굳이 영선을 바라보지도 않고 얘기를 계속한다. 영선은 기다렸다는 듯 옷소매를 당겨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기분전환이라거나 심기일전 같은 게 필요했을 것이다. 찬혁과 서진의 가족은 ‘ 훌리오 아 로까 공원으로 소풍을 떠난다. 일부러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만 마련해 간 셈이다. 일요일이었다.
점심식사를 그럴 듯하게 끝마친 찬혁과 서진 내외는 꼭 거쳐야 되는 순서처럼 또 다시 마주앉아 얘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공원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길 건너편에는 수초가 아름답게 우거진 강이 있었다. 물위로 오리들이 유유히 떼 지어 다녔다.
“ 그 때, 강형 네도 우리처럼 파라과이에서 아르헨티나로 밀입국을 했다고 그랬지?”
찬혁처럼 뱃장 좋게 가족만 떠나온 밀입국이 아니었다. 파라과이에서 구한 한국인 브로커가 함께였다. 그 브로커는 툭하면 이유를 달았는데, 그것은 급행료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지키는 경찰만 발견해도, 파라과이인 들의 주식인 만디오까(카사어바) 밭이 펼쳐진 황토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군인만 보아도 그 브로커는 일부러가 아닌 것처럼, 뭔가를 항의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당당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경찰이나 군인에게 먼저 말을 걸고는 곧장 서진의 가족에게 돌아와 운을 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공연히 트집을 잡기 때문에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렵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던 브로커는 정작 뽀사다 시에 닿은 뒤, 서진의 가족을 고속버스에 태우자마자 줄행랑 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내 알바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잠깐 동안이나마 비치며…….
과묵한 편인데도 그 무렵의 서진은 자주 한탄을 터트렸다.
“ 내 나라가 아니고 내 정서가 아닌 땅이라 선 지 참 고달프다, 고달파.”
사실 아르헨티나는 그들에게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이민 수속이다, 비행기 값이다, 정착비다해서 있는 재산을 꽤 축내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뭐든 새롭다는 의미에서 이민 생활은 그들을 도취시켰다. 다분히 중독성이 내포된 도취였다. 찬혁은 아무하고나 사귀려고 들었다. 서진은 누구하고나 사귀지 않으려고 했고. 찬혁은 능력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천국이라고 생각했고, 서진은 가족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천국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찬혁은 청년시절에 한국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프로 권투선수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권투나 권투선수 얘기를 자주 꺼낸다.
“ 서양의 어느 권투선수가 말했어. ‘권투선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링 위에 오르지만 정작 싸울 때는 혼자다, 의자까지 빼앗긴 채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싸워야 한다.’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권투선수를 못 벗어나고 있다네. 언제나 혼자였고, 언제나 충분히 외로웠다고 봐야 할 거야.”
“서진이 농담처럼 불쑥 말한다.
“ 송형이 권투를 왜 그만 뒀는지 난 다 알 것 같아요.”
“ 왜 그만 뒀을 것 같아?”
“ 뻔 하지 않습니까? 맞기 싫어서였겠죠. ”
“ 땡! 틀렸습니다. 나, 권투선수 송찬혁은 상대방 선수를 진정 때리기가 싫었습니다! 정말 그랬어. 어느 날 갑자기 권투가 싫어진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때리기가 싫어졌다네. ”
그들은 처음에 연고자가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서로 연고자가 되어 주며 공유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할 나위없이 끈끈한 공유를 할 수 있었다.
“ 강형 네와 우리는 연고자 없는 사람들이 으레 정거장처럼 거치게 되는 싸르미엔또 호텔에 묵게 되면서 알게 되었지. 말이 호텔이었지 여인숙 수준이었어. 우리의 안내로 백구 촌에 가서 소찬이지만 진수성찬으로 알고 사먹던 한국음식 기억나? 감자와 근대를 숭숭 썰어 넣은 된장국에 홍당무로 담근 열무김치였던가?”
찬혁은 저절로 입맛이 도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 처음 만난 날, 우리가 악수를 나누는데 강형이 내게 뭐랬는줄 알아? 송형은 이민을 왜 오셨습니까?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분 같아 뵈는데요.”
“ 그때 송형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잊지 않았겠죠? 그날 송형은 내게 말했어요. 강형은 이민체질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
“ 그래 정말 그랬어,”
까르나발의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지고 있는 거리에는 아구아(물)라고 소리치며 물이 든 풍선을 던지는 젊은이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아구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되어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된 언어다. 물을 채운 색색의 주먹만 한 풍선을 던지며 즐겁게 환호하던 그 부르짖음은 숙현의 기억 속에 환영처럼 아름다운 시의 여운으로 남아있다.
연고자가 없던 찬혁과 서진의 가족들이 맨 처음 묵게 된 사르미엔토 호텔에서의 나날들은 음식 때문에 오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그 호텔은 잠만 잘 수 있었을 뿐, 취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도 규칙도 전혀 안 돼 있었다. 숙현이 이민 가방에 넣어온 새로 개발했다는 전기 프라이팬에 두 집 가족 모여 호텔의 주인이나 보이들 몰래 열심히 계란만 삶아 먹던 삶은 계란처럼 너무나 팍팍하던 일상들. 날마다 매식하던 고기나 식빵이나 버터, 그리고 우유에서는 왜 그리도 노린내가 풀풀 피어나던지…….찬혁과 서진은 가장이라는 넥타이를 목에 두르긴 했으나 가족을 이끌고 낯선 나라로 떠나온 책임감의 부피만큼 연고자 없는 서러움이 가장의 넥타이보다 더 답답하게 그들의 목을 조여 댔을 것이다.
백구 촌에 가도 한국식당이라고는 없었다.
사실 그 무렵의 찬혁과 서진 에게는 앞으로 낯선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거의 뒷전이었다. 우선적으로 한국음식을 찾아내는 일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백구 촌에서 재봉틀수선을 직업으로 갖고 있던 N씨내외였다. 며칠 동안 한국음식을 못 먹었다는 찬 혁의 설명을 딱하게 여겨 생전 처음 보는 알량미 비슷한 커다란 알갱이의 쌀로 천천히 밥을 지어 내놓은 이들은…….
한국 쌀보다 곱절이나 큰 그 쌀은 일단 10분 정도 담갔다 지어야만 제대로 뜸이 들었다. 감자와 근대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된장국과 홍당무로 담근 열무김치가 반찬의 전부인 식탁이었다. 그때 맛본 한국음식의 해후는 평생 동안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천국이라는 말이 분명 맞는 것 같았다. N씨 내외가 나이 든 천사처럼 보였으니까.
기이한 것은 허겁지겁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면서 매우 심각한 기분으로 대하게 되던 식탁이었다. 음식을 들고 있던 모두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동성이 싱그레 웃으며 결국 한 마디 던졌다.
“ 인생무상!”
“ 그래, 인생무상이다! 경주가 따지듯 쏘아대다가 한탄처럼 말을 이었다.
“ 넌 언제 어른이 될래?”
“ 어른이라니? 난 이제 겨우 열 살이야.”
“ 제발 부탁이야. 무슨 주술처럼 인생무상 좀 그만 지껄여라. 그 말 때문에 앞으로의 내 인생이 정말 무상의 연속이 될까봐 겁이 나.”
동성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퍼붓듯이 대답했다.
“ 무슨 천국이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냐? 많이도 안 바란다,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좋겠어.”
마당에 목백일 홍과 감나무와 앵두는 물론이고 여러 정원수와 아치형 대문에 올린 줄 장미, 그리고 잔디밭까지 갖추었던 그럴 듯한 양옥을 헐값에 처분하고 천국이라는 나라에 닿아 일주 일만에 고작 밥 한 끼 가지고 감격이라니…….
평소에 보채는 게 뭔지도 모르던 서진의 애들이 자꾸만 ‘우리 상도동 집’으로 가자고 칭얼대던 일도 참 쓸쓸한 대목 중의 하나다. 웬만한 일에 쓰다 달다 말이 없는 편인 서진이 아이들에게 해낸 다짐은 이랬다.
“ 그래, 언젠가는 가자. 그런데 이왕 왔으니 한 번 살아보고 가는 거야. 알았지? ‘
아이들조차 이민지에 대해서 몹시 부정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보름달만 봐 왔다는 듯 어느 초저녁 하늘에 떠 있는 갈고리달을 보고 태욱이 빈정대 듯 말했다.
“ 엄마, 이 나라는 왜 달이 깨졌어요?”
숙현이 달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자 태욱이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가 좋은데....... . ”
태경도 덩달아 대답했다.
“ 나도, 엄마. 우린 이 나라가 싫은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좋다는 거지요.”
태욱이 다짐처럼 덧붙였다.
“ 엄마, 우리 이사 갈 때는 한국으로 가요.”
모처럼 맘 잡고 알마센으로 일하러 나갈 때나 저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 올 때, 숙현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빠르게 걷는데 비해 서진은 일부러 뒤쳐지듯 천천히 걸을 때가 있다. 그 간격이 점점 멀어져 숙현이 가던 길을 여러 차례 멈출 정도로. 서진은 그만큼 심각하고 심난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주 투덜댔다.
“ 이민 병은 이민지에 도착하여 음식고생을 할 때 비로소 치유된다더니, 치유가 되긴 된 건가? “
찬혁의 말은 계속된다.
“ 한국정부의 외환관리 방침 때문에 강형이나 나나 제대로 된 이민자본을 가져 온 것도 아닐뿐더러 집도 거저 떠넘기다시피 팔아 치웠잖아. 그리고 천국이 따로 없다는 브로커의 말에 현혹되어, 연탄집게만 빼면 다 있다는 말이, 사실은 연탄집게 말고는 뭐든 다 필요한 현실에 맞닥뜨렸질 않나.”
어느새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온 동성이 진즉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결코 다름없이 불쑥 맞장구를 친다.
“ 인생무상!”
숙현은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왜 동성이 밉지가 않은지를...... .
동성과 서진의 애들은 이번엔 자전거가 아니라, 개울에서 토끼만 한 쥐를 봤노라고 떠들면서 우르르 개울 쪽으로 뛰어간다.
그물은 더 가까워진 게 아니라 어느덧 덮쳐왔다. 찬혁이 사는 아파트 띠라는 길기만 한 2층이지만, 서진의 아파트는 높기만 한 12층이었다. 어쨌거나 우선은 찬혁의 아파트였다. 왜 하필 꼭두새벽일까,
찬혁은 밤이면 밤마다 잠을 설쳤다. 그물이 덮치기 시작한 날부터 내내.
이불이 무슨 커다란 샌드백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도 없이 이불을 손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다시 연습한다는 듯 곧장 끌어당겨 덮기를 밤을 세워가며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밀어낸 이불을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두르는 타월처럼 수도 없이 끌어당겨 덮기를 밤을 세워가며 계속했고.
참 죽을 맛이었다. 권투를 할 때 역시 그랬다. 시합이 끝날 때마다, 더욱이 승리를 쟁취한 후에는 심각함의 강도가 엄청날 정도로 컸다. 죽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었다. 누군가를 흠씬 죽지 않을 만큼 패고만 자신이 죽고 싶도록 싫었다. 그런 까닭이었다. 권투를 그만 두게 된 연유가, 이민을 떠나오게 된 이유라는 게…….
영주권 수속은 이민청 직원과 내통된 한국인 브로커에게 착수금으로 이미 3천 달러를 건네 준 상태였다. 며칠만 있으면 신청서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브로커가 누누이 다짐에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아무리 군대 아니라 특수부대의 사령관이 들이닥쳐도 신청서만 있으면 무사통과가 되는 게 이 나라의 법이라는 말까지 잊지 않으면서. 하지만 찬혁은 그 며칠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리하여 지난밤에도 다음날 새벽에 연행돼 갈 일에 대비하기까지 했다. 이민 가방에서 겨울 잠바를 꺼내어 침대 옆에 둔 건 물론이고 내의까지 미리 껴입어 둔 것이다. 이제 겨우 가을이라지만 봄여름 가을 겨울이 한국처럼 뚜렷하지 않고 여름에서 겨울,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뛰는 기후도 기후지만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은 도대체가 기분만 으스스할 뿐이다.
언제나의 D데이처럼 낙엽 밟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애간장을 들쑤셔대는 낙엽 밟는 소리는 그만 찬혁의 아파트 근처에서 딱 멈춰지는 게 아닌가. 찬혁은 다급히 형광등의 스위치를 올리다가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전기가 나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쓱해 지는 느낌이어서 찬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여러 번 훑었다. 얼굴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 그렇다면?”
찬혁은 그렇게 혼자 중얼대며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며시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군인들의 일부가 누도 8동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다가가고 있었고 일부는 띠라 8동을 향해 씩씩한 걸음걸이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더 많은 수는 정원에 남아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고.
찬혁은 홍수로 폐허가 된 땅에 망연자실 남겨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절망을 이기고 마치 수렁처럼 계속 빠져드는 땅을 헤쳐 나오듯 두 팔을 훠이훠이 저으며 비칠비칠 걸어가 가족마다 깨운다. 그들은 다투어 세수를 하고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경주가 준비한 빵과 커피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물이 좁혀져 온다고 여겨서인지 영선은 어느 날부터인가 예전처럼 청소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집안은 다시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게 깨끗했다. 동성이 기어이 한 마디 하려는 기미가 엿보이자 경주가 손사래 치며 말린다.
“ 동성아., 너의 그 어쩌구저쩌구를 다 뺀 덧없다는 말은 항상 적절했고 너무나 타당했고 어떤 면으로는 슬프면서 재미있기까지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오늘은 결코 아니라구.”
“ 이게 아니면 그럼 어떤 게 인생무상인데?”
동성은 그야말로 톡 쏘아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찬혁이 그만들 두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쏘듯이 쳐다보면서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을 때 문가에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똑, 어정쩡 일어서던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리빙으로 나와 벽쪽으로 주욱 섰다. 도어 노커를 두들기던 짧은 소란은 곧장 초인종 소리로 이어진다. 영선은 가슴이 철렁하는지 아이구머니나!하고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었다. 눈을 있는 대로 커다랗게 떴던 찬혁이 짐짓 문을 열라는 눈짓을 하자 동훈이 꼭 튕겨나가는것처럼 날렵하게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 끼에네스 (누구세요) ? ”
의외로 낭낭한 음성이다.
“ 센소( 인구조사). ”
놀라지 말라는 둣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였다. 동훈은 쇠로 된 빗장을 풀고, 열쇠를 침착하게 따고, 문까지도 매우 선선하게 열었다. 거의 활짝 열어제친 것이다. 여러 명의 군인들이 구둣발로 리빙에 들어선다. 맨 나중에, 자기의 걸음걸이를 헤아리듯이 뚜벅뚜벅 들어선 대장은 벽에 등을 대고 죽 늘어선 찬혁의 가족을 휘 둘러보며 더 있으면 더 나와야 한다고 지시한다.
“ 에스따모스 또도스 아끼( 여기에 다 있습니다). ”
동훈이 그렇게 대답한다. 찬혁이 모두 의자에 앉기를 권유했으나 대장과 서류를 든 대위만이 소파에 앉는다. 여섯 명의 군인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않은 채 문간으로 가서 섰다. 찬혁은 몸만 대장 앞에 앉아 있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양손을 짚고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앉은자리가 꽤나 탐탁치가 않았다. 아니지, 마치 권투시합을 시작하기 일보 직전과 같이 몹시도 초조롭고 불안한 상태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외국인에겐 군인이 아니라 신사처럼 행동하기 마련이었는데도.
거침없이, 곧장 조사가 시작된다.
“ 아르헨티나에 언제 도착했습니까?”
찬혁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두려운 눈빛을 띤 채 토막토막 끊기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입은 물론이고 턱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찬혁은 차마 대장을 올려다 볼 수는 없어서 눈을 잔뜩 내려 깔며 대응했다.
“ 1.9.7.6.년. 3.월. 초. 입.니.다.”
“ 아르헨티나 케이스입니까?”
찬혁은 번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우선 침부터 삼킨 뒤 대답했다.
“ 라라과이, 아니 파라과이입니다. 네. 그 나라 케이스입니다. ”
더듬거리는 것도 아니고 혼동하는 것도 아닌 찬혁의 대답에 대장은 짧게 웃었다.
흡사 대장의 웃음이 거미줄처럼 찬혁을 옭아맨 것처럼 그는 이상하게 움츠린 매우 작은 모습이 되었다. 드디어 사로잡힌 밀 입국자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찬혁은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몸을 꼿꼿이 펴고 음성에 활기까지 불어넣었다.
‘ 아르헨티나가 어쩐지 좋았습니다. 그래서 파라과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이 나라로 온 것입니다. “
“ 영주권은?”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대장의 목소리는 거의 질책처럼, 또는 힐난과 같이도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보자 가련한 영선의 얼굴은 송장이나 다름없이 변해 있었으며 그 눈은 몹시도 질려 있었다. 찬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신중을 다해 대답했다.
“ 지금 신청 중입니다.”
“ 신청서는?”
(젠장,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 저렇게 말할 수도 없으니, 이거야 원. )
찬혁은 양미간에 오른 손을 대고 잠시 현기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 며칠 있으면 나올 겁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확인하셔도 됩니다.”
죄책감이 스며 있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혀를 깨물고 난 후처럼 아픔이 배인 대답이었다. 찬혁은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우연이었을까, 대장도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하지만 대장은 역습하 듯 신랄하게 추궁했다.
“ 참 기이한 일도 다 있군요. 파라과이 케이스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는데, 사면령이 발동되기 전에는 말입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이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지 않습니까?. ”
대장은 찬혁에게인지 스스로에게 인지 그렇게 반문했다. 찬혁은 불현듯 깨달았다. 신청서를 손에 쥐기 전에는 영주권을 수속 중이라는 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브로커가 신신당부하던 사실을.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손마디가 다 저릿저릿 해왔다. 찬혁은 그 순간 등산을 하다 낙오자가 되어 산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끝모를 절망감을 맛보았다. 대장은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미 결정했다는 듯 거침없이 다음 질문을 토해냈다.
“ 밀입국은 어느 경로를 택했습니까? ”
찬혁은 그 순간 창자가 이완되는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배를 꽉 움켜쥐었다. 배를 움켜쥐고 있어서일까, 대답은 제대로 나왔다.
“ 포르모사 시로, 파라과이 강을 배로 건너서, 포르모사에 도착하여…….”
“ 포르모사? 지금 분명 포르모사라고 했습니까?”
대장은 그렇게 물었으면서도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분명 어떤 생각의 실마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눈에 티라도 들어간 것처럼 대장의 눈이 여러 차례 깜박였다. 영선은 손을 힘껏 마주 잡았다. 죽을힘을 다해 꽉 붙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계속 떨렸으므로.
눈동자가 동그랗게 고정되는 듯 보이는 찬 혁을 뚫어질 듯 지켜보던 대장은 이내 고개를 돌려 휘휘 거실을 살펴보았다. 대장의 시선이 뒤쪽 벽 가운데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오롯하게 걸려 있는 소형 태극기에 꽂히듯 멈췄다.
“ 태극기!!!”
한국말로 그렇게 부르짖으며 대장은 뛰듯이 일어섰다. 서류를 작성하던 대위도 덩달아 일어섰다.
“ 태극기? ‘
대장의 한국말에 놀란 찬 혁은 태극기? 라고 어정쩡하게 반문한 나머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자칫 쓰러질 염려가 있어 왼 손으로 소파를 가까스로 붙잡으면서.
찬 혁은 거의 전율을 느꼈다. 역광을 받은 대장의 얼굴이 2년 전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줌-읍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였다. 바로 그 대장이었다. 찬혁은 벽에 걸린 소형 태극기가 물결처럼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팔을 쭉 뻗어 오른 손을 창 쪽으로 내밀었다. 바람이 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창문은 닫힌 채였고 커튼조차 그대로였다.
( 내가 왜 이러는 것일까,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
가족들은 흡사 돌이된 듯 움직일 줄 몰랐다. 대장과 찬혁의 얼굴에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빗물이 쏟아지듯 점차적으로 희열이 번지고 있었다.
“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바로 태극기, 당신?”
대장이 두 팔을 벌리며 찬혁을 껴안는다.
“ 올라, 아미고(여어, 친구)! ”
“ 딴또 띠엠뽀, 헤네랄( 오랜만입니다, 대장님)! ”
찬혁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모른다. 영선은 더좀 벽쪽으로 몸을 옮겨 벽에 어깨를 기댄 채 소리도 안내고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동성은 작게 중얼대고야 만다.
“ 그래. 누나 말이 맞아, 오늘은 아냐. 절대로 아냐. “
잠시 서로 떨어진 대장과 찬혁은 다시 한 번 껴안고 나서 소파에 마주 앉는다. 서류를 든 대위도 금세 따라 앉는다.
“ 세상엔 정말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군요. 자녀들이 그동안 몰라보게커버려서 더 못 알아 봤습니다.”
찬혁은 생뚱맞게 투덜댔다.
“ 또 태극기를 달라고 오신 건 아니겠지요?”
대장은 점차적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쾌소를 터뜨리며 상쾌하게 말했다.
“ 사양하겠어요. 이번엔 휘르마(서명)도 안 해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 국기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만 있어도 만족할 줄을 안답니다. 아시겠어요? ‘
찬혁은 지금의 자신과 그 당시의 자신 사이에 스며있는 연관성을 겨우 찾아낸 듯 감격적으로 말했다.
“ 낯이 익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러나 전 아직껏 서양 사람들이 모두 엇비슷하게 잘 생겼다는 인식사이를 헤매고 있는 형편이라서……. 그리고 그 먼데서 이곳까지 오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 우리 국경수비대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대장은 금세 말을 바꿨다.
“ 난 단지 군부의 명령에 의해서 내 작전지에 조사를 나왔을 따름입니다. 그 일이 결국 이렇게 당신과 해후하게 만들었지만.”
마치 대장의 설명이 그를 두둔하기라도 한 것처럼 찬혁은 뜬금없는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찬혁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 나는 결국 추방되겠지요?”
이목구비가 조각처럼 생긴 대장의 얼굴이 의연하게 빛났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이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졌다.
“ 설마, 당신이 누굽니까? 당신은 태극기인데. 아니, 태극기 그 자체인데…….”
찬혁은 어린애처럼 어리광스럽게 말했다.
“ 대장님은 조사는 많이 다니는데 참 엉뚱하세요. 마치 태극기를 찾아다니는 것 같거든요.”
“ 나는 태극기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 나요, 아니면 태극기요?”
“ 둘 다!”
찬혁의 목구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반사적으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볼을 타고 내렸다.
“ 물을 한 잔 마셔도 됩니까?”
그것은 질문이었지만 질문 같은 구석은 없었다. 한 사람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한 사람은 고개만을 끄덕였기 때문이다. 찬혁은 다탁에 있는 주전자를 기울여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단숨에 마셨다.
“ 더 마셔도 됩니까?”
“ 다 마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같은 톤으로 껄껄 웃었다.
어젯밤 잠을 설치면서까지 끌려갈 걸 대비해 옷을 여러 벌 껴입은 탓도 있었지만 사실 찬혁은 그만큼 긴장했던 것이다. 심한 갈증을 해소하자, 커다란 한숨이 쉬어졌다.
“ 푸우! ”
“ 아미고(친구), 놀랐습니까?”
“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놀랐어요. 지금도 놀라는 중이고. ”
“ 우선은 나를 믿으세요.”
“ 어떻게 당신을 믿고 싶지 않겠습니까?”
“ 인구조사에는 친구를 봐줘도 되지만, 영주권 조사에는 친구 아니라 가족도 봐주면 안 됩니다. 그저 조사하는 사람과 조사를 받는 사람만 있을 따름이죠. 나는 국경수비대 소속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을 조사해 왔습니다. 그들 중에 태극기를, 그것도 크고 작은 걸로 간직한 한국인은 참 드물었습니다. 당신은 조국은 물론이고 이 나라도 소중하게 여길 사람이라서 나는 오늘 당신을 눈감아 주는 겁니다.”
찬혁은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말을 익힌 어린애처럼 더듬거리며 말했다.
“ 대장 님은 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면 꼭 나타나시는 군요. 대장 님은 사람을 곤경에서 구할 줄을 알고 계세요. ”
“ 내가 아닙니다. 당신의 태극기였죠.”
그 말이 찬혁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다. 찬혁의 초췌한 얼굴에 서서히 홍조가 돌면서부터였다.
결국 찬혁은 서진 가족을 설득해서 급히 김한상씨의 뒤채로 전세를 떠나도록 주선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때껏 집을 못 구했던, 아르헨티나 케이스인 제천 집에게 판매한 상태다. 태권도 사범 김한상씨를 찾아간 찬혁이 일을 그렇게 결정지은 것이다. 찬혁은 김한상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무조건 찾아가 ‘태극기 사건’을 얘기했더니 금세 마음을 허물더라는 것이었다.
“ 그럼 송형네가 이사가야지 왜 하필 우리를...... . ”
“ 나는 센소가 무사히 끝났잖아. 머잖아 신청서도 손에 쥘 것이고. 비록 비공식일망정...... . 강형은 이제 일주일도 못 남았으니까 우선 피하고 봐야 해. 강형의 수난은 곧 나의 환난이기도 하거든. ”
찬혁은 예외 없이 어느 권투선수 얘기를 예로 든다.
“ 서양의 어느 권투선수가 말했어. ‘ 경험이란 대머리가 되었을 때 선물 받게 되는 빗과 같은 거’라고. 내 비록 센소는 무사히 치렀지만 그 경험을 빗으로 선물할 수는 없잖겠어. 거실 전체에 대형 태극기로 도배를 할지라도 그 대장이 꼭 나온다는 보장은 없어. 그리고 그런 조사는 안할 수만 있으면 안하는 게 최선이야. 기다리자, 우리. 사면령이 내릴 때까지.”
찬혁의 연민이 서진에게 물결처럼 밀려왔다. 이 순간만큼은 영주권 문제가 햇빛에 녹아버리는 살얼음처럼 스러져버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완전히 평정을 회복한 듯했다. 찬혁은 어울리지 않게 점잔빼며 말했다.
“ 이건 시작에 불과한 지도 몰라. 우린 앞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훨씬 심각한 환경에 처할지도 모르고.”
서진도 퍽 의젓하게 대답했다.
“ 무슨 걱정입니까? 우린 아직 젋은데, 우리에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모국이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 태극기가 있는데.”
두 사람이 터뜨리는 탕탕한 웃음이 거실 안을 가득 메웠다.
이사하기 전날 새벽. 공교롭게도 서진이 사는 누도 9동으로 군인들이 밀어닥쳤다. 태극기를 존중하는 대장은 빠져 있었다. 혹시라도 그러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행여나 하여 큼직한 태극기를 벽에 걸어 뒀는데도.
보무도 당당하게 젊은 대장과 그의 부하들이 들이닥쳤을 때의 막막함이라니. 긴장감으로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시계 소리가 유난히 커다랗게. 마치 시한폭탄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서진은 결국 추방이었다. 서진과 숙현은 이미 묵계라도 한 것처럼 서로 아무 말도 못했다. 오히려 서로 무슨 말이 나올까를 겁냈다.
추방은 비행기 편으로였다. 그건 분명 처량함이나 서글픔이 아니라 비장감만 키를 돋우는 행로였다.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게 되는 이웃나라 파라과이로의 추방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추방당하지 않음을 서진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안도했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일주일 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었다. 인접국으로의 추방이라는 게 참으로 싱거웠다. 어디 가서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경이 삼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서진이 마음에 수없이 도장을 찍었고, 서진의 마음이 끝도 모르게 삼엄했을 따름이었다.
광활한 대지 위의 옥수수와 해바라기와 만디오까(카사어바)들이 모두다 경비병으로 보여서 그게 아주 크나큰 장벽이었다. 회오리바람이 사나운 기세로 옥수수 밭을 뒤흔들 때마다 군대의 진군소리처럼 여겨져 서진은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랬다. 그건 분명 군인들의 소리였다. 그럴 때마다 서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최소한도로 움츠렸다. 급기야 몸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세찬 바람이었다. 서진은 문득 아득함을 느꼈다.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불현듯 너무나도 불안했던 것이다.
“ 이건 떠나왔다기보다 돌아간다고 봐야 해.”
서진은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야 깨달았다. 동족이며 일행인 종인과 지금껏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치 종인과 심하게 다투기라도 한 것처럼 시적시적 걷기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강가에 다다랐을 때, 서진은 기꺼이 몸을 돌려 파라과이 쪽을 뒤돌아보았다. 붉은 황토 길이 하늘과 맞닿을 만큼 없게 펼쳐져 있었고 구불구불한 길의 양편으로 옥수수와 해바라기와 만디오까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며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엔 항적운이 곱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중이었다.
맞은 편 강가에는 광야가 파랗게 가려져 있었다. 서진은 끈임 없이 파고드는 울적함에 대항하려고 연달아 몸이 움츠려드는 걸 느끼고 연신 허리를 폈다. 들판 한 쪽에서 누군가 내치는 것처럼 바람은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군살이 없고 깡마른 편인 서진은 그 바람에 휩쓸려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양쪽 나라로 번갈아 가며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을 어쩌지 못했다. 오로지 굳세어질 대로 굳세어진 마음만이 아르헨티나 쪽을 힘껏 붙들었을 따름이었다. 서진은 강가로 다가갔다. 숙현과 아이들의 얼굴이 강물위로 수없이 어른거렸다. 그는 의식적으로 가족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거의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달랬다.
( 밀림은 내 앞을 가로막은 게 아니야. 내 뒤로 밀리고 있어. 그래서 밀림이야. )
뱃전에서 앞자리에 앉은 종인이 파라과이 쪽을 바라보며 그제야 얘기를 시작했다. 서진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자, 국토 중앙을 빠라나 강이 흐르고 기름진 대 평야가 펼쳐진 방대한 면적의 땅이 서진을 반기는 듯 한 각별한 기분까지 들었다.
차창 밖은 속속들이 환하면서 투명하기까지 했다. 버글거리던 머릿속이 서서히 맑아지고 있었다.
꼭 필요한 살림살이까지 모두 다 없애고, 우여곡절 끝에 남의 나라에 도착하여 달랑 냉장고, 소파, TV. 그리고 부엌살림이라고는 식구 수대로 사들인 접시와 국그릇과 몇 개의 냄비가 전부인 이삿짐이었다. 그걸 어제 오후에 미리 김한상씨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고작 2개의 작은 가방과 함께 소형 이삿짐 차에 오른 숙현은 한참동안 누도 9동의 자신들이 살던 3층 A를 되돌아보았다. 이민을 오니까 아파트 같은 아파치에도 살아보고 군대라는 그물이 점점 좁혀져 오는 아슬아슬한 인구조사도 당해보고 아르헨티나 식으로 오후에 떠나는 이사까지 해보게 된 것이다.
이민자인 서진가족을 실은 이삿짐 차가 어스름 속에서 한 번 심하게 출렁였다. 이사를 떠나는 서진의 가족도 덩달아 출렁댔다. 이민자라는 현실감이 파도처럼 물결치기 시작했다.
시우다델라 지역이 이내 멀어지면서 전원 풍경이 나타났다. 급행열차가 도시를 향해 적막에 가까운 기적소리를 내며 별로 급하지도 않으면서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나갔다. 들판은 그렇게 광활할 수가 없었다. 하늘은 석양 속에서 물처럼 빛살을 출렁였다. 이삿짐 차는 냇가를 돌아 양켠으로 갈라선 포플러 숲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른 암갈색 톤으로 숲은 해거름 속에서 때늦은 꽃과 열매를 다다귀다다귀 매달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한 차례 불었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마리의 귀뚜라미가 경합하듯 노래를 불러 제쳤다.
숲길이 끝나자 김한상씨의 저택이 나타났다. 주위의 풍경이 너무 조용하고 애틋하여 마치 꿈속처럼 여겨졌다. 이삿짐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무겁지도 않은 카트를 끌며 김한상씨의 집 쪽으로 다가갔다.
울창하면서도 어스름하고, 그리고 불빛이 환하며 따로 대문도 없는 정원 가운데서 어떤 손길이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날이 갈수록 수도 없이 위로 받아야 할, 매우 간절하고 호의적인 존재였다. 오랜 세월 기다렸다는 듯이 의연하게 깃대를 붙잡고 온몸을 흔들어 환호하며 그들을 반기고 있는 그들의 국기, 태극기였다.
그들은 기쁘게 다가갔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물결치는 태극기를 향하여. 그리고 중대한 의무를 이행하듯 오른 손을 들어 가슴에 손을 얹고 우러러보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였을까?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김한상씨 내외가 국기 하양 식을 치르러 나왔다가 서진의 가족을 반기게 된 것은.
오디오에서 꽝꽝 울려 퍼지던 애국가도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며 따라 나와 김한상씨 내외와 함께 열렬한 환영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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