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에 나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N이 살고 있다.
그녀는 툭하면 나에게 차 한 잔 마시자며 전화로 부른다.
그건 사실 형식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하고, 막상 가보면 언제나 작고 큰 어떤 논의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어제 아침 역시 그랬다.
“형님, 시원하게 차 한 잔 마시러 올래요?”
바쁘거나 혼자 있거나 그러면 못가는데, 마침 아들이 있어 선선히 가게 되었다.
이틀 전 이미 대화를 나눴던 레퍼토리에 약간의 반전이 첨가되어 있었다.
그날도 그녀는 대단한 걱정거리가 생겼다면서 나를 불렀었다.
예외 없이 나를 부를 때의 제목은 짧지만 언제나 비슷한 수준이다.
꼭 춥고 덥고가 살짝 들어가고 비 오고 바람 불고도 약간 들어간다.
“날도 더운데 차 한 잔 하실래요?”
그녀가 정원에 네 마리의 거북이를 키운 지는 벌써 10년쯤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두 마리는 잘 안보이고, 한 쌍의 거북이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나도 여러 번이 아니라 갈 때마다 보았었다.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걸 잘 아는 그녀는 나를 위해 다탁을 싱그러운 정원 중간쯤에 차려 놓을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뒤뚱거리며 앞뒤로 이끌고 따르며 걷는 장면도 재미있지만, 마북이(Macho거북이)가 엠북이(Hembra거북이)를 맨날 쫄쫄 쫓아다니는 행동은 내가 어떤 기분에 처해 있을지라도 항상 입꼬리 길게 웃음이 환하고 밝은 빛으로 퍼진다.
마북이와 엠북이.
이 이름은 장난기 많은 내가 나 혼자 그렇게 지은 이름일 뿐, N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N의 친구이자, 나를 언니라는 호칭으로 살갑게 따르는 편인 L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매우 젊은 세뇨리따(아가씨)엠북이를 N에게 선물했나 보았다.
N의 생뚱맞은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N은 인생사 온통 승승장구라서 하느님 보시기엔 물론이고 내가 보기에도 더없이 좋은데 문제는, 고민도 아닌 걸 고민으로 접수하고, 그렇게 혼자만 열심히 진행해 나간다면 나야 결코 상관도 안하고 예쁘게 봐주겠는데, 나를 자주 염두에 두고 기필코 나까지 끼워주고 싶어 해서 문제가 돌출되는 경우 참으로 비일비재다.
L이 선물한 젊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엠북이를 가족으로 결정한 순간, N의 마북이는 조강지처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나 몰라라 팽개치고, L이 보내준 엠북이만 믿고 따르는 데서 사단이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생겨난 거였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고민은 N의 엠북이가 서글프기 짝이 없는 몸짓과 표정으로 매우 가까운 장소에서 두 연인을 꼼짝없이 바라보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장면을 고스란히 재확인 하듯 보아낼 수 있었고.
약간 떨어진 풀숲에 서서 새로 만난 한 쌍의 커플을 쳐다보며 애달픔의 극치처럼 애를 태우는 중이던, 몹시도 가엾은 그 광경을 발견하고, 나는 내 가슴이 다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애증을 처절할 정도로 강하게 감지해내고야 말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롭게 부각된 N의 고민은, 거북이들의 반전된 상황 앞에서 더욱 심각한 상태로 급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반전이라는 건 언제나 반전다운 면모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N의 마북이가 회심하여 총총 옛 아내에게 돌아왔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더없이 사이가 돈독해졌고 다시 예전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랑스러이 산책을 일삼게 된 것이다.
함께 영화배우로 분하기도 하고, 서로 영화를 찍기도 하는그들 Los Tortugas(거북이들)!!!
그 내외간은 두 그루의 소철나무 둥치 아래에 나란한 모습으로 서서, 완벽한 먼 산이라고 볼 수 있는 나와 N을 우러르듯 올려다보기까지 해냈었다.
다시 돌아 왔다고.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그 순간, L의 엠북이는 그들 천생연분내외를 그다지 멀다고도 할 수 없는 레몬나무 그늘에 서서 너무도 허전하고 서글퍼 보이는 눈으로 울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N의 어떤 고민에 따라서는 그동안 전혀 불편함에 개의치 않고 나의 생각을 얘기 해줬던 터라 명쾌한 답을 어떻게든 건네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N이 참 자기 본인 위주의 존재로 까지 각인될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이러는 그녀가 평소와는 달리 보였고 고맙게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터득되어서다.
나는 요즘 나 개인에 대한 질서회복과 존재의 해석이라는 선명한 플룻에 질식할 것만 같아 고개를 자주 쳐들고 , 일부러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게도 된다.
그럴 때, 하늘은 온통 하늘다움에 충만해 보이고 만개한 별천지일 때도 많다.
한동안 땅만 보며 걷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렇던 내가 어찌하여 지금은 하늘만 보며 걷는 것일까.
나도 나를 모르는 시대에 나 드디어 당도하였다는 얘기인가.
나의 결정적인 답은 언제나 간결하고 단호한 면이 강하다.
“저, 새로운 애인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어쨌거나 조강지처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형님네 마당에서 키우면 안 될까?”
“ 몰랐구나? 난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걸로 대만족인 사람이야. 친애하는 이들에게조차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지 못해서 미안한 형편이기도 하고.”
오후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마트에 뭐 좀 사러 가는 도중에, 편의점 앞에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던 N을 만나게 되었다.
지나가는 나를 발견한 그녀는 반가운지 약간 크게 웃으며 짧게 설명하고 있었다.
“있잖아? 형님. K가 데려가겠대. 새 거북이 말이야.”
잘한 결정이라고 말하던 나는 새삼 부탁을 얹었다.
“K에게 전해줘. 아주 잘생긴 남북이 하나 구해 주라고. 내 간곡한 희망사항이라고.”
나는 제대로 된 지침을 적절하게 전달했을까?
애인 거북이의 짧지만 추억 가득했던 저 사랑은 어찌해야 할 것인지.
내 설 익은 지식으로 K의 새 가족이 될 저 엠북이의 사랑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갈라놓고 나는 대체 어쩌자는 건지.
거북이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용납될지도 모르는 사항인 것을.
탈무드의 이런 예화가 책임처럼 비례하며 나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하고 있다
'어떤 장사꾼이 몇 대의 마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광야는 금방 30~40cm의 눈으로 덮이고 말았다.
마차 대열은 가야 할 길을 잃게 되었다.
그는 동네로 향해 가야 할 텐데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고생고생 끝에 동네로 들어가는 옳은 길을 겨우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때 상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탄식까지도 쏟아냈다.
그러자 상인의 곁에 앉아 있던 마부가 물었다.
“모처럼 길을 찾았는데 왜 그렇게 탄식을 하십니까?”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길을 잃어버린 일이 있고, 그때마다 바른 길을 찾아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이 있었다. 마부로서 마차를 한 대밖에 끌고 있지 않은 당신은 아마 알 수 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한 대의 마차가 남겨 놓은 차바퀴의 자국은 바람이나 눈으로 금방 지워져 버린다.
그러나 이번처럼 무거운 물건을 실은 몇 대의 마차가 틀린 길을 지나면 그 마차의 바퀴자국은 깊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가 온 길이 동네로 가는 옳은 길인 줄 알고 우리 마차 바퀴자국을 따르느라 다른 마차들마저 당연히 헤매지 않겠는가.”
상인은 그렇게 대답을 해냈다.'
덜 여문 지식으로 나는 이제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답을 제시하지는 않아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게 된다.
단지 작은 체구를 지닌 거북이의 사랑일지라도 내 쪽에서 책임을 짊어질 일은 부득이 피하자는 생각이다.
언젠가 , N이 장난삼아 거북이의 잔등을 밟고 한참이나 서 있었는데
그런데 1킬로도 안 될 거북이가 N의 무게에 끄덕도 없이 버티더라던 얘기가
새삼 귓가에 맴돌고 있다.
-초여름- |
지난 월요일엔 L의 모친 팔순잔치가 해운대회관에서 있었다. 나는 일단 성의껏 꽃장식을 마무리 해냈고, 다시 가느라 부랴부랴 겨우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N과 L과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함께한 시간들. 더불어 내가 가장 아끼는 문우의 엄마와 여러 번에 걸쳐 소근소근. 문우에게 전해달라며 수건과 비누라도 챙겨 드릴 수 있었기에 그나마 맘이 놓였던 밤. 그런데 구두도 높은 걸 안 신었는데 왜 내가 제일 큰 키로 나왔지? 난 키가 커보이면 싫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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