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월요일엔 카니발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라서 이 대단한 나라는 또다시 연휴였다.
공휴일에 특히 가게를 여는 나는 퇴근시간을 약간 앞당겨야 했다.
통상적으로 7시 30경에 가게 문을 닫는데, 7시부터 엄청난 폭우(暴雨)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
7시 10분쯤 서둘러 셔터를 내렸다.
집까지의 세 블록을 정강이까지 닿는 물살에 맡기고 되도록 찰박이며 기분 좋게 헤쳐 나갔다.
순복음교회 앞 모퉁이에서는 급류에 휘말려 잠시 왼발이 휘청했지만, 깔깔대며 순식간에 극복해 냈다.
모퉁이에서 내가 건너오기를 기다리던 가족이 껄껄 대는 웃음으로 구조(構造)의 손길을 대신하고 있었다.
깔깔과 껄껄이 각자 긴 손을 뻗쳐 서로를 붙잡아 주던 찰나였다.
신비스럽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뚝, 그쳤다.
나로선 행복하게 받아들인 비의 카니발이었을 것이다.
음력 설날이라 한인묘원에 가는 분들이 있어 약간은 바빴던 날...
이런 우연(偶然)을 보았을까.
설날이어선지 폭우(暴雨)도 축복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나의 생활은 얼마 전부터 전혀 다른 접점(接點)에서 영위(營爲)되는 느낌 유난히 강하다.
나 같은 사람의 상쾌함을 돋우려고 마련된 성싶은 이 도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는 내 생(生)을 툭하면 예술(藝術)에 기대며 거뜬상쾌히 지낼 수 있어 나름 감사로이 여기는 중이다.
예술(藝術)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우선은 이끌어 주다가 싹수가 노랗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내치는 묘수(妙手)의 도사다.
최근의 나는 방정식을 풀기 시작했다.
방정식은 언제라도 내게 난해한 장르가 아닐 수 없다.
나와 같은 수다꾼이 단답형의 페이스에 어찌 당할까.
세상이치(世上理致)란 언제나 마찬가지다.
말 많으면 지는 것.
말 많으면 지는 것.
더우면 지치는 사람도 많지만 난 정말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산뜻함의 연속처럼 단순명료하게 잘 흐르는 과정에 이르렀다.
눈앞에 펼쳐졌던 길이 끊어진 듯 한 느낌 가득했는데, 그런데 다른 숲길에 이른 이 기분이란 대체 무슨 의미인 것일까.
오르페우스와 같이 뒤돌아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삶도 글도 운명처럼 극복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뭔가를 위해,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고, 영감(靈感)이 다가와 그리 되는 것.
폭우가 내려서, 자가용을 안 키워서, 택시나 레미스를 타기는 정녕 싫어서가 아니라 폭우(暴雨)가 반가워, 헤쳐 나가는 순간이 극적(劇的)이어서 폭우(暴雨)를 반갑게 맞아낸 날이었다.
우산으로는 미약했던지 옷이고 몸이고 함초롬히 젖었지만 폭우(暴雨)로 인해 즐거웠다.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기도 했던 날들을 치유(治癒)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더욱 글에 침잠한다기 보다 한층 글에게 찰박이겠다.
나는 폭우(暴雨)에게서 거대(巨大)한 고독(孤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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