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매월 셋째 월요일의 오후 2시에는 한인타운에 있는 노인회관에서 부인회 월례회가 열린다.
우리 고유의 떡과 커피, 그리고 계절에 따른 과일까지 들면서 1시간 반 정도의 회의가 진행된다.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이 닥치면 2백여 분의 교민 노인들을 초대해 각종 한국음식을 대접하교 고전무용 합창 등을 준비하는 일은 기본(基本)에 든다.
현지인 어린이 병원과 이 세실리아 수녀가 운영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 위치한 고아원방문들을 연례행사(年例行事)로 삼고 있다.
트럭에 헌옷과 국수, 밀가루 설탕 등을 바리바리 실어다 준다.
이번 달에는 이정애 고문께서 모국에 다녀오신 소감을 허심탄회하신 모습으로 토로(吐露)하셔서 회원들 모두 울컥한 감동을 껴안으며 열심으로 경청(傾聽)했다고 본다.
80이 넘으신 그분은 본국에서 종합검진을 받으셨는데 머리에 음성종양을 20년 동안 키워 낸 사실을 그제야 아셨다고 한다.
몇 번인가 쓰러지셨던 원인이 귓속의 나팔관 문제였다는 사실도 겹쳐서 알게 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두 번도 아니고, 한 번 밖에 못 살다 가는 인생, 꾸준히 사회와 교회에 신앙적인 열정까지 쏟으며 봉사(奉仕)를 잊지 않고 살아 와서 그점이 가장 감사한 일이었다고 하셨다.
그날따라 모국여행, 골프, 장사 등 이유라는 이유 모두 내세우면서 자리를 채우지 못했던 회원들이 좋은 말씀을 함께 못 들었던 일 내내 맘 켕겼다.
얼마 전 지병(持病)으로 세상을 떠난 K여인이 슬프도록 추억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40대 중반인 K여인은 이민 와서 사 입은 거라고는 외출복 두 벌과 핸드백 하나가 전부였다고 한다.
가게에서 파는 옷을 주로 입으며 오로지 재산을 모으기만 하고 떠났다는 얘기다.
교민 여성 골퍼인구는 대략 3백여 명 정도 되리라고들 집계를 한다.
나 역시 이민 초창기엔 골프의 매력에 빠져서, 평일 역시 혼자서도 필드에 나갈 정도였었다.
나는 교민 역사 상 첫 번째로 결성 된 여성골프회 '잔디' 모임의 12인 중의 한사람이기도 했다.
글쟁이 노릇에 온통 넋이 나가, 혹은 너무 시간을 많이 앗긴다는 이유로 오래 전 골프채를 꺾었다.
현재 그 '잔디'모임의 회원만도 이미 백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누차 짚어 왔지만, 우리 교민에게 골프라는 운동이 있어 줘 나는 자주 고마워하는 푼수 떼기다. 따로 즐길만한 운동이 마땅치가 않아서 더 그러는 셈이다.
지금을 분깃점으로 해서, 골프를 치면서도 한 달에 한 번 교민이나 현지인등을 위한 부인회의 자원봉사에 솔선수범(率先垂範) 참여하여 봉사하는 여인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정신수양을 위해 스스로 꺼려하는 일을 일주일에 몇 가지씩 실행해내는 내게 있어 부인회의 자원봉사는 어떤 면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치르는 정신수양의 숙제(宿題)를 풀어 내는 일이 될 확률이 크다.
내가 지키고 싶은 글쟁이로서의 자세는 다른 일에는 무관심하고 싶고 칭찬이라거나 비난, 혹은 실패나 성공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점에 있다.
부인회원이 되고나서 나는 마치 봉사라는 기본원칙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처럼 태도자체가 의연해졌다고 자긍하게 된다.
그것은 내게 인생의 어떤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나 나를 맹언니라고 따르는 동생들이 여럿이나 있어 언제라도 든든한 편이다.
우리 교민소유의 한인묘원과 우리 교민소유의 한인골프장까지 이룩해낸 교민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
몇 년 전부터 땅 정도는 사놓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둔, 우리 2세들을 위한 청소년 회관도 기필코 우리 부인회원들의 손으로 벽돌을 쌓아나가도록 점차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재아 한인 여성들이여!
부디 분발하시고 힘에 힘을 더해 부인회원으로서의 봉사도 차후에는 외면하지 맙시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여러분들의 선선한 발걸음과 모성애 가득한 손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