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돈데 에스따(Donde esta)?



어젠 온세(Once) 지역에 위치한 하루(Haru=春)라는 일식집에서 작은
미팅이 있었습니다.
현지인을 위한 전도사이자 지금껏 큰소리라고는 내본 적이 없어 보이는
조용한 음성의 소유자이신 토요한국학교교장의 초대에 응하는 자리였습니다.
문협의 박 회장과 노부회장이 함께였어요.
에치켓을 지켜야 할 분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화기애애하지만
엄숙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 같은 게 껴듭니다.
하루는 들어 갈 때 텅텅 비었던 좌석이 나올 땐 현지인으로 가득 붐벼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홀로 살며시 애국자인 내 마음 절로 흡족했답니다.
하루는 일식전문의 식당이지만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등하교 길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마다
한국어가 전혀 아닌 서반아어만 주고 받는다는 사실.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사용할까라는 의지보다는 어떻게든 쉽고 간단하게
나오는 서반아어만을 사용하려는 교육현장에서의 서글픔.
12월에 빛을 보게 될 로스안데스문학지에 대한 얘기.
또는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처한 현황에 대해서도…….

문협 회원들이 항상 2차로 찾아가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박 회장이 자동차로 데려다 줘 10시에나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왜 초등학생이 일기를 쓰듯 이 글을 의도적으로 조목조목 적었나를 짧게
분석하자면 그렇습니다.
토요한국학교가 실시한 글짓기 대회에서 추수한 알곡들의 심사를 했을 당시에
맛보았던 낭패에 대한 어떤 울적함이라거나 일종의 실망에 대한 각성이 뒤늦게
틈을 비집고 있는 탓이라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심사란 그래요. 어떤 글들을 읽어봐도 읽어야 될 것을 읽기가 싫어지는 느낌에
휩싸이게도 되죠. 그러한 느낌을 새삼 당기어 보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열아홉 분의 한국인교사들이 근무하는 토요한국학교.
현지인과 일본인까지 뒤섞인 특수반은 물론이고, 백 명이 넘는 학생으로 구성된
토요한국학교의 글짓기는 가히 천편일률의 극치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에 여행을 갔었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는 내용만을 심사 했었던
그 지루했던 기억이라니요.
그것은 단순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적절한, 어딘지 모르게 기초만을 쌓아올린
조각놀이와 흡사했었습니다.
사실 단순하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그리 나쁜 뜻은 아닐 것입니다. 단순하지 않아야
할 때 단순하다면 단순하다는 게 문제겠지만요.
겨울방학이라는 제목은 참 그럴 듯 했는데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전체 모두
단체행사처럼 단순해서 탈이었습니다.
주말에 가장 바쁜 편인 내 생업의 특성상 약간의 지적이라도 쫒아가 제시할
수는 없어서 문협의 그 어떤 분이라도 참석하여 제발 제목은 같을지라도
내용은 좀 더 개성미가 엿보이는 글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던 날에
대한 을씨년스럽던 각성조차 함께했던...... .

아버지가방에들어갔다가 아니라,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내 가방 어디 있어요)?
의 현장에서 우리의 2세들에 대한 짧고도 긴 감사와 염려, 그러니까 가방이라는
단어는 다행히 건졌다는 짧은 안도에 대한 고마움과, 어디에 있는지 갈수록 의문
이 되는 우리의 정체성은 말 그대로 돈데 에스따? 가 된 걱정스런 현실을 앞에
두고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니어서 잠시 심각해진 나머지 나야말로 어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의 하루를 하루에 다녀와 잘 이행했었나 봅니다.
나의 하루 역시 잘 편집되어 지낼 때 간혹 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히 흐를
경우 또한 부지기수였음을 새삼 자인하게도 됩니다.

몸의 3분의 1만 바닥이나 의자에 닿아도 쉽게 단잠에 빠져드는 편인 내 잠속으로
돈데 에스따 미 가방이라는 언어 또한 혼돈되어 함께 잠든 밤…….
어제는 바로 그런 밤이었습니다.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돈데 에스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