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일 화요일
한 그루의 시
이기철
떠돎이 한갓 부랑(浮浪)이라 할지라도
나는 헴 가림 없이 떠돎을 사랑한다
바라보면 아득함이었던 길들은 수평이었던가
슬픔의 포기포기 길렀던 추억은 수직이었던가
내 열 살 적 눈 맞추었던 소백의 싸리꽃은 다 져버렸다
내 이름 몰라 그저 댕기새라 불렀던 새들은
하늘 가운데 작은 온기 남기고 사라졌다
죽은 새의 온기로 하늘이 따스하다고
나는 아직도 철부지 같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너무 맑아 눈물겨운 유리창 같은 세월아
찢고 난 뒤 다시 맞춰 읽어보는 숨 가쁘던 날의 연서들아
사랑했던 날들은 음악처럼 날아가 버린다
기쁨은 늘 희망의 반대 켠
나는 삼십만 번의 수저질로 그걸 깨달았다
스스로 가슴에 들어와 집을 짓는 이름들
그것을 누가 처음 사랑이라 불렀을까
그의 마음속 등불은 몇 촉이었을까
도라지꽃술 속에 들어 잠자고 싶었던 시간들
차마 등 돌릴 수 없었던 세간들
그 불편의 사랑을 이제금 나는 낭비였다 쓰고 싶지 않으니
밤이면 나 몰래 어둠 속을 지나 예까지 걸어왔을 정념
그 넓은 잎이 펼치고 싶은 꿈을 누가 잎파랑치로 펴겠느냐
이 세상에 없는 말 하날 찾아 헤매는 밤이 깊듯
이 세상에 없는 사람 하나 찾아 헤매던 날의 열의는
병이었던가 사랑이었던가
내 손수 놓았던 무지개다리 사라진 여기
다시금 채색한 마음 불러 색동시를 쓴다한들
그것은 내 편애의 생 기록한 부끄러운 노트일 뿐
그것은 내겐 사치스런 이름인 한 그루 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