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아드리안과 골리앗
맹하린
-아드리안의 이야기-
아드리안은 칠레인이다.
그는 노숙자다.
애인이 신발을 거꾸로 신자, 그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들어왔다.
일을 하는 것도 귀찮고, 매사에 절망스럽기만 했다.
가장 커다란 고통이란 것은, 눈을 떴을 때는 견딜 만 한데, 눈만 감으면 연인 베로니카가 눈 안 가득 담겨 있어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지탱해나갈만한 도리라거나 끈 같은 걸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노숙인이 되었다.
그는 시인이다.
구태여 시를 지면에는 남기지 않는 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온통 시다.
그는 찬송가를 흑인영가처럼 잘 부른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워 볼 때'
그는 말한다.
말한다기보다 시를 읊는다.
"나의 이불은 하늘이죠."
그는 이제 거의 읊듯이 노래한다.
"침대는 내게 대지입니다.
이불의 빛깔은 많은 날들 사이에서 푸르러도
때로는 하얗거나 잉크처럼 짙습니다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나는 고운 무늬
아무도 내 이불처럼 예쁘게는 수를 못 놓을 걸요."
그는 항상 술병을 끼고 산다.
그가 판자촌에서 이웃나라 태생의 불우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목하는 한국인 J목사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는 2년 정도 되었다.
그 역시 대다수의 한국인처럼 어린 시절, 선물에 유혹되어 교회에 다녔던 경험이 있다.
어느 날, 한국인 J목사의 교회 앞을 지나다가 어려서 듣던 찬송가를 듣게 되었다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그리움으로 환원되어 들려오던 그 소리에 몸 전체가 저절로 이끌리게 되었으며 자기도 모르게 교회 안으로 멈칫멈칫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그는 곧장 혼자서 찬양을 하던 J목사의 부인인 L사모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매우 고즈넉한 마음 되어 실토한다.
"나는 죄인입니다."
L사모가 대답한다.
"내가 더 큰 죄인입니다."
그가 부르짖듯 외친다.
"우리는 모두 하늘이 만드신 귀한 작품이죠."
L사모가 말한다.
"고통 중에 있는 한 영혼을 절대로 천하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예수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가문은 예술가 집안이다.
시와 노래에 출중한 아드리안을 위해, Puchero( 전골 남비요리 )와 닭튀김을 준비하면서 L사모는 동료들을 더 데려와도 된다고 말한다.
그는 강한 어조를 숨기며 진지하게 반문한다.
"우리가 거지입니까?"
어떤 이들은 없는 사람들이, 가진 거라고는 자존심 밖에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존심이 센 게 아니라, 자존심 그 자체고 자존심만이 최고의 재산이다.
그는 잊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우리는 얻어먹지 않아도 먹고는 삽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는 심정이다.
지인들이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내가 언제나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먹고는 삽니다."
(하하,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구나.)
그들은 한국인들의 식당 앞에서 한국인들의 값비싼 자가용들을 지켜 주며 , 또는 유리창을 닦아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먼지나 다름없는 부피의 콩고물을 얻어내는 셈이었다.
기이한 것은 가장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일수록 푼돈을 내주는 일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아드리안의 인도로 그 교회에 발을 디딘 그들 15명.
세 명은 개과천선하여 직장생활을 해낼 수 있는 경지까지도 이룩했다.
다섯 명은 3년 전 유난히도 극심하던 추운 겨울 날, 길에서 동사했다.
눈도 내리지 않고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살을 에이는 유별난 기온은 그들의 체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던 것.
-골리앗의 이야기-
골리앗은 볼리비아인 이다.
키가 2미터도 넘는다.
그의 별명은 세삐죠(칫솔)다.
머리카락이 칫솔처럼 뻣세서 얻은 별명이다.
골리앗 역시 사실은 별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골리앗처럼 거인이라는 뜻이다.
그는 본명을 결코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매사에 쫒기는 심정이어서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볼리비아 군대의 장교였던 그가 어느 날 새벽 기상했을 때 사건은 이미 전개되어 있었다고 한다.
총이 여러 자루나 분실된 사태가 발생된 것.
볼리비아군대에서는 장교나 사병이 총기를 소홀히 할 경우 3년 이상의 영창생활을 각오해야 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탈영을 결심한다.
이왕 나선 길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결심으로 가고 가다 보니까 아르헨티나 땅에 도착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거지신세가 되었다고는 안한다.
그 역시 길에서 3년을 지냈다고 표현한다.
그에게는 3년의 감옥생활이 현재의 삶보다 더 험악할까라고 묻지도 물어서도 안 된다.
그건 그의 인격을 심하게 모욕할 뿐더러 몰아세우기도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시인이다.
그는 그날 내게 W. B 에이츠를 짧게 설파했다.
'부자들이란 거지들이 이에 시달리듯 재산에 시달리죠.'
그는 아드리안과는 달리 거지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 거지가 된 건 아니라고 밝힌다.
하늘이 내리신 운명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오묘하신 뜻이 분명 숨겨져 있으리라고 까지 믿고 있었다.
L사모와의 대화에 이끌리어 어느 날 일부러 틈을 내어 아드리안과 골리앗을 1년 전쯤 만나본 적이 있다. 거의 반시간 정도 얘기를 주고받았다.
한인 타운의 어느 교회 앞에서였다.
찾기가 쉬었다.
키도 키지만 준수한 사람 둘을 찾으면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노숙생활을 하노라고 부끄럼 없이 말했다.
그들 동료의 일부는 알게 모르게 어느 새 마약에 절어 있었고. 마약의 판매 역시 손대고 있는 눈치였다.
그들은 절대 한 푼 줍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동전 있어요?" 그렇게 묻는다.
그들은 진정 노숙인 이었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생각해 보라.
나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유지한다고 해서 누가 나보고 불쌍하다고 한다면 나는 좋겠는가?
가난해 보인다면 기분이 괜찮겠는가?
거지라고 단정한다면 기쁘겠는가?
어디다 메모는 해놨지만 찾기가 지난한 일이 될 것만 같아 대강 쓰는데, 알버트 슈바이처였을 것이다.
'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외롭거나 두려움에 잠긴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건 모두 나의 책임이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3백만 달러 상당의 아파트를 팔레르모 지역에 새로이 구입했다는 뉴스가 얼마 전 보도 되었다.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 쯤 되면 그 정도의 부를 축적한다고 누가 뭐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은 사람에게 복을 내릴 때 되로 달고 자로 재어 준다고 했던가.
누구보다 자유롭게 사는 노숙자들이어도 샤워나 제때에 하면서 살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어제 오후 L사모가 꽃다발을 사러 왔으므로 아드리안과 골리앗의 안부를 맨 먼저 물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잘 있다는 소식을 반가이 듣게 되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가 무럭무럭 잘 지내는 것처럼 그들 역시 잘 지내고 있었던 것.
오늘은 시나 펌할 계획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의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외로움이 사무치다.
하지만 그들이 연신 눈에 밟혀 힘내어 이 글을 쓰고 썼다.
오늘 아주 모처럼 트윗하러 들어갔다가
바로 내게 전해주는 듯한 좋은 말이 안겨와서 옮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곽재구 시인의 ' 포구기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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