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때 늦은 추위


       맹하린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뭇 학자들의 이론은 매우 적절하면서도
우려가 제대로 깃든, 확실한 진단인 것만 같다.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한낮에도 춥다. 
이미 봄이 깊었는데도 말이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지만 교민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의류도매나
소매, 또는 제품 업이나 부속 상에 올인하고 있는 분들의 애로사항이 눈에 
훤히 보인다. 
두꺼운 옷을 걸치기도 송구스러운 날씨의 연속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내고 있다.

한동안 뜸하던 친구들이 요즘 번갈아 가며 내 가게를 방문해 온다.
커피를 내놓자마자 하소연 꾸러미를 풀어놓고 이 문제, 저 문제 펼쳐 놓는다,
마치 내게 입맛이 당기는 이슈를 맘대로 골라 보라며 제시하는 느낌이  든다.
J교회 사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한국의 시어머니에게 아홉 살 난 아들을 맡겼고, 멀고 먼 이 나라까지 떠나 와야
했던 어느 이혼녀의 애절함도 한몫을 한다.
아직은 풋풋한, 40도 안된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다.
남편의 무시라거나 편견에 자존심 있는 대로 모두 부서진 그녀에게 나는 차마 
재결합이라는 카드를 못 꺼낸다.
무시나 편견도 일종의 사랑이 담긴 표현이라는 말만 애매모호하게 건넨다.
부부간의 문제는 꼬집어 답을 주는 것보다 애매모호가 그나마 약간 낫다.
언제나 똑 같은 레퍼토리로 싸우는 부부들…….
그들에겐 절대로 한 쪽 편을 들어주면 아니 된다는 단정이 앞선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줄이게 되는 것 같다.
이 나라건 한국이건 그 어디가 되던 아이와 속히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말만은 
매우 간곡히 전달하기에 이르른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어머니도 자식과 떨어져 사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
하기가 요원한 일인 듯 하고, 그 진리는 불을 보듯 뻔 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곧 여름이 온다.
이 봄처럼 추운 여름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반찬 하나와 밥 한 공기에도 감사와 찬미의 숭늉까지 챙겨 마시는
타고난 식성에 나름 만족하는 소탈함을 지닌 소유자다.
소탈한 형편에 처해 있을 때조차 소탈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탈, 그 자체인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을. 
분명한 것은 평소에는 물론이고 식사시간에는 특히,  나이라던가 명예나 재산,
그런 것들의 크고 작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존재의 가벼움' 까지 반찬으로 모셔 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 점심은 나보다 아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정성을 쏟았다.
당면과 후추와 파 송송을 필히 넣은 갈비탕에. 생채, 고들빼기김치, 그리고 멸치볶음
이 주를 이룬 식탁이다.

오늘저녁 사라사 거리에 있는 한국관에서 있을 모임에는 반전을 
전개하듯 털로 된 반코트를 입고 나갈 생각이다.
때로 나 이리도 생뚱맞다.    
내 특유의 생활방식이며 나 홀로 치르는 데모다.
춥긴 춥다. 마음도 꽤나 추운 날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의 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