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의 목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7월 27일
이민 와서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너도 나도 감탄을 섞는 겨울중의 겨울이다. 추위에 어깨를 옹송그리며 친구들과의 점심약속이 돼있는 'S 뷔페'에 갔다.
그녀들 모두 이민 경력 20년을 웃도는 데다 온세나 아베쟈네다에 두세 개 정도의 가게는 기본으로 소유하고 있는 '쟁쟁한 실력파'들이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는 교민 직업의 90%를 차지한다는 의류생산과 판매에 관한 얘기가 주로 오고 갔다. 하지만 후식으로 차와 과일이 나왔을 무렵엔 이민 초창기에 서반아어를 잘 몰라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누군가 익살스러이 끄집어냈다. 그러자 아무도 그 일에 관해서 질 수 없다는 듯 앞 다투어 각자의 경험담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 혜진 엄마: 스웨터공장에 완제품을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어. 항상 혜진 아빠가 하던 일을 그날은 서류를 뗄 일이 있다고 대사관 에 갔었거든.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교민 모두 '시우다델라'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만 말하면 통하는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행선지를 묻는 택시기사한테 너무도 태연하게 ‘시우다델라’에 간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 ‘시우다델라’ 지역은 한국의 도시 '시흥’에 비교할 면적이라나 봐. 계속 답답해하는 기사한테 정작 답답한 사람은 나라는 시늉을 연신 해내며 계속 외쳤지. "시우다델라, 시우다델라!"
♣ 승혁엄마: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똑 바로 가도 되는 길을 뺑뺑 돌아가는 기분이 들지 뭐야. 애써 불쾌감을 참고 있는데 여전히 돌고 있다는 느낌을 못 버리겠더라고. ‘왜 도는가라고 묻고 싶은데 돈다는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어. 그래서 꽥 소리를 지르며 따졌지. "세뇰, 뽀르께(왜) 뺑뺑?"
♣ 정선엄마: 학교에서 자모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정선이가 지나치게 펄쩍 뛰며
만류하는 거야. 부모가 바쁘게 살고 있으니까 제 딴에는 생각한다고 그러는구나. 그렇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다가 너무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곰곰 헤아리게 됐어.허구헌날 일에 파묻혀 지내니까 제 엄마가 초라하게 여겨져서 그럴까. 그런 의아심까지 생기면서 어디에서 그 원인이 생겼나 살펴보는 날들이 계속되었지.그런데 어느 날, 아, 이거구나 하는 이유가 저절로 찾아지더라고. 정선이와 쇼핑센터에 간 날이었어. 내가 값을 묻거나 계산할 때마다, 꼭 그 애가 나서서 내 말을 가로채는데 어쩌다 내가 한마디라도 거들게 되면 내 허리를 꽉 붙들고 치마까지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거였어. "안 돼, 엄마. 나서지 마. 엄마가 하는 말은 말이 아니야. 그런 엉터리 말은 이 나라 말도 안 돼."
♣ 가영엄마「 이민 온 뒤 몇 년 지나서 고국에 다니러 갔거든. 중학교 다니는 조카가 아르헨티나 노래를 한곡 듣고 싶다는데 변변하게 외워둔 게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겸손을 떠는 줄 알고 자꾸 떼를 부리는 거야. 계속 그러니까 나중에는 언니네 내외까지 합세하는 거 있지. 순간적인 기지로 떠오른 게 ‘베사 메 무쵸’곡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이름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꿰기였어."베사메 베사메 무쵸
꾸엔까 엘게라 깜빠나 아르헤리치
베사메 베사메 무쵸
가오나 나쓰까 빠에쓰 산니콜라스
그때 비로소 내가 겪었던 얘기를 해야 될 차례가 닥쳐왔지만 세상살이 물맛처럼 무덤덤히 지내기로 새삼 작정을 굳힌 바 있는 나는 그럴 듯한 에피소드를 특별히 기억해내지도 않았고 선선히 다음 친구에게 바통을 넘기는 일에만 한 몫을 했다.
외국어.
노력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지지 않는 성역일 것이다.
그런저런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직접 부딪쳐 말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그 단어가 자주 들린다 싶다가 이윽고 귀에 익게 되는 이치로 변하는 것일 테고.
예전에,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던 실수들을 숱하게 저질렀던 나의 친구들은 지금은 훨씬 나아지거나 조금 나아지거나, 여전히 실수투성이의 현지어실력을 구사하며 저녁노을처럼 석양 빛 도는 일상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구시대의 유물처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나고 똑똑하고 부티가 흐를까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어찌하면 한층 완덕에 이르는 도덕적 삶을 이룩할까를 모색하는
의연한 표정들에 익숙한 채 말이다.
각오라는 짐 가뿐히 등에 얹고 산 너머 산을 넘고 또 넘다가도
이리도 소박하고 격의 없는 친구들 내 곁에 있어 나 웃노라.
세찬 한파 속에서도 포근함까지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