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3일 월요일

베드로(Pedro)와 루벤(Ruben)

맹하린의 목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1년 1월 18일 목요일



우리 집 옆골목을 지나서 뒤로 가면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베드로와 루벤은 그 두 채의 집에 각각 살고 있는 육십 대 초반의 현지인 형제들이다. 베드로가 형이고 루벤이 동생인데, 베드로는 알리시아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와 네 명의 손자를 두었고, 루 벤은 코카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두 명에게서 일곱 명의 손자들을 두었다.
그들은 이미 정년퇴직을 한 나이에다 연금을 받는 신세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 떠나면서 유산을 물려줬다.
그렇기 때문에 상가(商街)건물에 서 나오는 월세를 양분(兩分)하여 생활하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생활자세는 지극히 겸허롭고 매사에 도리(道理)를 잃지 않으려는 대단히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면모가  은연 중에 보인다.

내외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형제와 동서끼리도 서로 돈독한  관계를 이룩하고 있는데,  집수리를 할 때 보면 형네 먼저 아우 나중을 고수한다,
한국의 속담은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하지만 루벤은 베드로와 비교할 때  ‘형만 한 아우 있다’라고 말해도 크게 어긋나는 평은 아닐 것 같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가 되면 그 들 가족들은 의자를 들고 골목을 빠져나가 앞길에 앉아서   한담(閑談)을  주고 받을 때가 많다.
몇 시간이고 상관없이 물처럼 유연한 대화를 이어간다.
주말마다 방문해 오는 아들네 가족들을 위해 두 집이 합동으로 아사도(숯불구이) 파티를 준비할 때면,  숯 냄새와 불 갈비 냄새를 우리 집까지 진동하게 만든다.
아들네 가족들과도 똘똘 뭉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베드로와 루벤을 떠올리면 나마저 공연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손자들과 골목길에서 축구를 할 때의  베드로와 루벤은, 할아버지 와 손자들이 아니라 나이를 초월 한 친구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게 하고 , 실제로 그들은 할아버지와 손자이기 이전에 친구처럼 정답고 격의 없는 결속을 맺고 있는 관계에 익숙해 보인다.
그럴 때 알리시아와 코카, 그리고  아들, 며느리, 손녀들은 열렬한 관중이면서 응원단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동심에 가까운 무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뻬드로와 루벤.
그들이 자식 며느리와 손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미 소가 송아지를 돌보는 지독지정(舐犢之情)이라고 하기보다, 돈독한 동맹을 맺은 사이처럼 우호적인 혈맥상통의 관계로 더 많이  부각되는 편이다.
혹자는 이 시대를 부성(父性)이 메마른 시대라고 일컫는다.
권위와 물질을 베푸는 일만이 혁신적인 아버지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어버이 앞에서는,  진실 된 부자관계란 기대이하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따른다.
부성(父性)에 혁신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건 사랑과 배려가 스민 혁신이 특히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와 루벤, 그리고 그들에게 소속되어 있는 가족형성을 살펴볼 때마다 노후에 나의 오빠나 동생, 또는 시동생들과 이웃하며 살고 싶은 간절한 부러움을 품게 된다,
글쎄, 베드로와 루벤처럼 서로의 인격을 철저하게 지켜주면서 그처럼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기가 과연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를 자문자답하게 되기는 하지만.

골목길에서 축구를 하며 지르는 그들의 함성이 드높은데도 그들의 가족구성을 아껴서일까.
전혀 시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마음에서 부터 응원하는 심정이다.
가끔씩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걸 나 스스로 의식할 정도로 꽤나 달관하는 입장이다.
축구의 열기가 점점 열광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듯 했을 때,  베드로와 루벤 이 손자들에게 번갈아 가며 주의를 준다.
“공을 너무 높이 차지는 말자. 옆집으로 날아가서 세뇨라 린이 자식처럼 소중하게 키우는 양란 들을 부러뜨릴까 겁난다. 그리고 다니엘(나의 아들 이름)은 공부할 텐데 우리가 내는 소란 때문에 지장이 많을 거야. 안되겠어. 앞길로 나가자."
발소리를 줄이며 조심조심  걷는 그들 가족축구팀의 발자국 소리가 잠시동안  어수선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점점 멀어져 간다.
일시에 찾아온 적막 속에서 나는 그들의 소란이 아쉽게까지 느껴진다.
소음 속의 공해가 아니라 소음 속의 흔쾌함이고 평정심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베드로와 루벤의 가족들이 내  이웃에 있어, 나 그나마 더욱 웃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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