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4일 화요일

꺾고 비틀다


꺾고 비틀다

                     맹하린 

H처럼 잉태되는 경우에만 쓰는 건 아니어서
지면 위에 태어나는 족족 죽이고 버릴 수는 없어서
죽이거나 버리려고 쓰는 건 아니어서
감성이 글의 얼굴 위에 잔잔히 번지다가
곧 출산할 거라는 소식 지인들에게 전달할 때면
너무 강렬하게 파고드는, 아릿함, 더불어 씀벅임까지

거품처럼 이내 자취를 감추는 멀쩡한 안부보다
불쏘시개 닮은 꽤나 당돌한 심지 되어, 당장에 불붙으려는
여러 노골적 질문들은 사실 시의 분화를 진행시키는 활화산
외롭더라도 지속되어야 할 탐미와의 상쇄
현란한 문명의 가벼움 더욱 사뿐히 받아들이라는
때로 새뜻할 수도 있는 일종의 메시지

스스로를 꺾으며 살아 왔을, 비틀며 지내왔을
겹질리는 긍지 속에 삽삽함 넉걷이 하듯 구겨 넣는다
안다, 나라는 존재 언제나 뜬금없다는 거
쟁점이 될 만하면 굳이 멀리하는,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 갈 때 특히 과감하다는 것도
이점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때로 말은 왜 곡진함에 실리는지
뭐랄까, 스스로의 내면이 누군가에게 깨물린다는 느낌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모종의 통점?

내가 나를 견디며 다독여 왔을 손길 그제야 펼쳐지며
어려서 쇠비름 꺾어 주문을 외우듯 내가 나를 꺾어들고
장수풍뎅이처럼 비튼다
꺾어지고 비틀리던 내가 줄가리처럼 점차 비워진다
연두와 초록으로 겹쳐지던 관념만은 편애하듯 챙기고
그건 일종의 습관적 유형을 죽이거나 버리는 행위

과중한 일 닥칠 때마다 물어 나른 휴식의 가지 얹으며
적막의 둥지를 짓는다
초봄의 우기 서서히 건조 부르고 바삭바삭 거뜬하려는 저녁
사유 제의하듯 강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