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문성 정오가 지났을 때였지요. 왜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시간… 며칠 전, 집 마당에 심어둔 느티나무가 천천히 흔들리는 것을 오랫동안 본 일이 있습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뭉쳐서 유연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요. 쏟아지는 햇살을 가득 안고 이파리들은 무엇인가,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털어놓고 있었지요.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음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란 것, 공기라는 것, 또는 광선이라는 것, 그것들이 모여서 만든 이파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소통 속에 흔들리고 있었지요. 잔잔하고 격렬하고, 때론 부질 없다는 듯… 아,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 괜히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집으로 들어와버렸습니다. 차마 더 이상 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지요. 그게 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쏟아지는 것들 속에 있는 추억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 광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결단코 사연은 없습니다. 사연도 없이 추억은 차례로 뚝뚝 떨어집니다. 죽음도 추억이 되는지? 아니면… 단죄. 아 그것은 우습습니다. 추억은 오로지 죄책감 속에서만 각인됩니다. 용서. 그래… 안도감 같은 것이 그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창을 열고 피아노음이 느티나무에게로 다가가기를 바랐습니다. 음악이 마치 가는 끈처럼 휘돌며 느티나무의 율동과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그리고 내 마음도 그 한가운데에서 같이 휘돌기를 기다렸습니다. 저 느티의 율동을 내 몸이 느끼고 저 바하의 음에 내 마음이 가 닿기를 바랐습니다. 천천히… 용서받는다는 느낌… 이랄까.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춤이 내 속에서 조금씩 새나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