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6일 월요일

모자라게 살아내기

        맹하린


나는 푼수 떼기인가?
아니면 모자란가?
꽃시장에 가면 일본인이나 현지인들이 내 아르헨티나 이름, 그러니까 세례명은 따로 있는데 이왕이면 부르기 좋으라고 가게 이름에서 열매 따듯이 뚝 따내어 알려 줬는데,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아주 마르가리따라는 노래를 잘도 불러댄다.
(아이고, 내 공주병!)
정작 마르가리따는 우리 꽃가게를 가장  처음 시작했던 나의 교우 마르가리따가 진짜 마르가리따인 것을.
나는 한인 타운에 살지만 대여섯 개 있는 한국식품점은 몇 달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 그러고 주로 Coto라는 현지인 마트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마켓이나 조선교포가 주인인 '안녕'에 주로 간다.
'안녕 슈퍼'
뜻은 괜찮고 친근미 넘치는 좋은 상호 같은데, 왜 그 상호만 떠올리면 길에서조차 포복절도와 같은 웃음이 터지는지.
하여간에 한국식품점을 피하는 진정한 이유의 첫째는 모두 알음알음한 사람들인데,  두어 가지 정도만 사들고  나오기가 꽤나 겸연쩍어서다.
내 절약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구매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직수입해온 상품들이 식품점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충동구매는 절대 안 한다.
그리고 냉장고에 꽉꽉 채우는 성격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구입해서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예전에 꽉꽉 채우며 살땐 얼마나 많은 걸 버렸었던가.
그래서 지금은 꼭 필요한 걸 그때그때 구입하기를 즐긴다.
실제로 우리 냉장고는 일 년 내내 텅텅 비어서 좀 무용지물처럼도 생각된다.
그런데 냉장고라는 존재는 크게 욕심은 안 부리는 듯 하다. 배부르게 안 채워줘도 큰 소리를 안 내는 데다가 다소곳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개를 키우면 주인을 닮는다던데 냉장고도 주인을 닮는 모양이다.
구태여 부끄러울 사안은 아니라서 짚고 넘어가는데 , 이 여름 들어 나는 한국참외를 1킬로씩 두 번째 샀을 것이다.
멜론이 더 달고 싼값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는 거에  절대 호사를 안 부리는 편이다.
나의 조모께서는 한 번 떠나간 끼니는 다시 안 돌아온다고 그러셔서 나는 그걸 진리처럼 챙기며 산다.
의료보험을 안 들었으니까, 일부러 밥까지 굶으며 검사 다닐 일도 없고, 어디가 고장 나서 소화 안 될  일도 없으며,   튀기거나 지지고 볶는 음식 안 좋아하니까 내 속은 언제나 속 상한 게 아니라 속 안 상해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얘기가 옆으로 흘렀다.
어제 낮에 우리 가게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국마트에 갔었다.
아직 말문도 안 트이고 세 살도 못돼 보이는 중국인 주인의 아들이, 너무도 귀여운 모습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아는 체를 한다.
아는 체라고 해야 내 무릎을 서너 번 두드린 거였지만.
내가 항상 아우스팅!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주고받고 그래서였을까?
맨날 네모난 플라스틱으로된,  울타리가 높은 놀이터 안에서만  지내다가 모처럼 해방되었다 싶었는지  그 정확한 이유까지는  캐지 못했지만 , 그 아기는 한국라면이고  밀가루고  낮은 쪽에 진열된 상품마다 내 장바구니에 손수(?) 담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상술이 뛰어난 아기가 그동안 어떻게 그 네모난 틀 속에만 갇혀 있었을지 의문도 되고 웃음도 터지고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상품을 들고 와 쏼라쏼라 떠들며, 지구의 자전이 저절로 느껴지는지 쓰러질 듯 아슬아슬 기우뚱 쫒아오는 그 아기에게서 줄행랑치느라 그 아기가 아니라 내가 먼저 넘어질까 봐  죽는 게 아니라 죽어 나가떨어지는 줄 알았다.
휴우! 아직껏 심장이 마구 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풀풀 웃게 된다.
오, 나이에 상관없이 상술을 발휘하는 중국인들의 끈기여!

나는 고객에게 친절한 편이고, 그럭저럭 기억력도 좋은 덕택에 고객의 이름을 한 번 들으면 틀리지 않게 그대로 불러주고 있는데, 나의 고객들은 그점을 퍽으나 흐뭇해하는 것도 같다.
아무튼 그 중국인 젊은 내외에게서 나는 많은 걸 배우게 된다.
현지인 고객들의 애완견 이름까지 모두 챙기면서 친목까지 다지려는 면이 은연중에 보이는 게 아니라 곁으로도 보이는 것이다.

한 20년 슬픔과 불행에게 멱살을 잡힌 채 살아내서인지, 나는 이제야 중년에 이른 느낌이고, 다 늦게 세상이 싱싱 싱그럽다.
몇 달 전에 미용실에 2년 만에 갔더니 미용사가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고 있었다.
내 머리통에서 검은 새싹이 마구 솟아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방금 전, 거리를 지나던 현지인이 하필 우리 가게의 초인종을 눌러 길을 묻는다.
현지인 거지도 물병을 내밀며 물을 담아 달라고 한다.
나는 친절하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 정성껏 차가운 물을 담아 건네며  약간의 적선도 잊지 않고 해낸다. 우리 가게 근처의 거지들은 안다. 날마다 오면 물만 얻어 가지만 어쩌다 들르면 지폐도 얻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불안을 안 키우고 산다.
불안은 언제나 권태까지 데리고 다니는 종자다.
나는 권태도 말이나 글로만 알고 있다.
혼자일 때 역시 전혀 심심해 본 적은 없다.
책과 음악과 글쓰기가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켜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푼수 떼기 맞다.
나는 모자란 거 맞다.
푼수 떼기는 사는 게 재미있다.
모자라게 사는 건 싱싱 신난다.
왜냐면 크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래의 얘기처럼 자기 중심도가 너무 강하지만 않다면 자기에게 맞춰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로든 현명하고 복된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 1965년 11월.
미국 동부는 큰 정전을 겪게 되었다.
뉴욕도 암흑 천지였다.
브루클린에 사는 맥스가 때마침 전구를 갈아 끼우는 순간 정전이 되었다.
부인 로지는 재빨리 일어나 창문 곁으로 달려갔다.
창밖을 내다보니 뉴욕 시내는 온통 콜타르를  쏟아 부은 듯 깜깜절벽이었다.
로지는 놀라 소리쳤다.
"맥스. 이건 너무 한 일이네요. 당신이 전기를 잘못 만지는 바람에 뉴욕 전체가 전부 정전이 되어 버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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