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8일 수요일

삼총사



   맹하린

H와 S와 나는 삼총사였다.
우리는 재수하면서 만났다.
나는 학창시절에 분단장은 맡아 놓고 했었는데, 고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공부를 멀리하고 문학적인 책만 읽어내느라 그만 재수생이 되었었다.
하지만 아이큐 검사의 발표시간에 반 애들 전부 42번인 내 아이큐 결과를 듣더니 모두 뒤돌아 나를 바라보던 시선과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가관이었다고 볼 정도로 머리는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되었다.
머리는 괜찮으면서 공부를 안 해서.
잘하던 애가 공부를 멀리해서.

H는 가수 하청일의 동생이고 S는 종로2가의 견지동에서 골동품상회를 경영하던 집의 딸이었다.
셋다 유족한 집안 덕택에 산악회에 가입하여 일요일에는 서울 근교에 있는 산들을 돌아가며 등산했다.
그때 서울대학교동문이고 유명회사에 다니던 오빠들을 만나게 되었다.
명현오빠는 S대학교대학원장의 아들이었고  H건설의 자녀와 약혼을 했었다.
그 오빠들은 대대로 내려오던 학자집안의 아들들로만 뭉쳐 있었다.
오빠들 여섯에게서 우리는 많은 지식을 익혔다.
하지만 오빠들을 하나 둘 약혼 시키고(?) 우리 삼총사는 오빠들도 산악회도 동시에 접었다.

H는 동국대 국문과에
S는 이화여대 체육과에
나는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가면서
우리 삼총사는 뿔뿔이 헤어진 것 같았지만
그러나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만났다.
서대문의 커피하우스나 명동에도 잘 갔지만
무교동의 르네상스에서 주로 만났다.

H는 남친 정도 있었고, S는 절친 정도 있었으며, 나는 편지도 보내오고 만나자고 몇 번인가 부탁하던 키 크고 잘 생긴 학우에게 맘은 있었는데 전혀 관심 없는 척을 했더니, 바보 같은 그가 훌쩍 군에 입대해서 그 뒤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쩌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내 노트를 빌려간 그가 노트를 돌려 줄 때 넣어 보낸 편지의 몇 구절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영남학생들의 모임이 있는데 함께 참석해 줬으면 했을 때, 그 부탁조차 거절하여 나는 아직도 그에게 빚진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그 후 미팅도 미팅이라는 말도 흥미를 잃고 말았었다.
나는 이미 그때 문학에 넋을 잃고 있었을 것이다.
교수진도 쟁쟁했다.
황순원, 조병화, 서정범, 등등.

S는 항공회사 사주의 조카와 결혼하여 유학중인 신랑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갔는데, 철없고,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나처럼 멋 부리기를 즐기던 그녀는 미국생활에 적응이 안 된 나머지 결혼 1년 만에 이혼했다. 지금껏 부유한 친정에 얹혀 혼자 살고 있다.
H는 애경유지 공장장이던 사람과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어쩌다보니 이민을 와 이렇게나 많이 흘러왔지만, 때때로 그 친구들이 너무나 그립다.

2만 5천 년이 걸려야만 당도한다는 별빛과 같은 사람.
나의 첫 고뇌였던 예전의 그대.
만일 누가 첫사랑을 묻는다면 선뜻 그를 말하리라.
방학에 고향에 돌아가 밤새 왈왈대며 떠들썩하던 개구리들의 외침 속에서 그에 대한 미안함으로 깨어 있던 밤을 기억한다.
그때였을 것이다.
항상 똑같은 날들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인연 너무 매몰차게 대하지 않으려던 각오가 싹튼 것은.
나는 그때 비로소 겸허를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 속에는 뜻밖의 선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연과 인연과 햇빛, 바람, 비.

내게 첫사랑이 있었고, 삼총사가 있었고, 산악회가 있었고, 가족, 유년의 시절, 이민자의 삶, 그리고 현재의 일상들이 있어, 나는 문학을 했었고, 문학을 가까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머물렀고, 머물고 싶은 생의 근원.
황량하고 공허하고 때로 가파른 흐름일 때 잦았지만, 어떤  은총을 안기는 기분이 들던 좋은 시간들이 대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좋은 시절들이 모두 옛날이 되었다고는 느끼지 않을 테다.
내가 선택해서 스스로 누릴 때는 고통이  아니다.
밀쳐 내려는 때가 특별히   힘든  고역이 되리라.
때로 내 맘은 모든 인류나 사물에 대해서 이해를 넘어 존중에까지 닿아 있음을  절절 깨닫는다.
나는 이미 작은 풀포기처럼 낮고 단순해져 있다.
내 안에 갇혀 지내던 감성  실꾸리 풀 듯 서서히 풀어내며 살아가겠다.
오늘은 나인지 그 누구에겐지, 또는 신에게인지 갈수록 선하리라는 약속을 하고 싶어지는,
참으로 해맑은 날이라선지 막힘없이 이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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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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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회 홍석오빠의 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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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어낸 책들아, 안경 가져가고 내 눈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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