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4일 토요일

보석

  맹하린

새벽에 글을 좀 써내다가 오랜 습관이지만, 한동안 멀리했다는 생각이 치밀어  책을 집어 들었다.
오래 전 읽었던 탈무드였다.
이미 머리에 입력된 내용이지만 새롭게 인식되어 옮겨본다.
'베를린에 사는 한 유태인이 어떤 제분소에 보물이 묻혀 있는데 파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그 제분소로 가서 조심스럽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흙과 돌멩이 이외에는 이렇다하게 값어치가 될 만한 걸 아무 것도 파내지 못했다.
마침 그 자리에 제분소의 주인이 나타나서 왜 이런 곳을 파내고 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제분소 주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베를린에 사는 어떤 사람 집의 뜰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암시를 몇 번이나 꿈에서 봤는데요?"
제분소 주인은 꿈에 본 베를린 사람의 이름까지 알려 주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그 유태인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 사람은 곧 집으로 돌아가 뜰을 파헤쳐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자기 집 뜰에서 보석이 나왔다.'

이 얘기는 자기 나라 특유의 훌륭한 전통이나 문화를 지니고 있으면서, 뭐든 외국 것이면 다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나라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이라고 한다. 먼 데 있는 보물을 탐하기 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보물 , 특히 가족과 친구라는 보물도 항상 잊지 말라는 예화이기도 하다는 설명이었다.

몇 년 전에 고려사에 계시던 경현 스님에게서 점심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문우 L여사와 K시인, 그리고 나였다.
신선한 야채들이 골고루 들어간 비빔밥과 버섯탕과,그리고 약간의 밑반찬들이 순서를 알맞게 지키며 나오고 나왔다.
식사시간 중간쯤 되었을 때, 두 분 모두 비구니이신 스님들은 녹차와 과일을 준비하느라 잠시 주방으로 나갔을 때였을 것이다.
L여사와 K시인이 미리 약속이라도 주고받은 것처럼 비빔밥의 양이 좀 많다면서 남은 밥을 게 눈 감추듯 입안으로 넣는 게 아니라 식탁에 놓여 있던 냅킨에 쌌다.
그리고 방구석에 있는 약간 큰 쓰레기통에 잽싸게 집어넣고 있었다.
L여사는 그 무렵 다이어트 중이었고, K시인은 그때 이미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던 터였다.
모처럼 대접받는 절밥의 절묘한 맛에 반해 있었던 나는 벌써 그릇을 말끔히 비운 상태라서 함께 동참할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사흘 후에 우리는 고려사에 또 다시 점심초대를 받게 되었다.
이번엔 여러가지  나물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이었다.
식사를 마쳤을 때,다도를 위해 다기를 다루던 경현 스님이 지난번, 그  문제의 쓰레기통에서 두 분 문우들이 버렸던 작은 비빔밥 덩어리를, 지난번에도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이미 졸아든 문제의 그 잔해를 꺼냈다.
쌀 한 톨, 밥알 하나도 버리지 않고 밥그릇에 붙은 찌꺼기도 숭늉으로 헹구어 목 안에 넘기는 일을 득도와 계율로 삼아오던 스님들인지라 그날 두 분 문우들은 야단 좀 제대로 맞았다.
그날 함께 행동하는 시기를 놓쳤던 나는 민망을 원망으로 바꾸고 웃음까지 섞으며 마치 대표자나 되는 것처럼 항의를 했었다.
셋 중에서 그래도 나를 가장 편하게 여기던 스님들이었다.
"스님들은 숭늉 드실 때마다,  일부러 쓰레기통을 뒤지세요? 그래서   밥알이 어디 또 없나 그렇게 찾으시나 봐요?"
크게 웃으며  경현 스님이 자세히 보여주던  쓰레기통은 정작 쓰레기통이 아니었다.
저자거리에서 식료품 살 때 받았던 비닐봉투마다 아까운 마음에 최대한의 작은 부피로 묶어서 모아둔 봉투통이었다.
두 분 문우는 결국 쓰레기통이 아니라,  반드시  들키거나 들통날  수 밖에 없는 들킬통, 혹은 들통통이라는 통에 버린 거였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봉투를 찾다가 서너 수저 정도가 뭉쳐진 비빔밥 두 뭉치를 발견했던 두 분 스님은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그걸 남겼을까, 남자가 이럴 수는 없다. 틀림없이 두 여자 분의 짓이다. 그런 여러 가지 착잡함에 다시 오늘 다른 메뉴로 바꾸고 초대하게 된 거라는 설명이 진지하게 이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행동해서 나도 함께 야단을 좀 맞았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고 편했을 걸, 그 비슷한 후회막심이 한참이나 남았었는데 오늘 문득 그 일이 떠올라 이 글을 적게 되었다.

탈무드에서처럼 지금껏 알고 지내던 인연들 뒤늦게나마 보석처럼 아끼리라고 오늘 그런 심오한 흔적을 지닌 결심 비슷한 걸  들추거나 덮게 된다.
사람은 감정에 빠지면 소설 쓰듯 얘기를 한다고 했던가.
나는 요즘 감정에 퐁당 빠지고 말았나 보다.
소설처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소설이  더 잘 써지는 요즈음이다
나의 글쓰기는 생에 관한 하나의 도리이자 갈망이자 자아실현이다.
힘겨워하면서도 여전히 부딪치고 싶은 참으로 매혹적인  영역이다.
후기 자본주의라는 과도한 권력이 우리 인간의 정서를
어둡고 암울한 출구까지 설치해 놓았다고 해도
한층 격려를 실어주는 힘의 원천은
바로 매일 변화되는 자연과 가족과 친구라는 존재인 것 같다.

기억력.
많이 지웠고 많이 버렸는데도
어떤 기억들은 버리려 할수록
더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일깨움이
초록빛 싹을 틔우는 날.
약간은  선선한 날.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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