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가게의 초인종이 뚜뚜따따 울렸다.
중국산 벨소리다.
열 개 정도의 음악이 입력되어 있다.
길이가 15미터인 우리 가게는 맨 안쪽 간이 부엌에서 설거지나 물일을 할 경우, 벨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가장 경쾌하면서도 요란한 음악으로 설정해 두었고, 일단은 작업실과 매장 사이의 커튼을 젖히고 누구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다.
마늘이나 빗자루나 하여간에 장사치들이 하루에도 꽤 많이 눌러대는 상황에 자주 접하게 되지만, 입구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그쯤 서서 오른손을 양 옆으로 흔들기만 해도 그들은 잘 물러가기 때문이다.
오늘.
아주 훤칠한 현지인 청년이 벨을 누른 뒤 현관문에 서 있었다.
양손에 단감을 하나씩 들고 유리문에 댄 채였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 가 값을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보게 되었다.
우리 가게 앞, 두 그루의 오디나무 화단에 기대앉은, 30K는 될 것 같은 커다란 감 부대를...
한국식품점에서 1Kg에 10페소(1달러 20센트 상당)를 지불 했었는데, 그는 2Kg에 같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었다.
80페소를 냈다. 16Kg을 구입한 것이다.
절반이나 훌쭉 줄어든 감 부대를 가뿐한 모습으로 들고 가는 그의 자태는 어딘지 모르게 경쾌함이 묻어났다.
결혼해서 처음 찾아갔던 시댁에서 보았던 다섯 그루의 단감나무.
그 나무들에서 금세 따 낸 단감처럼 나는 몇 개인가를 연거푸 먹으며 아스라한 사색에 잠기고 있었다.
거지가 되긴 싫고 ,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을 그 청년은 우선 감 장사를 작은 규모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농작물이나 과일 값은 형편없고, 달러는 하늘을 찌를 듯 폭등하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오늘은 유리문을 동전으로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커튼을 젖히며 나는 우선멈춤으로 섰다.
감 청년이었다.
어제 남았던 반 부대를 부둥켜안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어제 남았던 반 부대를 부둥켜안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 당신 밖에 그 누구도 거들떠를 안 봐요. 못 생긴 감이라고 트집만 잡고, 하는 수없이 다시 왔습니다.”
나는 그에게 안도를 안기려고 먼저 미소부터 띄었다.
“못 생긴 감이면 언제라도 다시 가져와도 돼요. 못 생겼다는 건 비료나 농약으로 안 키웠다는 뜻이니까요. 훨씬 맛있었어요.”
나는 그에게 80페소를 주지 않고, 100페소를 건넸다.
100페소……. 몇 달 전만 해도 25달러였는데 지금은 12달러 정도나 될까 말까다.
나는 잊지 않고 그에게 칭찬 역시 얹었다.
“아무리 못 생겼어도, 이렇게 잘 생긴 감 가격은 첨이었어요. 너무나 고마워요.”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장갑을 사준 일이 있다.
아들은 장갑이 생겼다고 한 발을 두 번 씩 뛰면서 장갑 샀다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부르며 춤까지 추면서 앞서서 걷던 날이 있었다.
나는 감 장사 청년에게서 아들의 그때 모습이 그립게 오버랩 됨을 동두렷 보았다.
“청년이여! 어려움을 경험하는 게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닐 겁니다. 생활이 우리를 속이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속이지 않아야 해요. 부디 축복을 빕니다!”
댓글 4개:
가슴이 따뜻해져서 갑니다. 그 청년에게 희망을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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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부대 들고오면 어쩌시려고요? ㅎ ㅎ ㅎ
ㅎㅎ 아웃사랑이 이미 피부가 된 저에겐 그닥 새롭지도 않은 사실이죠. 자랑...ㅋㅋ
또 한 부대 들고 왔으면 싶은데 아직 안 오네요. 이번엔 몽땅 사주려고 결정하고 있습니다.이러고 살면 멀리 미쿡에서 장로님이 퍽으나 흐믓해 하실 것 같아서 더 이러려구욤.ㅎㅎㅎ 이런 얘기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해요. 건강하실 거죠?
벌써 단감이 나오는 가을이 왔네요.
어휴~ 생각만해도 군침이 도네요..쩝
그청년 어디 있습니까? 저도 한 부대 사고 싶습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잘하셨습니다.
아르헨님... 가을의 남자시라 가을이 왔다는 사실에 넘 취해사심? 네. 벌써 단감을 맛보았어요. 그 청년 덕택이었죠.ㅎㅎ 그 청년 다시 오면 사 놓고 연락 할게요. 저도 더 사고 싶은데 아직 안 나타나네요. 잘했다는 칭찬 잘 간직할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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