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6일 목요일

2세들




   맹하린


이반은 아들의 대자(代子)다.
이반이 유아영세를 받을 때 아들이 대부(代父)를 서 준 것이다.
그 토록이나 어렸던 이반이 벌써 대학 2년생이 되었다.
가끔씩 친구들을 몰고 우리 가게에 오는 이반.
어제도 친구들과 함께였다.
자동차 안에 두 명, 가게에 함께 들어온 두 명.
이반은 주문할 때 말한다.
"Cumpleanos de mi viejo, tia(내 아빠 생일이에요, 이모)!"
올 때마다 매번 그 비슷한 이유를 달지만, 사실은 친구 아빠의 생일이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반의 아빠는 지방도시  Tucuman에서 의류소매상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반의 아빠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유학 중인 이반을 만날 겸 의류상품을 구입하러 내려 왔을 확률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반은 매번 그런 식으로 우리 가게를 선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하게 안겨온다.
나는 그럴 경우 이반을 위해 만드는 꽃을 훨씬 더 풍성하게 보태는 편이다.

이반의 여동생 테레지나는 예전에 내가 옷가게를 할 때,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자고 날마다 찾아오던 아기였었다.
여기서 내가 정작 얘기를 펼치려는 건 이반의 성격이랄까 태도에 대해서다.
이반은 나를 띠아=Tia(이모)라고 부르는데, 이반이 한 번이라도 왔다 가면 내 머리나 가슴은 이반이 말끝마다 붙여준 띠아라는 호칭의 여운에 취해 정신이 붕,  떠있을 지경이 된다.
이반은 한국말이 딸려도 약간 딸리는 정도가 아니다.
그래서 주로가 아니라 전부 까스떼쟈노(서반아어)를 사용하는데 중요한 것은 말끝마다 띠아가 붙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Si, Tia(네, 이모).
"Quiero Ramo Redondo Tia( 둥근 다발을 원해요. 이모)."
Muy lindo armo Tia(참 예쁘게 만들었어요, 이모)
Hasta Pronto Tia, Te Quiero, Tia(곧 다시 만나요, 이모. 사랑해요, 이모)
....서반아어문으로 쓰다 보니까 , Tilde(엑센트 부호)가 여럿이나  빠졌다.  한컴엔 그게 없다. 새로 찾기가 복잡해 그냥 쓴다......
그렇지만 나는 이반의 그런 말투나 자세를 절대 아부로 여기지 않고 친절과 존칭으로만 기껍게 받아들인다.

아들의 친구 아드리안은 또 어떤가.
아르헨티나의 사립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대형슈퍼 '디스코'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미국으로  재이민을 간 아드리안도 참 특이한 편이다.
아들을 만나러 오거나 만날 약속이 있을 때마다 자동차로 아들을 데리러 오고, 극장이나 외식을 한 뒤엔 꼭 집에다 데려다 주기까지 했던 아드리안. 예쁜 애인이 언제나  함께였다.
그런데 아드리안은 아들 뿐 아니라, 나까지도 집에다 데려다 주기를 서슴치 않았다.
(아들은 자가용에 대한 필요를 전혀 못 느끼는, 아주 엉뚱한 성격이다.)
아들과 외출할 시간도 꼭 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정하고 우리 가게로 오고는 했다.
처음엔 부담을 줄여주고 방해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사양했었다.
거절할 때마다  몹시 난처한 얼굴이 되었으므로, 결국  성의를 무시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대로 맡겼었다.

( 어느 날의 삽화가 그립게 떠오른다.
결혼식 꽃장식을 맡은 날, 아들과 신혼차 리본을 다는 중에 소낙비가 내렸었다.
시간을 미룰 수도 없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 신혼차였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때마침 도착한 아드리안은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자기도, 친구도 아닌, 나를 내내 우산으로 받쳐 주고 있었다. 예쁜 애인은 차안에 남아 있었고.
그날, 아들과 아드리안은 비를 흠뻑 맞아야 했다.
나는 소나기인지 감동의 비인지가 마음안으로 자꾸만 흐름을 감지했었다.
마음안에 소나기를 가장 많이 맞은 사람은 단연 나였다.)


아드리안은 말끝마다 띠아가 아니라 네, 가  붙는다.
하지만 네, 가 한 번만 붙는 경우를 결코 못보고 못 들었다.
"네네."
"네네네."
그렇게 두 번 아니면 세 번 붙는 네, 다.

얼마 전, 문협의  P선생과 할 얘기가 생겨 전화를 넣었다.
역시 대학생인 P선생의 아들이 받았다.
"아버지 계신가요?"
"아니요, 안 계세요."
"몇 시에 돌아오시죠?"
"아니, 안 돌아 와요."
이쯤에서 내 머리는 손톱만큼의 소리라도 전화기를 타고 전달될까를 염려하며 잽싸게 구르고 구르기를 거듭한다.
"아, 한국에 가셨어요?"
"맞아요. 그래서  안 돌아와요."
"그렇군요. 다음에 또 전화 할게요."
"그래요, 또  해요."

말끝마다 띠아가 붙고
말끝마다 네라는 대답이
두 번이나 세 번이 되고
오늘 돌아오지 않을 때는
안 돌아온다고 표현하는
우리의 2세들.
그들을 대할 때마다 마음 뿌듯한 든든함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아르헨티나의 특성상 탈선하는 2세는 손으로 꼽을 정도일 따름이다.
누구나 생업에 열심한 부모를 닮아 절약하고 부지런하고 친절함에 익숙한 모습들이다.
그들 젊은이들의 풋풋함으로 인하여 우리 아르헨티나 교민사회는  갈수록 싱그럽게 변화를 획득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의 미래는 의외로 밝다
나는 우리의 2세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적인 선비기질과 서양적인 자유분방함이 우월한 방면으로만  뒤섞여
기본은 된
기본이 보기 좋은
기본마다 튼튼한 영역을 이룩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사람은 우선 기본부터  갖춘다는 게 쉬운 일도 같지만 특히나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밝은 미래다.
그들.
우리의 2세들이 가야 할 앞날은.

탈무드는 말한다.
'다섯 살 난 자식은 당신의 주인이고
열 살 난 자식은 노예이며
열다섯 살이면 동격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기르기 나름인데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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