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구정(舊正) 전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아들은 그동안 생일에 적절할 듯한 어떤 선물을 해도, 쓸데없이 왜 아까운 시간과 돈을 낭비하나, 그런 눈치만 보여왔다.
그리고 옷이나 운동화를 선물하면, 다시 또 사들일까를 염려한 나머지 1년이 지나야 겨우 그 옷이나 그 운동화를 사용해내는 기질이 있었다.
철없는(?) 어미의 버릇을 단단히 좀 고쳐주려는 의미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예외적이면서도 특별한 존재니까 자기처럼 살지는 말라고 그런다.
(물론이고 말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며 살기를 좋아하지, 아무렴.)
그리하여 아들은 언제나 거의 단벌처럼 옷을 입고, 운동화 하나를 6년 정도 신어낸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동서가 이 나라에 살 때,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 그녀의 아들들이 사들인 유명메이커의 한국 옷이나 명품 운동화를 두어 보따리 정도 가져다주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건 더 안 입고, 더욱 안 신어 내면서 곧장 이웃돕기에 보내는 걸 아들은 거침없이 단행해 왔다.
명품을 싫어하기도 하는 데다, 본인은 양반이기 때문에 남이 입거나 신던 신은 절대 가까이 안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생일이 닥치면, 나는 생각다 못해 봉투라도 건네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런 식으로 생일을 맞고 보낸지 몇 년쯤 되었을 것이다.
물론 미역국이나 잡채나 생선전 같은 , 주로 아들이 즐기는 생일식탁은 빠짐없이 준비해 준다.
하지만 케이크도 사양한다.
나는 100 페소부터 소중하게 여기는데
1페소조차 소중하고 큰 액수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아들은 그렇게 건네주는 돈으로 책을 산다.
물론 한글이 딸리니까 서반아어나 영어로 된 서적이다.
그냥 책이 아니라 주로 고전이고 헌 책일 때가 많다.
아들과 내가 가장 마음이 잘 통할 때는 각자 다른 언어로 된 책을 읽고 난 후, 서로 느낀 감상을 진지하게 주고받을 때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는 아들
아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 철학책들을 읽어내는지,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아들 앞에 서면 오메, 기죽어! 이다.
임진년이 시작되었을 때의 아들 생일날, 나는 봉투에 3백 페소를 넣었는데 그만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반납을 받게 되었다.
불경기에 무슨 선물이 따로 필요하냐면서 필요하면 그때그때 타서 쓰겠다고 나온 것이다.
아들은 몇 년 동안 과외지도비를 모아둔 저축이 있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결코 자랑이 못된다. 자랑이라기 보다 오히려 수치가 아니려는지.
하지만 나는 글쟁이니까 말하고 싶은 사항은 말하게 된다.
이리도 문명이 날로 첨단시대를 향한 발전과 성과를 거듭하는 세상에,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을 뿐이고.
또한 나처럼 뒤늦게 고생하는 것보다, 미리 당겨서 고생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세상공부라고 말없이 두둔하는 심정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수도권의 시내버스와 기차요금을 오는 2월 10일부터 전면적으로 인상하리라고 전격 발표했다. 1.5페소 정도 하던 금액이 4페소까지 대폭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단지, SUBE 카드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인상을 적용시키지 않겠다는 별도사항이 첨부된 발표였다.
SUBE 카드를 배부하게 된 날의 우체국은 가히 장사진을 이루었다.
24일 정오경에는 SUBE 카드가 바닥이 났다는 안내문이 일부 우체국의 정문에 붙여지기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5월의 광장 근처의 배부사무실에서는 1천 개의 SUBE 카드가 짧은 시간 안에 재빠르게 나눠졌다고도 한다.
많은 수의 사무원들은 새벽 4시에 줄을 서서 오전 10시에나 배부 받을 수 있었다고 현지 TV의 뉴스는 속보처럼 전하고 있다.
정부는 이틀동안 270만장의 카드가 배부됐다는 중간발표를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당일에는 줄 서야 하니까 하루 이틀 지난 후에야 가봐야겠다고 아들은 중얼댔었다.
26일인 어제, 인터넷을 검색하여 가장 가까운 장소 세 군데를 적던 아들은 뜻밖에도 반시간 안에 돌아 왔다.
첫 번째 갔던 곳은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디렉토리오 거리에 있는 문방구는 의외로 한가하여 금방 신청을 했노라는 설명이었다. 그곳조차 얼마 남지는 않았다면서, 카드를 보여 주기까지 하더라는 얘기였다.
AFIP(연방세입청)과 ANseS(사회보장국)에서 소비자의 정보를 전산화 시킨 후, 정부보조금 지원을 최대한으로 제한하려는 계획 아래, 이와 같은 제도가 긴밀하게 구성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 일리가 깃든 창출이라고 나름대로 수긍하게도 된다.
느닷없이 나는 달러의 변동도 적고, 물가의 변동지수도 낮은 나라에 살고 싶어진다 .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점만 바라보며 참고 참으며 살자니, 이리도 거추장스런 일에까지 신경을 잠시라도 빌려 주며 지내야 함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나는 한국이 좋다고 하는데, 아들은 이 나라를 몹시도 아끼고 사랑까지 해내고 있다.
한 번도 이 나라에 대해서 투덜대는 모습을 못 보았다.
분명한 것은 나도 아들도 이 나라에게 크게 바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보다.
다시 참고 참으며 살아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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